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세계로 (3)
“그러니까 그게…….”
신동원은 말을 더듬거렸다.
그의 머리는 사실대로 말하지 말라고 지시하는 중이지만, 마음은 사실대로 말하라고 하는 중이다.
아버지 신동호는 헌터가 아니다.
게다가 5년 전 있었던 사건 때문에 헌터계와 엮이는 걸 극도로 싫어하시게 되었다.
음주 운전이라는 사건 하나로 당시 그룹 주가도 하락세를 타며, 그룹 전체 분위기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 차라리 잘 됐어. 너 헌터로 활동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까짓거 때려쳐! 그룹 일에나 몰두하라고!”
5년 전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회장의 장남이 그런 불명예를 안겨다 준 죄는, 회사 일을 열심히 하며 회사를 성장시키는 것으로 갚으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본부장이 되었고, 그 뒤로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아버지 입장에서는 5년 전 악몽이.
다시금 되살아날 것만 같은 불안감이 느껴졌다.
아버지에게 설명해야 할 것이 많고, 그 과정에서 설득도 필요하다.
초월석은 귀하지만, 그 윤도원이란 사람을 우리가 품어 줘야 하는 리스크를 안아야 하는 것인가?
품어 주는 게 아닌 다른 방식으로 초월석을 얻어낼 수 있는 방법은 생각해 보지 않았더냐?
이런 질문이 날아올 게 뻔했기 때문이다.
-뭐야, 왜 말이 없어?
이런 복잡한 생각을 하던 중.
신동호는 대답을 재촉했다.
“그러니까 그게 말입니다, 회장님…….”
하지만 아직도 결단을 내리지 못한 신동원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을 회피했을 때.
-동원아.
회장의 목소리가 아닌 아버지의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렀다.
“……예?”
-왜 답을 못해? 나무라는 것도 아닌데. 뭐 곤란한 거라도 있어?
“…….”
일단은 말을 아끼게 되었다.
-에휴.
전화기에서 들리는 아버지의 짙은 한숨.
뭔가 많은 감정이 교차하는 듯이 느껴졌다.
-그래, 뭔가 사정이 있는가 보구나. 그래도 정리되면 알아서 알려줄 거지?
“……그거야.”
예상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반응에 신동원은 잠시 멍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금세 침을 꿀꺽 삼키며 정신을 다잡으며 답했다.
“물론입니다.”
-우린 아무것도 안 했는데 주가가 5%나 올랐어. 그것도 아침 장이 열리자마자야. 게다가 네 반응 보니, 그 게이트가 우리 회사에 있는 건 맞는 것 같은데…… 정황은 너만 알고 있는 것 같고. 디스플레이 사업이면 내가 전적으로 네게 위임한 거 아니었더냐?
“그랬습니다.”
-아무튼, 뭔지 모르지만 일단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신동호는 잠시 뜸을 들인 뒤에 말했다.
-잘했어.
“……예?”
잘했어란 세 글자가 왜 유독 지금 순간에서는 다르게 들릴까.
마치 오래 묵힌 응어리가 씻겨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5년 전 사건으로 인해 안 그래도 기업인 신동원으로서는 상당히 위축된 상태.
그래서 잠도 줄이며 일에만 몰두했다.
오직 회사를 위해.
회사를 위한 것이 아버지에게 사고를 일으킨 용서를 구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다.
윤도원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도, 그 초월석으로 아버지가 완전히 자신을 전적으로 믿을 수 있게 만들겠다는 일념이 앞섰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어느 정도 아버지의 신뢰를 꽤 많이 얻어낸 듯이 보였다.
신동호는 이어서 말했다.
-하루가 뭐야. 한나절도 채 안 됐는데 벌써 주가가 변동하고 있어. 긍정적인 쪽으로. 이는 비단 단순히 주가 상승만 놓고 말하는 게 아냐. 네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아비인 내가 기대가 될 지경이라고.
“과찬이십니다.”
-과찬은 무슨. 설령 과찬이라고 해도 이럴 땐 조금은 들어도 돼. 아무튼 한나절도 안 돼서 5%. 이게 장기화되면 얼마나 상승할지, 넌 어떻게 예상하고 있어?
“…….”
이 질문에 대해서는 답이 정말 나오지 않았다.
게이트의 경위처럼 곤란한 게 아닌.
정말 답을 모르겠어서였다.
