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먼치킨 외국인 (1)
“엄청 많던데. 정확히 몇 명입니까?”
내가 얼핏 보기에도 50명은 거뜬히 넘어 보였다.
“총 120명입니다. 물론, 오늘 한꺼번에 넘어온 건 아닙니다. 오늘은 검문소를 설치하기 위해 일부 인원만 왔습니다.”
“그런데 검문소를 왜 설치합니까?”
“이 부지는 물론, 일대 도로까지 전부 저희 그룹의 사유지입니다. 분명히 그룹의 출입 허가를 받지도 않고 침범하려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런 사람들을 막기 위한 거죠.”
“사유지인데 법적 대응이 가능한데도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이미 겪지 않았습니까?”
강만식을 뜻하는 말이었다.
강만식이 다시 이곳으로 온다는 말보다 강만식과 같은 녀석이 충분히 어딘가에 있을 거란 뜻이다.
신동원은 정말 심각하게 말했다.
“문제는 이 소식이 이미 해외에도 퍼졌을 거란 말이죠. 그렇게 되면 당연히 어떻게 되겠습니까?”
“해외 헌터가 오기라도 할 거다, 이 말입니까?”
“네. 헌터법 중에 만국 공통인 법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법도 있습니다. 헌터계에도 치외 법권은 존재한다고요.”
“그 뜻은…….”
“해외 헌터 협회에서도 한국으로 입국할 겁니다. 최현민 협회장의 재량으로는 그들의 입국을 막을 수 없어요.”
헌터력 약소국의 비애다.
내가 미국으로 향하기 위해 흑염룡이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인 활류를 해결 방안으로 찾은 이유도.
결국, 내 목적지인 미국 협회에서 입국 승인을 하지 않을 게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이다.
미국 협회는 세계에서 헌터력 1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왕국.
아니…… 제국을 넘어 대륙 그 자체라고 볼 수가 있다.
그런데 이제 반대 상황이 된 거다.
만약 미국 헌터가 한국으로 온다면?
협회장 최현민은 그들을 막을 권리는 물론, 그럴 깡다구도 없다는 뜻이 된다.
“하하…… 이거 살짝 후달리는데.”
신동원이 저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니, 나도 경각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게다가 헌터계의 치외 법권이라 하면.
헌터법 중에 만국 공통인 게 있지만 특정 국가만 가진 법도 있기 마련.
해외 헌터가 한국 땅에 와서 갖은 깽판을 쳐도, 치외 법권 때문에 한국 협회에서 처벌을 요청할 수 없는 상황이 분명히 벌어질 거란 뜻이 된다.
“그리고 협회가 고객님을 도와줄 거 같지는 않고요. 이미 우린 협회와 전쟁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이 없지 않습니까? 그 영상을 올린 의도가 그랬던 거니까요.”
난 고개만 끄덕였다.
[에휴…… 어쩐지 일이 다 잘 풀리는 느낌이라 했어. 어쩔 거야! 진짜!]
흑염룡은 내 어깨를 찰싹 때리며 나를 타박했다.
분명히 내겐 다 계획이 있어서 한 일인데.
막상 일을 저지르고 난 뒤의 상황을 보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은 것으로 보였기에 저렇게 열을 내는 중이다.
‘조용히 하고 있어. 나 지금 예민하니까.’
나도 내색하지 않았을 뿐, 지금 조금 복잡한 상태다.
“우린 자력으로 이 난관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도 전력을 투입한 것이고요. 각종 매체는 물론, 외국 헌터까지의 난입이 예상됩니다. 전 곧장 검문소에 배치할 통역사들까지 알아봐야 할 상황이죠.”
순수한 자력으로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라.
그렇다면 이제 내 역량도 중요해졌다.
“일단은 그렇게 알고 계십시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초월석 4개를 저희가 회수하게 됐으니. 그쪽에 인원 배치를 하지 않아도 된 상황이니, 이곳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상황이란 거죠.”
상황이 심각하긴 하지만, 그래도 난 확실하게 물었다.
“그건 들었죠? 그래도 제가 고생해서 알아서 막은 대가로 초월석 4개는 1년 치가 아닌 2년 치로 해달라는 말이요.”
“그건 알고 있으니, 강조하지 마시죠. 그리고 저희는 기업이지 동네 구멍가게가 아닙니다. 일단 저희가 집중해야 할 건 이 난관을 극복하는 일입니다. 어떤 돌발 상황이 있을지 몰라요.”
