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102화 (102/200)

§ 102화. 먼치킨 외국인 (2)

신동원의 말대로 검문소 설치는 일사불란하게 진행됐다.

심지어 다들 헌터 출신이다 보니 특별한 몸과 힘을 가진 만큼, 일반인들보다 속도가 상당히 빨랐다.

간이 검문소 설치는 금방 끝났고 그 안에 서로 검문소를 이어줄 워프 능력자까지 배치.

그리고 위급 상황을 알리기 위한 무전기까지 전부 비치가 끝이 났다.

이 과정을 마치고 나니 아침은 지나고 이제 어둑어둑한 밤이 되었다.

“휴우…….”

총 다섯 개의 검문소 중, 난 중앙 검문소라 불리는, 내 부서의 건물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검문소에 들렸다. 그곳에서 만난 장길수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하하, 저 때문에 고생이 많으시네요.”

“뭘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괜찮습니다.”

미리 정다혜의 워프를 이용해 사 온 음료수를 장길수를 비롯한 경호팀들에게 건넸다.

그리곤 난 장길수와 마주 보고 서서 말했다.

“본부장님한테 대충 얘기는 들었어요. 빠르면 당장 내일. 늦어도 모레부터 시작일 거라고.”

“네~ 파도일지 해일일지. 한 번 보자고요. 저희도 능력 억제하면서 사느라 근질근질했는데, 차라리 잘 됐죠!”

누가 스님 출신 아니랄까 봐.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보는 듯했다.

그리고 정말 진심이 느껴지기도 했다.

돌연 은퇴를 선언하면서 능력을 억제하며 살았던 괴로움이 꽤 컸던 것으로 보였다.

이런 상황에 오히려 능력을 제약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 일어나니, 그것에 작은 행복이라도 느끼는 것만 같았다.

“팀장님은 해외 헌터, 본 적 있으세요?”

“없지요. 고객님은 있어요?”

“저도 없죠.”

“저나 고객님이나 똑같은데 왜 그걸 물으세요.”

“그래도…… 궁금하잖아요. 국가마다 랭크의 기준이 다르다던데.”

이미 익히 퍼진 소문이다.

미국의 B급이 한국에 오면 S급은 우스울 거다.

이런 소리도 자주 접했으니까.

따라서 미국의 B급 헌터가 와도 S급 출신인 장길수가 버거울 수 있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이제 검문소에 배치될 헌터의 총원은 120명.

하지만 평균 랭크는 C플러스 정도밖에 안 된다.

즉 C급과 B급의 비중이 상당히 많아서 그런 평균이 나오는 거다.

C급의 경우라면…….

어쩌면 세계 헌터력 1위라는 미국을 기준으로.

미국 E급 헌터에게도 애를 먹을 수 있는 상황이 펼쳐진다.

그리고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어디 E급 헌터가 감히 들어올까?

최소 중견으로 칠 수 있는 B급 헌터 이상들.

죄다 장길수와 같은 포스를 가진 사람들이 올 것이란 뜻이 됐다.

그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장길수는 오히려 너털웃음을 지으며 나를 격려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홈 어드밴티지란 게 있지 않습니까. 2002년 기억 안 나요?”

“월드컵 얘기하는 건가요?”

“네~ 누가 한국이 4강까지 갈 거라 예상했습니까? 그런 기적은 비단 축구에만 일어나진 않을 겁니다. 우리도 홈 어드밴티지라는 걸 믿어보자고요.”

장길수도 긴장은 되고 있지만, 최대한 긍정적인 부분만 생각하며 마음을 추스르는 모습이었다.

“스님 출신이시라 그런지. 확실히 마음을 다스리는 게 남들과는 다르네요.”

“누구나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은 것뿐이겠죠. 고객님도 이런 거 익숙해지시면 됩니다.”

“네, 저도 그런 거 배워봐야겠어요. 아, 참. 저 무전기.”

검문소 내에 비치된 무전기를 가리켰다.

“네, 왜요?”

“하나 더 남는 거 있나요?”

“있긴 한데…… 어디에 쓰시려고요?”

“우리 부서 제 자리에도 갖다 놓으려고요. 돌발 상황이 펼쳐지면 저도 거들어야죠. 저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굳이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저희는 고객님 지키기 위해 온 거니까요.”

장길수는 그러나 원치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저도 책임이 있지 않습니까. 나누자는 거죠.”

“…….”

“얼른요.”

난 한 손을 내밀며 무전기를 빨리 달라고 재촉했다.

이에 못이기는 척, 장길수는 새로운 무전기를 내게 건넸다.

“이것도 모든 검문소랑 연결된 무전기 맞죠?”

“네, 그럼요.”

무전기를 켜고, 확인하니 제대로 작동됐다.

“제가 24시간 풀로 대기할 순 없지만. 그래도 최대한 도와볼게요.”

