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화. 세계로 (1)
내가 올린 동영상의 댓글란은 순식간에 투기장으로 변했다.
조작이 확실하다느니, 조작이 아니라느니, 니가 뭘 아냐는 둥.
저마다 가진 상식과 지식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키보드 전사들의 피 튀기는 전장이 되었다.
동영상 업로드 후 이미 몇 시간이 지난 상태다.
사람들의 반응은 여전히 반반이다.
아니, 이 게이트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의 비율이 아주 조금 더 많았다.
[이래도 되는 거야? 사람들이 안 믿잖아?]
흑염룡은 그 부분을 걱정했다.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올린 게 분명한데, 사람들의 반응이 차가우니 뜻대로 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다.
“어차피 사람들한테 믿으라고 올린 거 아닌데?”
[……그럼?]
“이걸 일반인들이 믿어줘야 할 필요는 없어. 이 짧은 동영상을 보고 찔릴 사람들은 분명히 있거든. 그걸 노린 건데?”
난 흑염룡에게 답하면서 미국 네바다주의 소식을 전했던 그 뉴스 영상을 새롭게 검색했다.
“이거 봐봐. 찔리는 놈이 있잖아?”
휴대폰 화면을 흑염룡에게 보였다.
분명히 검색을 제대로 했지만 화면에 보이는 것은.
[동영상을 찾을 수 없음]
잠깐의 파장을 일으켰던 그 영상은 이제 삭제된 상태다.
게시물은 그대로 있으나, 동영상만 재생이 되지 않았다.
이건 동영상 게시자가 삭제한 게 아니다.
이 레드뷰를 운영하는 곳에서 강제로 삭제한 흔적이었다.
“이거 봐. 찔리는 놈이 있잖아. 그러니 미국에서 일어난 일을 올린 영상도 삭제가 됐고. 미국에 뭔가가 있고, 그걸 꼭 숨기고 싶은 누군가가 술수를 부렸다는 뜻이지.”
그렇지 않고서야 삭제될 이유가 없으니까.
숨기고 싶은 것은 없앤다.
이것은 비단 한국의 방식만이 아닌, 만국 공통이다.
[그래서 일부러 헌터들에게 알리기 위해 올린 거다?]
“그렇지. 특히 미국 협회를 겨냥한 일이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안다.
흑염룡 덕분에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 어떤 이유에서 발생한 것인지.
그리고 그곳에는 뭔가 들키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는 것까지도.
[그땐 상황이 너무 빨리 지나가서 못 물어봤는데.]
그런데 흑염룡은 뭔가 묻고 싶은 게 있어 보였다.
“뭐가 궁금한데?”
[이렇게 알리면 우리에게 이점이 뭐야? 없을 것 같은데. 강만식이 대놓고 쳐들어온 것처럼, 이젠 세계의 표적이 되는 거 아냐?]
충분히 일리 있는 걱정이다.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거 아냐? 네 말도 틀린 건 아니긴 하지만…… 우리가 게이트를 가지고 있다는 걸 많은 사람이 알면 뺏으려는 사람도 늘겠지만 반대인 사람도 늘지 않겠어?”
게이트의 존재를 알고, 서로 비밀을 지켜주는 사람도 존재한다.
세상에 전부 강만식, 최현민만 있는 건 아니다.
대표적으로 내 부원들도 그렇다.
권다정, 이지은, 신보미, 정다훈, 정다혜.
이 다섯 명도 비밀을 지켜주는 중이다.
물론, 서로 필요한 관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형성된 관계로 시작했다고 해도.
결과로만 놓고 봤을 땐 비밀을 지켜준다는 게 가장 중요하다.
게다가 신동원까지.
비록 비즈니스 관계이긴 하나 여태까지 문제가 발생하진 않았다.
오히려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힘써주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한다.
따라서 세계에도 그런 사람이 어딘가에는 분명히 있을 것.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 협회와 중앙 협회가 과연 해당 영상을 접한 뒤에 어떤 움직임을 취할지를 지켜보면 된다.
[만약…… 미국 협회랑 중앙 협회가 무력으로 굴복시키려고 하면? 눈 뜬 채로 당하는 거 아냐?]
“아니지. 그땐 세계에 퍼진 신동원 같은 사람을 모으면 돼.”
[신동원 같은 사람?]
“응. 비밀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말하는 거지. 중앙 협회는 무력으로 게이트를 빼앗으려 든다고 해도. 전 세계 협회가 같은 생각은 아닐 거거든.”
현재 초월석이 필요한 국가는 널렸다.
따라서 그들과 은밀하게 거래하면 그만이다.
