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화. 세계로 (2)
뉴스 속보는 반복해서 내가 올린 게이트 영상에 관한 것만 전했다.
인류가 던전 완전 정복이라는 평화를 맞이했을 때보다도 훨씬 더 많은 관심이 쏠린 느낌이다.
남극에 있던 마지막 던전이 정복된 날이 나와 흑염룡이 15년 만에 재회한 날.
그때 흑염룡은 인간들은 같은 소식을 저렇게 계속 전하면 지루하지 않냐며 작은 불만을 늘어놓기도 했다.
지금 레드뷰에 올라온 영상 소식을 전하는 게 그때보다 더 심하다고 볼 수 있었다.
심지어는.
[던전 완전 정복은 사실 의도적으로 조작된 것이다?]
이젠 이런 음모론도 나왔다.
단순히 게이트가 존재한다는 사실만 전하는 용도가 아닌, 학자들이나 누리꾼들의 음모론이 공론화되고 있었다.
이 음모론의 내용은 이랬다.
저 음모론의 제목처럼.
사실 남극에 있던, 인류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그 던전이 마지막이 아니었던 것.
세계 곳곳에 소량이나마 던전이 남아 있을 거라는 게 저 음모론의 주된 내용이다.
그렇다면 왜 굳이 던전이 남아 있는데도, 이제 사라졌다고 거짓 발표를 한 것일까?
어차피 일반인들이건, 헌터들에게는 이런 공식이 성립된다.
던전=초월석
게다가 지금은 초월석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
일부러 초월석이 있는데도 없다고 거짓으로 발표하고, 그 값을 올리려는 세계 단위의 단합이 있다는 내용의 음모론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음모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
그도 그럴 것이, 미국 네바다주에서 기괴한 몬스터가 출현하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무려 43개의 게이트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게시되었으니, 당연히 전세계 사람들이 요동치는 중이다.
‘아니면 말고’ 식의 음모론이 떠다니고 있다.
그러나 이번 음모론은 분위기가 다르다.
보통 음모론이라고 하면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저들끼리 주고받는 농담에 지나지 않지만, 이번에는…….
뉴스 아나운서의 속보가 이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재 인터넷상에서 떠도는 음모론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는데요. 바로 의도적으로 전 세계가 단합하여 초월석의 값을 올리기 위한 극단적인 조치라는 음모론입니다.
무려 매스컴에서 공식적으로 저런 사실을 다룬다는 점이었다.
뉴스 화면에는 이제 내가 올린 43개의 게이트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재생되었다.
그것도, 아주 느리게 재생되는 중이다.
아나운서는 이제 마치 분석관이라도 된 듯이 영상을 세밀하게 분석하는 속보를 전했다.
-영상 전문가들은 이 영상이 절대 조작된 게 아니라는 것이 공통된 의견입니다. 실제 상황을 그대로 휴대폰을 통해 찍은 것이라는 의견으로 미루어 보아, 영상이 조작된 것이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로 보고 있습니다.
당연하지.
난 영상 조작 같은 걸 할 줄도 모르고.
할 필요도 없었다.
이런 거대한 소식이 전해지면서, 애가 탈 사람은 하나밖에 없다.
최현민 협회장.
어떻게든 게이트의 존재를 숨기고 싶었으나, 이 비밀스러운 존재가 세상 전체에 공개된 순간이다.
-게다가 여러분, 충격적인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아나운서가 일부러 시청자를 집중시키기 위한 멘트를 추가했다.
과연, 뭘까?
그 충격적인 사실이라는 거?
이 일의 당사자인 나도 궁금하다.
-영상이 촬영된 이 장소. 이곳이 태강 디스플레이 공장 부지인 것 같다는 추측이 있었습니다. 실제 태강 디스플레이 공장에서 근무했던 한 네티즌이, 자신이 근무했던 사무실과 너무나 흡사한 구조라는 의견이었는데요, 그런 네티즌이 한둘이 아닌 것으로 보아, 마냥 허황된 추측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
이건 솔직히 예상 밖이었다.
사무실 구조를 기억하고, 정확히 추측하는 네티즌이란.
역시 네티즌이 위대하다더니.
그 위력을 제대로 느끼는 중이다.
“아이고야~ 이러면 안 되는데~”
아쉬움에 중얼거린 소리였다.