-모르겠지? 우리도 가늠이 안 돼. 그러니까 일단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봐. 어차피 주주들이야 주가만 오르면 좋아라 할 거고. 네가 뭘 하던 주가 상승에 관련된 일이라고 여기겠지. 안 그러냐?
“그럴 것 같습니다.”
-그래, 대신 나중에 말해줄 수 있을 때 확실히 말해줘야 한다. 그래야 나도 주주총회에서 할 말이 있지 않겠니?
“꼭 그러겠습니다, 회장님.”
-바쁠 텐데 일 봐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일에 관련된 거라면 굳이 내 허락받지 말고 다 해도 돼. 먼저 저지르고 나중에 보고해도 된다는 거야.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약간 긴 통화가 끝이 났다.
통화가 끝이 난 뒤.
신동원은 그제야 윤도원에게 온 부재중 전화 한 통을 확인했다.
그 부재중 목록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입가엔 미소가 띄워졌다.
“뭐 좋은 일이라도 있습니까? 본부장님.”
그런 신동원의 얼굴을 살피던 장길수가 물었다.
“팀장님.”
“네.”
“지금 당장 헌터 출신 경호원들 싹 다 긁어모아서 우리 고객님이 계신 그곳으로 갑니다.”
“가서 저희가 정확히 뭘 하면 되죠?”
“그 공장 부지로 들어가는 도로에 검문소를 설치하세요. 120명이면 24시간 풀타임으로 검문소를 운용할 생각인데, 몇 개까지 가능하려나요?”
신동원의 질문에 장길수는 허공을 바라보며 윤곽을 가다듬었다.
들어가는 입구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도로에 검문소를 설치하라고 했으니, 사방으로 뚫린 입구에 전부를 설치해야 했다.
“일단 필요한 검문소는 최소 5개. 1개는 중앙 검문소라는 이름으로 컨트롤 타워 개념으로 사용해야죠. 물론, 중앙 검문소에는 제가 있을 거고요.”
“인원은요? 검문소당 배치 인원.”
“음~ 4명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렇다면…….”
5개의 검문소에 할당 인원은 4개.
총 20명이다.
“마침 숫자 딱 떨어지게 120명이니까 6교대식으로 하면 될 거 같은데.”
24시간 풀로 가동할 검문소다.
6교대면 하루를 6등분 하면 됐다. 따라서 4시간씩, 여섯 번 교대하여 24시간을 다 채우겠다는 뜻이었다.
“아니요. 교대가 너무 잦으면 오히려 검문 업무에 빈틈이 생길 것 같은데. 인수인계 문제도 있고요.”
“그건 또 듣고 보니 그렇네요?”
“4교대 정도로 하시죠. 그렇다고 할당 인원을 늘리는 게 아닌, 휴식도 착실히 하면서 가동하란 뜻입니다.”
4교대면 근무시간은 6시간이 된다.
전혀 무리되는 시간은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분주한 거 보니…… 역시, 고객님이 말씀하신 게 바로 일어난 모양입니다. 저도 여기 오기 전에 막 뉴스 접했는데. 설마 그걸 까발릴 줄은 누가 알았답니까?”
“고객님이 말씀하신 거요?”
하지만 신동원은 장길수의 그 말이 유난히 신경 쓰였다.
윤도원은 미리 이 사태를 예견한 것.
그렇다는 뜻은 바꿔 말하면.
생각이 있어서 저렇게 했다는 뜻이 된다.
이미 장길수에게 초월석 4개를 받았을 때, 어느 정도 직감은 했지만 설마 이렇게 극단적으로 나갈 것이란 예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윤도원의 성향으로 봤을 때는 이렇게까지 하지 않을 것 같았던 이유가 컸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건 윤도원과 직접 얘기를 나눠봐야 할 문제로 보였다.
마침, 윤도원에게도 연락이 와 있지 않은가?
저쪽에서도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거다.
신동원은 마지막으로 장길수에게 당부의 한 마디를 남겼다.
“이제부터 검문소에 불청객들이 많이 들이닥칠 겁니다. 안 그래도 지금 회사 돌아가는 꼴이 보이죠?”
“네, 여기저기서 취재 요청하고 있다고.”
“그중에 헌터들이 직접 올지도 몰라요. 자국 헌터 협회가 아닌 해외 헌터 협회들까지요. 아무래도 전세계적으로 충격적인 소식이니까요.”
