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정상 회담(4)
호텔로 도착한 히로시.
그가 앞으로 묵을 객실에 강만식과 임동식이 함께 들어섰다.
임동식과 강만식은 이제 본격적으로 자신들이 얻고 싶은 정보에 관해서 물었다.
“게이트를 어떻게 만드는 거냐고요?”
이것이었다.
한국 협회 관계자에게 중요한 것은 게이트를 만드는 원리.
윤도원도 알려주지 않은 것이기에, 같은 능력을 지닌 히로시를 통해서 알아내려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이미 히로시는 이들의 대화로 게이트 능력자와 어떤 관계를 형성했는지 눈치챈 상태.
전적으로 그는 한국 협회 관계자보단 게이트 능력자의 편이었기에, 최대한 말을 아꼈다.
“그건 이미 알려드렸잖아요? 우리 협회장님이 메일 내용에 썼을 텐데? 게이트가 일정 수 이상 있으면, 조각을 떼어 내어 하나씩 추가하는 개념이라고요.”
“그러니까 그 원리가 무엇인지…….”
특히 이 자리에선 일본어가 가능한 사람, 임동식이 주로 대화에 임했다.
“그 원리까지는 모르는데요?”
히로시는 사실대로 말했다.
자신이 직접 게이트를 늘리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정령이 하는 일이기에.
원리까지 전부 자세히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한국 협회 관계자에게 전하지 않은 사실 하나가 있었으니.
바로 자신에게는 게이트를 만드는 정령이 있단 것이었다.
“으음…… 자신의 능력인데 원리를 알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인지.”
임동식은 여전히 믿지 않았다.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 왜 숨기냐는 투로 심문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에 히로시가 표정을 굳히며, 이번엔 강압적으로 나갔다.
“심문으로 느껴지는데. 제가 여기 심문당하려고 온 건가요? 한국 협회와 일본 협회가 서로 협력하기 위해 온 거 아니었던가요?”
“……그렇죠.”
이럴 땐 각 국가가 가진 국제 영향력이 큰 힘이 된다.
아쉽게도 한국은 일본에 비하면 국제 영향력에서 미세하게 뒤처지는 상황.
그렇기에 일본 헌터인 히로시에게 모든 걸 강압적으로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나저나 전 언제 갑니까?”
히로시가 묻자, 임동식이 난처한 반응을 보였다.
“어딜…… 간다는 말입니까?”
“게이트가 있는 곳이요. 거길 방문하기 위해 온 건데. 언제 가는 거죠?”
“어 그게…….”
“왜요, 저 꼬맹이가 뭐라는데.”
둘이 한창 일본어로 대화할 때,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것을 감지한 강만식이 물었다.
[히로시. 저 보디가드라는 남자. 이름이 강만식이었지?]
‘응. 분명히 그랬어.’
[너한테 꼬맹이래.]
‘칙쇼, 나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야?’
[처음부터 무시할 생각이었던 거지. 역시…… 분위기가 좋지 않더라니.]
히로시의 옆엔 정령 오리가미가 있어, 모든 상황을 전해줄 수 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는 강만식의 실수였다.
‘저 남자. 나도 거리를 둬야겠군.’
[확실한 건 이들은 협력보단 이용할 생각으로 너를 부른 것 같아. 그것도…… 한국에 있는 정령의 주인과 연관이 있는 걸까?]
‘이제부터 알아봐야지. 왜 쓸데없는 걸로 시간을 끄는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나도 빨리 보고 싶은데. 한국에 어떤 정령이 있는지 궁금하단 말야.]
‘그런데 오리가미. 만약 게이트가 있는 장소로 갔을 때. 그 사람과 한국인 정령 주인과는 어떻게 내가 대화를 하지? 너를 통해야 하나?’
정령은 인류가 사용하는 모든 국가의 언어를 알고 있다.
게다가 한국에도 히로시와 같은 정령의 주인이 있으니, 서로 대화하는 것에는 크게 문제가 없지만.
그저 과정이 불편할 뿐이었다.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기에, 정령을 통해야만 하고 그러다 보면 전하고자 하는 의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괜히 통역가라고 다 같은 통역가가 아니고, 그중에서 실력이 있고 없고를 판단하는 기준이.
단순히 외국어를 할 줄 아는 게 아닌.