[흐음…… 비밀을 지켜줄 사람이 적으면 또 문제고, 많아도 문제네.]
흑염룡은 이제 다른 문제로 걱정이 든 모양이다.
“많으면 문제라는 게 혹시, 소비되는 초월석이 많아질 걸 두려워하는 거냐?”
[당연하지. 어쨌든 던전이라는 건 크루즈가 넘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억제기잖아.]
이미 게이트는 43개.
흑염룡이 만든 게이트는 방이 1개밖에 없는 던전이다.
기존에 던전이 완전 정복 되기 전엔 게이트 5개에 정식 던전 1개의 효과를 가졌다고 했으니, 지금은 고작 정식 던전 8개밖에 되지 않는 상태다.
가뜩이나 게이트를 늘리는 것도 힘든 상황에서.
오히려 비밀을 동조하는 자들이 늘어나면, 그들에게 또 초월석을 주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애써 늘린 43개의 게이트를 정말 하루아침에 그들과의 거래 대가로 사용해야 했기에 증발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만 놓고 보면.
43개 전부 약탈당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건…… 해결방안을 찾아 나가야지.”
어쨌든, 확실한 건 현재 상황에서 게이트를 가진 내가 절대 권력자.
충분히 조율할 수 있는 무기는 많았다.
이제 시간은 깊은 새벽.
몇 시간만 더 지나면 세상은 이제 푸른빛의 여명이 다가오는 시간이 되었을 때.
“하하하…….”
멋쩍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난 현재 43개의 게이트가 펼쳐진 곳 앞에 앉아 있었는데, 내 뒤에서 들린 소리다.
뒤를 돌아보니, 장길수와 그의 팀원 전부가 깨어났다.
깨어나자마자 이곳을 찾은 듯이 보였다.
그리곤 내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마치 단체로 석고대죄라도 하는 듯한 행동이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이어지는 우렁찬 함성의 사죄.
아예 절을 넙죽 올릴 듯한 기세였다.
“죄송할 게 뭐 있습니까? 기분은 어떠세요?”
권다정의 능력으로 인해 잠든 팀원들의 표정은 상당히 밝고, 쾌활해 보였다.
“이런 상황에 이런 말씀 드리기 뭐하지만…….”
장길수는 내 눈치를 심하게 보다가 어렵게 답했다.
“인생 최고의 컨디션인 것 같네요. 몸이 가벼워요. 날아갈 것 같고요. 너희들도 그런가?”
“……네, 딱 그 느낌인데. 그 뭐지…….”
장길수의 물음에 한 여자가 답하기 시작했다.
저 여자는 나도 본 적이 있다.
강만식의 관리부와 처음 격돌했을 당시, 푸른 사슬로 공격을 받아 몸에 구멍이 났을 때.
직접 내 몸을 치료해준 그 헌터다.
“아! 딱 그거! 마사지 받고 일어난 다음 날? 엄청 개운해요! 나른하면서!”
“오, 맞아! 그 표현이 정확하겠구먼!”
“정말 천국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이런 생각이 들던데요?”
다른 팀원도 전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당연하지. 우리의 수호신 드래곤께서도 숙면을 취하실 때 사용한 꽃이니까!]
흑염룡은 뿌듯한 목소리로 답했다.
저들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하단 뜻이기도 하다.
‘심신 안정에 최고의 효과를 가진 꽃. 뭐 그런 거냐?’
[그렇지. 근데 문제는 있어. 몬스터 상대로도 최고의 효과를 보이는 거라서 인간들은 쉽게 중독될 수 있단 말야.]
‘중독되면…… 어떻게 되는데?’
[뭘 어떻게 돼. 영원히 잠든 상태가 되는 거지.]
참 살벌한 이야기를 해맑게도 한다.
흑염룡은 한 가지 사실을 덧붙였다.
[물론, 숙면의 강도를 권다정이 조절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봤을 땐 아직 안 되는 것 같던데?]
‘숙면의 강도도 조절할 수 있는 거였어? 어떤 식으로?’
[이를테면 1시간 정도만 자도록 하든가 하는 방식. 우리가 저 꽃을 사용해 몬스터를 재웠을 땐 최대 4시간이야. 4시간 넘어가면 안 돼. 인간들은 1시간만 해도 충분할 거야. 그런데 저 사람들은 너무 오래 잤어. 그 후유증이 며칠은 남을 거야.]
‘후유증이면…… 어떤 후유증이 있지?’
[말 그대로 잠에서 덜 깬 채로 며칠 지내는 거지. 몽롱한 상태로 말야.]
꽤 무시무시한 능력을 지닌 꽃이었다.
