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화. 정상 회담? (1)
“…….”
한국계 미국인은 내 인상착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철저하게 살폈다.
비늘의 가호를 사용하는 바람에, 피부가 사람의 것이 아니게 변한 모습.
그리고 그러한 변화를 지켜본 뒤에 최대한 내색을 숨기고는 있지만, 분명히 놀란 표정이다.
게다가 믿고 있던 자신의 능력이 한순간에 무용지물로 변했으니, 그에 대한 충격도 클 거였다.
“처음부터 대화할 마음이 없던 건가?”
난 그런 그를 자극해 봤다.
어차피 네가 가진 무기는 나에게 통하지 않는다.
그러니 순순히 내 지시에 따르는 게 좋을 거다.
이런 의미를 답은 협박이었다.
“대화라. 어떤 대화를 원하는 거죠?”
상대의 태도가 조금은 변했다.
역시, 앞뒤 재지 않고 들이박는 강만식과는 다른 부류다.
“일단 당신이 누군지 참 궁금한데. 당신 소개부터 하시죠? 내 소개는 이미 끝냈으니까.”
“내가 함부로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말이죠.”
“어차피 중앙 협회 소속 감찰부인가 뭔가 거기 사람 아닌가?”
상대는 그저 싱긋 웃었다.
하지만 여유로워 보이는 그 미소 속에.
약간의 당황함도 분명하게 서려 있었다.
“얘기가 길어질 듯한데, 계속 밖에서 이럴 겁니까?”
시끄럽게 검문소에서 이러고 있지 말자는 뜻으로 말했다.
“흐음~ 이건 내 계산에 없던 일인데.”
정확히 어떤 의도로 말한 건지는 모른다.
그러나 내가 짐작할 수 있는 건,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사람을 만난 게 처음이라고 느껴졌다.
“서로 어차피 바쁜 사람들인데. 의미 없는 시간 보내지 말고. 대화로 푸시죠. 어때요?”
최대한 평화적으로.
상대의 신분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기에, 너무 강압적인 방법은 현재로서 독이 될 뿐이다.
만약 한국계 미국인이 강만식이나 최현민이었으면 내가 전력을 다해 부숴줄 용의가 있지만, 그럴 수 없지 않은가?
따라서 난 상대에게 악수를 청했다.
“소란스럽게 하지 말자는 소립니다. 서로 피곤한 일 만들어서 좋을 거 없으니.”
“신기한 사람이군요.”
상대는 그제야 내 손을 맞잡았다.
“으윽……. 썩 좋은 느낌은 아니군요.”
악수를 하자마자, 상대는 표정을 찡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비늘의 가호를 풀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무슨 능력입니까? 그건. 처음 보는데.”
난 답하지 않고 비늘의 가호를 풀어, 본래 인간의 정상적인 피부로 돌아왔다.
“그나저나 그쪽 소개는 언제 하시려고요? 대화로 풀기로 약속했으면 들어주는 게 예의 아닌가 싶은데.”
“당신이 짐작한 대로. 중앙 협회 소속 한국 감찰부장 로버트 윤이라고 합니다.”
“한국 감찰부장?”
“말 그대로 한국 감찰을 담당하는 사람이란 뜻이죠.”
그렇다면…….
이 로버트 윤이란 사람이 바로.
최현민의 비리를 시작해 한국을 감시하는 총괄자란 뜻이다.
이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인물로 보였다.
난 로버트 윤 뒤에 있는 외국인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한국어가 유창하신데, 저 사람들도 한국어를 할 줄 압니까?”
“모르죠. 전 한국계 미국인이라 할 줄 알았던 거고요.”
“그렇다면…… 저 사람들 말고. 로버트 윤……. 나 참, 외국인 상대하는 게 처음이라 그런데 뭐라고 불러야 하지? 윤 부장?”
“편하신 대로.”
“윤 부장이라 부르지요. 나이가 저보다는 많아 보이는데 로버트 부장이라고 하면 뭔가 싹퉁바가지 없어 보이잖아요?”
“싹퉁……박아지?”
또 이런 단어에는 약한 듯했다.
“싸가지라고 하면 이해가 편하려나.”
“아~ 싸가지. 그렇죠. 싸가지 없어 보일 수 있죠.”
“…….”
뭔가 당한 느낌이다.
어쩌면 저놈은 다 알면서도 일부러 한마디 먹이려고 이런 말을 했는지도 몰랐다.
“아무튼. 뒤에 있는 사람들은 그럼 감찰부원이라고 생각하면 됩니까?”
“Of course.”
