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91화 (91/200)

§ 91화. 새 사람 (4)

“으흥~ 너무 좋은데?! 이 시간에 이런 게 가능해?”

권다정과 함께 온 곳은 다름 아닌 내 기숙사다.

그런데도 저렇게 만족하며 들뜬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음식의 정체 때문이다.

자정이 다 된 시간에 양식이 먹고 싶다며 부르짖던 권다정.

이런 시간에 도대체 정상적인 식사가 가능한 레스토랑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래서 임기응변으로 SF 길드 직원으로 다니던 당시, 야근하던 때에 배달 음식 어플에서 양식을 배달하는 가게가 있었던 것을 떠올렸고.

알아보니 배달만 가능한 곳이었다.

하는 수없이, 정다혜를 다시 불러 포털을 열어달라고 했다. SF 길드 근처로 워프한 뒤, 배달을 시킨 후에 내가 직접 받아 다시 이곳으로 오는 귀찮은 방법을 택했다.

“시간 얼마 없습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꽤나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곧 최현민과 만나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일단 드시죠.”

윤기가 흐르는 비주얼의 크림 파스타를 한 포크 집어먹은 권다정의 표정이 변했다.

“흐음…… 역시, 배달은 별로 맛이 없구나. 레스토랑에서 먹는 게 최곤데. 내 입맛에는 안 맞네.”

내 입맛에는 별로 다를 게 없었지만, 아무래도 권다정은 입맛이 까탈스러워 보였다.

“아쉬운 대로 이걸로 만족하시죠. 지금 시간이 시간인데.”

“그래서 억지로나마 먹고 있잖아. 성의를 봐서.”

“아무튼, 대충 얘기 듣자 하니 원래 강민식의 부원이었다가 잘렸다면서요?”

“응, 그랬지?”

조금 민감한 주제일 수 있었겠지만, 권다정은 그런 내색 없이 흔쾌히 답했다.

“어쩌다가 이번에 합류하게 된 거죠?”

“뭘 어쩌긴? 강만식은 초월석 때문이고. 난 흙 때문이고.”

“그러니까…… 자신이 직접 자른 사람한테 다시 찾아갔다는 얘기로 들리는데?”

“아~ 그거? 복잡하면서도 간단해.”

그렇게 권다정은 자신의 사정을 전부 꺼냈다.

그녀의 말대로 이야기는 복잡하면서 간단했다.

능력의 발전과 유지를 위해선 던전의 흙이 필요했던 상황.

그러다 보니 세상이 던전 완전 정복이라는 인류의 평화를 맞이할 때, 오히려 권다정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 되었다.

해외에서도 소량이나마 남아 있는 던전의 흙을 비싼 돈을 주고 들여오는 등등, 그렇게 빚을 쌓아가면서까지 자신의 능력 개발에 힘쓴 것이었다.

그 결과, 빚은 이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었지만, 수면이나 기절 등등.

능력이 가진 효과가 발전된 결과를 맞이하게 됐다.

난 이 부분에서 이상한 걸 깨달았다.

“잠깐, 해외에서 왜 던전의 흙을 가지고 있어요?”

보통은 초월석.

해외에선 익시드 스톤이라고 말한다.

자원 뻥튀기 기술 때문에 오직 인류의 목적은 초월석이었는데, 한낱 쓰레기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는 흙을 채집한 누군가가 있다는 뜻이 되었던 거니까.

“아~ 국제 헌터 커뮤니티 뒤져 보니까. 나랑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더라고?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흙을 내가 사 오는 개념이었지.”

[하긴, 방출이란 능력이 하나만 존재하는 건 아니니까.]

그런 정황이면 이해가 되긴 한다.

워프의 경우에도 해당 능력을 가진 능력자가 많은 것처럼, 권다정의 방출도 그러했으니까.

“그래서 강만식이 빚도 갚아주고 흙도 주기로 했다, 이거군요?”

“응. 맞어. 그렇게 합류하게 됐지. 하지만 여기에서 내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되고, 백마 탄 왕자를 만나게 될 줄은 누가 알았겠어? 여러모로 오늘이 내 인생 최고의 날인 거 같아!”

“……잠자는 숲속의 공주? 본인이 공주라고 생각하시는 건가?”

“꽃을 다루는 나인데. 공주가 아니곤 뭐야 그럼?”

“백마 탄 왕자는…… 저 아니죠?”

“너 아니고 누가 있는데? 던전 완전 정복된 지금. 던전의 흙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 또 어디에 있는데?”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인 건 확실하다.

