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정상 회담? (5)
뭐?
네바다주로 함께 가?
로버트 윤이 제안하자마자, 나와 떨어질 수 있는 최대거리까지 떨어진 흑염룡이 반응했다.
마치 토끼가 귀를 쫑긋 세우며 주변을 살피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그 직후.
흑염룡을 쪼르르 내게 날아왔다.
[야! 이거 엄청 잘 된 거 아냐?! 어차피 우리도 거길 가야 했고, 갈 방법이 마땅치 않은 게 문제였잖아?! 그런데 저 인간을 이용하면 쉽게 갈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로버트 윤의 실수로 인해 풀이 완전히 죽은 모습은 이제 사라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갑자기 활기가 솟은 흑염룡이다.
‘알지. 아는데…….’
얘기가 왜 이렇게 흘러가는지가 가장 문제였다.
무릇, 상대가 무언가를 제안할 땐 필시 그 안에 상대의 노림수가 있다.
게다가 로버트 윤이 대뜸 제안한 것을 보면, 그도 내가 네바다주로 가는 것을 바란다는 뜻이 숨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문제.
왜 그는 내가 네바다주로 향하길 바라는 걸까?
중앙 협회 소속 감찰부장씩이나 되시는 분이.
외국 헌터의 입국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아는 사람이?
게다가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서 직접 부른 게 아니면 일반적인 여행 허가도 내주지 않는 정도로.
까탈스럽기 그지없는 곳 아니던가?
전적으로 그런 귀찮은 제약은 자신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말도 녹아든 제안이었다.
‘상대가 무슨 꿍꿍이로 그런 제안을 했는지. 알아보는 게 먼저 아닐까?’
나도 네바다주로 가는 건 환영이다.
다만, 로버트 윤이 별도로 원하는 게 뭘까?
지금 대화 흐름이 상당히 이상하다.
크루즈 얘기를 하다가 돌연 네바다주로 함께 가자는 제안이.
어디 정상적인 흐름이란 말인가?
네바다주가 크루즈와 연관된 장소가 아닌데도 이런 제안을 하는 게 이상했기 때문이다.
[으음…… 그렇지? 갑자기 문제의 네바다주 얘기하는 게 이상하긴 하지? 우리가 네바다주로 가고 싶어 하는 걸 미리 알아차린 것도 아니고.]
그제야 흑염룡도 냉철한 판단을 내렸다.
좋아, 로버트 윤의 생각을 알아본다.
그러기 위해선. 돌직구만 한 게 없다.
“왜요?”
내가 딱딱하게 묻자, 로버트 윤이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오호라, 감찰부장씩이나 되시는 분이라 연신 차분하고 냉철할 줄 알았더니.
흑염룡에게 실수할 때가 아닌, 이런 간단한 두 글자에도 당황을 하신다라?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게 확실했다.
“음…… that is…….”
“영어 하시지 마시고. 본인이 불리하면 영어가 습관적으로 나오는 것 같네요?”
“나고 자란 게 미국이니 이해해 주시죠?”
“뭐, 그럴 수 있겠네요. 편하실 대로. 아무튼. 마치, 제가 네바다주로 향하길 바라는 것 같은데.”
“너무 넘겨짚는 것 같은데요.”
“아니요, 아주 절실하게 느껴졌는데요?”
일부러 과장을 보태서 답했다.
난 이렇게 확신하는데, 어떻게 피해갈 거냐?
라는 심리전이 가미된 답이었다.
“흐음…… 잠시 자리를 비워도 되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자리를 비우겠다라?
이건 또 무슨 의도일까?
역시, 이것도 돌직구다.
“왜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 독단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라서요.”
“그렇다면 누구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건데, 그게 혹시……?”
“네, 이미 짐작하고 있군요. 중앙 협회의 승인입니다.”
그래.
결국엔 로버트 윤에게도 윗사람은 존재하고, 그 사람에게 통제를 받으면서 행동하는 사람이다.
그가 미국에선 먼 나라, 한국까지 온 이유도 단순 고향 방문일까.
전부 업무적인 일일 거다.
“그러시죠.”
난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하난 확실하다.
로버트 윤의 윗사람에게 허락을 받고, 그가 내게 하고 싶은 말을 들은 뒤에야.
그가 왜 날 네바다주로 데리고 가려고 했던 건지.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시간이 조금 길 수도 있습니다. 그럼, 잠시.”
로버트 윤은 그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난 이 상황에 꼼수 하나를 사용했다.