영어로 답하니, 확실히 그가 미국인이라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혀가 굴러가는 게 윤활유라도 듬뿍 발랐나.
당연히 한국인의 발음과는 차원이 달랐다.
“뒤에 부원들은 미안하지만, 출입할 수 없습니다. 이곳은 사유지이니까 따라주시죠.”
“오우, 그건 조금 곤란한 조치군요.”
“말했습니다. 사유지라고요. 그리고 전 협조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윤 부장, 당신의 출입을 허가하는 중입니다. 그런데 부원들은 제외하자는 제안이 그렇게도 곤란한가요?”
내가 그의 부원들 출입을 금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현재 이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직접 모습을 드러냈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로버트 윤 하나도 벅찬데, 그의 부원까지 내가 감당할 여유?
있지도 않다.
그렇다고 안에 있는 내 부원들인 이지은, 신보미, 정다혜, 정다훈.
그리고 권다정까지.
이들이 부원들을 통제할 수 있을 리는 없다.
검문소에 전투력이 어느 정도 증명된 헌터 출신 경호원들도 가볍게 뚫어 버리고.
심지어 우리 경호원 중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장길수까지 무력하게 당할 뻔했다.
그런 그들을 이렇다 할 전투 능력이 없는 부원들이 있는 곳에 전부를 들이는 것은 감당할 수 없었다.
[야…… 저 인간도 위험해 보이는데 들여도 되는 걸까?]
흑염룡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지. 지금 저들을 향해 오히려 강경 대응을 펼쳐봤자 좋을 거 없어. 게이트 전부 다 잃는다. 비유가 적당할지 모르지만, 저들은 너희 세계에 있는 크루즈나 마찬가지야.’
[악의가 가득하단 건가……?]
‘아니, 우리가 가진 힘으로 맞설 수 없단 뜻이지.’
힘이란 게 단순히 무력만 나타내는 건가?
무력으로는 나 혼자서 어떻게든 되지만, 때론 그런 압도적인 무력도 하나의 힘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굴복하고 만다.
바로 권력.
저들은 권력을 세계에서 독보적으로 쥐고 있기에, 행동 조심히 해야 했다.
기브 앤 테이크.
정치의 기본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공식.
출입을 허가함과 동시에 게이트를 보여주며 기브를 이행하고.
저들의 목적이 뭔지, 그 내막을 자세히 파헤치는 테이크를 받을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은 난 이게 정답이라고 본다. 상대는 몬스터가 아니잖아? 오직 능력으로만 굴복시킬 순 없어.’
[……내가 전문적으로 아는 분야가 아니니까. 이건 널 믿는다. 윤도원.]
‘그래, 믿어라. 내가 언제 믿음에 배신한 적 있냐?’
[자만만 안 하면 딱 좋을 것 같아.]
우린 그렇게 긴장을 놓지 않고 로버트 윤을 대했다.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출입할 수 있는 건 윤 부장. 당신뿐입니다. 부원들은 밖에서 대기해 주시죠.”
“이게 한국 협회의 공식 입장인가요?”
역시나, 권력을 앞세우는 중이다.
“한국 협회의 공식 입장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궁금한데요. 꽤 살벌한 협박으로 들려서요.”
“아니요, 분명 당신을 소개할 때 협회장 직할 양산부? 그런 이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즉, 협회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인물이니. 그런 사람의 조치가 곧 협회의 조치란 뜻이죠..”
하긴, 로버트 윤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런 건 아닙니다. 이건 조금 복잡한 얘기인데, 어쨌든 제 요청대로 따라주시면 곧장 같이 안으로 들어가죠. 보여줄 것도 있고요.”
“보여줄 거라면?”
“뭐, 당신이 먼 나라 한국을 방문한 이유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거겠죠?”
이렇게만 말해도 돌아가는 머리는 확실히 있는 양반이니 알아먹을 거다.
바로 게이트란 것을.
로버트 윤은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어를 몰라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전혀 갈피도 못 잡는 부원들은 그저 어리둥절하게 자신의 부장인 로버트 윤을 바라볼 뿐이었다.
한참이나 고민을 마친 뒤, 로버트 윤이 물었다.
“저한테 말했죠?”
“말한 게 하도 많아서 정확히 짚어주시죠.”
“얘기 길어질 거 같다고요.”
“네.”
“그런데 전 제 부원이 소중해서요.”
“제 요청을 무시하는 건가요?”
“아니요, 저도 한 가지 추가적인 협조를 요청하는 겁니다.”
“말씀해 보시죠.”