“허허, 하긴 최현민 그놈이 자국 헌터 상대로나 폭군이지 막상 해외 협회를 상대로 언제 큰소리 한 번 내 본 적이나 있습니까. 그 말씀은, 뉴스를 접한 해외 협회 관계자들이 한국으로 입국할 것이고. 최현민은 그걸 막지 못한다는 뜻이지요.”
“네. 그리고 고객님이 있는 그 부지로 곧장 향하겠죠. 그나마 다행이에요. 거긴 사유지라 우리 허가 없이는 못 들어가거든요. 디스플레이 사업 철수할 때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게 많이 남은 상태라 사유지로 남겼었는데, 이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군요.”
사업 철수가 확정이 났을 때 공장 설비들이 다 정리되지 않아 사유지로 남겼던 이유였다.
“하지만 일반인 상대로는 막을 수 있겠지만, 헌터들이 각자 가진 능력으로 몰래 침입하려는 시도도 있을 겁니다. 그걸 유심히 막아주세요.”
“알겠습니다. 고객님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죠.”
“그럼, 같이 넘어가실까요? 마침 저도 고객님이랑 할 말이 있어서요.”
“그러시죠! 그럼, 잠시 워프 능력자를 데리고 오겠습니다.”
장길수가 잠시 나갔을 때.
신동원은 휴대폰을 들었다.
그가 전화를 건 사람은 당연하게도 윤도원이었다.
-일이 좀 처리됐습니까?
윤도원은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하, 고객님. 선물 잘 받았습니다.”
-선물? 난처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선물인가요?
“뭐, 선물이라고 여겨야죠? 고객님의 돌발행동 덕분에 저희 회사 주가가 오르는 중이니까요.”
-……그게 왜 올라요? 단순히 게이트를 가지고 있다는 것 때문에?
“글쎄요. 사람들의 속을 전부 저희가 알 순 없지만. 아마도 현재 유일하게 게이트를 저희 회사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중이고, 그게 다시 자원 뻥튀기 기술에 사용될 날을 기대하고 있어서 그러는 거 같기도 하고요.”
-머리가 아프네요. 기업 경영 쪽이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아무튼, 곧 넘어갈 겁니다. 저한테 마침 할 말이 있어서 연락하신 거 아닌가요?”
-맞는데, 이미 대부분은 들은 거 같네요. 제가 사고 쳐서 혹시 괜찮으신가 싶었는데, 목소리 들어보니 괜찮으신 모양이고요.
“네~ 괜찮습니다. 저도 몇 가지 더 전할 게 있으니 일단 만나시죠.”
-알겠습니다.
윤도원과 짧은 통화를 마치자.
장길수는 워프 능력자 하나를 데리고 왔다.
“준비 다 됐습니다, 본부장님.”
“좋습니다. 가시죠.”
***
내 부서로 신동원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 뒤로 포털로 나오는 사람의 수가 점점 늘더니, 어느 순간 이 한 층을 전부 다 채울 정도로 불어났다.
이미 올 것이라고 들어서 기다리고는 있었지만…….
혼자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물론 그렇게 많은 사람 중에 내가 익히 아는 얼굴인 장길수와 권다정의 수면에 빠졌던 그 경호팀들도 있었다.
“하하, 좋은 아침입니다. 고객님.”
신동원은 통화 때도 그렇더니.
정말 기분이 좋아 보였다.
단순히 좋은 게 아닌, 어린이처럼 쾌활하게 좋아 보인다는 게 신기했다.
저런 모습은 처음인 것도 같았다.
“네, 좋은 아침이네요. 그런데…… 저 많은 분들은 뭡니까?”
“다들 헌터 출신 경호원들이죠. 아무튼 그거 때문에 말씀드리러 왔는데에…….”
그 순간, 신동원의 시선이 다른 쪽으로 향하더니 표정이 굳어졌다.
나도 신동원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그 끝엔 사람을 약 올리는 듯한 표정을 지은 권다정이 보였다.
심지어 권다정은 신동원을 보고 손을 흔들고는 있었지만, 전혀 반갑게 느껴지진 않았다.
오히려 도발하는 듯한 손짓으로 보이는 분위기였다.
“저 여자가 여기 왜 있습니까?”
쾌활하게 기분 좋았던 그 표정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권다정의 얼굴을 본 것만으로도 불쾌한 기분을 표출했다.
아무래도 이건 장길수에게 듣지 못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