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핵폭탄 (3)
“나한테 뭘 보여주는 건가?”
최현민도 휴대폰에 띄워진 화면을 보고 표정이 변했다.
뭔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분명히 좋지 않은 무언가라고 본능적으로 직감한 듯했다.
“말했잖아요? 대답에 따라서 이 핵폭탄이 떨어질지 말지, 정해지는 거라고.”
어느덧 내 손가락은 ‘예’ 버튼에 향했다.
힘을 아주 살짝만.
솜사탕을 콕 찍을 정도로만 힘주면 누를 수 있었다.
최현민의 답을 듣고, 누를지 말지 빠르게 정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게 뭐 하는 건가?”
“이것까지 친절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고. 말해 봐요. 왜 그랬어요?”
“뭘?”
“자꾸 시치미 떼시려고? 내가 보낸 선물 확인했잖아요?”
난 창문을 바라봤다.
저 밖에 있는 텅 빈 주차장.
그 안에 관리부원들이 사이좋게 잠에 빠져 있는 상태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 내가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 기어코 가르시겠다?”
“글쎄, 난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아니. 자꾸 모른척 해 봤자 의미 없다는 거 몰라요? 생각해 보세요. 고작 랭크도 B급에 길드장 이력도 없던 양반이 협회장까지 올랐으면 돌아갈 머리는 있을 거 아니야.”
“……뭐?”
적잖이 당황스러운 눈치였다.
그래, 과거를 들춰야 약발이 드는 모습을 보였다.
“내가 모를 것 같았어요? 당신이 어떻게 협회장 자리에 올랐는지?”
“…….”
계속해서 당당하게 오리발을 내밀던 최현민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러면서도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
정말 BGM 하나만 깔리면 최고의 상황이었다.
노래는 당연히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이런 가사가 들어간 노래로다가.
“내세울 이력이라곤 전임 협회장 비서. 그 알량한 이력 하나로 협회장까지 오른 사람이. 다 들킬 거 알면서 일을 벌였다는 건, 믿을 구석이 있었다는 뜻 아닙니까? 그래요, 강만식이 초월석 전부를 회수했다고 칩시다. 그다음은 뭘 하려고 했어요?”
여전히 최현민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마치 최현민의 윗입술과 아랫입술엔 구멍이 뚫려 있고, 피어싱 마냥 그 구멍에다가 자물쇠를 잠근 듯한 모습이다.
나도 덩달아 말을 아꼈다.
묵비권을 행사하시겠다라?
묵비권을 행사하는 상대에게 아무리 쪼아도, 귀를 닫아버리면 그만.
이럴 땐 나도 같이 입을 다물고, 눈만 똑바로 쳐다보면 된다.
도둑은 원래 제 발이 저린 법이니까.
“…….”
“…….”
우리 둘 다 말없이 서로의 눈만 한참이나 응시할 때.
최현민이 내 눈을 피했다.
“얼레? 왜 피하지? 켕기는 게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닌가?”
“넘겨짚지 말게. 어쩐지 강만식 부장이 오늘 연락이 안 되더만…… 이러려고 그런 건가.”
이건 또 갑자기 무슨 소리일까?
이젠 강만식을 지탄하는 듯한 말투였다.
“무슨 소립니까?”
“강만식 부장이 나한테 이상한 소리를 하고 난 뒤, 연락이 안 되더군. 자네 강만식 부장과 무슨 마찰이라도 있었나?”
“없었는데요? 무슨 소릴 했는데요?”
그래, 최현민 협회장.
과연 당신의 창작 능력은 어디까지 되는지 한 번 봅시다.
무슨 이야기를 지어낼 것인지, 이젠 궁금할 지경이 됐다.
“욕을 많이 하더군.”
“무슨 욕을 정확히 어떻게 했는데요? 단어 하나하나 짚어봐요.”
“내가 격 떨어지게 그런 상스러운 욕을 그대로 말할 이유가 있겠는가? 아무튼, 걱정도 되고 강만식 부장을 말리기 위해 연락을 계속 취했지만, 받지 않더군. 아무리 자네와 내가 서로 합의한 사안이 서로 연관이 없다는 조항이 있다고 해도. 걱정은 되잖나?”
“아이고, 감격의 눈물이라도 흘려야 하나?”
일부러 비꼬았다.
뭔가 대단한 창작 능력을 보일 줄 알았더니…….
껍데기를 까고, 속을 들여다보니 정말 별 거 없었다.
최현민의 거짓말은 금세 티가 났다.
거짓말하는 사람들의 특징.
소위 말하는 타임라인이 맞지 않는다.