[또 왜? 뭐가 잘못된 거야?]
“아니. 뉴스에서 저렇게 대놓고 태강 디스플레이라고 언급해 버리면 사람들 이목이 이쪽에 쏠려 버리잖아.”
[……그러기야 하지.]
“이건 내 실수. 설마 그걸 알아볼 줄은 몰랐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부분이 있었다.
바로 신동원에게서 받은 이 공장 부지는 신동원의 집안인 태강 그룹의 사유지라는 점.
이 주변 도로까지 전부 사유지라 일반적인 시내버스도 다니지 않는 특수한 곳이다.
즉, 태강 그룹의 허가 없이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비밀의 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 부분은 신동원과 상의를 해 봐야 할 것으로 보였다.
한껏 소식을 전하던 아나운서는 마무리 멘트를 장식했다.
-한편, 이런 음모론이 떠다니는 와중에도 세계 헌터 중앙 협회에서는 현재 사실 확인 중이기에 어떠한 답변도 내놓을 수 없다는 게 공식 입장입니다.
“세계 협회에서 사실 확인 중이라~”
역시, 의도한 대로 흘러가는 중이다.
세계 협회에서도 진작 그 영상을 접했고, 주인이 누군지 찾고 있다는 뜻으로 들렸다.
아니, 어쩌면 이미 찾았을까?
본의 아니게 세계를 향해 거대한 음모론을 만들게 한 장본인.
그리고 중앙 협회가 애타게 찾고 있는 사람.
그들이 과연 언제 내게 다가올지, 그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 이전에.
처리할 일이 하나 생기고 말았다.
난 곧장 레드뷰 어플을 켜고, 내가 올린 동영상의 댓글들을 확인했다.
-아니, 어떻게 자기가 다닌 사무실이랑 비슷하다고 태강 디스플레이 공장 부지라고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음? 이게 말이 됨? 너무 카더라를 뉴스로 내보낸 거 아닌가?
역시 속도의 한국이다.
방금 뉴스 속보가 끝났는데, 그새 속보를 듣고 온 한 사람이 저런 댓글을 남겼다.
누군지 모를 사람은 의문을 재기했다.
나를 변호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그저 자신이 생각하기에 태강 디스플레이 공장 부지라고 최초로 추측한 사람을 나무라는 것으로 보였다.
└왜 말이 안 됨? 군대만 하더라도 2년 깔짝 갔다 온 것만으로도 막사 구조나 주변에 어떤 산이 있는지 다 기억하지 않음? 2년 내내 똑같은 곳을 보니까 당연히 기억나지. 그리고 회사원이면 보통 5년 이상 다닌 사람이 많은데 5년 내내 똑같은 곳을 보고 기억 못 하는 게 비정상 아님?
└ㅇㅈ. 댓글 쓴 사람 군대도 안 갔다 와 본 듯.
처음 댓글을 남긴 사람이 오히려 공격받자, 그가 다시 반박했다.
-아니, 그렇다 치는데. 검색해 보니까 증거 사진도 없다고 하더만? 첨부할 사진이 아무것도 없대. 그냥 자기 말로만 사무실이 비슷하다고 하고 믿는 게 어이가 없어서 그럼. 그런 카더라를 왜 믿는 거임?
└진짜 아무것도 모르네 ㅋㅋㅋㅋㅋ 중소기업 공장만 가도 보통 보안 정책 때문에 휴대폰 카메라 부분 스티커로 가리고 들어간다. 하물며 태강 같은 대기업은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 하지 않는다. 애초에 안에 들어가면 사진 못 찍어. 그러니 사진이 없는 게 당연하지.
-스티커 잠깐 떼고 찍어도 되잖아?
└얘 사회생활도 안 해 본 듯 ㅋㅋㅋㅋㅋ 세상에 스티커 잠깐 떼고 사진 찍은 다음에 붙이면 안 되냐니 ㅋㅋㅋㅋㅋㅋ
└그랬다간 바로 회사 짤릴 수 있다 ㅋㅋㅋㅋ 그렇게 궁금하면 나중에 취업했을 때 그대로 해 봐. 어떻게 되는지.
잠깐 이런 헤프닝도 있었다.
이 댓글의 분위기만 봐도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현재 영상 속에 나온 장소가 태강 디스플레이라고 믿는다는 것.