“오랜 시간 동안 내 소중한 부원을 비좁은 차량에 쑤셔 박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게다가 장시간 비행으로 피곤한 몸들인데. 근처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호텔 없습니까?”
나 참.
이 와중에 호텔을 찾는다니.
그래도 다행이다.
내 요청을 받아들였다는 뜻이니까.
“근처에는 없고 제법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차로 이동해도 1시간은 족히 걸릴 텐데요.”
“저거.”
그 와중에 로버트 윤은 검문소 안에 있는 무언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장길수가 문제가 발생한 검문소로 향하기 위한 워프 포털이다.
“워프 능력자가 있는 것 같은데. 그들의 능력을 빌립시다. 그러면 되잖아요?”
그새 저걸 다 보다니.
눈썰미도 제법 있는 녀석이다.
“알겠습니다. 팀장님.”
장길수를 부르자, 그는 이미 고개를 끄덕이는 중이다.
“부원들은 제가 전적으로 맡겠습니다.”
로버트 윤은 한 가지를 추가로 강조했다.
“단, 비용은 여러분들이 부담해야겠죠? 당연히?”
양아치도 아니고…….
중앙 협회 감찰부씩이나 되는 양반들이 호텔비가 그리도 아깝나?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표가 몇 배는 더 비쌀 건데 쪼잔하게도 군다.
“예~ 그거면 됩니까?”
나도 이젠 귀찮아져서 대충 아무렇게나 답했다.
“네, 일단은요.”
일단은?
이 와중에도 새로운 요구사항이 생기면 언제든 내게 말하겠다는 떡밥까지 뿌리겠다라?
확실히 보통 놈은 아니다.
“좋습니다. 곧장 움직이죠.”
어쨌든, 서로 상당 부분 조율했으니, 이제 그대로 움직이면 됐다.
로버트 윤의 부원들은 장길수의 안내에 따라 움직였고.
로버트 윤은 나를 따랐다.
“촬영은 되죠?”
그리고 로버트 윤은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촬영할 생각으로 보였다.
“…….”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상당히 고민된 순간이다.
“왜 답이 없으시죠? 설마 안 되는 건가요?”
이젠 로버트 윤이 나를 압박한다.
확실히…… 무력은 나보다 달려도 권력 짬밥 좀 먹은 사람이란 게 티가 난다.
전혀 예상도 하지 않았던 걸로 나를 난처하게 만들 줄은 꿈에도 몰랐다.
***
“스읍~~ 후아~~!”
인천 공항에 키가 조금 작은 한 청년이 게이트를 나섰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한국의 공기를 느껴봤다.
“와! 오리가미! 나 한국 공기 처음 마셔 봐! 그런데 뭔가 특별한 건 없어 보이네!”
정령의 주인 일본 헌터 오카다 히로시였다.
일본 협회에서 히로시의 인적 사항을 보내자마자 모든 게 속전속결로 처리되어 곧장 한국으로 넘어올 수 있었다.
게다가 일본에서 한국은 오래 걸려야 2시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나라.
오전엔 비빔밥, 오후엔 스시라는 국제적 식단이 가능할 정도의 거리다.
[제발 좀 닥쳐……! 네 주위에 사람들 많다고! 우리 둘이 있을 땐 상관없는데 제발 주변 눈치 좀 봐!]
심지어 그는 공항 게이트를 나오자마자 곧장 자신의 옆에 둥둥 떠다니는 오리가미를 향해 소리친 것이었다.
당연히, 다른 사람 눈에는 허공에 대고 혼자 헛소리를 하는 중이니, 정신에 이상이 있는 사람으로 여기는 시선을 받아야 했다.
“뭔 상관이야~”
히로시는 남들의 시선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성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렇게 여행용 캐리어를 끌며 공항을 벗어나려고 할 때.
“이상하다, 분명히 한국 협회에서 나를 마중 나온다고 했는데……?”
한창 시선을 둘러봤을 때.
히로시를 향해 두 남자가 다가왔다.
한 명은 중년의 나이. 그리고 다른 한 명은 꽤 젊은 축에 속했다.
“오다카 히로시 헌터?”
“오, 당신이?”
“네, 한국 협회 외교부장 임동식입니다.”
중년 남자의 정체는 알았다.
게다가 외교부장답게 일본어도 유창한 사람이다.
이에 히로시는 옆에 젊은 남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 사람도 협회 외교부 직원인가요? 제 통역사인가?”
“아 아니요, 강만식이라는 협회장이 신임하는 한국 헌터입니다. 당신의 보디가드라고 생각하면 되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