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핵폭탄 (4)
[업로드 중…….]
[98% 완료]
아무래도 영상 길이가 짧다 보니, 그 용량도 작아서 업로드 속도는 상당히 빨랐다.
“……이보게, 양산부장.”
최현민이 불안에 떠는 눈동자로 내게 말했다.
역시, 이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에게 전혀 득이 될 상황이 아니란 걸 눈치껏 아는 행동이다.
“왜요?”
“내게 보여준 그거. 뭔가?”
“설명해주면? 미리 대응책이라도 생각해 보시려고?”
“…….”
완전히 경직된 모습이다.
눈은 나를 보고 있지만, 그의 머리는 신경이 이곳저곳에 팔린 상태다.
과연 뭘 업로드 한다는 걸까?
설마 내가 중국 협회에서 빼돌린 그 비문?
아니면…… 또 뭐가 있지?
이런 갖은 추측을 하다 보니 머리가 꽤 복잡한 상태일 거다.
하긴, 그동안 저지른 비리가 많으니 쉽게 예상할 수 없을 거다.
난 이제 최현민에게 보여준 휴대폰 화면을 꺼 버리고, 주머니에 넣었다.
“며칠만 기다려 봐요. 이게 뭔지 알게 될 거니까. 아 그리고.”
내 작은 행동 하나로 완전히 최현민과 내 신분이 뒤바뀐 모습이었다.
왕의 옷을 입은 거지.
그게 최현민에게 상당히 어울렸다.
“듣자 하니 중앙 협회 감찰부에서도 이미 찍힌 상태라면서요?”
“……뭐?”
“내가 방금 한 이 일로 인해서 협회장님의 안위가 어떻게 될지, 문득 궁금해지네?”
“무슨 소리야……. 내가 감찰부에 찍혀 있다니.”
설마 S급이 아닌 권다정도 소문으로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널리 퍼진 것을.
정말 그가 몰랐을 리가 없다.
따라서 지금 최현민이 한 말은 이런 뜻을 품고 있다.
“네가 그 사실까지 어떻게 알고 있어?”라는 뜻이.
“아~ 그리고 권다정 씨라고 알아요?”
“그년은 분명히…….”
“에휴…….”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단어 그년.
이 단어 하나로 그냥 최현민이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것과 다름이 없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듯한 분위기를 풀풀 풍기는 격이 낮은 단어로 느껴졌다.
“존중이라는 걸 좀 가져 봅시다. 그년이 뭡니까? 이름 뻔히 있는 사람인데.”
“지금 상황에서 걔 이름이 나오는 게 이상하잖아. 그년한테 들은 건가?”
“그건 알아서 생각하시고. 권다정 씨 부서 이동 있습니다. 조치해 놓으세요.”
“부서 이동이라니?”
“강만식의 관리부에서 제 양산부로 이동. 그대로 조치하라고요.”
“…….”
최현민의 표정이 또 변했다.
여전히 불안에 떠는 눈동자이긴 하지만, 뭔가 자신감을 되찾은 듯한 눈빛도 서려 있었다.
[야. 이래도 되는 거야? 이런 식으로 말하면 권다정 걔가 말했다는 걸 눈치껏 알 텐데.]
흑염룡도 그 부분이 못내 걱정스러운 듯이 보였다.
‘괜찮아. 어차피 나중에 알게 될 일이고. 알아도 해코지할 순 없을 거니까.’
권다정을 이지은이나 정다혜처럼 정말 소중히 여기는 건 아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현재 내게는 필요한 사람이란 것.
그녀가 가진 능력은 냉정하게 따지면, 내 부서에 있는 43개의 게이트를.
내가 없을 때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권다정이 난처한 상황에 처하는 것은 막아야 할 일이었다.
지금 상황에 권다정의 이름이 나온 건 그녀에게 모든 것을 들었다는 고자질이 아닌, 순전히 부서 이동을 조치하라는 의도밖에 없었다.
‘그리고 권다정 얘기를 처음 시작했어도 최현민은 어차피 권다정을 의심했을 거야. 순서는 상관이 없어.’
애초에 강만식이 데리고 있다가 내게 넘어온 것 자체가 이미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의심을 받지 않도록 만드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아무튼. 갑니다~ 권다정 씨 조치 끝냈으면 문자 하나 남겨 놓으시고요.”
난 그렇게 최현민에게 궁금증만 가득 안겨준 채로, 협회를 떠났다.