로버트 윤이 조용한 자리를 찾기 위해 사무실 밖으로 나갔을 때.
나도 따라서 그의 뒤를 따라 나갔다.
로버트 윤은 어딘가로 급히 전화하던 찰나에, 따라붙은 날 보며 물었다.
“뭡니까……?”
상당히 경계하는 질문.
그 정도로 지금 통화를 하려는 내용이나 상대가 국가기밀처럼 무척이나 중요하단 뜻 아니겠는가?
“화장실 좀 가게요.”
“아~ 네.”
말은 그렇게 하고 사실 내가 향한 곳은 기숙사다.
내 부원이 있는 기숙사.
그곳에서 난 정다훈을 찾았다.
“다훈아!”
“네, 네?!”
“네 능력 있지?! CCTV처럼 감시할 수 있는 그 능력!”
“아! 네!”
“그거 소리도 들리게 할 수 있나?!”
“거리가 멀면 안 되는데, 가까우면 돼요. 제가 포털을 열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우면, 근처에다가 포털을 열고 도청처럼 소리만 엿듣는 방식이라서요.”
오~ 마침 잘됐다.
“그래? 당장 해 봐! 목표는 우리 사무실 밖 복도 있지? 거기에 아까 본 외국인이 서 있을 거야! 그 사람이 통화 중인데 어떤 내용의 통화를 할지 미리 엿듣게!”
어차피 내게 전달하기 위함 아닌가?
그러나, 로버트 윤의 윗사람이 허락하지 않았을 경우, 난 무슨 수를 써도 알아내지 못할 수 있다.
따라서 그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나만의 꼼수다.
“다 됐어요!”
정다훈은 곧장 내가 원하는 형태의 포털을 열었다.
복도 구석에서 무슨 특수요원처럼 몰래 통화 중인 로버트 윤.
그리고 그의 통화내용이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달된 순간이다.
-I have a request. It's pretty serious.
“어……? 영어인데요?”
통화내용을 엿듣기 위함이었는데, 막상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인 영어가 나오자 정다훈은 무척이나 당황한 모습이다.
아무렴 내가 이런 것도 생각 못 했을까?
“그냥 우린 듣고만 있으면 돼. 해석해줄 사람 따로 있으니까.”
“네……?”
난 정다훈에게 싱긋 웃으며 내 휴대폰을 보여줬다.
“녹음?!”
그렇다.
이 대화 내용을 녹음한 뒤.
곧장 신동원에게 보낸다.
그리고 신동원의 해석을 보면 그만이다.
“그러니까 우린 듣고만 있으면 돼.”
그렇게 로버트 윤의 통화는 2분이 넘어가던 찰나였다.
-Wait. It's not a place to have a conversation. We will contact you again. sir.
그런데 돌연 영어를 몰라도 분위기 흐름 상 뭔가 이상하다고 느껴졌다.
로버트 윤은 정다훈이 그를 CCTV처럼 감시하기 위해 만든 능력을 빤히 쳐다보는 중이었다.
“응, 다훈아. 능력 거둬. 역시, 눈치 빠른 양반이라 눈치챈 거 같다.”
우리가 엿보고 있단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또렷하면서도 노골적인 시선을 보내지 않았을 거다.
-장난이 너무 지나칩니다. 미스터 윤.
역시.
그가 정다훈의 능력에 대고 한 소리다.
소위 말하는 짬밥 좀 먹었다 이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검문소에 설치된 포털도 금세 보고 파악하더니.
눈썰미가 역시나 좋은 인간이다.
“이거…… 큰일인 거 아니에요……?”
자신의 능력을 들켰다고 생각한 정다훈이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야. 내가 시킨 건데 뭘. 넌 아무 잘못 없어. 잘했어, 다훈아.”
어차피 들킨 마당이니. 가 볼까?
과연 로버트 윤은 어떤 답변을 내놓을지, 은근히 기대가 됐다.
기숙사를 떠나, 로버트 윤에게 향하는 길에.
신동원에게 녹음 파일을 보내고, 문자 하나만 남겼다.
[여기 대화에서 나오는 영어 해석해서 남겨줄 수 있죠? 꼭 문자로 남겨줘야 해요. 전화는 안 되니까요.]
문자를 보내고 약 15초 정도 뒤.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짐작은 갑니다. 이미 장길수 팀장님에게 보고 들었어요. 그것과 연관이 있는 거겠죠? 영어라고 했으니 최대한 빨리해서 보내드리죠.]
