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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111화 (111/200)

§ 111화. 네바다주 (1)

“설명이라니요? 제가 뭘 설명하란 거죠?”

로버트 윤이 사납게 물었다.

자신은 청렴결백하고 도리어 잘못은 순전히 내가 저질렀는데 어떤 설명이 필요하냔 뜻이었다.

“아니요, 다른 건 아니고. 전화한 상대가 누구인지요.”

“중앙 협회 간부죠.”

딱히 숨기고 싶은 사실은 아니었던 듯하다.

“지금 이렇게 솔직히 말하는 건, 어차피 나중에 다 저에게 말해줄 생각이었다, 이렇게 느껴지는데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요? 그럼 이건 뭐지. 통화 내용 중에 저를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하던데.”

신동원이 번역해서 보내준 문자.

대화 내용 중에서 내 눈에 가장 거슬리는 부분이었다.

나를 이용할 방법이 있다는 것은 분명 게이트를 말하는 것이다.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나를 어떻게 이용한다는 걸까?

역시, 마냥 선의의 목적으로 접근한 건 아니다.

“뭡니까? 이용할 방법이란 게요.”

“해명부터 하시죠.”

갑자기 자신이 불리한 상황에 놓였다고 생각한 걸까.

로버트 윤은 내가 그를 감시했단 것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해명이랄 게 필요한가요? 이것만 봐도 정답인데. 겉으로는 협조적인 척하면서 뒤에선 어떤 음모를 꾸밀지 모르니. 제 부원 능력을 이용해 엿본 거뿐입니다.”

물론, 로버트 윤에서 충분히 기분이 나쁠 수 있다.

아니, 나쁜 것을 넘어 어쩌면 도발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르는 행동일 테지.

감히 중앙 협회 상대로 그런 경솔한 짓을 한 거라고 생각할 테니까.

그러나 결과적으론, 내 행동에도 정당성이 생긴 것이다.

내게도 입장이란 게 있으니, 그 입장을 강조했다.

“게이트가 어떤 존재인지 이미 설명했을 거 아닙니까. 게이트를 꼭 유지해야 하는데 중앙 협회가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 모르는 일이었고, 미리 알아내야 했으니까요.”

만에 하나.

중앙 협회가 나서서 게이트에 대한 야욕을 보이면 상당히 곤란한 처지에 놓인다.

막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일.

그렇기에 로버트 윤을 통해 중앙 협회의 스탠스를 알아보는 일도 필수적으로 필요했다.

“하려면 안 들키게라도 하던가요. 그렇게 초보적으로 하면 상대를 도발하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로버트 윤이 지적했다.

“그래요. 말씀 잘하셨네요. 들키지 않게 하던가요.”

“……뭐요?”

“당신도 들키지 않았습니까? 어차피 서로 초보적인 건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

로버트 윤도 나를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했으니.

숨기고 싶은 걸 들킨 상황과 같다.

로버트 윤의 말을 역으로 이용했을 뿐이다.

“해명은 이렇게 끝인데. 이제 남은 설명이나 들어볼까요? 저를 이용할 거란 그 말. 어떻게 이용하는 것인지요.”

“흐음…….”

이젠 물러설 곳이 없다.

로버트 윤은 이마를 긁적이며, 한참이나 뜸을 들였다.

“그래도 고향이 한국이라 그런지 뜸을 잘 들이시네. 밥 지어요?”

“그런 농담 재미없습니다.”

“재미있으라고 한 농담 아닌데요.”

“뭐, 좋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로버트 윤이 설명하려는 자세를 취했다.

“제가 네바다주로 가자고 하지 않았습니까?”

“네, 문제의 그곳.”

“일단 네바다주에 대해서 설명하지요. 네바다주는 세계인 전부가 알지만, 삼엄한 보안 덕에 존재만 알뿐, 정체는 잘 모릅니다. 오직 허가받은 자만 들어올 수 있으니까요.”

갑자기 네바다주에 있는 그 연구시설이.

얼마나 기밀유지가 철저한 곳인지 설명하는 듯하다.

그래, 어차피 나도 네바다주의 연구시설로 가야 하는 몸.

드래곤, 흑염룡과 약속한 정령 구출 때문에라도 꼭 필요하다.

따라서 현재 로버트 윤이 설명하는 네바다주에 대해서 미리 인지하고 있을 필요가 있다.

