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새 사람 (3)
두 남매는 바닥에 철퍼덕 엎어진 채로 잠을 자고 있는 정훈섭을 보고 있었다.
난 조용히 정다혜의 뒤로 다가가 물었다.
“다혜야, 혹시 저 사람이…….”
“네, 맞아요. 우리 아빠라는 사람.”
역시 예상한 대로다.
“그래…… 그런 것 같았어. 일단은. 처리할 일 처리하자.”
“처리요……? 어떤?”
“길 좀 열어줘. 협회 주차장이면 될 거 같아.”
“알겠어요.”
정다혜는 곧장 포털을 열었다.
내가 염력으로 자고 있는 관리부원 전원을 들고, 그대로 포털을 통과했을 때.
협회의 휑한 주차장이 나타났다.
시간이 이제 슬슬 자정을 향해 갈 때. 협회 건물 창문을 통해 확인하니 드문드문 불이 켜진 곳은 있었으나, 직원은 거의 없는 상태다.
난 그런 휑한 주차장에 잠든 관리부원들을 둥글게 모아놨다.
그리고 부서로 돌아가기 전.
강만식이 가지고 있는 4개의 초월석을 회수했다.
우웅. 우우우웅.
휴대폰이 울렸다.
확인하니, 신동원에게서 전화가 오는 중이었다.
“여보세요.”
-고객님, 미안합니다. 이제야 확인했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 있던 건 아니죠?
무슨 일이 있었다면, 그동안 연락이 되지 않아서 미안하단 감정이 그대로 녹아있는 목소리였다.
“네. 무슨 일이야 있었죠. 아주 긴박하게.”
-……미안합니다.
그렇다고 신동원을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일부러 내 연락을 외면한 것도 아니고,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던 것뿐이니까.
다만, 내가 초월석을 회수한 순간 전화가 오는 기가 막힌 타이밍이 조금 놀라웠다.
“나중에 차차 얘기합니다. 마침 줄 선물이 생겼네요.”
-나중에 언제……?
“일단 일이 전부 마무리된 건 아니라서요. 따로 연락드리죠.”
-네. 기분이…… 많이 언짢으신 것 같네요.
내 목소리에도 감정이 그대로 녹아든 모양이다.
-장길수 팀장이 전화를 안 받던데. 예삿일이 아닌 모양이군요.
그리고 이미 장길수에게도 연락을 취했지만, 묵묵부답이라서 더욱 불안한 모양이다.
“다행히 큰 건 아닙니다. 잘 해결됐습니다. 그럼, 나중에 따로 연락드리죠.”
-……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부서로 돌아갔다.
아직 일이 끝난 건 아니다.
부서로 돌아간 뒤.
“다혜야. 이번엔 지은이네 건물로 연결해 줘.”
“네.”
정다혜의 포털을 이용해 이지은의 건물로 가자, 장길수의 팀원 전원이 강만식과 관리부원처럼 쓰러져서 잠이 든 상태였다.
그들도 염력으로 그대로 들어 올리고, 부서로 돌아왔다.
부서로 돌아온 뒤에는 기숙사에 그들을 편하게 잘 수 있도록 조치했다.
난 다시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최현민에게 전화하는 중이다.
하지만.
-전화를 받을 수 없어…….
몇 번의 시도 끝에도 최현민은 절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직 잠들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이 정도면 애써 외면한다고 보는 게 옳았다.
“그렇게 나온다면야.”
최현민에게 문자 하나를 남겼다.
[협회 협회 주차장에 선물 하나 보내 놨어요. 확인한 뒤에는 연락하시고. 그게 뭔지 궁금할 테니까.]
이제 최현민의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저기, 도원아.”
처리할 일들이 일단락되었을 때, 이지은이 나를 찾아왔다.
“어, 왜?”
“대충 얘기 들어 보니까…… 다정 언니. 정말 부원으로 받아들인 거야? 게이트까지 하나 줬다며.”
“그렇게 됐네? 왜? 문제 있어?”
“아니…… 문제라기보단…….”
“그럼 불만이 있구나?”
이지은의 표정이 지금 그랬다.
게다가 권다정이랑 처음 인사를 할 때도 서로 경계하는 듯한 분위기까지 풍겼으니, 뭔가가 있는 모양이다.
“내가 별로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라서.”
“그러고 보니 서로 안면이 있던데? 어떻게 알게 됐어?”
“나랑 같이 강만식의 관리부에 있었으니까 알지. 내가 관리부원 전부는 몰랐어도 특정 몇 명은 알고 있었으니까.”
“아~ 그래?”
“그런데 강만식한테 잘린 사람인데 어쩌다가 다시 붙게 된 건지도 궁금하고. 그런 사람을 네가 흔쾌히 받아들였다는 것도…… 조금 납득이 안 되고.”
