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화. 막을 수 없는 손님 (1)
“예……? 만약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곳으로 데리고 온다고요?”
로버트 윤의 제안에 연구팀장이 깜짝 놀라며 답했다.
연구팀장의 반응은 연구진들도 똑같았다.
“네.”
“데리고 올 이유가 있습니까? 게이트를 만드는 능력자라고 칩시다. 그런데…… 그 이유만으로 이곳으로 데리고 오겠다는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다.
미국 네바다주에 있는 이 연구시설은 자국 대통령은 물론 헌터 협회장도 따로 출입 시간을 정해 놓고 온다.
오랫동안 기밀 구역으로 관리되었던 곳을 고작 게이트를 만드는 능력 하나 가지고 있다고 해서 출입을 허가한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 시국에서 게이트를 만드는 능력이 위대한 걸 안다.
하지만 이런 예외가 생겨 버리면 시설에서 유지해온 보안이 사라질 거란 우려가 생겼다.
“팀장님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잘 알겠습니다. 이곳의 보안 때문이잖아요?”
로버트 윤도 그런 팀장의 걱정을 바로 알아차렸다.
“예, 잘 아시는 분이…….”
“그런데 제가 말했잖아요? 중앙 협회의 결정이라고요.”
“……그렇다는 뜻은.”
“보안 관련은 중앙 협회와 미국의 정보기관들이 철저하게 할 거니 문제없을 겁니다. 그리고…… 그가 정말 능력자가 맞다면. 이 시설에 방문하는 것이 꼭 필요할 겁니다.”
“꼭 필요할 것이다…… 어떠한 근거가 있습니까?”
“확신에 찬 근거는 없죠. 다만, 정말 그런 능력자라면. 이 시설만이 가진 기술력이 있지 않습니까?”
“……설마.”
이 시설만이 가진 기술력이란 말에.
연구팀장을 비롯한 연구진 전원의 표정이 굳어졌다.
다들 혈기 왕성한 시절에 부모님에게 야한 비디오의 존재를 들킨 것만 같은 표정들이다.
“하하하, 뭡니까? 모두가 똑같은 표정이네요. 저희가 모를 줄 알았어요? 이 연구진이 중앙 협회에도 숨겼던 신통한 기술력이 존재한단 것을요.”
“…….”
연구팀장은 입을 본능적으로 다물었다.
“다 아니까 말씀하세요. 감찰부가 한국 담당만 있는 줄 아세요? 이곳 네바다주의 연구시설도 감찰 대상입니다. 그래서 이미 파악했고요. 그 기술력 정식 명칭이 뭐예요?”
정말 몰랐다.
중앙 협회는 결국엔 미국 협회와 같다.
오죽하면 미국 헌터 협회를 가리켜 중앙 협회 2중대라는 말이 생겼을까?
그래서 늘 아군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중앙 협회를 보면 아군도 뭣도 없이 모두가 감찰 대상인 듯했다.
‘아니야. 우리가 보안을 얼마나 철저히 했는데……. 그게 들킬 리가 없어.’
하지만 연구팀장은 지금 로버트 윤이 그저 떠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그는 모른 척하며 물었다.
“감찰부장님이 생각하는 그 기술력. 뭐를 뜻하는 거죠?”
“뭐긴요. 헌터들에게만 사용하잖아요? 여러분들은 헌터들의 능력을 유형별로 분류하고, 각자 ‘능력 코드’라는 것을 정해놨죠.”
‘이런…….’
떠보는 게 아니다.
저 정도면 정말 제대로 알고 있는 중이다.
“예를 들면 제가 가진 능력. 이거.”
로버트 윤은 허공에 자신의 능력을 선보였다.
허공에 공기가 뭉치면서 일그러지는 현상이 보였다.
투명한 공기라고 해도, 로버트 윤의 능력이 더해지니 반투명하게 변해 일반인 눈에도 집중하면 보일 수 있을 정도로 변했다.
“제가 가진 능력의 이름은 압축. 코드 M 중의 하나. 이런 식으로 정리해 놨잖아요?”
코드 M은 마법(Magic)의 약자.
로버트 윤처럼 몸을 직접 사용하지 않는 마법과 같은 능력을 분류해 놓은 것이다.