“얘기 잘 끝난 거야?”
부서로 돌아왔을 때, 권다정도 부서에 있었다.
다만, 역시 기존 부원들과 아직 융화가 되지 않은 상태.
이지은, 신보미, 정다혜, 정다훈.
이 네 명은 서로 똘똘 뭉쳐 있는데, 권다정만 조금 떨어진 곳에 혼자 앉아 있었다.
마치 지도로 봤을 때 울릉도 옆에 떨어진 독도처럼.
권다정이 섬처럼 작아 보였다.
게다가 권다정은 내심 불안한 모양으로 보였다.
아무래도 강만식과 함께 있다가, 갑자기 내 부서로 이동하게 됐으니 그럴 것이다.
“네, 뭐. 잘 끝났죠.”
“안심해도 되는 거지?”
“음…… 그거까지는 약속 못 하겠는데.”
솔직하게 답했다.
“뭐야, 그게 더 불안해. 가서 무슨 소릴 한 거야?”
“별소리 안 했어요. 그냥 누나 우리 부서로 이동시키라는 것만 했습니다.”
이건 어쨌든 거짓이 아니다.
다만, 그 과정이 그리 순탄치는 않았지만, 그거까지 얘기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자~ 아무튼.”
난 이제 부원 전체에게 말했다.
“내가 사고 하나 치고 와서. 이제 조금 시끄러워질 거 같아. 다들 긴장해.”
“……또 무슨 사고 쳤어요? 제발! 사고를 칠 거면 미리 말이라도 해주던가!”
역시, 신보미가 가장 격한 반응을 보였다.
사고란 단어에 이제 진절머리를 느끼는 것 같았다.
“야, 보미야. 그래도 도둑처럼 협회장실 털고 그런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너희 그런 짓도 했었어?”
권다정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살다 살다 협회장실을 터는 도둑질까지 했다니.
그녀의 상식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인 건 분명했다.
“그 얘기가 지금 왜 나와요!”
신보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발끈했다.
그 두 눈망울이 잘 부친 동그랑땡 같았다.
“나중에 반찬으로 먹으라고 눈을 동그랑땡으로 만들었냐?”
“아! 진짜! 저 오빠랑 얘기랑 하면 할수록 열만 받아!”
이젠 제 분을 못 이겼다.
“……빨리 말해. 무슨 사고 쳤는지.”
그리고 들려온 차분하지만, 응축된 분노가 서린 목소리.
이지은이었다.
“지은이 넌 알지? 내가 저 게이트들 영상으로 찍은 거.”
“알지. 그때 같이 있었으니까.”
“오옹~ 둘이 자주 붙어 있었구나?”
권다정은 이런 쓸데없는 추임새도 넣었다.
“누난 가만히 있어요.”
“옙, 부장 동생.”
“아무튼 그 영상. 레드뷰에 올려 버렸다. 레드뷰는 어차피 아무나 영상을 올릴 수 있는 곳이잖아?”
“……세상에.”
최현민을 협박할 때 보여준 그 화면.
레드뷰 영상을 업로드한 과정이었다.
내가 친 사고의 정체를 알자 부원들은 모두 이마를 감싸 쥐었다.
“제목은 ‘나 게이트 가지고 있다 ㅋㅋㅋ’라고 올렸지. 어때? 이 정도면 소위 말하는 어그로 제대로 끌리지 않겠냐?”
가뜩이나 세상은 던전이 완전 정복된 인류 평화의 시대.
하나 초월석은 사라져버려 자원 고갈 위기에 놓인 불편한 평화의 시대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네바다주에 나타난 몬스터 하나만으로도 세상은 호들갑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하루가 채 지나기 전에 미국 협회에서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얼버무리며 사태를 수습했다.
수습될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도.
네바다주의 그 영상에서는 일반인이나 다른 헌터들의 눈으로 보기에 게이트라고 칭할 수 있는 게 선명하게 나오지 않았다.
그저 괴상하게 생긴 몬스터 하나가 튀어나와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으니, 제작 중인 영화의 한 장면이라는 얼토당토않은 변명이 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올린 영상은?
본질 자체가 다르다.
게이트를 무려 43개나 담은 영상.
이제 이 영상은 한국 전역을 뒤흔들고, 나아가 세계에서 존재가 알려질 거다.
게다가 레드뷰를 운영하는 회사는 미국의 회사.