그렇구나.
권다정이 내게 말했던 ‘이번에는’이란 뜻이 이런 거구나?
본래 강만식의 관리부원이었는데, 어떤 이유로 인해 부서에서 잘리게 됐고, 이번에 다시 합류하게 됐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금세 파악할 수 있었다.
현재 권다정에게는 무력이 아닌, 던전의 꽃을 이용해 사람을 아주 손쉽게 제압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강만식의 관리부원이었을 땐, 그런 능력이 없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능력이 성장했다는 뜻.
그 사실을 안 강만식은 던전의 흙을 제공해주겠다는 조건으로 데리고 왔겠지.
강만식의 목표는 오직 나였으니까.
“앞으로 친하게 지내기엔 조금 그런가?”
“아니 뭐 나한테 몹쓸 짓을 하거나 그러진 않았는데…….”
“아무래도 강만식의 밑에 있던 사람이다 보니까 거부감이 드는 건가?”
“그런 것도 있고……. 결정적으로 그 언니는 너무 기회주의자라서. 그게 내내 걸리지.”
던전의 흙을 얻을 수만 있다면.
강만식을 바로 배신한 그 모습을 직접 봤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을까.
이지은이 저러는 것도 이해가 된다.
“일단은 나한테 필요한 사람 같아서 그랬어.”
“뭐…… 네 생각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관리 잘해볼 테니까.”
“……알았어. 근데 내가 그 언니랑 친하게 지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왠지 모르게 정이 안 가네.”
“안 내키면 굳이 안 그래도 돼. 강요하는 거 아니니까.”
“…….”
이지은은 고개만 조용히 끄덕였다.
“할 얘기는 끝?”
“그거 말고 또 하나 있는데…….”
우웅. 우우우웅.
그때 다시 휴대폰이 울렸다.
“잠깐만.”
발신자를 확인하니, 최현민에게서 오는 중이었다.
내가 몇 번이고 전화했을 땐 한 번도 받질 않더니, 문자 하나 남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전화고 오고 있었다.
“이따 다시 얘기하자. 협회장한테 전화 오는 중이다. 일단 다혜 좀 불러줘.”
“알았어.”
이지은이 정다혜를 부르러 갔을 때, 그의 전화를 받았다.
“확인했습니까?”
-이게 뭔가……? 선물은 무슨 선물?
“아 잘 본 모양이네. 그런데 하나만 물읍시다.”
-뭘…… 말이지?
“어쩌자고 이런 일을 벌인 거예요?”
-그러니까 뭘?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짓. 왜 한 거냐고.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한 건가?”
-허허…… 무슨 소리인지.
끝까지 발뺌을 하시겠다라?
좋다, 나도 이럴 때를 대비해 보험은 잔뜩 들어놨으니까.
“얼굴 보고 얘기합시다. 협회로 나오시죠? 나도 그리로 갈 테니까.”
-…….
“왜 답이 없지? 혹시 뭐 켕기는 거 있습니까?”
일부러 그의 신경을 건드렸다.
당신이 그렇게 무고한 것처럼 말한다면, 안 나올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피하려고 한다면 내게 확신만 심어 주는 행동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협박을 남기기 위함이었다.
-……1시간 뒤에 보자고.
최현민은 결국 내 제안을 수락했다.
“좋습니다.”
내가 전화를 끊자마자 정다혜가 찾아왔다.
“저 부르셨다고.”
“아, 바로 포털이 필요할 줄 알았는데 1시간 뒤로 정해졌다. 그때 협회로 가는 포털만 열어줘.”
“알겠어요. 그런데…… 지은 언니한테 혹시 들으셨나요?”
그러고 보니, 최현민에게 전화가 오기 직전.
내게 할 말이 하나 더 있다고 했었다.
아무래도 정다혜와 관련된 무언가로 보였다.
“아니, 아직 못 들었는데?”
“다른 게 아니라…… 저희 아빠랑 혹시……?”
싸웠냐고 묻고 싶은 모양이다.
게다가 교도소에 있을 사람이 강만식과 함께 왔으니, 싸웠냐는 건 단지 서로 의가 상하는 일이 아닌, 헌터들의 전투를 벌였냐는 질문과 같았다.
“응. 네 아버지 능력이 공간 창조더라.”
“……죄송해요.”
그런데 정다혜는 넙죽 고개를 숙이며 내게 사과했다.
“네가 왜 사과해?”
“우리 아빠란 인간이 우리의 은인한테 손을 댔으니까 당연히…… 죄송스럽죠. 아무리 내가 싫어한다고 해도, 남이 아니니까.”