신체를 강화하는 헌터들은 코드 C(Consolidation)의 약자다.
그리고 이렇게 코드를 분류하고 이 연구시설만이 가진 기술력을 대입하면, 해당 헌터의 능력을 저장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저장이란.
컴퓨터를 연상하면 된다.
헌터가 가진 능력을 뺏어오는 게 아닌, 복제하여 그들만의 코어(core)에 저장하는 형태다.
즉, 복제와 저장을 일컫는 말이었다.
해당 헌터의 능력을 저장하고. 필요할 때 꺼내 쓰는 것.
이 연구시설에선 그런 기술력까지 보유했다.
지금 로버트 윤은 만약 한국에 그런 능력자가 있다면.
데리고 와서 그자에게 해당 기술력을 사용하라는 지시로 들렸다.
“……정확히 알고 계시군요.”
이제 발뺌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지자, 연구팀장은 시인했다.
어차피 들킨 마당이라면.
계속 숨긴다고 상황이 달라질 건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저장하는 형태로만 사용하는 건 아니라면서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특정 능력 코드를 가진 헌터는 손쉽게 능력을 강하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었는데? 우리 헌터들 말로는 능력의 레벨을 올린다고 하죠.”
“코드 C의 경우엔 그게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능력은 적용되지 않았죠.”
신체 강화인 코드 C만 아주 간단한 절차로 능력의 레벨을 올리는 게 가능했단 뜻이었다.
“뭐, 지금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그리고 강화하는 형태로 사용하는 것은 저희도 달갑지 않습니다.”
“……이유가 뭐죠?”
“여러분들도 생각해보세요. 운전면허를 이제 막 취득한 사람에게. 슈퍼카를 준다고 한들, 운전이나 제대로 하겠어요? 슈퍼카가 왜 슈퍼카인데요?”
아직 운전에 대한 숙련도가 없는 사람에게는 너무 과한 자동차란 뜻이다.
그것처럼.
헌터의 능력을 갑자기 올려 버리면, 해당 능력이 가진 진가가 무엇인지.
능력을 가진 헌터 본인이 모르게 되니 능력의 진가가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아무튼, 그 기술력. 정확한 이름이 뭐죠? 계속 기술력이라고만 말하니까 불편하군요.”
“……프로젝트 원 네이션(One nation)입니다.”
“음~ 모든 유형의 능력을 하나의 핵에 모았다는 뜻에서 지은 이름인가요?”
“그렇습니다.”
“입에 별로 달라붙진 않네요. 네이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예.”
“그럼, 결정된 거죠? 제가 진상 파악을 위해 한국으로 향하고. 능력자가 맞으면 곧장 데리고 올 겁니다. 여러분은 네이션을 준비해 주시죠.”
“……하지만. 감찰부장님.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연구팀장이 식은땀을 흘리며 답했다.
“뭐죠?”
“그 네이션이란 기술은 초월석을 사용해야 합니다. 남들이 자원 뻥튀기 기술에만 초월석을 사용했을 때, 저희는 그런 용도도 가능하단 것을 발견하고 곧장 실행에 옮겼습니다.”
“이런. 그렇다는 뜻은?”
던전이 완전 정복되면서 기존에 확보해 뒀던 초월석 전부가 효력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전세계가 자원 공황에 허덕이는 중이 되었다.
“네. 만약 능력자를 데리고 온다고 해도, 이젠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단 뜻입니다. 애초에 그 기술을 계속 사용할 수 있었다면……. 저희가 헌터 150명이나 희생당하진 않았겠죠.”
일전에 기괴한 몬스터가 나타나고, 로버트 윤이 겨우 막았던 그 사태를 말하는 중이다.
원 네이션이라는 기술을 그때도 사용할 수 있었다면, 기관에 있던 150명의 헌터들이 충분히 제압했을 거란 뜻이었다.
“흐음. 글쎄요. 듣고 나니까 전 그게 문제가 될까 싶은데.”
하지만 로버트 윤의 생각은 달랐다.
“한국에 무려 게이트가 43개나 있습니다. 전 능력자가 맞다고 확신하는 중이고요. 그런 능력자를 이곳에 데리고 와서,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고. 초월석을 확보한 다음에. 진행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새로운 초월석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열렸으니, 원 네이션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도 생긴 것과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연구팀장은 식은땀을 계속 흘렸다.