“심지어는 미국 대통령, 미국 협회장, 중앙 협회장도 오고 싶을 때 올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에요. 출입 시간을 사전에 정하고, 그 시간 안에만 방문할 수 있죠.”

그렇게 막강한 권력자들조차도 출입이 자유롭지 않다고 강조하는 거다.

“그런 곳을 제가 가게 됐으니, 영광으로 알아라. 뭐 이런 뜻으로 하는 설명인가요?”

“아예 없다고는 하지 않지요. 우리 입장에서도 당신을 네바다주로 데리고 가려고 한 것을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니까요. 그리고 제가 한 통화가 바로 당신을 최종적으로 네바다주로 출입할 것을 허가받은 것과 동시에. 네바다주가 어떤 곳인지 알려주라는 중앙 협회의 결정을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과는?”

“허가가 떨어졌으니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겠죠?”

“저를 이용하겠단 말은?”

“아직 순서가 아닐 뿐입니다. 그런데 궁금하지 않습니까? 존재는 알지만 정체는 모른다. 실로 전설에서나 나올 듯한 말이잖아요?”

그래, 나도 저렇게 보안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게 궁금하긴 하다.

말 그대로 존재는 알지만 정체는 모른다는 말은.

전설 속의 황금 도시. 엘도라도와 비슷하다.

엘도라도가 황금 도시라는 존재는 세계인 대부분이 안다.

그러나 그 황금 도시가 어디에 있는가?

이 정체를 모르기에 전설로 치부되는 것이다.

네바다주의 연구시설이 그와 상당히 유사하다.

엘도라도의 경우엔 황금 도시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위치는 모르기에 그 정체를 모른다면.

네바다주의 연구시설은 반대로 위치는 알지만 어떤 연구를 하는지를 모르기에 정체를 모른다고 할 수 있었다.

로버트 윤이 내게 물었다.

“당신은 네바다주라고 하면 바로 딱 떠오르지 않습니까?”

“미국의 많고 많은 주 전부를 외우는 외국인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한국인인 나도 한국의 모든 지명을 모르는데 남의 나라 지명을 알 리가 있나?

한국에서도 특히 지방 쪽은 평소에 자주 들어보질 않아서 “거기가 어디였지?”라며 역으로 묻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많은 세계 헌터 협회들이 방문해보고 싶어 하는 곳이지만. 절대 방문할 수 없는 비밀의 시설.”

다시금 로버트 윤의 강조가 시작됐다.

이젠 슬슬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도 거듭 강조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대단한 연구시설이란 거겠지.

“51구역이니까요.”

“……네?”

51구역이란 말에 나도 모르게 현실적인 반응이 나왔다.

51구역이면…….

[뭐야, 왜 그렇게 당황해? 51구역이 뭐 어쨌다고.]

흑염룡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오히려 내가 그 이름을 듣고 난 뒤에 어째서 당황하는 건지, 이해를 못하는 눈초리다.

‘정령인 넌 모르겠지만. 51구역은 인간들에게 엄청 유명하면서, 미지의 장소라고.’

[유명한데 미지? 말이 이상하지 않아? 유명하면 사람들이 다 아는 곳인데 어떻게 미지야?]

‘그게 가능한 곳이 전세계에서 아마 51구역이 유일할 거다.’

그래, 이제 이해가 된다.

왜 그렇게 보안에 강조를 했는지.

미국 대통령, 미국 협회장, 중앙 협회장과 같은 권력자도 왜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지.

51구역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는다.

“그러니까…… 그 사고가 일어난 곳이 51구역이었고. 제가 51구역을 방문하게 됐다, 이건가요?”

“네.”

“아니, 그럼 처음 사고가 발생했을 때 51구역이라고 하지 왜 네바다주라고 얘기를 했지……?”

내가 51구역이란 곳은 알지만, 51구역이 네바다주에 있었던 것인지는 몰랐다.

앞서 말했듯이, 한국의 모든 지명을 아는 것도 아닌데 해외 지명까지 외울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거야 당연히. 우리가 최대한 수습한 거죠. 51구역에서 그런 사고가 터졌단 것이 알려지면 우리도 곤란하거든요.”

이거…….

상황이 어째 점점 이상하게 흘러가는데?

51구역에서 그런 사고가 터졌다는 건, 바꿔 말하면 정령이 51구역에 있다는 거다.

정령이 어떻게 51구역으로 흘러가게 됐는지도, 알 수 없었다.

자, 이건 차차 알아볼 문제.