왜냐. 애초에 당장 처해진 상황을 모면하기만 하면 되니까 앞뒤 타임라인을 굳이 맞출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하려면 좀 제대로 하던가. 이렇게 초보적으로 하나?”
“거짓말이라니? 내 호의를 무시하는 건가? 아무리 서로 관여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다 해도. 그건 부서와 협회장의 일이지, 사람과 사람 사이인 인과관계에서는 예외지 않던가?”
“그렇게 내가 걱정되신 분이 강만식한테는 계~속 전화를 하시고. 나한텐 한 통도 없으셨고?”
“…….”
역시. 맹점을 찌르니 최현민은 다시 입술에 자물쇠를 걸어 잠갔다.
상식적으로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걱정이 되면 가해자 쪽이 아닌 피해자 쪽에게 연락을 취하는 게 먼저인데.
난 오늘 최현민에게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강만식이 10인분의 식사를 준비하라는 허무맹랑한 소리만 들었지.
“이로써 확실해진 거죠. 강만식이 우리 부서를 급습한 게 협회장 당신과 짜고 친 고스톱이라는 게.”
“난 정말 모르는 일이라니까! 자넨 그저 넘겨짚는 게 전부이지 않은가? 애초에 내가 자네 부서를 왜 급습하도록 방관하겠어? 알아서 초월석을 공급해주기로 약속까지 했는데.”
결국, 최현민은 제 뿔에 걸려 넘어졌다.
난 최현민의 입에서 ‘초월석 공급’이란 말이 나오자마자 그의 입을 검지로 가리켰다.
“그래요. 바로 그거.”
“……뭐?”
“초월석 공급.”
“그건 자네와 내가 약속한 일이잖아? 설마, 이제 와서 그것도 없던 얘기로 하자는 건가?”
“아니요. 내가 그런 양아치는 아니라서요.”
“그럼 뭐가 문제라는 건가?”
“그 조항 자체가 문제라고.”
여전히 최현민은 이해하지 못하는 눈초리다.
“이해하기 쉽게 알려줘요?”
“뭐를…….”
얼마나 말문이 막혔으면 최현민은 연신 ‘뭐’란 단어가 들어만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었다.
“초월석을 공급하기로는 했지. 근데요. 결정적인 게 빠지지 않았어요? 한 번 생각해 봐요. 뭐가 빠졌는지. 내가 초월석을 공급하기로 약속하면서, 같이 정해야 할 게 있는데, 그게 없거든.”
일부러 생각할 시간을 줬다.
최현민 본인이 스스로 만든 함정이 어떤 것이며, 자신이 현재 어떤 함정에 빠진 것인지 깨달으라는 뜻이었지만.
최현민은 끝내 알아차리지 못했다.
결국, 보다못해 알려줬다.
“수량을 안 정했잖아. 애초에 정할 필요가 없었던 거지? 왜? 이런 식으로 전부 갈취할 생각을 했으니까. 즉, 처음부터 나랑 합의를 볼 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 생각이었던 거지.”
“이번에도 넘겨짚는군.”
“그리고 그것도 이상해. 협회장과 부서는 서로 관여할 수 없다는 조항. 그것 역시, 이런 일을 대비하기 위해서였구나? 이미 나랑 합의할 때 여기까지 그림을 그려뒀던 거구나?”
그래, 이제 확실히 퍼즐들이 맞춰지는 것 같다.
신동원도 무슨 꿍꿍이인지 알 수 없다고 한 그 조항들.
전부 이런 일을 벌이기 위한 초석이었다.
“글쎄, 강만식 부장의 독단적인 행동이라니까!”
그래도 최현민은 부정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도 아는 거다.
현재 자신은 단두대 위에 올랐으며, 이것을 수긍하는 순간.
단두대가 급하강하면서 자신의 목이 몸과 분리될 것이란 것을.
“그게 지금 통할 거라고 생각하고 계속 거짓말하시는 거예요? 생각해 봐요. 강만식의 독단적인 행동이라고 칩시다. 강만식의 행동 목적은 게이트 속에 있는 초월석을 전부 갈취하기 위한 것. 그의 계획대로 내가 가진 게이트를 전부 정복하고, 초월석을 가졌다고 칩시다. 그다음은?”
“…….”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데? 초월석을 그렇게 많이 가져간 뒤에. 어디에다가 사용할 건데?”
“그거야 강만식 부장이 어딘가에 비싼 값을 주고 팔거나 하는 개인의 일탈 계획 아닌가?”
“팔아? 강만식이? 강만식이 나와 같은 조건을 걸고 부서를 만들었나?”
