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화. 핵폭탄 (1)
권다정은 설명을 이었다.
“원래 협회장이란 건 투표로 선출되거든? 왜 의학 드라마 보면 병원장을 뽑을 때도 투표로 뽑잖아? 그거랑 비슷하지.”
“투표로 선출되면 기존의 길드장이나 이런 사람들이 후보로 올랐겠군요?”
이미 장길수가 그 후보였단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자국 헌터 전부를 관리해야 하는 협회장이란 중요한 위치에 오르려면, 길드장의 이력은 무엇보다 중요할 거다.
“그렇지. 하지만 최현민은 길드장 출신이 아니야. 헌터 랭크도 B급에 지나지 않았다고 하던데.”
“그런 사람이 협회장이 된 게 이상했다는 거지? 그래서 감찰부가 수상하게 여겼다?”
“단순히 그뿐만이 아니지. 당시 후보가 딱 한 명밖에 없었는데, 그 후보가 기권해 버렸거든.”
“그 후보. 잘 아는 사람이잖아요? 나한테 오기 전에 재워 버렸던 사람.”
“헤헤……. 그게 그렇게 되네. 그렇다고 악감정이 있어서 재운 건 아니야. 나도 최현민 협회장 별로 안 좋아해. 강만식이랑 잠시 함께하기로 한 것도…… 내 상황이 그랬을 뿐이고.”
권다정은 멋쩍게 웃으면서 얼버무렸다.
“그런데 길드장 출신도 아닌 최현민이 어떻게 후보가 될 수 있었던 거예요? 심지어 랭크도 고작 B밖에 되지 않는다면서.”
“최현민 협회장은 후보가 되기 전, 전 협회장인 이민우 협회장의 비서였어. 협회장의 비서직을 지냈으니, 협회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실무에 익숙한 사람이니, 잘 할 수 있다란 게 당시 최현민의 출사표였고.”
그건 그렇다고 넘어가자.
하지만 아무리 그런 일이 있다고 해도, 단순히 이 사실 하나만 가지고 감찰부의 감찰 표적이 된 것은 의아했다.
“흠……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세계 중앙 협회의 감찰부의 표적이 된 계기라고 보기엔 부족한데.”
“결국, 후보는 딱 한 명. 하나 마나 한 투표가 되었지. 결과는 당연히…….”
“그때 선출이 됐으니 지금 최현민이 협회장을 하고 있겠죠.”
“그런데 그 결과가 문제야. 그게 결정적으로 작용해서 감찰부의 감찰 대상이 된 거지.”
이미 후보는 하나밖에 없고, 투표는 하나 마나 한 상황이 되었는데도 결과가 문제일 이유가 있던 걸까?
의문만 가득해지고 있을 때, 권다정이 말했다.
“내가 알기로 당시 투표에 참여했던 사람은 총 32명. 그런데 결과는 찬성 고작 2표, 기권 30명이었거든. 투표 결과도 세계 중앙 협회에 공유해야 하니, 이 결과를 그대로 중앙 협회가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수상하게 본 거지.”
“…….”
기권은 무효표나 다름이 없다.
즉, 32명 중 최현민이 협회장이 되기를 찬성한 사람은 고작 2명.
정말 참담한 결과다.
“그럼 감찰부가 최현민이 협회장으로 오른 걸 수상하게 여긴 이유는…….”
“그렇게 지지율이 바닥인 후보가 이번이 처음이었거든. 세상에 32명 중에 고작 2명만 찬성할 줄은 누가 알았겠어?”
나도 마찬가지다.
설마 기권표가 30표나 나왔을 줄은…….
최현민은 후보 시절부터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은 못난 후보라고 볼 수 있었다.
“감찰부의 표적이 된 이유는 그렇다고 치고……. 한 가지 더 의문스러운 게 있는데, 혹시 그것도 알고 계시려나?”
“뭔데?”
“전 협회장 이민우 협회장님에겐 아드님이 있었고, 그게 성인군자라는 소문이 자자했던 이현수 길드장이라면서요? HS의.”
“맞어.”
“이현수 길드장이 후보로 나서진 않았어요? 길드장 출신에, 이미 평판도 좋았고. 게다가 협회장의 아들이면…….”
“그래, 그거.”
권다정은 나를 손가락질하며 답했다.
삿대질은 아닌, 방금 내가 한 말이 요점이라는 듯한 손짓이다.
“그게 문제야. 네가 생각해도 이현수 길드장이 후보로 나서면 무조건 당선은 확정이지?”