“괜찮아. 너희 아버지도 뭔가 사정이 있었겠지. 그러니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사정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너무 신경 쓰지 마.”
“어떻게 신경 안 써요…….”
“정 궁금하면 한 번 알아볼까? 어떻게 강만식이랑 함께 했는지? 너도 알면 좋지 않아?”
“아니요. 더는 엮이게 하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
글쎄, 그게 과연 될까.
내가 한국에 있는 한, 강만식과 최현민은 계속 엮이게 될 것이며.
그 밑에 있는 정훈섭과도 꾸준한 마찰이 있을 것 같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일단 1시간 뒤에 보자. 그리고 정말 나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 막말로 네가 강만식한테 붙으라고 시킨 것도 아니잖아?”
“무슨 그런 소릴!”
“그러니까 된 거라고. 이따 봐. 쉬고 있어.”
“……네.”
그렇게 억지로 정다혜를 돌려보냈다.
***
게이트가 밀집되어 있는 장소로 왔을 때, 권다정은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중이었다.
“……뭐 하세요?”
“아! 오셨습니까, 부장님.”
이젠 나를 정말 정식으로 부장 대우를 한다.
“아직 최현민 협회장한테 통보 못 했는데? 그러니까 내 부원 아니에요. 아직은.”
“아직은, 이지. 이제 곧 될 거 아닌가, 어차피? 그러니까 부장님이라고 불러도 되죠? 아, 보니까 다른 애들은 오빠라고 막 부르던데. 혹시 권위적인 분위기가 싫으면…… 그냥 난 도원아라고 불러도 되나? 어차피 나이도 내가 더 많은데.”
“그건 편하실 대로 하시고. 사람이 넉살이 좋은 건지, 낙천적인지 모르겠네요?”
“아~ 그래? 너 편할 대로 생각해!”
“…….”
할 말이 없어졌다.
“그나저나 뭐 하고 있던 거예요?”
권다정은 동산의 모습을 담은 그 게이트 앞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하던 중이었다.
게이트 틀에는 하얀 A4 용지가 보였다.
용지엔 ‘권다정’이란 이름 세 글자만 적혀 있었다.
“……뭐야? 장난으로 한 말이었는데.”
팻말이라도 붙여 놓으란 말을 이런 식으로 대신한 듯 보였다.
“우리 꽃돌이 부장 명령인데, 부원이면 바로 따라야지.”
“명령이 아니라 제안이었죠.”
“그게 그거지! 한국인 정서 몰라? 까라면 깐다. 아랫사람한테 선택권이 어딨어. 윗사람이 시키면 그대로 하는 거지.”
“그러니까 시킨 거 아니라니까…….”
“아무튼, 일단 이렇게 임시방편으로 내 게이트란 걸 표시해 놓고, 나중에 여유 되면 예쁘게 꾸미려고.”
“……그래도 식물을 좋아하시니, 예쁘게 꾸미시는 거 좋아하시나 봐요?”
“그러니까 꽃집 하지!”
“꽃집……?”
“아 몰랐어? 나 꽃집 해. 왜? 꽃돌이 부장 자리에 놓을 꽃꽂이라도 해서 줄까?”
“……됐어요. 인간계의 꽃이 아닐 거 같네요.”
강만식과 관리부원들을 재웠던 그 화분을 쳐다봤다.
그런데.
“……응? 뭐야, 꽃이 왜 저래요?”
수면 가루를 뿜던 꽃은 갈색빛으로 바싹 말라서 죽어 있었다.
심지어 화분에 있던 흙은 시멘트 가루처럼, 회색빛으로 변해 있었다.
“내가 만든 꽃은 저게 단점이야. 한 번 사용하면 저렇게 말라 죽어 버려.”
“일회용…… 능력이란 건가?”
“아니, 다시 살릴 순 있지. 그때 던전의 흙을 쓰는 거야. 저 시멘트처럼 변한 흙은 버리고, 던전에서 공수한 흙으로 바꿔주면 몇 시간 내로 흙이 다시 살아나.”
참 신기한 능력이었다.
하지만 관리가 힘든 건 확실하다.
“그렇군요.”
“근데 나 배고픈데, 같이 밥이라도 안 먹을래? 마침 할 얘기도 있을 것 같은데. 강만식에 대한 거나.”
잠시 생각했다.
어차피 최현민과 만날 시간은 아직 조금 남은 상태.
게다가 권다정은 본래 관리부에서 잘렸다가, 다시 복귀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다.
자연스럽게 알아내도 나쁠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정훈섭 건도 있다. 혹시 아는 게 있을 수 있으니, 미리 최현민을 협박할 카드 하나 더 추가하는 것도 괜찮다.
“그러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