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먼치킨 외국인 (4)
내 부서의 일정은 이제 한산하고 조용한 일정은 없었다.
-치이이익.
-제2검문소, 불청객 발생. 기자 1명. 제지 불응 중.
-치이이익.
-제1검문소, 불청객 발생. 헌터 1명. 능력 사용 허가 바람.
이런 무전이 끊이질 않았다.
이게 지난 3일 동안의 일이다.
그렇다고 이제 끝났냐?
시작일 뿐이었다. 특히나 헌터 불청객이 발생한 건 3일 차가 되던 오늘부터 본격적이 시작이었다.
입구 검문소에서 장길수가 있는 중앙 검문소로 무전을 하고, 장길수가 능력 사용을 허가할 때만 입구 검문소의 헌터 출신 경호원들이 능력을 사용해서 쫓아냈다.
그렇게 소음 속에서 불안한 일상을 보내던 중이었다.
-치이이익.
-허억…… 허억…….
무전 시작부터 예감이 좋지 않다.
보통 입구 검문소에 있는 경호원들은 극히 절제되고, 차분한 목소리로 무전을 보내기 마련인데.
지금 순간에는 숨을 헐떡이는 불길한 징조를 보였다.
-제4검문소. 불청객…… 발생. 4명. 외국인 헌터.
외국인 헌터라는 소리에.
나를 포함한 부원 전체는 모두 무전기에 이목이 쏠렸다.
외국인 헌터라고 알린 상대의 정체를 정확히는 모르지만, 결코 호재는 아니라고 직감적으로 느꼈다.
외국인 헌터의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뭐? 외국인? 어느 나라 사람인 거 같은데?
-미국인입니다. 그런데 그중 한 명은…… 한국계 미국인입니다.
“한국계 미국인……?”
권다정이 중얼거리면서, 나를 쳐다봤다.
한국계 미국인이라면…… 이미 들은 적이 있지 않던가?
한국을 감찰하는 감찰부가 한국계 미국인인지, 한국인인지 모를 소문이 돌아다닌다는 것을.
지금 그 소문의 정체가 다가오는 것 같았다.
-……기다려. 내가 바로 간다.
장길수도 뭔가 심각함을 느꼈는지, 상황을 더 알아보지 않고 직접 움직였다.
“……다혜야.”
“네.”
“4검문소 위치 알지?”
“열어드려요?”
“응.”
만약 정말 그들이 감찰부가 맞다면, 나도 직접 가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다혜는 포털을 즉시 열어주었고, 나도 장길수와 함께 4검문소에 도착했다.
“…….”
벌써 본격적으로 시작된 참이었다.
장길수가 4검문소로 향하고, 나도 즉시 따라붙었는데, 그 짧은 사이에 장길수는 자신의 소환체인 도깨비들을 다수 불러냈고,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과 맞서는 중이었다.
그가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 있는 3명의 형형색색 머리카락을 가진 미국인들.
총 4명의 외국인이 대치 중이었다.
게다가 서 있는 순서를 보아하니, 문제의 한국계 미국인이 이들의 리더로 보였다.
“신기하네요. 당신도 헌터인데 왜 그런 민간 경호원 복장을 입고 있지? 이러면 파헤치고 싶잖아. 가뜩이나 이 장소는 비밀을 가득 품은 곳 아닌가?”
한국계 미국인의 입이 열렸다.
“누구지? 그쪽은? 한국말도 잘하네.”
장길수는 우리 일원이 아니고선 전부 적이라고 받아들이는 중.
그렇기에 적대감을 과하게 표출하며 한국계 미국인과 맞서고 있었다.
“저요? 흐음…….”
그런데 돌연 문제의 한국계 미국인은 검문소의 경호원들을 전부 훑고, 마지막으로 나까지 훑은 뒤에 답했다.
“나를 막 이렇게 아무 곳에서나 소개하면 안 되는데.”
거만한 거 같으면서도 예의 바른 거 같은 알 수 없는 말투.
하지만 내게는 지금이 왕권 국가라면 자신의 신분은 왕족과도 같으니, 하찮은 너희에게 알려줄 수 없다는 뜻으로 들렸다.
“이곳은 사유지라는 공지. 들었을 텐데? 혹시 외국인이라 사유지라는 말을 모르는 건가? 어려운 말이라?”
“그럴 리가. 그건 어려운 단어가 아니거든요.”