“그렇죠. 비록, 결과적이긴 하지만 최현민이 후보로 있을 때 32표 중 기권이 30표나 나왔으니까, 당연히 다른 후보였으면 달랐겠죠?”
기권표를 던진 30명은 결국 다른 후보가 협회장이 되길 원했다는 뜻과 같았다.
심지어 이현수 길드장은 형편이 어려운 어린 헌터를 위한 재단까지 따로 설립하면서 많은 헌터들의 존경도 얻었으니, 분명 이현수 길드장이 후보로 나왔다면 그가 협회장 확정일 것이었다.
“이현수 길드장도 후보로 출마하라고 이민우 협회장이 제안했지만, 거절했대.”
“아니, 왜요?”
“이유는 방금 네가 말한 거랑 비슷해. 이현수 길드장이 지금 이 시기에 후보로 나가면,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냉정히 평가하는 게 아닌, 아버지인 이민우 협회장의 그늘의 영향이 클 거라고. 최현민이 싫어서 자신을 찍는 사람이 많을 거라고 했대. 그런 요행으로 협회장이 되고 싶진 않다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단순히 그 이유로…… 후보가 되길 거절했다는 건 여전히 의아하다.
“상대 후보가 자신보다 능력이 한참 떨어지는 사람과 경쟁하는 건…… 마냥 운이라고 치부할 순 없었을 텐데?”
그건 이현수 길드장이 그만큼 잘했기 때문이다.
후보에게 절대평가란 건 없다.
늘 상대평가가 따르기 마련.
따라서 상대 후보가 최현민이 아니더라도, 이미 평판 좋은 이현수 길드장과 경쟁하는 순간, 그 누가 상대 후보로 나오더라도 무능력한 후보란 꼬리표는 피할 수 없게 되는 거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이 연달아 협회장을 하면 능력 있는 집안이라기보단, 오히려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더 많을 거라는 것도 크고.”
“……그게 주된 이유군요.”
하긴, 최현민과 같이 권력에 눈먼 자들이 많은데 부자가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해도 연달아 협회장 자리를 차지하면, 그들의 능력을 높게 사는 게 아닌, 불만의 목소리가 생겨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그런 이유로 이현수 길드장은 다음 협회장 선거 때 후보가 되기로 했고. 대신, 자신이 생각하기에 정말 협회장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을 후보로 추천하고 싶다고 했지. 청렴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그게 혹시……?”
권다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오기 전에 그녀가 재우고 온 사람.
장길수였다.
이것이 장길수가 후보가 된 배경이었다.
“그리고 감찰부에서 감시하는 게 우리가 뉴스에서 보는 압수수색처럼 이렇게 대놓고 하는 게 아니야.”
“그럼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감시하고, 정보를 계속 모은 뒤에. 나중에 펑.”
특히 권다정은 “펑”이라고 얘기할 때, 손가락을 오므렸다가 활짝 폈다.
화산이 분출되는 것만 같은 손짓이다.
“오호, 일종의 마일리지라는 건가?”
“마일리지?”
“감찰 대상의 부정부패를 발견하면 곧장 들이미는 게 아니라, 차곡차곡 모아서 터트린다. 상대가 대응도 할 수 없도록. 그걸 전문용어로 ‘빼박’이라고도 하지요.”
“빼박이라. 오~ 그래! 그게 딱 맞네!”
“그럼 꽤 오랜 기간 감찰부에서는 최현민을 감시하고 있었으니, 최현민의 부정부패 자료도 꽤 모았겠네요?”
“아마도… 그러지 않을까? 관리부라는 것 자체도 사실, 문제가 많고 게다가… 교도소에 수감 중인 죄수를 멋대로 석방시킨 것도 그렇고. 우리가 아는 것만 이 정도인데 감찰부는 더 알고 있지 않을까?”
그렇지. 훨씬 더 많을 거다.
다만, 그들이 차곡차곡 모은 핵폭탄과 같은 최현민의 부정부패를.
언제 터트릴지 모른다는 거다.
‘잠깐… 핵폭탄?’
그러고 보니…… 나한테도 핵폭탄 하나가 있잖아?
최현민은 안 그래도 감찰부에 찍혀 있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수 있는 핵폭탄을 터트리면, 과연 어떻게 될까?
모르긴 몰라도 최현민은 제 자리를 유지할 수 없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이미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많은 비리를 저질렀다.