사실, 그런 논리라면 내가 백마 탄 왕자인 게 거짓은 아니다.

“뭐, 저 정도 얼굴이면 백마 탄 왕자 할 수 있지.”

“오호~”

농담 식으로 건넨 한 마디에 권다정이 포크를 내려놨다.

“요고, 요고. 보면 볼수록 매력 있네? 귀여워.”

“……그 말 듣고 싶어서 한 말은 아니지만. 뭐, 그건 그렇게 넘어가고. 혹시 정훈섭 씨에 대해서는 알아요?”

“그 아저씨? 몰라. 근데 관리부원이라기엔 너무 형편없어 보여서 나도 의아했는데.”

“포털 열어준 친구 봤죠? 정다혜라는 친구인데.”

“아~ 걔도 예쁘더라. 강만식이 너 의자왕이라고 하던데. 무슨 말인지 바로 알겠더라고. 애들이 하나 같이 다들 한 미모 하던데?”

“그게 중점이 아닌데……. 아무튼. 정훈섭 씨. 그 친구 아버집니다. 교도소에 있던 양반인데 어떻게 나왔는지, 강만식이 왜 데리고 있는지 등등. 그런 거 혹시 아는가 싶어서 그랬죠.”

권다정은 표정을 찡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미안, 그런 사정은 나도 잘 몰라. 별로 관심도 없었고.”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긴 했지만, 하난 확실하다.

솔직해도 너무 솔직한 사람이란 것.

꽤 무거운 주제인데도 관심 없다는 말을 가감 없이 하는 것을 보면 그랬다.

“이상하네. 헌터들이 가는 교도소는 분명 특별한 곳이라서 저렇게 쉽게 못 나올 텐데.”

“뻔하지. 강만식이랑 최현민 협회장이 짜고 친 거지. 나도 어떻게 데리고 나온 건지는 모르지만, 나올 방법은 그것밖에 없으니까.”

“나올 방법이 그것밖에 없어요?”

그래도 뭔가 간략하게는 알고 있는 듯했다.

정훈섭의 사정은 몰라도.

교도소에 관한 지식은 나보다 많을 테니까.

신보미나 정다혜나. 정식 헌터 신분을 지닌 적이 없기에 이런 정보는 잘 모른다.

반면 길드장도 지냈던 이지은이 알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권다정과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따라서 권다정에게 알아낼 게 있다면, 지금 전부 알아내는 게 정답이었다.

“아~ 맞다. 너 정식 헌터 된 지 얼마 안 됐다고 했지? 그럼 모를 수도 있지.”

“네, 교도소에 관해선 잘 몰라요.”

“교도소에서 석방되려면 협회장의 승인이 필요해. 그러니 정훈섭이 나온 걸 모를 수가 없지. 협회장이 직접 승인해야 하니까.”

“그래요?”

내 표정이 밝아졌다.

협박 카드.

드디어 하나 찾았다.

역시, 최현민은 시치미를 떼고 있지만, 그가 지금 깊게 연관되어 있는 확실한 증거를 잡은 순간이다.

“그들이 무슨 조건을 서로 약속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강만식이나 최현민이나, 정훈섭 그 아저씨가 당장 필요했으니 교도소에서 데리고 나왔겠지. 안 그래?”

“충분히 그러고도 남죠.”

“그런데 난 정훈섭 아저씨가 교도소에 있다가 나왔다는 걸 알았을 때, 정말 강만식이건 최현민 협회장이건. 갈 데까지 갔다는 생각이 들었지.”

“왜요?”

“교도소는 절대 석방이 없잖아? 역대 협회장 중에서도 그런 짓 한 사람 없는 걸로 알아. 이게 대대적으로 알려지면…… 파장이 클 거 같은데, 어떻게 수습하려고 저러나 싶었지.”

오호……?

이거 꽤 값진 정보로 보였다.

동시에 내 입맛도 다셔졌다.

권다정의 설명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교도소에 수감되면 면회도 안 되고, 철저하게 세상과 격리하게 된단 말야? 들어 보니까 정훈섭 씨는 교도소 안에 있을 때도 면회를 했다고 하던데?”

“……그래요?”

“응. ‘걔네’가 알면 어떻게 하려고 이런 짓들을 했는지 몰라.”

“걔네요?”

누굴 말하는 걸까?

분위기상 아주 중요한 집단으로 보였지만, 누구를 말하는 건지 난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최현민의 아킬레스건과 똑같이 느껴졌다.