“저도 최대한 고객님이 나서지 않도록 막을 겁니다.”

그때였다.

-치이이익.

-아아, 제1검문소. 불청객 발생. 방송국 취재진이라고 알림. 인원은 8명. 제지 거부 중.

“벌써 시작된 모양이군요.”

무전을 들은 내가 말했다.

그래, 아침에 속보가 나갔으면 이제 슬슬 준비는 다들 마쳤을 거고.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거다.

그리고 간략한 무전인데도 꽤 치밀하게 모든 상황이 담겨 있단 것을 느꼈다.

인원, 그들의 신분, 그리고 현재 상황까지.

모든 걸 간략하고도 신속하게 전했다.

“에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미처 전부 비우지 못한 음료수 병은 어딘가에 올려 두고.

옆에 있던 팀원에게 말했다.

“1검문소로 가자.”

“네.”

한 남자가 답하더니 그대로 포털을 열었다.

그리곤 장길수는 해당 포털 속으로 들어갔다.

나도 상황을 함께 확인하기 위해 장길수의 뒤를 따랐다.

도착한 제1검문소.

나오자마자 실랑이가 한창인 고함이 들려왔다.

“아!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거죠?! 당신들이 무슨 권리로 우리 출입을 막아요!”

한 여성의 목소리였다.

누가 보면 우리가 강압적으로 응대하는 줄 알겠다.

1검문소에 있는 경호팀의 대응을 살폈다.

그들은 입구를 몸으로 막으면서 더는 들어오지 말라는 손짓만 보일 뿐이다.

저런 모습 많이 봤다.

군대에서.

저 상태에서 딱 총만 들고 있으면 군인들이 근무하는 그 모습과 똑같았다.

[뭐야, 저 인간들은 왜 저렇게 소극적으로 막아? 어차피 여기 사유지라며? 쟤들이 잘못한 건데 오히려 경호팀들이 소극적인 이유가 뭔데?]

빼액빼액 소리를 지르며 막무가내로 진입하려는 방송국 취재진이란 작자들.

그런 자들을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못하고 소심하게 손으로만 막는 경호팀의 모습을 보며 흑염룡이 말했다.

“왜겠냐……. 괜히 잘못 건드려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그대로 악의적인 편집으로 과잉진압이니 어쩌니 하면서 헐뜯을 게 분명하니까 그렇지.”

난 경호팀들의 대응이 이해가 됐다.

심지어 방송국 취재진이란 작자들은 카메라까지 일방적으로 들이밀면서 출입하려는 중이다.

그 카메라가 헌터들의 능력처럼… 저들의 무기다.

우리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악의적 편집을 통해 쉽게 와전될 수 있는 세상이니까.

이에 보다 못한 장길수가 그들 앞에 섰다.

“자~ 방송국 취재진이라는 분들. 여러분은 여기가 태강 그룹의 사유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설마 모르진 않겠죠? 명색이 방송국 취재진이라면서요.”

은근히 뼈가 있는 말이다.

다 알고 온 너희가 악질인데 이게 무슨 행패냐.

이것을 최대한 나긋나긋하게 말하고 있는 중이었다.

“…….”

장길수의 한 마디에 그들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여러분들은 허가받지 않은 불법적인 출입을 하려고 했고. 사설 경호원인 저희는 의뢰인의 요청에 따라 막는 것뿐인데. 이 정도면 막을 권리는 충분히 있는 거 맞죠?”

“…….”

“어라, 이상하다. 방금까지 성악가처럼 소리 잘 지르신 거기 여성분.”

“저요……?”

“네. 말씀해 보세요. 맞죠? 여기 사유지인 거 알고 오셨잖아요.”

그래도 양심은 있는 모양이다.

차마 몰랐단 말을 하지 않고, 입만 다물고 있는 것을 보니 말이다.

그리고 장길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시작했다.

바로 그들이 들고 있는 카메라.

그 카메라에 자신의 얼굴을 그대로 들이대며, 카메라 앵글 전체에 장길수의 얼굴로 가득 채워지도록 한 것이었다.

“지, 지금 뭐 하시는 거죠……!”

당황한 여성이 소리쳤다.

이에 그제야 장길수는 카메라에서 얼굴을 뗐다.

“자~ 여러분은 허가를 받지도 않은 곳에 불법으로 침입한 것도 모자라. 이렇게 불법적인 촬영까지 하시고 있네요? 이 카메라의 의미. 제가 모를 것 같습니까?”

“그게 무슨……!”

“우리가 작은 실수 하나라도 하면 악의적인 편집으로 어떻게 뭘 해보려고 하셨던 거 같은데. 소용없으니까 돌아가시라고요. 좋은 말로 할 때.”

“지금 협박하시는 건가요?!”

여자의 목소리가 변했다.

마치 건수를 물었다는 듯한 성취감이 느껴질 정도다.

