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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107화 (107/200)

§ 107화. 정상 회담? (3)

단순히 로버트 윤은 게이트를 보고 놀란 게 아니다.

게이트가 펼쳐진 이곳의 상황을 보고 놀란 거다.

넓은 공간에, 한쪽에는 43개의 게이트가 펼쳐져 있고.

또 다른 한쪽에는 컴퓨터, 책상 등과 같이 사무실인 것이 평범한 모양새는 아니었으니.

마치 게이트가 사무실의 한 인테리어로 보일 지경이었으니까.

“어떻게…… 그 귀하디 귀한 게이트가 이렇게 많은 것도 놀라운데, 사무실에 버젓이 있는 겁니까?”

“뭐, 우리에겐 그렇게 귀한 게 아니니까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전설 속 황금의 도시, 엘도라도가 있다면…… 그게 여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연신 차분한 모습을 보인 로버트 윤도 지금 이 순간에는 당혹스러운 모습을 그대로 보였다.

“응? 누구……?”

그러던 중, 사무실에 들어선 낯선 사람인 로버트 윤을 보고 신보미가 반응했다.

“아, 나중에 설명해 줄게. 일단 다들 자리 비켜줄 수 있을까? 이 사람이랑 얘기할 게 많아서 말야.”

“……게이트에 관련된 사람은 아니지? 부장 동생?”

권다정도 불안한 반응이었다.

“부장…… 동생?”

로버트 윤은 그녀의 말이 꽤 신경 쓰이는 듯했다.

부장 동생이란 말을 어떤 뜻으로 사용하고 있던 건지.

궁금한 듯했다.

로버트 윤의 반응은 무시하고, 권다정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그녀가 물은 게이트와 관련된 사람이란 건 게이트를 빼앗길 수도 있지 않냐는 말과 같았기 때문이다.

“전에 나한테 말한 적 있잖아요. 한국은 중앙 협회의 감찰 대상이라고.”

“응.”

“저 사람이 중앙 협회 한국 감찰부장이랍니다. 한국을 감찰하는 사람이요.”

“뭐어?!”

“쉿! 조용!”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소식을 접해서였을까.

모두가 들릴 정도의 큰 목소리로 말하고 말았다.

“아무튼. 어떻게 여기를 용케 알고 미국에서 바로 날아온 사람입니다. 대화로 풀기 위해 데리고 온 거고요. 애들한테 저 사람이 누군지 알려주고, 데리고 나가 있으세요.”

“나한테 준 게이트는…… 안전한 거지?”

하긴, 권다정의 입장에선 게이트 사수가 누구보다도 절실하다.

남들은 초월석을 원하지만, 권다정은 던전의 흙이 필수였으니까.

게이트를 지키려는 생각만 가득했다.

“저도 게이트를 지킬 생각으로 데리고 온 겁니다.”

“……알았어.”

그렇게 권다정까지 자리를 완전히 비켜주고, 나와 로버트 윤만의 자리가 되었다.

물론, 로버트 윤이 모르는 또 하나의 참여자.

흑염룡이 있지만, 아직 정령의 존재는 알려주지 않았다.

“좋습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43개의 게이트가 생긴 이유에 대해서요. 게이트를 만드는 겁니까?”

“네. 만드는 거죠. 전 게이트를 만드는 능력자니까요.”

[너무 중요한 사실을 쉽게 알려주는 것 같은데.]

흑염룡이 불안한 기색을 표출했다.

‘상대의 의도가 뭔지 몰라. 그리고 우린 권력에 한해서는 상대적 약자야. 어설프게 거짓으로 대응할 수 없단 뜻이지.’

[그건 이해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일단, 원하는 정보 다 주고 어떤 자세를 취하는지부터 보자고.’

내가 기대할 건 이거밖에 없었다.

“게이트를 만드는 능력자라…… 어떤 식으로요?”

“음, 그건 조금 곤란한 질문인데요.”

“곤란하다니요? 왜죠?”

아무렴 이렇게 중압감 가득한 자리에서.

“오글거리게 하면 돼요~”라고 말할 수가 있냐.

난 그런 사실을 피한 채, 최대한 이해시키기 편한 쪽을 선택했다.

“당신 눈에는 안 보이겠지만, 저를 따라다니는 정령이 있습니다. 그 정령을 통해서 만들죠. 단, 게이트를 만드는 것에도 조건이 있지만요.”

“정령? 조건?”

전부 처음 듣는 얘기인 듯, 이해할 수 없단 반응을 보였다.