“누군데요? 걔네라는 사람이. 게다가 협회장이 그런 짓을 했다는 걸 알면 큰일이 나는 것처럼 보이는데?”

“어디 큰일뿐이야? 폭동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지.”

이 정도면 아킬레스건 수준이 아니었다.

“누굽니까? 걔네라고 말하는 사람들.”

내가 집요하게 묻자, 권다정은 이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하지만 반응을 보니 내가 단순히 몰라서 난처한 게 아닌, 알려주는 것이 난처한 반응이었다.

곰곰이 생각을 마친 권다정은 어렵게 입을 뗐다.

“세계 중앙 협회가 있는 건 알지?”

“그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세계 중앙 협회 부서 중에 감찰부라는 게 있어. 전 세계 협회 대상으로 감찰하는 애들.”

“헌터계의 검찰…… 같은 건가 보네요?”

“맞아. 그게 정확해. 그런데 그 감찰부에서 예전부터 한국 협회를 주시했거든.”

감찰부.

단어가 가진 분위기만 보고 유추하자면, 잘못을 한 협회를 대상으로 감시를 하고, 무언가 벌을 내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왜 한국 협회가 감찰부의 대상이 된 거죠?”

“대표적으로 두 가지가 있어.”

권다정은 손가락을 V 자로 펴며 답했다.

“첫째, 최현민의 협회장 선출 과정이 불공정했다.”

“그걸 중앙 협회에서도 관여해요?”

“당연하지. 중앙 협회가 헌터 복지, 헌터관리법 등등을 개정하는 곳인데 당연히 관여하지. 단, 불공정하게 선출된 협회장에 대해서 무효 처리는 못 하더라도 껀덕지 하나 잡히면 바로! 끽!”

권다정은 손짓으로 자신의 목을 긋는 행동을 보였다.

그것은 중앙 협회에서 확실한 껀덕지가 잡히면, 한 국가의 협회장도 그 자리에서 협회장직을 내려놓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는 뜻이었다.

“최현민 협회장이 협회장으로 선출된 게 불공정했다라…….”

이와 비슷한 얘기는 이미 들은 적이 있다.

장길수도 본래 후보였으나, 최현민의 공작으로 인해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되었다고.

“심지어 최현민은 협회장이 되고 나서, 전 협회장을 구속시켰어. 그 협회장도 교도소에 있을 텐데?”

“……왜 구속시켰답니까?”

“그건 모르지. 표면적으로는 횡령, 폭행, 성희롱 등등. 갖다 붙일 수 있는 거 전부 붙였던데?”

내가 SF 길드 직원이 되었을 당시엔 이미 최현민의 시대였으니, 알 도리는 없었다.

누군가가 알려줄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그런 추잡한 범죄로 들어간 사람이라면.

그 이름을 말해선 안 되는 사람으로 보였다.

“아~ 이현수 길드장은 알아? HS길드.”

정말 간만에 듣는 이름이다.

이현수 길드장.

던전을 놔두기만 하면 안전할 거라고 말했다가 목숨을 잃은 그 사람이다.

“상당히 인자하셨던 분이라고는 들었죠. 직접 뵙지는 못했어도.”

“부전자전이거든. 자기 아버지를 닮아서 인자했지만…… 인생의 끝도 아버지처럼 좋지가 못했네…….”

정말 아쉬움이 짙게 묻어 나오는 말이었다.

그런데 부전자전?

우린 전 협회장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왜 갑자기 이현수가 나오며 부전자전이란 말이 나오는 건가?

“잠깐…… 설마?”

“응. 전 협회장이 이현수 길드장 아버지야. 그런데 이현수 길드장은 레이드 중 사고로 죽고, 그 아버지는 구속. 이러니 당연히 이상하지. 전부 최현민이 협회장일 때 일어난 일이니까.”

“그런데 불공정했다는 이유는 뭡니까? 어쨌든 그게 시발점이 되어 감찰부의 감찰 대상이 됐다는 뜻이잖아요?”

우웅. 우우우웅.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확인하니 약속한 시간이 다 되었고, 최현민에게 전화가 오는 중이었다.

“잠시만요.”

일단 전화를 받자.

-어딘가?

최현민은 무언가 준비를 마친 듯이 보였다.

아주 결연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난 알아야 할 게 아직 더 있다.

부족한 시간? 만들면 그만이다.

“30분 정도 더 미루지.”

그 말만 하고 끊어 버렸다.

“얘기 좀 계속해 봐요. 무슨 이유에서 불공정했던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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