“그게 말입니다…….”
“또 무슨 문제가 있는 거죠?”
“저희도 원인은 알 수 없었습니다만……. 아무 초월석을 넣는다고 그 기술이 제대로 작동하지는 않습니다.”
“최상급 초월석인 S급만 넣어야 한다는 겁니까?”
“아니요. 초월석의 등급의 문제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S급을 넣었을 땐 안 되고, C급을 넣을 땐 또 된 적도 있어서…….”
“흐음, 여러분들이 발견하고도 원인을 모른다는 건. 완벽한 기술력은 아니란 뜻이군요.”
“불안정할 뿐, 실제로 적용이 가능한 기술력이라서 사용했던 겁니다.”
이들이 원인을 모를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헌터들이 가진 능력은.
본래 초월석에 담겨져 있던 시오스들의 능력.
원 네이션의 코어에 넣었던 초월석 중 ‘복제’와 ‘추출’이 운 좋게 같이 들어가 있으면서 그 능력이 발휘된 것뿐이다.
하지만 헌터들의 능력의 근본이 무엇인지.
그것조차도 모르는 이들은 여전히 원인 불명의 현상이라 여길 뿐이었다.
“그럼, 던전이 완전 정복되기 전에는 어떻게 사용한 겁니까? 그 기술력을요.”
중앙 협회도 기술력의 존재를 알고 있을 뿐, 정확한 사용법은 잘 몰랐다.
“초월석을 코어에 하나만 넣는 게 아닙니다. 기술력이 제대로 적용될 때까지 여러 개를 넣는 형태였습니다.”
“꽤 원시적인 방법이었군요.”
“……그렇습니다.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으니까요. 그동안 네이션 때문에 미국에서 소모되는 초월석의 개수가 타국에 비해 유난히 많았던 이유입니다.”
딱!
연구팀장의 답변에 로버트 윤은 손가락을 튕겼다.
“이제야 이해가 되네.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요.”
초월석은 결국엔 소모성 물건이다.
등급이 낮을수록, 자원 뻥튀기 지속시간이 짧아진다.
그런 특성상, 한 국가에서 소모되는 초월석은 보통 해당 국가의 인구수에 비례한다.
이 공식대로라면.
인구가 많은 국가일수록 소비되는 초월석이 많아야 한다.
즉, 인도나 중국이 압도적으로 많아야 했지만, 미국은 인도나 중국에 비해 소모량이 훨씬 더 많았다.
소비되는 초월석의 개수도 중앙 협회가 파악하고 있었고, 과하게 많이 소비되는 국가를 수상하게 여겨 감찰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초월석을 가지고 새로운 이용 방법을 발견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이 연구시설이 감찰 대상이 된 이유도 과도한 초월석 소비가 결정적이었다.
그러나 중앙 협회는 미국의 편의를 상당수 봐주고 있었기에, 일부러 초월석 소비량을 발표할 때는 실제 소비량보다 적게 발표하곤 했다.
로버트 윤이 이어서 말했다.
“이렇게 된 이상. 한국에 있는 게이트 43개를 전부 사서라도 초월석을 회수해야겠군요? 43개 중에 네이션이 제대로 작동될 초월석이 나오지 않겠어요?”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이렇게 정해진 거죠?”
“……예.”
“그럼, 그렇게 알고 계세요.”
문제는 여전히 존재했지만, 로버트 윤은 적어도 해결할 수 없는 난제는 아니라고 여겼다.
그리고 한국에는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능력자가 있다고 확신한 로버트 윤은.
그 능력자에게 네이션 기술만 제대로 적용하면, 이 난국도 끝이라고 여겼다.
“그때까지 시설 복구에 전념해 주세요. 시간 많이 없습니다.”
그 말만 남기고 로버트 윤은 연구시설을 떠났다.
차를 직접 운전하여 공항으로 향하면서, 그는 휴대폰으로 누군가에게 전화했다.
-네, 감찰부장님.
“감찰부 전원 공항으로 오세요~ 소풍이나 갑시다.”
-소풍이요?
“가끔은 타국 바람도 쐬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죠.”
-타국 바람이라면…… 혹시……?
“이미 봤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