말하고자 하는 의도와 의미를 최대한으로 살리며 전할 수 있냐 없냐의 차이가 되는 것이다.
[그건 걱정하지 마. 어차피 너랑 나는 정신이 이어져 있잖아. 그것과 같이, 정령의 주인끼리 대화를 하면 굳이 내가 통역을 하지 않아도, 주인들끼리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어. 언어가 달라도.]
‘오오! 스바라시이!! 그럼, 혹시. 너와 내가 이렇게 정신으로 대화하는 것처럼. 그 정령의 주인과도 그럴 수 있어?’
[응.]
‘스고이!!’
[그러니까 그 장소로 가는 방법 좀 만들어봐. 이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맡겨만 보라고!’
“그게…… 양산부로 얼른 가고 싶다는데?”
강만식은 히로시가 뭐라고 했냐고 물었다.
이에 임동식이 곧장 실시간으로 통역을 했다.
“하, 지금 당장 가야 한다는 건가?”
“일단 최대한 설득을 해 보지…….”
임동식이 그렇게 답했을 때.
“아니. 지금 당장 가야 해요. 저도 제 협회장님에게 보고해야 한단 말이에요. 지금 당장 일본에 연락해서 한국 협회가 메일로 온 것과 달리 비협조적이란 말을 해야 하는 겁니까.”
“후, 피곤하군.”
강만식도 일을 피곤하게 만들 리는 없었다.
“잠깐 기다리고 있어. 내가 협회장님과 통화하고 올 테니까.”
임동식에게는 그렇게 말해두고, 옆방으로 자리를 비웠다.
***
난 로버트 윤에게 모든 걸 설명했을 때다.
던전 속에 있는 몬스터들은 시오스라는 부류이고.
크루즈는 그보다 강한 존재.
시오스와 크루즈는 서로 오랜 기간 전쟁을 이어왔고, 시오스가 점점 패색이 짙어지자 인간계로 피신을 온 것.
단, 인간들도 휘말리지 않게 하기 위해 크루즈도 따라서 인간계로 넘어오는 것을 막았고.
그것이 바로 던전이 하는 역할이란 걸 전했을 때다.
그리고 헌터들이 사용하는 능력의 원천도 초월석에서 온 것이라는 중요한 사실도 알렸다.
“어…… 그러니까…… 어어…….”
역시, 전혀 예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일까?
로버트 윤은 상당히 당황한 반응이다.
“못 믿는 겁니까?”
하지만 그의 태도가 이제부터 중요하다.
대답을 강요한 질문을 쏟아 내었을 때.
한동안 침묵을 유지한 뒤에 답했다.
“아니요, 못 믿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면 다른 걸 묻죠. 인류가 크루즈를 만난 적이 있나요? 분명 던전 속 몬스터보다도 강력하고 무시무시한 존재라고 했습니다. 그런 크루즈가 인간계에 나타났다면. 나라 하나쯤은 가뿐히 지도상에서 사라지고도 남을 것 같은데요.”
“보다시피.”
난 내가 펼친 총 44개의 게이트를 가리켰다.
“일단 임시방편으로 최대한 막아두었기에, 아직 나타나지 않은 거죠.”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인류를 위해 힘썼다,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는 건가요?”
“하지만 안심하긴 이릅니다. 이 게이트는 한국에만 열려있으니, 한국에 있다고 해서 크루즈의 침입을 전세계적으로 막을 수 있는지, 없는지 우리도 모릅니다.”
던전이 완전히 사라진 지금.
게이트라는 건 이제 크루즈가 넘어오지 못하게 하는 방파제 역할.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물론, 인류에겐 게이트를 정복하고 새로운 초월석을 얻어 자원 뻥튀기 기술을 재현할 수 있는 믿음의 존재이지만, 현재로서는 무턱대고 전부 자원 뻥튀기에 사용할 수는 없었다.
한국에 44개의 게이트가 있다고 한들.
한국만 비교적 안전하게 변하는 건지, 아니면 전세계가 안전하게 변하는 것인지.
역시,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기에 마냥 안전하다고 할 순 없었다.
“이거 참…… 꽤 충격적인 소식이군요. 정말 우린 아무것도 몰랐는데.”
그래도 다행인 건 로버트 윤은 내 말을 전적으로 믿고 있단 거다.
