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110화 (110/200)

§ 110화. 정상 회담? (6)

겉으론 여유롭게 받았지만, 이런 상황에 강만식이 내게 전화를 한 이유는 딱 하나밖에 없을 것.

권다정을 믿고 내게 쳐들어왔을 때처럼, 그 상황이 그대로 재현될 거라 짐작했다.

-시끄럽고. 식사니 뭐니 필요 없다. 듣자 하니 거기 들어가려면 검문소를 통과해야 한다며?

“혼자 첩보 영화 찍어? 정보를 잘도 수집했네?”

-그걸 굳이 알아내려고 해야 알 수 있는 건가? 인터넷에 태강 디스플레이. 이 일곱 자만 검색해도 금세 나오던데.

뭐, 그렇겠지.

43개 게이트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철수한 태강 디스플레이 공장 부지가 아니냔 추측을 시작으로.

이곳에 검문소가 설치됐다는 사실이 인터넷 기사로 이미 널리 퍼졌으니까.

나도 괜히 한번 떠보려고 한 말이었다.

“그래서. 나한테 갑자기 전화한 이유가 뭐야? 용건만 말해. 바쁘니까.”

사실 어느 정도 용건은 알 것 같다.

그냥 끊어 버려도 되지만, 내가 친절하게 용건을 말하라고 한 이유도.

어느 정도 강만식의 생각을 알고 있어야 대응이 편하기 때문이다.

-하나만 말하지. 내가 손님 하나 데리고 그쪽으로 갈 거다. 출입 허가해라.

뭐가 그리도 당당하다고 저렇게 명령조로 말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손님?

믿었던 능력자 권다정은 이미 내게 빼앗긴 뒤인데도.

데리고 올 손님이 있단 말인가?

또 무슨 꿍꿍이로 이런 전화를 한 걸까?

분명 목소리를 보아하면, 믿는 구석이 확실히 있는 편인데 그 카드가 뭔지 궁금했다.

-일본에서 헌터 한 명이 왔다.

“일본 헌터……? 손님의 정체가 일본 헌터란 말인가?”

-그렇다.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일본 헌터까지 끌어들인 거지?”

-오해하는 게 있는데.

여기까지 강만식과 통화를 하면서, 이상한 걸 깨달았다.

강만식이 권다정을 데리고 내게 쳐들어올 때는 정말 이판사판 볼 것 없는 태도였고.

심지어 승기를 이미 손에 꽉 쥐고 있다는 당당함이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은근히 내게 설설 기면서 협조를 조심스럽게 요청하는 듯한.

마치 검찰과 경찰의 묘한 상하관계가 느껴졌다.

그 대단하신 강만식께서 내게 왜 이런 태도로 다가오는 걸까?

이유가 궁금했다.

-일본 협회 측에서 먼저 한국 협회를 통해 협조를 요청했다. 일본 헌터 중에 이미 생성된 게이트를 이용해, 이를 늘릴 수 있는 헌터가 존재한다던데? 그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한국으로 온 것뿐이다.

[뭐어?!]

나와 강만식의 통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흑염룡이 격한 반응을 보였다.

게이트를 늘릴 수 있는 헌터…….

그렇다면 나와 똑같은 게이트 관련 능력자.

즉, 정령의 주인이란 말이 되는데.

난 흑염룡을 쳐다보며, 속으로 물었다.

‘흑염룡.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 일본 헌터란 녀석에게…….’

[맞아! 우리 시오스 정령 중 한 명이 그 헌터를 주인으로 섬긴 거야!]

믿을 수 있는 확실한 정보는 얻었으니, 강만식에게 구체적인 내용을 물었다.

“그거 정확히 설명해 봐. 게이트를 이용해 또 다른 게이트를 만들 수 있다는 소리. 뭐야?”

-나도 전해 들은 거라 잘 모른다.

까칠한 답이지만, 적어도 거짓말을 하는 목소리는 아니다.

“그래서. 그 헌터의 능력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 게이트가 있는 내 부서로 데리고 와야 하니 출입을 허가해 달라, 이건가?”

-네가 허가 안 해주면 검문소를 지키는 장길수 팀장이 쫓아낼 거 아냐? 낸들 좋아서 거기 가는 줄 알아?

또, 또.

강만식 특유의 그 태도가 나왔다.

어차피 칼은 내가 쥐고 있는 상황인데.

괜히 불필요하게 센 척하는 저 모지리 성격.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그래, 관대하게 받아들여 센 척해도 된다.

어떤 경로로 일본 헌터에게 정령이 붙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게이트를 늘릴 수 있는 헌터라면, 정령을 데리고 있을 것이고, 흑염룡과 함께 했을 때 어떠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것은 내 추측일 뿐, 확실한 확인이 필요했다.