나처럼 일반 헌터들이 해외를 나갈 때 허가를 받아야만 나갈 수 있거나.
혹은 태원 서큐리티 경호팀 고용과 같은 계약을 독자적으로 할 수 있냐는 질문이었다.
최현민은 또 입을 닫았다.
헌터 중에서 그런 규제를 받지 않는 건 내가 가진 양산부가 유일하다.
즉, 강만식은 최현민의 오른팔 격인 관리부라고 해도 결국, 협회의 규제하에 움직일 수밖에 없는 처지.
모든 걸 최현민이 알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초월석을 애써 약탈해 봤자 사용할 수 있는 곳이 없다.
초월석 암시장도 사라진 이 시대에 어디에다가 가져가서 팔 수 있단 말인가?
지금 초월석이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곳은 각 국가의 정부다.
기존에 수급했던 초월석은 던전이 완전 정복되면서 전부 그 효능을 잃었고.
자원 뻥튀기는 자연스럽게 중단되어, 물가 폭등이라는 인류 생활에 직격탄을 주는 문제를 맞이하는 중이다.
따라서 거래가 가능한 초월석 매물이 존재한다면, 가장 발 벗고 나서서 매입 의사를 밝히는 곳은 정부밖에 없다.
결국, 강만식은 내게 초월석을 뺏어가도 정부를 상대로 팔아야 하며, 그걸 최현민이 모를 리가 없었다.
최현민은 강만식보다 힘이 약할지언정, 가진 권력은 비교도 할 수 없기에 법률이라는 권력으로 그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으니까.
“강만식이 아무리 멍청해도. 다 들킬 걸 알고 저지를 정도로 멍청하진 않아. 내가 본 강만식은 그렇거든.”
실제로 이지은을 감시하는 방법하며.
그 뒤엔 정다훈을 비밀리에 데리고 있던 방식까지.
그도 머리를 굴릴 땐 굴릴 줄 안다는 방증이다.
자, 그럼 여기에서 문제.
내 부서를 급습한 걸 들키지 않을 생각이 아예 없었다.
대놓고 전화를 해서 10인분의 식사를 준비하라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할 때부터 이미 강만식은 예견한 것이다.
어느 특수부대의 인질 구출과 같은 비밀 작전처럼, 은밀하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내게 들켜도 결과적으로 상관없게 만들면 된다는 일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지금 일이 흘러가는 상황이 너무 소위 말하는 아다리가 잘 맞다.
미국에서 몬스터가 등장하니까 갑자기 활동을 개시해?
왜 그럴까?
그때, 머릿속을 스치는 신동원의 한 마디가 있었다.
“미국에도 고객님 같은 능력자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죠.”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띄워졌다.
“그렇구나~ 그래서 그런 거구나~?”
“……뭐지?”
갑자기 보이는 내 미소에 불안감을 느끼는 최현민.
다시 한번 그 BGM이 깔리면 참 재밌는 상황일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진 초월석을 전부 빼앗은 뒤에, 그걸 세상에 공개할 생각이었구나? 그리고 국가들 상대로 경매라도 진행하려고 했고?”
“…….”
“자, 그럼 생각해 보자고. 왜 그런 생각을 한 건지. 아~ 혹시 그거 때문인가? 미국 네바다주에서 일어난 일. 협회장님도 봤구나? 미국에도 나 같은 능력자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 거구나?”
던전이 완전 정복된 이 시대에서.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능력자는 그야말로 구원자나 다름이 없다.
현재로서는 한국만이 유일하게 초월석을 보유한 국가.
다만, 내가 협회에게 넘겨준 게 없어서 초월석을 이용한 자원 뻥튀기 기술이 재개될 수 없었던 상황일 뿐이다.
이제 최현민의 생각을 알았다.
“나한테 선전포고를 한 이유가. 미국에도 나와 같은 능력자가 있을 거고, 세상에 나와 같은 능력자가 하나 더 있으면 초월석이 싸지니까?”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르면 당연한 현상이다.
수요는 넘치는데 공급량이 턱없이 부족하면 비싸지는 게 인류의 생활 방식.
그런데 그 공급량이 점차 충당되면?
당연히 초월석은 싸진다.
최현민은 그걸 노린 거였다.
“그럼 애초에 게이트의 존재를 세상에 알릴 생각이었다, 이렇게 해석할 수 있네?”
“무슨 소리지……?”
난 휴대폰 화면 ‘예’ 버튼에 가 있는 손가락에 힘을 주어 버튼을 눌러 버렸다.
[업로드 중…….]
“원하는 대로 해 드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