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화. 먼치킨 외국인 (3)
43개의 게이트 모습을 담은 영상이 세상에 공개된 이후.
태강 그룹은 물론이고, 한국 헌터 협회까지 시끄럽게 변했다.
그 영상이 공개된 게 벌써 3일 전 일.
3일 내내 한국 협회의 전화기에서 벨이 울리지 않은 날이 없다.
심지어는 전화 한 통을 받고 나서, 끊으면 곧장 다음 전화가 걸려오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무한 굴레에 빠져 버린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런 시끄러운 사무실을 지나 최현민은 혀를 쯧 차며 협회에 3일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협회장님! 그간 왜 연락도 안 되시고, 협회에 나오질 않으신 거예요!”
직원 하나가 최현민을 발견하자마자 쫓아와서 따지듯이 물었다.
직원의 정체는 협회의 외교부장 임동식.
외교부라는 이름답게 타국 협회와의 소통과 우호적인 관계를 위해 힘쓰는 중요한 부서다.
“왜.”
최현민이 까칠하게 답했다.
그의 신경은 여전히 사납고도 예민하게 변한 상태다.
그가 3일이나 협회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정부는 물론 국가 기관 이곳저곳에 불려 나가버린 바람에 벌어진 일이었다.
무려 43개의 게이트를 모습을 담은 영상이 다른 곳도 아닌 한국에서 유포된 것.
해당 영상이 어디에서 찍힌 것인지 협회장이 책임을 다하여 알아내고,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라는 압박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현민은 그 자리에서 곧장 영상의 촬영지가 어디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지만, 그들에겐 말할 수 없었다.
애초에 윤도원의 양산부 창설을 허락한 이유도.
최현민이 세계적인 위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발판.
그런데 지금은 그 발판이 사라져 자신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을 위험한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윤도원이 가진 게이트 전부를 회수해 세상에 풀어 버리고, 언론 플레이로 그를 자신의 수하에 두려고 했지만.
지금은 그 계획이 완벽하게 박살이 났다.
따라서 촬영지가 어디인지 알고 있어도, 알릴 수 없던 것이다.
윤도원이 이렇게 앞뒤 바라보지 않고 막무가내로 나올 줄도 몰랐으며.
그가 독단적으로 벌인 일 때문에 최현민까지 난처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윤도원……. 어린놈이라고 무시했더니, 생각한 것보다 제법 강수도 둘 줄 아는 놈이였구나……. 나를 감히 이렇게 난처하게 만들어?’
따라서 최현민에게 주어진 하나의 과제.
다시 윤도원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바꿔, 협조적으로 움직이게 만들어야만 했다.
3일 만에 돌아온 협회에서 그 방법을 고민하고.
돌파구를 찾아야 했기에 이토록 신경이 날카로운 이유였다.
“아휴, 진짜! 제 부재중 전화 못 봤어요?”
하지만 임동식은 그런 최현민의 기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마치, 자신이 훨씬 더 심각하고 긴박한 상황이니 자신의 말을 들으라고 강조하는 듯했다.
임동식이 이렇게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
최현민의 기억 속에는 처음이었다.
“왜 그러는데?”
그제야 최현민은 임동식이 저런 모습을 보이는 이유의 상황을 알아봤다.
최현민의 물음에.
임동식은 얼마나 정신이 없는지, 손이 허공에서 돌았다.
마치 무언가 빨리 행동은 해야 하는데 순서를 어떻게 시작할지 모르는 다급함에서 나오는 손짓들이다.
“잠깐만요!”
그렇게 답하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최현민.
촤르륵! 촤르륵!
서랍과 간이 책꽂이에 꽂힌 서류들을 일사불란하게 뒤지더니, 한 장의 서류를 찾고 최현민에게 내밀었다.
“뭐야, 이건?”
“읽어 보세요. 이거 때문에 연락을 그렇게 드렸는데. 답도 없으시고.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요?”
“일단. 알겠어.”
최현민은 서류를 받아들고, 자신의 집무실인 협회장실로 들어섰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서류 내용을 읽어 봤다.
서류는 한국 협회로 온 메일을 출력한 것.
발신지는 다른 곳도 아닌 일본 협회였다.
“일본 협회……?”
일본 협회와 연락을 취한 적이 언제 있었던가?
던전이 아직 세상에 존재했을 때.
이지은의 파견 요청 때 말고는 없었다.
그런 일본 협회가 갑자기 협조 메일을 보내는 것부터가 이상했다.
메일은 일본 협회가 보낸 일어 원문 메일이 끝난 뒤.
그 뒤에 한국 협회에서 번역한 내용이 덧붙여져 있었다.
메일의 내용은 이랬다.