‘흑염룡. 다른 정령이 네 주위에 있으면 장점이란 게 있어?’

[충분히 있지! 정령들은 각자 게이트를 만드는 방식이 다르다고 했잖아? 하지만 내가 누구?]

‘대정령이시라며. 정령들의 왕.’

[그래! 그렇기 때문에 내가 만든 게이트는 안에 있는 초월석 등급이 평균적으로 높은 게 메리트지.]

‘그런데 지금 네 반응 보면 그게 전부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자신을 약간은 과시하는 것 같은 기분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마치, 대정령이라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만큼.

자신만이 가진 특별함이 있다는 것처럼.

[정답! 유에서 무를 창조하는 건 정령 중에서 나만이 할 수 있지! 아, 어설프게 날 따라 하는 녀석이 있긴 한데. 나에 비하면 내 날개 끝에도 못 미치지~]

‘으음……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게. 너처럼 기분 변화에 따라서 게이트를 갑자기 뚝딱 만드는, 그런 걸 말하는 거야?’

[정답!]

하지만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라고 하기엔…… 미국 네바다주에서 일어난 일은 뭐야? 그것도 결국엔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과 똑같잖아?’

네바다주에 있는 연구 시설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심지어 기관에 있는 헌터가 150명이나 희생이 된 희대의 사건.

그곳에 정령 하나가 있었고, 그 정령이 혹사를 당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과연 어떤 혹사를 당했는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형태로 게이트를 만드는 것은.

대정령인 흑염룡만이 할 수 있다고 했지만, 결국엔 네바다주에서 일어난 사건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었기에 흑염룡만 가능한 건 오류란 뜻이었다.

그것을 지적하자, 흑염룡이 변명하듯 설명했다.

[내가 말했잖아. 어설프게 날 따라 하는 녀석도 있었지만, 내 날개 끝에도 못 미친다고.]

‘그러니까 결국엔 너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란 뜻이잖아?’

[나 참. 그때 네바다주 사건을 영상으로 접했을 때 내가 뭐라고 그랬어? 그런 일이 일어난 이유 말야.]

‘정령이 혹사당해서.’

[그게 끝?]

‘무서워서 벗어나기 위해?’

[그래. 그거야.]

솔직히 이렇게까지 설명했는데,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다.

‘아니, 그래도 이해가 안 되잖아? 결과만 놓고 보면 너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내 말의 요점은!]

흑염룡이 이해를 못한 내가 답답했는지, 목소리를 높였다.

이해 못 하는 게 내 지능의 문제냐……?

네가 설명하는 게 애초에 이상했는데.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똑같이 설명해 봐라. 반응이 전부 나랑 똑같을 거지.

[공포 때문에 이성을 잃어서 잠재력이 나온 거야. 정령은 기본적으로 게이트를 만들 수 있어. 다만 그 방식이 다들 차이가 있는 거지, 그런데 이성을 완전히 잃은 상태에서 나온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왜 인간도 극한의 공포를 느끼면 갑자기 초인적인 힘이 생기거나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잖아?]

맞는 말이긴 하지만…….

여전히 결과적으론 오직 흑염룡만 할 수 있는 특별함이 느껴지진 않았다.

[게이트를 만드는 거 넌 가볍게 봐서 그렇지. 정령 생명력을 깎아 먹는 짓이라고! 힘이 엄청 드는 일이야! 그래서 대정령인 나도 솔직히 완벽한 수준이 아닌, 감정 변화의 힘을 빌리는 거라고!]

그래, 흑염룡도 게이트를 만들기 위한 전제 조건이 필요했지.

그 정도로 어려운 일이란 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까 요약하면. 다른 정령은 정말 이성이 날아갈 정도가 되어야 겨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형태로 게이트를 만들지만. 대정령 정도 되는 너는 이성이 날아가지 않아도 할 수 있다, 이건가?’

[그렇지! 이제야 이해가 되네!]

즉, 평소라면.

정령은 각자 가진 방법으로 게이트를 만든다는 거다.

방금 내가 강만식에게 들은 것처럼 게이트가 다수 있는 곳에 가서, 게이트를 늘리는 방법은 결국.

유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

보통 다른 정령은 그렇게 복제식이라는 거다.

오직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게이트 밭을 만들 수 있는 것도.

대정령인 흑염룡이니까 가능한 발상이라는 것까지는 이해가 됐다.

‘어쨌든, 확실한 건. 그 정령은 네 부하고 너와 함께 있는 게 서로에게 좋다, 이거지?’

[맞다니까!]