“그럼 잘 알았다는 뜻 아닌가? 그런데 왜 우릴 무시하고 진입하려고 한 거지?”
“그야 그게 내 일이니까? 그건 그렇고, 그 도깨비들이 당신 능력입니까?”
한국계 미국인은 그 어떠한 위협도 느끼지 않았다.
강만식의 경우엔 저 도깨비만 보고도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모습을 보였었는데…….
그런 강만식과 비교하면 정말 차원이 다른 사람이라는 건 느껴졌다.
“그렇수. 헌터라고 들었는데, 계속해서 우리의 통제에 불응한다면. 나도 힘으로 맞설 수밖에 없네.”
“힘? 나를 굴복시킨다는 뜻인가?”
“그것 말고 다른 뜻이 있던가?”
“하하하! 그래요, 궁금하네요. 당신의 도깨비는 과연 잘 버틸 수 있을지요.”
한국계 미국인은 장길수의 도깨비들을 향해서 손을 들었다.
그리고 무언가 힘을 주는 듯한 행동을 취하더니.
드드득! 드득!
요상한 소리를 내면서 도깨비의 형체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도깨비는 괴로웠는지 이리저리 발버둥 치고 있었지만,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그리고 이어진 기이한 현상.
도깨비의 몸체가 조금씩 작아지더니, 이내 모든 도깨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었다.
“…….”
장길수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지만, 분명히 그의 두 눈가는 당황스러움과 놀라움이 드러났다.
흑염룡은 한국계 미국인의 행동을 보자마자.
즉시 그의 이마로 내달려 ‘능력 현황’을 보여줬다.
[압축 Lv 72]
일단, 처음 보는 형태이고 능력의 레벨도 상당히 높다.
내가 본 사람 중 능력의 레벨이 가장 높았던 것은 강만식이었고 60이었다.
그런데 70대의 레벨은 나도 처음이다.
‘압축? 어떤 원리지? 저건?’
슬슬 내가 직접 나서서 저 한국계 미국인을 상대할 때라고 여겨, 미리 공략법을 알아낼 심산이었다.
[압축. 염력의 반대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돼.]
염력은 보이지 않는 힘으로 물체를 조종한다.
띄우거나 그대로 멈추게 하는 등등.
공기와 같이 보이지 않는 힘을 이용한 거다.
그렇다면 압축의 경우엔 나와 똑같이 보이지 않는 힘으로 강한 압력을 가하여 터트리는 방식이 분명했다.
‘그것만 조심하면 되나? 어차피 염력의 반대 개념이라면 보이지 않는 힘으로 압박하는 형태잖아? 그 압박하는 걸 염력으로 저항할 수 있지 않아?’
공기 입자라고 생각하면 됐다.
한국계 미국인의 능력인 압축인 경우엔.
어쨌든 터트리기 위한 힘이 필요하다.
방금 장길수의 도깨비가 사라지는 과정에서 특별한 물체가 보이지 않았으니, 난 공기라고 여긴 것뿐이다.
그런 공기를 이용한 압력을.
내가 가진 염력으로 저항한다.
염력과 압축은 어쨌든 똑같이 공기 입자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면 됐기 때문이다.
한국계 미국인이 압축을 사용하기 위해선 자신의 몸을 자신만의 공기층으로 덮을 것.
그 전에 미리 염력으로 내 몸 주변을 나만의 공기층으로 덮어, 저항하는 방식을 말했다.
[그렇게 저항할 순 있겠지만……. 상대는 레벨 72이라고! 여태 봤던 사람 중 가장 높아!]
그건 나도 안다.
그에 반해 내 염력의 레벨은 고작 32.
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괜찮아. 나한테는 비늘의 가호도 있고. 여차하면…….’
[여차하면?]
‘내가 게이트를 만드는 능력자라고 말하면 돼.’
[미쳤어?! 그렇게 중요한 걸 너무 쉽게 떠벌리면 안 된다고!]
‘너무 쉽게 떠벌리는 거 아냐. 흑염룡 너도 내가 권다정이랑 얘기했을 때 전부 들어서 알잖아. 저쪽은 중앙 협회 감찰부 같다고. 한국계 미국인인 것도 그렇고. 장길수를 보고 파헤치고 싶다고 했잖아.’
헌터들이 어째서 민간 경호원 복장을 하고 있냐는 의문을 품은 그다.
물론, 누구나 의문을 품을 수는 있겠지만.