그리곤 로버트 윤은 내 얼굴 주변을 손가락 원을 그리며 물었다.

“그 정령이란 게…… 지금 정확히 어디 있죠? 여기?”

얼굴 주변 허공을 여기저기 찌르며 물었다.

그러던 중, 로버트 윤이 사고를 치고 말았다.

쿡.

[이 인간 새끼가 미쳤나!! 지금 어딜 만져!! 확 씨!!]

하필이면 흑염룡의 위치를 파악하던 중, 그녀의 가슴을 찔러 버린 것이다.

“워워……! 진정해! 일부러 그런 거 아니잖아……!”

나도 돌발적인 상황에 놀라서 그만 육성으로 나오고 말았다.

흑염룡은 앙칼진 비글로 변해 버렸다.

하필이면 온통 검정인 옷을 입고 있는 녀석이 앞뒤 가리지 않고 으르렁대니, 정말 비글과 똑같았다.

[야! 이걸 어떻게 진정해! 놔봐! 내가 저 인간 확 그냥 초장 담궈 버릴 거니까!! 저 건방진 인간 놈이……! 감히 내……! 내……!]

얼마나 화가 났는지, 인간 사회에서나 쓰던 욕설을 그대로 따라 하는 흑염룡이다.

“제발……!”

난 허공에서 날뛰는 흑염룡의 몸을 부여잡고 최대한 진정에 힘썼다.

“왜 그러죠?”

하지만 아무런 상황을 모르는 로버트 윤.

내가 허공에 손짓하는 것을 마치 슬랩스틱 코미디로 여기는 것만 같은 표정이다.

“얼른 사과나 해요!”

“사과라니? 무엇을요?”

“당신 지금 내 정령 가슴 찔렀어!!”

“Oh god…….”

“이럴 때만 영어 하지 말고!!”

“정령에게 가슴이란 것도 있었습니까?”

[야!! 뭐?! 정령에게 가슴이란 게 있어?! 이거 놔! 진짜로 초장 담궈 버릴 거야!!]

로버트 윤의 말에 흑염룡은 더욱 미쳐 날뛰었다.

로버트 윤이 저런 말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정령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보통 정령이라 하면 몬스터와 같은 생김새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따라서 그의 질문은 순전히 호기심 가득한 질문이라고 볼 수 있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뱉으면 안 되는 말이었다.

난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로버트 윤에게 알렸다.

“정령이 몬스터처럼 생긴 게 아니라고! 사람과 똑같이 생겼고, 심지어 여자애란 말야!!”

그제야 사태의 심각함을 알았는지, 로버트 윤이 곧장 사과했다.

“Sorry……! I’m so sorry!”

[사과하면 다인 줄 알아?! 놔! 인간의 뼈가 몇 개인지 전부 생으로 꺼내서 내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할 거니까! 놔! 놔아아아아!]

얼마나 화가 났는지.

살벌한 욕설이 계속 튀어나왔다.

보통 이런 류의 욕설은 전라도 지역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인데…….

흑염룡의 출신이 이세계가 아니라 전라도이진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더욱 날뛰게 만들면 분명 어떤 큰일이 일어날 것을 직감했고. 난 두 손으로 부여잡은 흑염룡을 절대 놓지 않았다.

“쪼그만한 게 이럴 땐 힘이 또 왜 이렇게 세……!”

허공에서 날뛰는 흑염룡.

막 낚은 대어처럼 팔딱거려, 붙잡고 있는 것 자체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놔아아아아아아!!]

흑염룡이 같은 말을 반복하며 분노할 때.

쿵!

“……어?”

분노에 못 이긴 흑염룡이 게이트가 되고 말았다.

“뭡니까?! 이거?!”

갑자기 자신의 옆에 새로운 게이트가 생기자.

로버트 윤도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서로 전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로써 게이트 하나가 새롭게 생긴 순간이었다.

하필이면.

중앙 협회 소속 한국 감찰부장이 보는 앞에서.

“하아…….”

우리끼리 있을 때 새로운 게이트가 생기는 건 좋은 일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렇게 되면 로버트 윤에게 정말 모든 걸 알려줘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

새로운 게이트가 우리 앞에 나타나고 시간이 얼마 지난 뒤.

흑염룡은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분노란 것을 게이트로 바꿨기 때문일까?

비교적 안정된 모습이다.

[흐윽…… 흑흑…….]

날뛰던 이전과 비교하면 안정된 모습이란 뜻이었다.