‘성질은……. 서로에게 좋다는 건 당연히 내게도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테고?’

[물론이지! 게다가 게이트를 늘리는 정령이라……. 누구인지 대충 의심이 가는데?]

‘친한 정령이야?’

[난 다 친해. 어차피 내가 대정령인데 안 친한 정령이 따로 있겠어?]

그건 그렇다.

시오스는 말로만 들었을 때 철저한 유대감으로 뭉친 종족 같았으니까.

-여보세요? 뭐야? 전화가 끊긴 것도 아닌데 왜 말이 없지?

강만식이 말이 없던 날 불렀다.

“좋아.”

-좋다니. 뭘?

“데리고 오라고. 게이트 관련 능력자. 나도 궁금하니까.”

-웬일로 이렇게 넙죽 승낙하지?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건가?

“크큭, 수작?”

오히려 내가 할 소리를 왜 네가 하고 앉았냐?

난 강만식에게 경고 하나를 남겼다.

“그쪽이랑 협회장이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건지 모르겠는데. 이건 명심해.”

-뭐?

“일본 헌터가 난 누군지 몰라. 이름, 나이, 성별, 성격 등등. 아무것도 모른다고.”

-그 얘기가 갑자기 왜 나오지?

“그런데 나와 같은 부류의 능력을 가진 일본 헌터는 눈빛만 봐도 서로 뭉칠걸? ‘나와 같은 부류의 능력’이니까.”

일부러 그걸 강조했다.

같은 부류의 능력이란.

게이트 능력자란 뜻이니까.

“같은 부류의 능력은 굳이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끈끈하게 뭉쳐진 유대감이란 게 존재하거든.”

-낮술이라도 했나? 갑자기 헛소리를 늘어놓는데.

시오스들의 유대감.

게이트 능력자는 또 시오스 정령의 주인이다.

따라서 주인도 똑같이 유대감으로 뭉쳐질 수밖에 없다.

시오스와 크루즈의 관계가 어떤지 다 알고.

던전과 게이트가 지구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사정 다 아는 사이니까.

즉, 내 아군이란 건 변함이 없다.

“헛소리는 무슨. 내가 분명 말했잖아. 경고라고. 강만식 너와 최현민 협회장이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해도,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그 헌터와 나는 끈끈하게 뭉쳐질 거니 수작은 물거품이 될 거라는 경고. 아니, 이 정도면 예고인가?”

-…….

그럼 그렇지.

너희들이 오직 확인이라는 목표만 가지고 일본 헌터를 데리고 왔겠냐?

가뜩이나 게이트를 늘리는 능력자인데.

어떻게 그를 이용할 생각만 했겠지.

그러나 너희는 간과한 게 있다.

게이트 능력자들에겐 정령이라는 연결의 매개체가 있다는 사실을.

그 위력을 제대로 보여주마.

“빨리 데리고 와. 기다리고 있지.”

그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정령…… 혹시 비르인가? 비르가 그 분야에 특화가 됐긴 했지만. 아니야, 비르는 나랑 가까운 국가로 가지 않았어. 바다를 좋아하던 아이라 사방이 바다로 깔린 호주로 갔었는데…….]

흑염룡이 이제 정령의 정체를 추측할 때였다.

하지만 난 조금 걸쩍지근한 사이가 됐다.

하필이면…… 중앙 협회 감찰부장 로버트 윤이 이곳에 있는 와중에 일본의 게이트 능력자가 오게 됐다니.

로버트 윤에겐 전후 사정 전부 설명해서 납득시키는 건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그 일본 헌터에게 로버트 윤이 누구인지도 설명해야 하는 등등. 복잡한 절차가 생겨 버렸다.

이젠 나와 로버트 윤의 대화가 아닌, 중간에 외국인 하나가 더 끼었다.

미국, 한국, 일본.

졸지에 내 부서가 삼국 정상 회담이 펼쳐지는 장이 되고 말았다.

“일단…… 가자.”

일본 헌터가 오기 전, 로버트 윤과의 대화는 끝내야지.

로버트 윤이 기다리고 있는 부서 사무실로 들어갔다.

“해명하세요.”

그는 내가 들어서자마자 나를 지적했다.

별도의 능력을 이용해 그를 감시한 것에 대해, 깊은 볼쾌감을 표출하는 중이다.

우웅.

동시에 짧은 진동.

휴대폰을 슬쩍 확인하니, 신동원에게 보낸 영어 녹음 파일 해석이 문자로 날아왔다.

“해명 전에. 설명 좀 듣고 싶은데.”

오히려 내가 역으로 로버트 윤에게 말했다.

단, 내 눈은 신동원이 보내준 문자에 향한 채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