일단 당장 시급한 것은 나를 이용하겠다는 저들의 계획이 뭔지 듣는 것이었다.

“그래서. 저를 이용하겠단 말이 뭡니까?”

“51구역 연구진들은 헌터, 몬스터 대상으로 정말 다양한 연구를 진행합니다.”

“연구의 목적은?”

“그야 당연히 던전이 세상에 존재했을 때부터 진행된 연구들이니, 랭크가 낮은 헌터도 상위 던전을 비교적으로 쉽게 클리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이런 것이 주된 목적이었죠.”

C~D급 정도 되는 헌터가 상위 던전인 A급 이상 던전 레이드도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는 뜻인데.

그렇다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랭크가 낮은 헌터의 힘을 강하게 만들었다는 뜻으로 직결된다.

“인체 실험이라도 했다, 이 말입니까?”

“아예 없다곤 못하죠. 단. 그런 실험의 경우엔 무조건적으로 실험 대상자의 동의를 받습니다. 우린 그렇게 야만적이지 않아요.”

“인체 실험 자체로 이미 야만적인 것 같은데…….”

“실험의 목적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실험을 하는 목적은 인류 평화를 위해서였으니까요.”

말은 그럴듯하게 포장 하지만.

그래도 인체 실험이란 단어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박혀 버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난 중요한 사실 하나를 짚었다.

“인류 평화를 위해서라면서…… 이번에 사고 터진 건 던전이 완전 정복된 뒤가 아닙니까? 그 뜻은 당신들이 원하는 인류 평화가 실현됐음에도, 실험은 계속됐다는 뜻인데?”

정말 인류 평화를 실현하고자 하는 마음이 확실한 걸까.

이젠 저들의 목적도 의심스러웠다.

“우리도 인류 평화인 줄 알았죠. 그런데 던전이 완전 정복된 뒤에. 초월석이 갑자기 돌멩이로 전락할 줄, 누가 알았습니까?”

“그래서 실험의 정체는?”

“몇 년 전쯤. 미국의 감지 계열 헌터가 던전 레이드 진행 중에, 의문의 물체를 수집한 적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어떤 물체라는 것이 느껴지는 신비한 것이더라고요. 그것을 51구역으로 공수해 왔고, 해당 물체에 충격을 가했을 때, 초월석이 내는 에너지와 상당히 유사한 에너지가 나온다는 것을 파악했습니다.”

[……설마.]

로버트 윤이 설명을 하던 중.

무언가 눈치를 챈 흑염룡이 절망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래, 이제야 앞뒤가 맞아지네.

51구역에 정령이 흘러 들어가게 된 이유는 분명 미국에도 이지은과 같은 감지 능력자가 있었고, 그 사람으로 인해 재수 없게 잡혔기 때문이었다.

이지은도 흑염룡의 얼굴은 본 적 없지만 무언가 있다고 느낀 것처럼, 감지 계열 능력자는 정령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고, 흑염룡이 전에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뒤로 51구역으로 끌려간 정령에게 충격을 가하면 초월석과 비슷한 에너지가 나오는 것 역시.

정령들은 기본적으로 게이트를 만드는 능력이 있으니 그 에너지를 파악한 것이었다.

“우리는 그래서 실험을 계속했죠. 더 강한 충격을 줘서, 초월석이 내는 에너지와 유사한. 그 에너지를 어떻게 이용하면 초월석이 사라진 지금 상황에서도, 초월석이 있었을 때와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그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이제야 51구역에서 벌어진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됐다.

그 순간, 흑염룡의 몸체가 불안하게 떨렸다.

[그러니까…… 인간들 욕심 때문에…… 정령을 괴롭혔다. 이거지?]

이러다간 또 폭주할 위험이 있다.

흑염룡을 안정시키기 위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살포시 올렸다.

‘흥분하지 마. 내가 있잖아. 이제 데리고 올 거야.’

그리고 로버트 윤에게 말했다.

“좋아요. 나를 어떻게 이용할지 모르겠으나, 이용하고 싶은 거 다 이용하세요. 단. 51구역에 있는 그 의문의 물체. 그게 정령입니다.”

“네, 저도 당신에게 설명을 듣고 나니 왜 그 물체가 초월석과 비슷한 에너지를 방출했던 건지 이해가 되더군요.”

이제라도 알았으면 됐어.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이런 답변이 아니다.

“그 정령. 내가 데리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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