이상하게 저 한국계 미국인이 말할 때는 조금 더 전문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할까?
그런 느낌이었다.
따라서 난 내 촉을 믿었다.
‘어쨌든 저들의 목적은 게이트니까 이곳으로 온 거 아냐? 게이트가 소중하면,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나도 소중할 것. 아무리 저 사람의 능력이 나보다 높아도. 나를 쉽게 죽이거나 할 순 없어.’
[…….]
흑염룡은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됐는지 말을 아꼈다.
이제 내가 나섰다.
장길수의 등 뒤에 다가가, 그에게 속삭였다.
“빠지세요. 상대 중앙 협회 감찰부 같아요. 팀장님까지 무력하게 당했다면, 저만이 저 사람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얼른요.”
그렇게 장길수를 뒤로 밀어내고, 내가 문제의 한국계 미국인과 대치했다.
“음, 당신은 경호원 복장을 입고 있지 않군요? 누굽니까?”
“그러는 그쪽은 누구죠? 이렇게 남의 집에 쳐들어왔으면. 최소한 자기소개는 해야죠?”
상대의 신분을 정확히 알아내기 위함이었다.
“글쎄요. 도둑이 빈집을 털 때, 자기소개하고 터는 경우 봤습니까?”
“괴도들은 주로 그러지 않나? 일시와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고, 훔치러 오겠다고 예고하니까.”
괴도 루팡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물론, 실제를 조금 달랐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만화를 비롯한 창작물에 등장하는 괴도들은 전부 같은 특징을 지녔다.
“하하하! 제가 괴도란 뜻인가요?”
“처음부터 본인을 도둑으로 비유했으니까. 나쁜 비유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음~ 한국에 이렇게 재밌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앞뒤 꽉 막힌 사람들만 모인 곳. 그게 한국이라고 생각했거든.”
“지금이라도 생각을 다르게 먹어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당신들 목적은 어차피 이곳에 게이트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온 것 아닌가?”
“그렇죠? 그런데 오자마자 확신했어요. 이곳엔 게이트가 있다는 것을.”
“이유는?”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건데 무엇을 보고 확신했다는 건지, 그 이유나 들어보고 싶었다.
“입구부터 이런 삼엄한 경비를 세운 이유가 뭐겠어요? 안에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 있다. 즉, 게이트가 있으니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 이유였구나…….
별로 특별하지도 않다.
그의 추리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그저 정해둔 결과를 맞추기 위해 그 과정들도 전부 결과에 끼워 맞춘 것에 불과하다.
이곳은 사유지이며. 사유지에 남들이 들락날락하는 게 싫어서 경비를 세우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삼엄한 경비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 놓고 게이트가 있다고 확신하는 건.
이미 결과를 정해뒀다는 뜻과 똑같으니까.
난 그에게 내 소개를 먼저 했다.
내가 알고 싶은 건 한국계 미국인의 이름과 정확한 신분.
그러기 위해선 아무래도 내가 먼저 소개를 하는 것이 맞을 것으로 보였다.
“한국 협회장 직할 부서, 양산부장 윤도원이라고 합니다.”
“……뭐요? 뭔 직책의 이름이 그렇게 길어? 그리고 한국 협회장 직할? 이건 또 무슨 뜻이죠?”
그는 내 장황한 직책을 듣고 당혹스러워 했다.
“저기 고객님…… 갑자기 소개는 왜…….”
장길수는 그런 나를 향해 걱정스럽게 물었다.
“지금은 이게 정답인 거 같으니까요. 저 사람은 제가 맡을게요. 그러니까. 걱정 마세요.”
장길수를 그렇게 안심시킨 뒤.
“자, 내 소개도 먼저 했으니, 이제 그쪽 소개를 듣고 싶은데.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에 따르란 말도 있는데?”
“흠~ 싫은데.”
한국계 미국인이 자신의 능력인 압축을 내 몸에 사용하는 게 느껴졌다.
‘이런…… 늦었네.’
염력으로 저항할 계획이었지만, 너무 빨랐다.
그렇다면 내구력으로 버틴다.
곧장 비늘의 가호를 사용해 압축 능력을 무력화시켜 버렸다.
“어어……?”
역시나, 상당히 당황한 모습이다.
“나한테 당신 능력 안 통해. 그러니까 좋게 대화로 풉시다. 그 정도 머리는 있는 사람으로 보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