‘아무튼, 그걸 권다정이 완벽히 조절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고. 조절만 할 수 있게 된다면 후유증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거지?’
[응. 정말 그 수준이 되면 1시간만 자도 이틀은 잠 안 자도 될걸?]
그렇다면…….
권다정에게 시킬 일도 생겼다.
어차피 그녀가 능력의 숙련도를 올리기 위해선 던전의 흙이 필요했는데, 그 문제는 말끔하게 해결된 상태.
당장 내일부터 따로 이 일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저희가 지켜드리기로 약속했는데, 약속을 못 지켜서.”
경호팀이 재차 사과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는 사죄의 분위기를 풀풀 풍겼다.
“괜찮아요. 아마 미리 알았어도, 대응할 방법은 없었을 겁니다.”
이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었을까?
권다정이라는 예외의 인물이 가진 능력 때문에 그렇게 됐고.
심지어 그 능력이 인간의 몸으로는 저항할 수 없는 능력과 똑같았는데.
그렇기에 잘못은 없다.
그리고 내가 말한 대로, 알고 있었어도 대응할 방법은 없었을 건 확실하다.
“대신, 며칠 더 쉬세요. 그 능력에 대해서 알아보니까 인간의 몸으로는 후유증이 며칠 갈 거라고 합니다. 지금도 컨디션은 좋지만 몽롱하지 않으세요?”
“……어떻게 그리 잘 아세요?”
“전 다 알아낼 방법이 있으니까요. 그러니 며칠 쉬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리고 이거.”
난 강만식에게서 뺏은 4개의 초월석을 장길수에게 건넸다.
“고객님, 이건…….”
“강만식이 저희 수고를 덜어줬어요. 팀장님들 재우고, 관리부원들이 그 건물에 있던 4개의 게이트 전부를 정복했더라고요.”
“그럼 이 초월석이…….”
“네. 개수가 딱 맞아떨어지잖아요? 안 그래도 신동원 본부장님은 그 게이트를 어떻게 정복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을 텐데. 강만식이 대신해 줬으니 고민은 사라졌겠죠?”
“그렇기는 한데…….”
“그러니 신동원 본부장한테 전해주세요. 그리고 이 의견도 전달해 주십시오.”
“어떤 의견일까요?”
“기존에 4분기로 계산해서, 분기당 초월석 1개로 1년 치 계산한다고 했는데.”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답은 긍정적으로 하고 있지만, 장길수는 무언가 불길함을 느꼈는지 눈동자가 흔들렸다.
“네. 2년 치로 바꿔 달라고요. 즉, 1년 추가로 무상 AS 개념이겠지요.”
“……혹시 그 이유를 들어봐도 될까요?”
“어쨌든 위기가 온 건 사실이고. 저 혼자 해결했으니까 일종의 컴플레인이라고 봐야겠죠? 이 정도 AS는 해주실 수 있겠죠?”
그래도 나와 신동원은 철저한 비즈니스 관계 아니던가?
일은 일이고 정은 정이다.
그리고 이건 일의 영역이다.
초월석이 귀한 지금 시대에서 무려 4개나. 맨입으로 줄 순 없으니까.
“……하하, 이거, 제가 본부장님한테 많이 혼나겠군요.”
그래도 역시 장길수다.
그는 거절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내 상황을 고려하고, 충분히 합당한 요구라는 것을 수긍한 것이다.
아마도 그는 이런 모습 때문에 HS의 이현수 길드장과 그의 아버지인 전 협회장이 청렴하고 실력 있는 후보라고 생각해, 협회장 후보로 추진했던 거겠지.
아깝다, 정말.
예전에 장길수를 보면서 이런 사람이 협회장이면 어떨까, 싶었는데.
지금도 그 여운이 다시금 스멀스멀 올라왔다.
장길수는 4개의 초월석을 받아들였다.
“까짓거, 저희가 욕먹고 말죠! 엄연히 잘못한 거 맞으니까요!”
“그럼, 쉬세요. 앞으로 세상이 시끄러워질 거라서. 그때 저희 많이 도와주시고요.”
“……세상이 시끄러워질 거라뇨?”
“있습니다, 그런 게.”
***
그렇게 이틀이 채 지나기도 전이었다.
시간으로 치면 하루는 넘긴 약 28시간 정도다.
핵폭탄은 제대로 터졌다.
[속보! 레드뷰에 공개된 다량의 게이트. 과연 진실은?]
[43개의 게이트 영상, 한국이라는 소문이 있어…….]
역시 한국이다.
남 잘되는 게 퍼지는 건 몇 달 걸리지만, 남 뭐 되는 거 퍼지는 건 몇 시간이면 충분하다는 말.
슬슬 시작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