아마도 그가 보는 앞에서 새로운 게이트가 생긴 게 결정적으로 보였다.
“저한테 물었죠? 크루즈가 인류에 나타난 적이 있냐고요.”
“네.”
“정확히는 크루즈가 나타난 건 아니지만, 크루즈와 비슷한 몬스터가 나타난 적은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요? 그 정도라면 인류가 난리가 났을 텐데요.”
“네, 실제로 난리가 나지 않았습니까? 정말 모르시는 거예요?”
“뭐를……?”
증거물을 보여주고 싶지만, 증거물은 이미 사라진 상태.
난 그에게 한 마디만 일렀다.
“미국 네바다주에서 일어난 사고요.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수습했지만, 제 눈은 못 속입니다.”
“……하, 하하.”
네다바주란 이름이 나오자.
갑자기 로버트 윤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뭐가 그렇게 웃기죠……?”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요. 제가 겪은 몬스터와는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른 몬스터…….”
“제가 겪은……? 잠깐……. 그렇다면……?”
“네, 우리도 모르는 사실을 알 정도로 지식이 해박한 당신의 눈에는 진실이 보였겠군요. 영화의 한 장면? 거짓말입니다. 실제 네바다주에서 일어난 사고가 유출된 겁니다. 더는 일이 커지지 않기 위해 수습한 것뿐이고요.”
“그런데 제가 겪었다고 말을 한 건……?”
“그 몬스터. 제가 없앴으니까요.”
세상에.
이건 단순히 중앙 협회 소속 감찰부장이 아니라, 헌터계의 최강자가 따로 없었다.
로버트 윤이란 이 사람.
나이는 젊은데도 세계의 비밀스러운 일 전부에 관여가 된 아주 특별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당신이 네바다주 현장에 있던 사람이란 뜻입니까?”
“네. 그 몬스터로 기관에 주둔하던 헌터 150명이 한순간에 희생됐어요. 그렇게 무지막지하고 포악한 몬스터는 저도 처음 봤고요. 그러니까 당신이 말한 시오스의 적인 크루즈. 그 포악한 몬스터보다도 훨씬 강하단 뜻 아닙니까?”
“맞습니다.”
“God damm, 그런 괴물이 인류에 모습에 드러내면…….”
“한 국가가 아니라 지구가 그냥 사라질지도 모르는 일이죠.”
“이거 생각 외로 엄청 심각한 일이였군요. 그런 줄도 모르고 인류가 던전을 완전 정복해 버렸으니…… 혼자서 구멍 난 댐을 막고 있었던 겁니까?”
그는 진심으로 나를 향해 존중의 한마디를 남겼다.
“어차피 저도 인간이고 살기 위해선 그 방법밖에 없으니까요.”
“당신 덕분에 귀중한 정보를 얻었군요.”
그리고 내게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난 여기에서 확실히 느꼈다.
이 로버트 윤이란 사람.
적군인지, 아군인지 여전히 알 순 없지만.
적어도 이 마음 하나는 똑같다.
나와 같이 인류 안전에 힘쓰는 사람이란 것을.
어쩌면 이 사람은 믿어도 될 것 같았다.
난 압수한 그의 휴대폰 돌려줬다.
“……갑자기 돌려주신 이유는?”
“녹음이건 영상 촬영이건 증거물 남기세요.”
“갑자기요?”
“네. 당신 태도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중앙 협회 소속 아닙니까?”
“그렇죠.”
“그런 대형 국제기관에 소속된 사람의 태도가 이렇다는 것은. 그 기관의 성격도 당신과 똑같다는 것 아닐까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이 있다.
지금 로버트 윤은 인류의 안전을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는 것은 그가 속하는 중앙 협회도 같은 마음일 것이라 여겼다.
한국 협회장 최현민이 비리로 가득하니, 그 밑에 있던 부하들은 어떠하겠는가?
강만식만 봐도 답이 쉽게 나왔기 때문이다.
난 정말 오랜만에 믿을 수 있는 새로운 사람을 만난 느낌이다.
“일단은…… 고맙습니다.”
로버트 윤은 곧장 자신의 휴대폰을 받고, 동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다큐멘터리 인터뷰처럼, 나와 그가 대화하는 모습을 담는 중이다.
그리곤 내게 넌지시 물었다.
“네바다주 말입니다. 만약 저와 함께 가자고 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