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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98화 (98/200)

§ 98화. 세계로 (4)

하긴, 생각해 보면 장길수에게 꼭 전하라고 한 적도 없고.

신동원도 한가한 게 아니었다 보니, 내게 새로운 부원이 생겼다는 것은 사소한 문제로 여기고 넘어갔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지금 신동원의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권다정과 신동원 사이에도 어떠한 악연이 있는 듯했다.

“아는…… 사이인가요?”

내가 조심스레 물었을 때.

“안녕하세요~ 길드장님~ 아차! 이젠 본부장님이시지? 호호호, 죄송해요. 제가 조금 덜렁대서.”

눈치 없이 권다정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다가왔다.

저 말투 역시 도발로 느껴졌다.

일부러 5년 전 신동원의 직급을 꺼낸 것 자체가 충분히 그럴 의도가 다분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렇게 인사할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신동원은 유독 딱딱하게 권다정을 대했다.

딱딱 떨어지는 저 표정과 말투.

난 이미 겪은 적이 있다.

내가 신동원을 처음 만났을 때.

노블레스 오블리제니 뭐니 하며 일단 내가 원하는 조건을 말해 보라고 하던 그때와 같은 표정과 말투다.

다만, 그때와 다른 게 있다면 지금 신동원은 진심으로 권다정을 멀리한다는 것이다.

“에이~ 어차피 지난 일 가지고 뭘 그래요. 보아하니, 우리 부장 동생이랑도 각별한 사이 같은데. 나도 이 부서 부원이거든요? 껄끄럽게 지낼 필요 있나?”

하지만 눈치는 던전의 흙을 채집할 때 흙 대신 두고 온 것인지…… 아니면 진심인지.

권다정은 능글맞게 굴었다.

내가 만약 신동원 본인이라면, 충분히 화를 낼 것 같은 반응이다.

물론, 신동원과 어떤 악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이 모습만 봐도 그런 느낌이 절로 들 정도다.

“계속 껄끄럽게 지내도 될 것 같은데? 그리고 부장 동생?”

“아하하~ 우리 둘이 서로 누나 동생 하는 사이라서~”

권다정은 갑자기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친근감을 과시했다.

“……언제부터요?”

진심으로 처음 드는 얘기다.

난 그녀의 손을 치우며 반박했다.

“수락한 거 아니었어? 내가 데리고 산다고 했잖아?”

“미쳤어요? 내가 언제 데리고 살아달라고 그랬어요? 나도 손 있고 발 있습니다. 누군가가 떠먹여 주지 않아도 된다고요.”

“에헤이~ 갑자기 왜 그러실까? 우리 부장 동생?”

“그쪽이 낄 자리는 아닌 것 같은데. 그 나이 먹고 낄 자리, 안 낄 자리 구분 못 하는 멍청한 여자인가?”

그때, 신동원이 보다 못했는지 차갑게 한 마디를 건넸다.

비수를 찌르는 듯한 말투였다.

그리고 살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이렇게 적대감을 표한 게…… 아마 세 번째는 되지 않을까?

강만식, 최현민. 그리고 권다정.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런 반응일까 싶었다.

“아하하…….”

권다정도 살기를 읽었는지, 멋쩍게 웃었다.

신동원은 이제 쏘아붙이듯 한 마디를 더했다.

“나는 계속 그쪽이랑은 껄끄럽게 지내도 되니까.”

일부러 한 박자 쉬더니.

“정중하게 부탁할게요. 꺼져 주세요.”

꽤 센 워딩이 나왔다.

“……얘기 나누세요.”

권다정은 그제야 물러났다.

기가 눌려서 물러난 느낌은 절대 아니었다.

마치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

이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얘기 좀 하시죠. 저 여자 때문이라도 할 얘기가 조금 늘어나겠네요.”

“네, 일단 조용한 곳으로 옮기죠.”

난 그렇게 신동원과 함께 기숙사로 향했다.

둘이 조용히 얘기를 나누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는 거기밖에 없었다.

***

미국 네바다주 연구소엔 비상이 걸렸다.

얼마 전, 몬스터가 튀어나와 이 연구소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헌터들도 다수 잃었다.

희생된 헌터들의 장례는 비공개로 어찌어찌 진행했지만, 시설 복구는 아직 완벽히 되지 않은 상태였다.