게이트로 분노를 표출한 뒤, 돌아온 흑염룡은 나와 등을 지고 눈물을 또르르 흘렸다.

난 그런 흑염룡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최대한 위로했다.

[인간 놈에게…… 농락당했어…… 흐윽…… 흐윽……. 나 대정령인데…… 대정령인 내가 저런 인간 놈한테…….]

보고 있는 내가 서글플 정도의 울음이다.

“어…… 여전히 화가 많이 났나요?”

로버트 윤에겐 내 모습이 허공을 쓰다듬는 것처럼 보일 거다.

그런 내게 묻는 말이다.

“아니요. 울어요.”

“……미안합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제 눈에는 안 보이니까…….”

“그냥 조용히 계세요.”

“네…….”

그래도 흑염룡 덕분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대화의 주도권이 완전히 내게 넘어온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흑염룡의 울음소리가 나에겐 거슬렸으니, 최대한 흑염룡의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해 쓰다듬는 행동을 계속할 때.

흑염룡이 내 손을 사납게 쳤다.

[놔, 이씨……! 위로 따윈 필요 없어!]

“그래? 그럼 조용히 하고 있던가.”

[……주인도 잘못 만났어. 이게 뭔 개고생이야.]

말은 사납게 하면서도 연신 내가 계속 위로해주길 바란 응석이었던 것 같았다.

[혼자 있고 싶어…….]

마음에 상처를 가득 받은 흑염룡은 나와 떨어질 수 있는 최대 거리로 떨어진 뒤에, 여전히 내게 등을 지고 쪼그리고 앉았다.

“뭐, 일단 이렇게 정리가 됐고.”

이제 난 우리 옆에 새롭게 생성된 게이트.

그것을 가리키며, 내가 먼저 물었다.

“궁금하죠? 왜 갑자기 게이트가 생겼는지요.”

로버트 윤은 고개만 끄덕였다.

이에 난 설명했다.

내게 있는 정령. 내가 흑염룡이라 이름 붙인 정령을 통해 게이트를 만들 수 있다고.

단, 아까 말한 조건이란.

우리가 만들고 싶다고 만드는 게 아니다.

흑염룡의 감정이 요동쳤을 때만, 게이트를 만든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렸다.

분노, 슬픔, 우울, 오글거림 등등.

그러한 감정 상태 이상을 주어야만 한다고 전했을 때.

“제 손가락이 실수한 탓에 화가 엄청 났다는 뜻이군요. 게이트를 만든 걸 보면요.”

역시, 얘기는 통하는 사람이다.

대화의 본질을 곧장 파악했다.

“네. 하지만 제가 이 얘기를 괜히 한 게 아닙니다. 더 중요한 얘기가 있어요.”

“더…… 중요한 얘기?”

“게이트에 관한 것입니다. 게이트가 인류에게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죠?”

“그야 재앙이죠? 게이트엔 무시무시한 몬스터가 살고, 그게 인류를 위협하니까요.”

역시. 널리 알려진 상식을 그대로 알고 있다.

중앙 협회 소속이라 뭔가는 다를 줄 알았더니, 그렇진 않았다.

“그런데 이런 소리를 들으면 어떻습니까? 사실 게이트라는 건 인류에게 꼭 필요한 안전장치이고. 게이트가 사라지면 정말 본격적인 재앙을 맞이한다면요?”

“……예?”

내 말이 그렇게도 어려웠나?

로버트 윤은 이해하지 못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니까…….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은 게이트를 가만히 놔둬야 한다는 뜻인가요?”

“네.”

“왜요?”

“이제 그걸 설명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제가 당신 휴대폰을 압수하면서 한 말이 있죠?”

증거물 첨부를 위해 녹음이 필요하다고 말했던 로버트 윤.

난 그의 대화 자세를 보고 결정하겠다고 했다.

내가 말한 자세가 바로 이것이다.

이 사실을 알려줬을 때, 어떻게 반응할지를 보기 위함이다.

“게이트는 정복해서는 안 돼요. 최대한 많은 수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43개…… 아니, 이제 44개군요. 이 게이트를 계속 가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직 턱없이 부족하지만요.”

“그 이유를. 알려줄 수 있습니까?”

로버트 윤도 상당히 진지하게 임했다.

여기까지 태도를 보면 여태 겪은 사람과는 다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로 녹음을 허락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그의 남은 태도가 중요했다.

“시오스와 크루즈란 게 있습니다.”

난 본격적인 설명을 시작했다.

설명이 이어질수록, 로버트 윤은 휘둥그렇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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