소위 말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그 무섭다는 FBI가 수사 협조를 요청해도, 개인정보 보호라는 면목으로 ‘더글’이란 회사는 협조를 안 하기로 유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가만히 있을까?
미국 회사는 내 개인정보를 알게 될 것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협회도 알게 될 거다.
아마 중앙 협회도 알게 되겠지.
어차피 미국 협회는 중앙 협회 2중대라고 불릴 정도였으니까.
따라서 내가 올린 영상이 거짓이 아니란 것과.
이 영상을 올린 주인이 누군지 퍼지는 건 시간문제다.
그렇다.
난 세상에 내 존재를 알릴 용도로 영상을 업로드 한 것이다.
애초에 최현민과 강만식이 내 부서를 급습한 강수를 둔 것도 결국엔 비밀로 묻어뒀던 사용 가능한 초월석의 존재를 알리고, 비싸게 팔기 위한 것이었으니까.
“이래도 되는 거야?”
이지은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응. 이래도 돼. 협회장한테도 선전포고하고 왔거든. 애초에 내 부서를 급습한 이유도 초월석 전부를 빼앗기 위한 거였고.”
“그거랑은 얘기가 다른 것 같은데…….”
“아니야 최현민은 내게서 뺏은 초월석을 세상에 알리고 비싸게 팔 생각이었어. 내가 선수 친 것뿐이지.”
“…….”
“너희들도 겪어서 알잖아? 게이트를 늘리고,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그러니 강만식이 부원들 이끌고 나한테 쳐들어왔겠지. 그중 한 명이 여기 있잖아?”
권다정을 가리키며 한 말이다.
“그 얘기를 굳이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데…… 하하…….”
조금 기분이 나쁜 반응이었다.
“그렇죠, 언니? 저 오빠는 저게 문제라니까? 남의 기분을 고려를 안 해!”
의도하진 않았지만, 내가 신보미에게 협회장실을 턴 도둑질 같은 건 아니라고 지적했을 때, 신보미가 느꼈던 기분을.
지금 권다정이 똑같이 느끼게 된 상황이 됐다.
신보미와 권다정 사이에 묘한 동질감이 생성된 순간이다.
“아무튼! 따라서 내가 내린 결론은. 언제까지고 세상에 비밀로 할 수 없다는 뜻. 게다가 협회와 강만식은 언제든 우릴 집어삼킬 생각만 하고 있어. 내가 가진 게이트가 많을수록, 더 예상도 못 한 방법으로 우릴 공격하겠지.”
초월석을 얻기 위해서는 정말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작자들인 건 분명하니까.
“그럴 바엔. 그냥 세상에 우리가 먼저 까발리고, 우리가 상황을 주도하자고. 그 목적으로 올린 거야.”
난 이제 레드뷰 영상을 확인했다.
“오~ 바로 반응 오는데? 봐봐.”
[나 게이트 가지고 있다 ㅋㅋㅋ]
#실시간 인기 동영상 22위.
영상을 업로드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인기 동영상에 올랐다.
즉, 물은 이미 엎질러졌고, 화살은 날아갔다.
이제는 영상을 내린다거나 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행동이다.
내가 영상을 지운다고 해도, 누군가가 영상을 복사해서 다른 사이트에 올리는 일을. 이미 하고 있다는 뜻이 되니까.
부원들은 전부 각자의 휴대폰으로 내가 올린 영상의 제목을 검색하고, 그 반응들을 살폈다.
-뭐야? 이거 진짜임?
└딱 봐도 주작인데 이걸 믿음? 세상을 얼마나 순진하게 산 거임?
└이것도 미국 거기처럼 제작 중인 영화의 한 장면 뭐 그딴 거 아님?
└ㄹㅇ. 이젠 하다 하다 이딴 주작으로 영상 조회수 빨아먹으려 하네. 악질이다, 진짜.
대부분이 믿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이미 미국 네바다주의 일이 있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 밑에 있는 댓글에 사람들의 반응은 다시 요동쳤다.
-현직 영상 편집 전공자입니다. 전공자의 눈으로 봤을 때 이 영상은 조작의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CG도 없어요. 그 말은 뭐냐. 실존하는 걸 휴대폰으로 그대로 찍었다는 뜻이 됩니다.
└혹시 영상 전공을 무슨 무슨 위키로 공부하신 건 아닌가요? 방구석 전문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