“그래요. 협박하는 거예요. 어디 한번 해보세요. 불법으로 침입하려고 했던 것도 모자라. 촬영 협조를 약속하지도 않았는데 내 얼굴 전국 방송에 내보내면 인권 침해, 명예 훼손, 초상권 침해 등등. 걸 수 있는 거 전부로 걸어드릴 테니까요.”

“모자이크 처리하면 누가 누군지 모르는데, 너무 황당한 협박 아닌가요?”

“그래요? 거기 여성분은 혹시 PD이신가요?”

“……그건 왜요.?”

자신의 신분을 필사적으로 감추려는 거 보니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우리 PD님은 법조인 인맥 좀 많이 있으신가?”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요?”

“한번 하고 싶은 대로 해보세요. 제 얼굴에 모자이크를 처리했어도 법이 과연 그대로 판단할지 말지요. 태강 그룹 법무팀 상대로 이길 수 있는 법조인 인맥 있으면 해보시란 뜻입니다. 내 쪽에서 걸 수 있는 건 많거든요.”

명예 훼손이건 인권 침해건 걸 수 있는 건 싹 다 걸어서 역공 먹이겠다는 강한 의지였다.

“…….”

그리고 순간적으로 여자는 빠르게 미래의 상황을 머릿속에서 그려본 듯했다.

만약 정말 태강 그룹 법무팀이 나서서 법적 공방을 펼쳤을 때 자신이 이길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있을까?

그녀의 표정은 금세 시무룩하게 변했다.

0%. 티끌만큼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자의 표정을 읽은 장길수가 말했다.

“그러니까 돌아가세요. 좋게 좋게 말로 끝냅시다, 우리. 괜히 나중에 지저분하고 피곤한 상황 만들지 말고요.”

그의 말 몇 마디로 완고했던 취재진은 결국, 철수하게 되었다.

-치이이익.

-아아, 2검문소 문제 발생. 기자 1명 제지 거부 중.

또다시 울린 무전.

“에휴, 바쁘구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장길수는 이제 다음 검문소로 향했다.

그렇게 새벽 내내. 장길수는 검문소 순회공연을 해야만 했다.

***

43개의 게이트 모습을 담은 영상이 뉴스로 퍼지고 3일이 지났다.

3일이면 이미 전세계에서 접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빠르게 이 소식을 접한 로버트 윤은 선글라스를 쓴 채로 숨을 크게 들이셨다.

“스읍~”

그가 지금 있는 곳은 인천공항.

고향의 공기를 온몸으로 느끼던 중이었지만.

“딱히 달게 느껴지진 않네. 자, 가자.”

로버트 윤은 그렇게 지체하지 않고 곧장 자신이 거느린 중앙 협회 소속 감찰부원 전원을 데리고 문제의 장소로 향했다.

그가 거느린 감찰부원은 총 3명.

자신을 포함해 4명이 9,500km나 떨어진 한국으로 오게 된 것이다.

그렇게 도착한 태강 디스플레이의 철수한 공장 부지.

그들이 도착한 곳은 4검문소였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경호원 유니폼을 입은 한 사람이 그들에게 다가와 말했다.

“이곳은 사유지입니다. 나가세요. 우린 그 누구의 출입도 허가하고 있지 않습니다.”

로버트 윤은 아랑곳 않고 차에서 내려, 선글라스를 벗으며 경호원의 인상착의를 살폈다.

부장인 로버트 윤을 따라 내리는 그의 부원들.

로버트 윤을 제외하곤 전부 형형색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외국인들이었다.

‘외국인……?’

경호원이 통역을 부르려고 할 때.

로버트 윤이 그에게 말했다.

“비켜요. 당신들이 소화할 수 없는 상대니까. 당신들은 우릴 막아선 안 돼.”

로버트 윤이 그 한 마디만 남기고, 성큼성큼 안으로 걸어가려던 때.

로버트 윤의 어깨를 경호원이 잡았다.

“뭐야, 한국말 할 줄 알아?”

“예, 전 한국계 미국인이거든요. 한국어는 부모님한테 배웠고.”

“사유지라고 했을 텐데요. 나가세요.”

“손 치워.”

로버트 윤이 그의 손을 쳐내고 다시 출입하려 할 때.

로버트 윤의 앞에는 구미호와 똑같이 생긴 몬스터가 생겨났다.

“이렇게 불응하면 위협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뭐야, 당신 헌터였어? 크큭, 재밌네? 헌터가 왜 민간인 경호원 복장을 입고 있지?”

시선은 경호원을 보고 하며, 그의 손은 등 뒤에 있는 구미호로 향했다.

그리고 아주 잠깐 힘을 줬을 때.

크르르르……! 크륵! 큭!

구미호는 요상한 소리를 내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막지 마세요. 경고합니다.”

로버트 윤의 살벌한 경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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