폐허로 변한 이 혼란의 연구소에는 세계 중앙 헌터 협회의 검은 머리 외국인.

로버트 윤도 나와 있었다.

“다들 이거 보시죠.”

로버트 윤은 노트북 하나를 들고, 연구진 전원을 소집했다.

아직 시설 복구가 완벽히 되지 않은 탓에 그들의 연구는 다시 개시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노트북을 연구소 내에 있는 빔프로젝터에 연결한 뒤.

영상 하나를 틀었다.

한국에서 난리가 난 그 43개의 게이트를 담은 영상이었다.

“아니 세상에…….”

연구진들은 이 영상의 존재를 이제야 접하게 됐다.

영상이 올라온 지 약 30시간이 지난 뒤였다.

로버트 윤이 브리핑하듯 말했다.

“다들 전문가니까 알 겁니다. 영상 보자마자. 알았죠?”

그는 특히 연구팀장을 쳐다보며 말했다.

연구팀장이 대표로 답하라는 눈짓이었다.

“……네. 조작된 게 아니군요. 정말 게이트가 43개나 실존하는 거였군요.”

“네~ 정답.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 어떻게 한국에 무려 43개의 게이트가 있었을까요?”

“……혹시 한국 협회에서도 저희와 같은 실험을 진행하던 게 아닐까요?”

던전이 완전 정복 되기 전에는 전 세계에 퍼져 있었다.

미국의 경우에도 그 던전 속에서 감지 헌터가 수상하게 느껴지는, 형체가 없는 무언가를 수집했고.

이 연구소로 인계했다.

그 무언가에게 충격을 가하니, 초월석과 상당히 유사한 에너지를 발생시켰고, 그것을 이용하면 초월석이 사라진 현시대에서는 새로운 에너지원을 사용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시작한 실험.

한국도 이미 이런 사실을 알아내고, 실험하고 있던 게 아니냐는 의심이었다.

하지만 로버트 윤은 고개를 절레 저었다.

“그럴 리가요. 한국에 여기 네바다주의 연구시설 같은 곳이 있습니까?”

“…….”

그 물음에는 답할 수 없었다.

로버트 윤의 말이 전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어디 한국뿐이랴?

이 연구시설은 미국만 가졌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보안이 철저하다.

아니, 이 연구소에 한해서는 보안이 철저하다란 개념이 조금 다르다.

보통 보안이 철저하다고 하면.

존재 자체를 숨기는 용도다.

하지만 이곳 네바다주의 연구시설은 전 세계인이 알 정도로 유명한 곳.

그런데도 보안이 철저하단 뜻을 사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겉만 알 뿐, 그 속은 내부자가 아니면 절대 모르기 때문이다.

이곳은 오직 허가된 자들만 올 수 있는 곳.

미국 대통령이나 미국 협회장 또는 중앙 협회장까지.

전부 허가를 받은 시간에만 출입이 가능하다.

그들은 이 연구소의 운영진이지만, 철저한 보안을 위해 이런 불편한 규정을 정한 것이었다.

그것이 이곳의 보안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뿐이고, 실제로 그 생각은 상당히 훌륭하게 적용되는 중이었다.

따라서 로버트 윤의 말은, 이런 시설을 한국이 가졌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존재는 이미 모두가 알 정도로 유명하지만, 막상 내부는 내부자가 아니고선 알 수 없는 곳.

한국의 환경상 절대 존재할 수 없는 시설이다.

로버트 윤은 이어서 말했다.

“따라서 이 게이트는 우리와 비슷한 실험의 증거물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게다가 이 장소, 여러분들은 모르겠지만 저는 잘 아는 곳이거든요. 한국에선 이미 이 장소가 어딘지 윤곽이 드러났습니다.”

“어디랍니까……? 그래도 저희처럼 어느 연구소나 그런 곳 아닙니까?”

“전혀요~”

로버트 윤은 이제 다른 화면을 띄웠다.

한국의 한 기업을 소개하는 홈페이지였다.

“태강 디스플레이……?”

“여러분들도 이 이름은 알겠죠? 한국의 태강 그룹이요.”

“네, 이곳에 들어오기 전. 제 이웃 중에 저 회사의 가전제품을 사용하는 곳이 많이 있었기에 알고 있습니다.”

“그거 말고도 휴대폰으로도 꽤 유명하죠.”