“그래서 헌터 출신 경호원들로만 배치한 거군요?”
“네. 분명히 무력으로 맞서는 자들이 있을 겁니다. 협회가 우릴 도와주지 않는다면. 우리도 무력으로 극복하는 수밖에 없으니까요.”
“저도 검문소를 돌아다니면서, 거들어야겠군요.”
“…….”
신동원은 입을 다물었다.
지금 침묵의 의미는 나를 말리는 게 아닌, 오히려 내 생각에 동조하는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아무튼. 그렇습니다. 부디 별일이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바람대로 가진 않겠지만. 아, 참.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요.”
“네, 뭐죠?”
“저희 그룹이 가진 부지 중에 이곳과 환경이 비슷한 곳이 몇 군데 있습니다.”
“혹시 이전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신동원은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하지만 난 그와 달리, 고개를 저었다.
“의미 없는 일입니다.”
우리 몸만 이동한다고 그게 큰 의미가 있을까?
결국 게이트를 옮길 수는 없기에, 43개의 유물과 같은 게이트는 이곳에 그대로 남는다.
그리고 현재는 게이트를 지켜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원격으로 지킬 방법이 있을 리 만무하고.
나도 이곳에 있으면서 지켜야만 했다.
따라서 이전은 오히려 우리에게 불리함만 더하는 멍청한 계획이었다.
난 그런 이유들을 신동원에게 설명했다.
“죄송합니다, 괜한 소리를 했군요.”
“아니요. 오죽하면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이해는 됩니다.”
지금 신동원도 그만큼 머리가 복잡하단 얘기다.
“알겠습니다. 일단은 이전 얘기는 없던 걸로 하고. 제가 다른 획기적인 방법을 찾아 보지요. 아, 참 그리고. 검문소를 운영할 헌터 출신 경호원들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총 120명입니다.”
“네, 정말 굉장한 숫자네요…….”
생각보다 많은 숫자에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지던 때.
신동원은 부정의 의미로 고개를 저었다.
“절대 많은 거 아닙니다. 이 넓은 부지에 분산 배치되다 보니, 허점은 분명히 나올 거예요. 저도 그래서 최대한 과거의 인맥까지 끌어모아 보충은 할 겁니다.”
“과거의 인맥이라면……?”
“제가 길드장 시절. 그나마 친분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다른 길드장들에게 협조 요청해야죠.”
“그런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된다면서요?”
헌터는 협회의 허가 받지 않는 계약을 진행할 수 없다.
그 조항에 걸리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래도 방법은 있을 겁니다. 그리고 여차하면 고객님의 부원으로 배속시켜도 되는 문제고요.”
“……그렇겠군요. 최현민 협회장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준비할 수 있는 건 전부 준비해 봅시다. 검문소 설치는 하루도 안 걸려서 끝이 날 겁니다. 그리고 본격적인 해일이 밀어닥치는 시기는…… 빠르면 내일. 늦으면 모레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루나 모레.
이것은 해외에서 한국으로 오는 시간을 계산한 듯했다.
당장 미국에서 온다고 쳐도 10시간 이상이 걸리니, 족히 하루는 걸린다고 보는 게 맞았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저희도 긴장하고 있지요.”
“그럼…… 전 준비할 것들이 있어 먼저 가 보겠습니다. 정신이 없네요.”
신동원은 그렇게 마지막 말을 남기며 떠나갔다.
“후우…… 2페이즈 시작인가.”
흔히 게임을 하면 보스 패턴에 따라 1페이즈, 2페이즈로 불린다.
이지은을 강만식에게 떼어내고, 최현민과도 단판을 짓는 1페이즈는 나의 승리로 끝.
그러나 2페이즈는 이제 갑자기 스케일이 커졌다.
한국 내에서만 일어난 일을 해결하는 게 아닌.
졸지에 세계를 상대하고 말았다.
[너 분명히 아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너를 도와주는 사람도 있을 거라고 했잖아. 그런데 지금 상황 보니까 그게 전혀 아닌 것 같은데?]
흑염룡은 여전히 불만 가득한 목소리다.
그도 그럴 것이, 43개의 게이트가 증발할 위기에 놓였는데 어떻게 평정심을 유지할까.
게다가 던전이 완전 정복되고 나서 시간이 상당히 지난 상태다.