무릇, 사람이란 악행도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저질러야 하는데, 권력의 늪에 빠진 최현민은 그 수준을 넘어 버린 것.
하지만 여전히 자신은 모를 거다.
그러니 내 부서를 대놓고 쳐들어와, 게이트 전부를 회수하려는 강수를 뒀으니까.
정말 뒤도 돌아보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조치를 취한 사람이다.
“오케이. 그 정도면 충분하군요. 요점은 이거죠? 최현민은 이미 감찰부에 예전부터 찍힌 상황이다. 감찰부가 언제 나설지 모른다.”
“그렇지. 그리고…… 듣기엔 한국 협회를 감시하는 감찰부가 한국인이란 소리가 있어. 아니, 한국계 미국인인가? 그래서 더더욱 한국 정서나 문화를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가진 정보가 많을 거라는 추측도 나돌아.”
“그래요? 한국 헌터 중에 중앙 협회 소속 헌터가 있었던가?”
“모르지. 한국 협회를 감시하는 사람이 한국인이라는 것도 소문이라서 확실한 것도 아니고.”
권다정도 자세히는 모르는 듯했다.
하긴, 명색이 비밀리에 움직여야 하는 감찰부인데 여기저기서 다 알고 있으면 그게 어디 비밀스러운 부서인가.
홍보부라고 봐도 무방하다.
어쨌든, 필요한 건 전부 얻었다.
지금 최현민은 어쩌면 단두대에 들어가기 직전이란 것을.
다만, 최현민 본인이 이걸 어디까지 알고 있느냐다.
“충분하네요. 그럼, 전 일 보러 갑니다.”
“최현민 협회장한테?”
“네. 마침 새로운 부원도 생겼으니 그것도 통보하면서…….”
“하면서?”
“따질 건 따져야죠. 감히 저 게이트를 건드리고 선전포고를 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어요.”
“오~ 이럴 땐 또 정의롭네?”
뭔가 의외라는 눈빛이었다.
“평소에 정의롭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막상 그렇게 들으니까 왜 기분이 나쁘지? 얼마나 무시했던 거야?”
“무시라니, 게이트를 만들고, 나한테 흙을 무제한으로 제공해주는 사람인데 삼시세끼 따뜻한 밥 차려서 먹여도 모자랄 사람이지!”
“그건 사양합니다.”
처음엔 비유적으로 데리고 산다라는 말을 한 줄 알았더니.
지금 보니 정말 진심으로 느껴졌다.
점점 부담스러워져 거리를 조금이나마 유지하기 위해 한 말이었다.
“왜?! 나 요리 잘해! 네 덕분에 이제 나는 돈방석에 앉는데! 이 누나가 그 정도도 못 해줄까?!”
“돈방석……? 왜요?”
너무 들뜬 모습이다.
내가 흙을 주는 거랑 돈방석에 앉는 것과는 연관이 없어 보였는데, 도대체 왜 저렇게 말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말했잖아? 나 같은 능력자는 해외에도 몇몇이 있다고. 걔들한테 이젠 내가 비싸게 팔아야지!”
“아…….”
“설마, 그것도 너한테 허락받고 팔아야 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잠시 고민했다.
권다정이 던전의 흙을 제한 없이 판다면.
분명히 구매자인 해외 헌터들도 슬슬 이상하다는 걸 느낄 거다.
‘던전이 모두 사라졌는데 흙이 왜 자꾸 나오지? 어디에 던전이 있나?’
이런 생각을 충분히 가질 거다.
하지만…….
이제 숨길 필요는 없을 거다.
강만식이 우리 부서에 쳐들어온 순간. 난 이미 내가 가진 게이트들을 전부 공개해 버리자고 마음 먹었으니까.
내가 가진 핵폭탄.
이걸 떨어트릴 생각인 건 지금도 변함이 없다.
“아니요. 마음대로 하세요. 그럼, 전 가봅니다.”
그렇게 난 정다혜를 찾아간 뒤 협회로 향하는 포털을 통과했다.
도착한 협회실.
뚱한 표정의 최현민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테이블에는 꽤 비싸 보이는 양주병의 뚜껑이 열린 채다.
“한잔하면서 얘기하지.”
“집어치워요.”
난 그와 마주 보며 앉았다.
내 휴대폰 화면이 그에게 잘 보이도록 올려놨다.
“당신 답변에 따라서 한국에 핵폭탄이 떨어질지 말지, 정해질 거야.”
“……그건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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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아니오]
내 휴대폰에 띄워진 화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