“그런데 갑자기 저 기업 얘기는 왜……?”

“43개의 게이트가 있는 곳. 웃기게도 이 회사가 가진 공장 부지에 있을 거란 신빙성 높은 추측이 있어요. 저희도 분석 결과, 그게 맞는 것 같고요.”

“그럼 기업에서 개인적인 실험을 진행했다는 겁니까?”

“하아~ 누가 연구원 아니랄까 봐. 실험에만 집착을 하네요?”

로버트 윤이 지적하자, 연구팀장은 입을 다물었다.

“팀장님. 제 정확한 직급. 아시죠?”

“……중앙 협회 감찰부 소속 아니십니까.”

“네, 정확히는 한국 협회 담당 감찰부장이죠. 현 한국 협회장에게 비리가 있는 정황을 이미 예전에 파악했고, 그 실태가 정확히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게 제 일이죠. 만약 그 실태가 헌터의 인권을 헤치거나, 아니면 실제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정도의 비리라면. 중앙 협회에서 나서야 하니까요.”

그런 사람이 이 연구소에 와 있는 것은 일종의 간부가 가진 고충이라고 할 수 있다.

로버트 윤은 중앙 협회 내에서도 간부직에 해당된다.

한 번에 하나의 업무만 맡는 게 아닌, 포괄적인 업무를 맡다 보니 이 연구소도 관리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중앙 협회가 최현민의 비리를 파헤치려는 것도.

중앙 협회는 세계 모든 협회가 지켜야 할 공통된 법을 만드는 곳.

그 법 중에는 헌터를 개인의 권력에 의해 움직여선 안 된다라는 조항이 있다.

던전으로부터 안전을 보장하는 헌터.

그렇다 보니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시한부 인생들.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치고, 인류에게 안전을 선사하는 사명감으로 움직이는 자들이다.

그런 특별한 존재이기에 헌터를 대할 때도 특별함과 소중함이 녹아 있어야 한다는 법이 바로 헌터 인권법이다.

하지만 이미 로버트 윤이 포착한 실태만으로 최현민은 충분히 그 법을 위반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생겨난 43개의 게이트.

이 또한 최현민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의 추측이었다.

물론, 현 상황에서 게이트가 비리라고 할 순 없지만.

그래도 갑자기 다수의 게이트가 생겨난 건 누가 봐도 이상한 일.

정확히 실태를 파헤치는 것 또한 꼭 필요한 일이었다.

“저는 이제 한국으로 갈 겁니다. 가서 저 43개의 게이트가 어떻게 생겨났으며, 또한 협회장의 비리와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요.”

“그럼 저희의 연구는 잠시 중단합니까?”

연구팀장이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실험을 재개할 때.

기괴한 몬스터가 다시 나타났을 경우 이제 연구소의 자발적인 힘으로 제압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로버트 윤이 있어야 안전한 실험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아니요. 중앙 협회에서 사람이 더 올 겁니다. 시설 복구되면 바로 진행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중앙 협회에서는 이 게이트 영상을 보고 이런 추측을 했습니다.”

“어떤 추측이죠?”

“만약. 저 영상 속 게이트가 어떤 실험을 거쳐서 나온 게 아닌. 헌터의 능력처럼 게이트를 만드는 능력자가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추측이요.”

그 순간, 연구진은 일동 입을 다물었다.

각자 저마다의 상식과 지식으로 생각하는 중이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내린 결론 하나.

‘아예 불가능한 얘기는 아닌 것 같다.’였다.

이런 결론이 나올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

한국은 미국의 네바다주처럼 보안이 철저한 시설이 없다.

그리고 결정적인 두 번째.

네바다주 연구소에서는 갖은 수를 다 써서 실험을 진행했는데도, 던전이 완전 정복된 후로 게이트를 단 1개도 만들지 못했다.

최근에 기괴한 몬스터가 나오긴 했지만, 그것은 성공이라 볼 수는 없었다.

그런데 한국에선 그 시간 동안 무려 43개?

마치 정말 공장에서 찍어내는 듯한 속도였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추측임을 다들 동의했을 때, 로버트 윤이 말했다.

“그래서 말입니다. 만약 그런 추측이 맞다면. 그 능력자를 이곳으로 데리고 올까 하는데. 이곳 연구진들 생각은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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