[본국의 헌터 중 게이트가 존재한다면, 게이트를 조각처럼 모아 하나의 새로운 게이트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주장을 하는 헌터가 있습니다. 이에 사실관계 파악을 위해 이번에 세계적으로 이슈가 된, 43개의 게이트가 있다고 추정되는 한국의 방문 허가를 요청하는 바입니다.]
“뭐……?”
메일 내용을 읽고 최현민의 눈은 동그랗게 변했다.
정말 가뭄의 단비가 아니던가?
게이트가 존재한다면, 조각처럼 떼어 내 새로운 게이트를 만들 수 있다니.
이것을 해석하자면, 기존에 있는 게이트를 정복하지 않아도 추가적인 게이트를 더 만들 수 있단 뜻이다.
물론, 메일 내용에는 하나의 새로운 게이트를 만들기 위해선 몇 개의 게이트가 필요한지.
이런 정확한 기준은 나와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현재 난처한 상황에 처한 최현민에게는 돌파구가 생긴 거나 다름이 없었다.
“역시,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더니.”
다시금 속담의 위대함을 느끼는 최현민이었다.
“그나저나 신기한데?”
최현민은 이 메일의 진위 여부를 의심하지 않았다.
일본 협회는 다른 건 다 떠나서 계산적이고 사무적인 성격이 강하다.
사실, 세계 어떤 협회가 그러지 않겠느냐만은…….
유독 일본 협회가 그런 성격이 세계 최고로 강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일본 협회가 가진 하나의 특징.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물론, 이들이 사실을 말할 땐 그만한 이유가 있으며. 어떤 의도로 접근하는 건지 정확히 파악할 순 없었다.
지금 최현민에게 그런 사실을 알 필요가 없다.
확실한 것은.
일본 헌터 중에 게이트가 있다면, 새로운 게이트를 아무런 제약 없이 더 만들 수 있는 자가 존재하니까.
“이놈만 잘 구슬리면…… 윤도원을 등져도 어떻게 살아날 방법이 존재할 것 같은데?”
윤도원과는 이미 껄끄러운 상태.
이 관계를 원만하게 만들 필요 없이 자신이 머리만 잘 쓴다면, 타개책을 내놓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생겼다.
“이제 윤도원이 세계 유일의 게이트 능력자라는 건, 이 메일을 통해서 뒤집어진 거나 마찬가지야.”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최현민은 플랜 B로 가야 했다.
“이 일본 헌터를 이용해서…… 게이트를 더 늘리고, 그 게이트가 가진 초월석을 회수할 수만 있다면?”
어려운 난이도의 과제이지만, 최현민이 기댈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다.
그리고 미국에도 윤도원과 비슷한 게이트 관련 능력자가 있을 것이라 판단 중이지만.
아쉽게도 미국 협회는 너무나 거대한 집단이다.
자신이 가진 역량으로 도전할 수 있는 상황 자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 협회의 경우엔 다르다.
솔직히 말하자면 만만한 상대이기도 하다.
게다가 일본 협회는 치외 법권도 적용되지 않는 헌터들.
한국 협회의 본거지인 한국 본토를 밟게 하고, 잘 구슬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칼자루는 내가 쥐고 있단 말이지.”
임동식이 왜 그렇게 다급한 반응을 보였는지.
잘 알았다.
처음엔 다급함을 표출하며 자신의 기분을 고려하지 않은 그가 짜증도 났지만, 그런 부정적인 감정은 전부 사라졌다.
오히려 이젠 임동식이 기특하게 여겨졌다.
“동식아, 네가 나를 살리는구나. 자, 그럼 나도 한번 시작해 볼까?”
최현민은 곧장 일본 협회의 답장을 보냈다.
외교부를 통하지 않고 협회장이 직접 답장을 보낸다는 것은, 그만큼 해당 헌터가 한국으로 오는 모든 과정을 성심성의껏 책임지며 임하겠다는 결의를 일본 협회에 보여주는 것과 같으니까.
메일을 한국어로 작성했다.
어차피 국가 간의 공문은 발신자 쪽의 언어로 보내고, 수신자가 번역하는 게 협회 사이에서의 규칙이다.
따라서 답장을 작성할 때 굳이 일본어 통역가가 없어도 된다.
딸깍.
메일을 전부 작성한 뒤.
‘보내기’ 버튼을 누른 최현민은 허리를 한껏 젖혀 앉았다.
“일이 풀리려니까 또 이렇게도 가능하네?”
일단 모든 것을 비공개로 진행한 뒤, 한순간의 역전을 노렸다.
“근데 그 비범한 능력을 가진 헌터도 그렇고. 협회도 신기하네?”