조금 골치가 아프게 됐다.
시간은 이제 아침.
이렇게 되면 신동원에게 연락해 봐야 했다.
난 곧장 신동원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소리샘으로…….
음, 아무래도 내가 터트린 핵폭탄 때문에 저쪽도 의도치 않게 바빠진 모양이다.
난 문자 한 통만 남겼다.
[혹시 저 때문에 바빠진 건가요? 일단 연락하실 수 있을 때 연락 부탁드립니다.]
***
“후우…….”
이른 아침부터 신동원의 사무실인 본부장실은 그야말로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본부장님……! 방송국에서 철수한 태강 디스플레이 부지 취재 요청을 보냈는데요……!”
“본부장님! 저희는 기자들의 취재 요청 때문에 죽겠습니다!”
본부장실은 물론, 비서실까지 완전 비상이 걸린 날이다.
전화기는 단 1초도 쉬지 않고 계속 울려댔으며, 본부장 신동원에게는 언론을 비롯한 각종 매체에서 보낸 요청 때문에 죽을 맛이었다.
신동원은 비서들에게 명령했다.
“일단 태강 디스플레이 근무했던 직원들한테 전체 메일 돌려요. 그 문제의 영상에서 나온 사무실 장소. 거기가 태강 디스플레이 사무실이랑 닮은 것 같다느니, 이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요.”
“……네!”
이미 엎질러진 물이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수습을 해야 했다.
“그리고…… 하아…….”
정신없이 아침부터 일을 처리하던 신동원은 한 곳을 바라봤다.
접객용 테이블.
일전에 윤도원과 서로 비즈니스 관계를 약속했던 그 테이블이다.
하지만 오늘 앉아 있는 사람은 윤도원이 아닌, 장길수였다.
“팀장님.”
“네, 본부장님.”
“지금 경호팀 인원 헌터 출신들로만 싹 다 긁어모으면 몇 명이나 모일 수 있죠?”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아무래도…… 그 공장 부지. 출입을 막아야 할 것 같습니다. 조용히 넘어갈 수 있는 사태는 아닌 것 같아요.”
“흐음~ 확실히 그렇죠? 세상 이목이 이 작은 나라에 집중되어 버렸는데. 여기저기에서 침입하려는 자들이 많아지겠죠.”
“네, 우리 고객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건지 참……. 답답하지만, 이미 저질러진 일 아니겠습니까? 일단 수가 얼마나 돼요?”
“대략 120명 정도요?”
“120명이라…….”
공장 부지 입구를 둘러싸서, 경비를 서기에 충분한 인력이었다.
“그렇다면 당장…….”
우우웅, 우우우웅.
그때, 신동원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하고선 신동원은 침을 꿀꺽 삼키며 한껏 경직된 반응을 보였다.
“왜 그러시죠? 본부장님?”
“잠깐…… 조용히 하고 계세요.”
“네, 얼마든지요.”
이에 신동원은 전화를 받았다.
“네, 회장님.”
발신자는 다름이 아닌 그의 아버지이자 태강 그룹의 총수 신동호 회장이었다.
-그냥 말 편하게 해. 내가 하나 궁금한 게 있어서 전화했으니까.
신동호 회장은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 무감정의 목소리가 지금의 신동원에게는 더 불편하기만 했다.
“아닙니다, 엄연히 근무시간인데요. 사적인 자리 아니고요.”
-허허, 그래. 주변에 누가 있나 보구나. 아무튼…… 이게 뭐냐? 자고 일어났더니 날벼락을 맞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행운이 찾아왔다고 해야 할지……. 내가 간밤에 돼지 꿈을 꾼 것도 아닌데 말야.
보통 돼지 꿈이라 하면 행운의 꿈인 길몽의 대명사다.
지금 신동호는 자신이 그런 행운을 맞았다는,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하던 중이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우리 그룹 주가가 올랐어. 5%나.
아무것도 안 했는데 갑자기 5% 상승이라는 건 그룹 입장에서는 호재였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원인을 분석해 봤더니, 아침 뉴스가 원인이었더군? 그 게이트가 있는 곳. 우리 계열사 공장 부지 맞아?
신동호가 물었다.
그 순간, 신동원의 등줄기에선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이걸 사실대로 말을 해야 해, 말아야 해……?’
자신도 무엇이 정답인지 모르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