만약 정말 43개의 게이트가 증발하면.
크루즈 전체가 인류에 강림할 수도 있다.
따라서 지금 우리는 이 상태에서 게이트를 사수하는 것과 더불어 틈틈이 게이트를 늘려야만 했다.
“염룡아. 그래도 속단하진 말거라.”
[갑자기 무슨 소리야?]
“누군가는 분명히 나를 도와줄 사람이 있을 거니까.”
난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래서 괜히 자신 있게 답하는 중이었다.
***
“스고이……!”
일본 토쿄.
25살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열혈 청년이자 일본의 A급 헌터 오다카 히로시는 한 뉴스 속보를 접했다.
한국에 무려 43개의 게이트가 있는 것 같다는, 한 레드뷰 영상이 공개가 되어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스고이! 스고이!”
그는 뉴스 속보를 듣자마자, 대단하다는 뜻의 일본어로 소리치며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그리곤 허공에 두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그의 옆 허공엔 하얀 실크 드레스를 입은 정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리가미! 저거 맞지! 저거 진짜 게이트 맞지?!”
오다카 히로시가 이토록 흥분한 이유는 바로 게이트의 존재를 알아냈기 때문이다.
자, 한국에 게이트가 있다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에도 자신과 같은 정령의 주인이 있다는 뜻이다.
[이거 놔. 나 오리가미 아니라고. 내 이름은 비르라고 몇 번을 말해?]
하지만 정령 비르는 매몰차게 답하며 그의 손을 뿌리쳤다.
심지어 그녀의 표정은 자신의 주인을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심정의 환멸감이 극도로 드러나는 혐오의 표정이었다.
비르의 이름이 오리가미가 된 이유는.
열혈 애니메이션 광팬인 히로시가 자신이 좋아하는 여성 캐릭터의 이름을 그대로 정령에게 입혔기 때문이다.
심지어 인상착의도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와 똑같이 만들었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백발의 단발로 만들며 무뚝뚝한 표정을 짓도록 만든 괴짜 주인.
그렇기에 비르는 주인이 내린 이름 오리가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어쨌든! 저거 진짜인 거 맞지?! 정령인 넌 보면 바로 아는 거 아냐!”
히로시가 여전히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소리쳤다.
“그럼 저곳으로 가면 네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것 맞지?!”
정령은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존재지만.
공교롭게도 히로시의 정령 오리가미는 그렇지 않았다.
오리가미가 게이트를 만드는 방식은 바로.
기존에 있는 여러 게이트의 조각을 떼어, 하나의 게이트로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즉 5개의 게이트가 있다면 1개의 게이트를 오리가미의 능력을 이용해 창조해낼 수 있다는 뜻이었다.
“오리가미! 게이트 중에선 ‘줄기’라는 게 있다며! 네 능력도 그것과 비슷한 거고!”
시간이 지나면 게이트가 알아서 복제하는 능력을 가진 게이트를 줄기라고 부른다.
오리가미의 능력이 바로 그 줄기와 비슷했다.
[아마 그럴 거야. 게이트가 43개라고 했지? 그럼 최소한 8개의 게이트를 추가로 만들어낼 수 있어.]
“오오! 오라, 와꾸와꾸 슷조~!”
흥분한 히로시는 드래곤의 구슬 7개를 모으면 소원을 빌어주는 캐릭터의 말투를 그대로 따라 했다.
‘나 무지 두근두근 돼!’라는 뜻을 가진 말이었다.
[에휴…….]
오리가미는 진심으로 한심하게 자신의 주인을 향해 한숨을 내뱉었다.
주인만 아니었다면 꿀밤 몇 대 쥐어박을 수 있을 정도다. 아니면 저 방정맞은 입이 빨갛게 달아오를 정도로 찰싹찰싹 때릴 수도 있었다.
한국의 윤도원과 흑염룡의 조화와는 상당히 상반되는 분위기였다.
[그럼 뭐해. 저기로 갈 방법 있어?]
“이제부터 만들어야지!”
히로시는 정말 콧김이 보일 정도로 강한 숨을 내뱉었다.
그만큼 열정과 자신감. 모든 게 최고조로 오른 상태다.
“이쿠조! 오리가미! 한국으로!”
[제발…….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그래도 이름 부분에선 한국의 윤도원 흑염룡 조합과 같은 분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