신동원도 이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니 편했다.
그렇게 로버트 윤이 기다리고 있는 부서 사무실로 이동하던 때다.
우우우우웅.
내 휴대폰이 진동하기 시작한다.
전화는 안 되니 문자로 보내달라고 했는데 신동원이 그새 까먹은 걸까?
아니면 문자로 남길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급했던 걸까?
휴대폰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뭐야?”
의외의 발신자에 당혹스러웠다.
***
강만식이 협회장 최현민에게 상황 전달을 위해 통화를 걸고, 히로시라는 일본 헌터의 입장을 전달했을 때였다.
-그게 뭐가 문젠데? 당장 그렇게 진행하면 되잖아?
최현민은 오히려 너무 과하게 신중한 거 아니냐며.
자신을 타박하는 듯한 답변이었다.
‘이 영감이…… 귀찮은 일은 전부 나한테 떠넘기시겠다?’
현장에 있지 않고, 얼마나 곤혹스러운 상황인지 모르니까 저런 태평한 소리가 다 나오는 것 아닌가?
게다가 협회장이라는 든든한 방패가 그를 지켜주고 있는 중이니.
말로 뱉으면 전부 되는 줄 아는 모양이다.
양산부로 가고 싶다는 건, 결국 강만식이 데리고 가야하고.
윤도원과 한판 벌인 뒤에 태평하게 그와 대면해야 하는 껄끄러운 일을.
행동대장 격인 강만식이 모든 걸 감내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뭐야, 설마 양산부장한테 위압감이라도 느끼거나 그런 가야?
심지어 저런 비아냥까지.
“후우…….”
무참히 무너지는 자존심에 강만식은 일부러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혼자만의 소심한 반격이다.
하지만 대놓고 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권력도 그렇고.
최현민이 이 일을 추진한 이유.
강만식도 잘 안다. 사이가 틀어진 윤도원과 화해하지 않아도 자신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이 있기 때문.
최현민의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은 폭포처럼 위에서 아래로 내려와, 강만식에게도 영향이 간다.
강만식의 최종 목표인 협회장.
그 권력의 상징 자리에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럼 적어도 미리 협회장님이 윤도원 그 자식한테 언질이라도 주시던가요.”
그래도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필요했다.
적어도 그 장치를 협회장이 직접 만들어달라는 요청이었지만.
-나까지 가세하면 퍽이나 윤도원이 냉큼 받아들이겠어? 그냥 무대포로 밀어붙여. 그게 우리 스타일이잖아. 괜히 언질 줬다간 우릴 거부할 명분을 만들 시간만 주는 거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강만식 자신 혼자서 전장에 선 총알받이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하아…… 그래서. 저 쪽바리 놈 요구 그대로 다 들어줘라, 이겁니까? 나이도 어린놈이던데.”
-말조심해. 지금 우리가 기댈 건 그 일본 헌터밖에 없어. 게이트를 늘리는 녀석이라고! 윤도원이 있는 양산부에 데리고만 가면. 게이트를 늘리고, 우리가 그걸 회수하면 돼. 그리고 그냥 세계에 풀어 버리자고. 지금 당장으론 그것밖에 답이 없어.
비록 세상에 푸는 물량이 소량이긴 하나, 그것 말고는 타개법이 아예 없다는 뜻이다.
“하아, 약속이나 제대로 지키십시오.”
-그동안 내가 안 지킨 적은 없잖나? 자네에게 관리부라는 부서도 만들어준 사람이 나야. 그걸 잊지 말게.
“끊어요. 윤도원한테 연락은 해 봐야 하니까.”
-굳이? 그럼 쫓아낼 명분만 준다니까?
“어차피 이미 그놈 부서 습격할 때 이런 식으로 하지 않았습니까. 상황 알아보니 장길수 팀장이 입구에 검문소까지 설치했대요.”
-이런, 그건 몰랐군.
“그러니 연락은 해야 들어갈 수 있을 거 아닙니까. 협회장님 이름 팔아도 되겠죠?”
-눈치껏 적당히만 한다면.
“예. 알겠습니다.”
강만식은 그렇게 끊고, 곧장 윤도원에게 통화를 걸었다.
***
“강만식 부장이 웬일일까? 이번에도 화분 주려고? 아차차! 이제 나한테 줄 화분 없지? 그럼 뭐야? 식사라도 준비하란 건가?”
발신자는 다른 놈도 아닌 강만식이었다.
하필 왜 이런 타이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