다름이 아닌 자신이 게이트 관련 능력자라는 것을 숨김없이 말한 일본 헌터.
그리고 그것을 전적으로 믿고 한국 협회로 메일을 보낸 일본 협회의 스탠스.
최현민 자신이 일을 처리해 왔던 방식과는 완벽히 다른 성격이기에 사뭇 신기하게 다가왔다.
“뭐, 이게 그쪽만의 문화인가? 내가 그 문화까지 고려할 필요는 없긴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나만 살면 되지, 뭘.”
***
오다카 히로시는 3일 내내 일본 협회에서 노숙을 하다시피 대기했다.
길드 소속이었던 그는, 눈치껏 현재 상황에서 자신이 속한 길드는 한국으로 보내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정면 돌파.
협회장에게 왜 한국으로 가야 하는지.
자신이 가진 능력이 무엇인지.
전부를 알린 다음 속전속결로 끝내기 위함이었다.
다행히 이 과정이 어렵진 않았다.
왜냐, 일본 협회장도 히로시의 능력을 믿어주었고. 더군다나 만약 한국 협회에 그런 협조 요청 공문을 보냈을 시.
히로시의 한국 방문이 허락되면.
한국 협회가 스스로 시인하는 거다.
“응, 맞아. 43개의 게이트를 담은 영상. 한국에서 촬영된 거야.”
일본 협회장도 이를 빠르게 계산하고, 곧장 실행에 옮긴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히로시의 협회 노숙이 3일 차가 되던 날이었다.
“히로시 헌터. 협회장님이 찾으시네요.”
안내 직원을 따라 협회장실로 다가갔다.
들어서자마자 히로시는 꾸벅 인사를 남겼다.
일본 협회장 야마다 헤이로.
한국 협회장 최현민의 경우엔 32명 중 고작 2표의 찬성을 받고 협회장에 당선된 것과 달리.
헤이로가 협회장 선거에 나섰을 때 투표에 참여한 인원은 28명.
그중에서 27명이 찬성하여 당선된, 지지율이 상당히 높은 협회장이었다.
나이가 지긋하게 든 헤이로는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을 정돈하며 히로시와 마주 보고 앉았다.
“한국 협회에서 답신이 왔더구나. 히로시.”
“오, 정말입니까?!”
기다리던 소식에 히로시도 한껏 기쁘게 반응했다.
“게다가 협회장이 직접 보냈더군. 외교부를 통한 게 아니라.”
“그 뜻은……?”
“그래, 저쪽에서도 너의 능력과 전반적인 모든 것에 관심이 있고 한국 협회장도 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더군.”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요?”
“너의 방문을 수락했다.”
“요시!”
히로시는 그저 방문을 수락했단 사실 하나에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기쁨을 표했다.
“하지만 조건이 있더군.”
기쁨도 잠시, 이번엔 꽤 불안한 기운을 담은 답이었다.
“조건이 뭐라던가요?”
“일단 그대로 말해주지.”
헤이로 협회장은 변역본 메일을 출력한 것을 그대로 들고 읽었다.
히로시로 하여금 자신이 지어낸 얘기가 아닌, 정말 있는 그대로를 말하는 중이라는 신뢰의 행동이다.
“해당 헌터가 본국을 방문하기 위해 필요한 항공권, 숙소 등 편의의 문제는 본국의 협회가 전부 지원할 예정.”
히로시는 몸만 가면 된다.
비행기건 호텔이건. 한국 협회가 알아서 다 해주겠단 소리였다.
“단, 반드시 해당 헌터 혼자 방문해야 함. 통역사 및 일본 협회 관계자의 동행을 금함. 통역사 역시 본국에서 준비할 예정. 또한, 방문 예정 헌터의 인적 사항 공유를 요청함. 이 과정이 합의될 시, 곧장 준비에 들어가겠음……. 이라는데, 어때?”
허가를 하긴 했지만, 어딘가 껄끄럽긴 했다.
[어쩌긴 뭘 어째. 빨리 답해. 가겠다고.]
하지만 헤이로 협회장 눈에 보이지 않는 히로시의 정령 오리가미(비르)가 히로시를 재촉했다.
오리가미 역시, 한국 방문을 기다리던 중이다.
그곳에 게이트가 있다는 것은.
같은 시오스의 정령 중 누군가란 뜻이니까.
‘43개나 펼칠 정도면 누구지? 이왕이면 린느 님이었으면 좋겠는데.’
동족과 재회할 수 있는 감격의 순간이 다가오는 중이었으니까.
“예! 전 좋습니다!”
정령 오리가미의 재촉을 받자마자 히로시가 답했다.
“좋아, 일단 바로 답신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