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새 사람 (2)
털썩!
털썩!
강만식을 시작으로 관리부원은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어떠한 반격도 하지 않았다.
관리부원들이 건전지로 움직이는 인형이라면, 건전지를 빼 버린 것처럼 정말 한 순간에 모든 행동이 중단됐다.
“콜록, 콜록!”
하지만 영향은 내게도 있었다.
권다정의 화분이 방출하는 자욱한 안개와 같은 꽃가루에 눈과 코가 따가운 단점이 존재했다.
“흐흐, 미안. 이 누나가 까 놓고 얘기하면 그렇게 랭크가 높지 않아서 조절이 쉽지 않아.”
기침을 하는 내게 권다정이 말했다.
“뭐, 못 버틸 정도는 아니니까 괜찮아요. 그런데 랭크가 높지 않다니요? 관리부원이라면 무조건 S급일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닐 때가 있지?”
“그래서 정확한 랭크가 어떻게 되는데요?”
“A급.”
난 고개를 갸우뚱했다.
A급이 높지 않은 랭크라고 말할 수 있는 건가? 라는 의문을 품은 행동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말이지.”
덧붙인 권다정의 말.
그렇다는 뜻은, B급 정도 되었는데 자신이 생각하기엔 이제 A급 수준은 되는 거라고 믿는 모양이다.
“강만식이라면 무조건 강한 부원만 선별할 줄 알았는데.”
“능력의 조합이란 것도 있으니까. 그거 때문에 나를 불렀겠지.”
이해된다.
강만식이 정다훈에게 그렇게 집착한 것과 같은 맥락일 거다.
“자, 그럼 꽃돌아?”
“……네.”
적응 안 되는 호칭이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권다정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청하는 건 절대 아닌, 어서 무언가를 내놓으라는 듯이 손바닥을 내밀어 보였다.
“이 누나랑 약속한 거. 줘야지?”
“…….”
지금 당장 처리하고 싶은 일이 있어, 그걸 처리한 뒤에 줘도 되겠냐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이미 약속한 일이지 않던가?
그런 이유로 미루면 어떻게 될지 권다정의 행동이 뻔히 보였다.
이 자리에서 강만식을 배신할 정도로 흙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인 사람.
그런데 내가 또 조건을 바꿔 버리면, 권다정의 화분이 내뱉는 꽃가루는 이제 나를 향할 거다.
‘드래곤. 비늘의 가호로는 저 꽃가루 못 막겠지……? 흑염룡한테 듣기엔 네가 숙면을 취할 때 사용했던 꽃이라던데.’
[오호, 그 꽃을 다루는 인간이 있던 건가? 당연하다.]
참…… 좋지 않은 소식을 해맑게도 답한다.
동시에 깊은 실망감도 느꼈다.
‘뭐야, 가호란 거 처음엔 절대적인 힘이 있는 것처럼 말하더니. 저런 꽃가루 하나 못 막아?’
[비늘의 가호는 철저하게 물리적인 타격만 막아준다. 정신의 가호까지 있으면 모르겠다만, 비늘의 가호만 가지고 있는 지금 상태에서는 막지 못하는 게 당연하지.]
오호라, 그래?
드래곤이 가진 네 가지의 가호 중, 마지막 가호 정신.
그것만 있으면 저런 것에도 영향받지 않는다 이거지?
점진적으로 정신의 가호까지 얻기 위한 날을 기대했다.
이제 권다정에게 집중했다.
“그럼요. 약속은 지켜야죠.”
어차피 오래 걸릴 일도 아니다. 권다정에게 게이트를 하나 통째로 주기로 한 일.
조건은 흙이 있는 게이트를 주면 된다.
‘흑염룡. 이 일은 동의하지?’
[……응. 어차피 많으니까. 그래도 내키지 않은 건 사실이야.]
일말의 불만을 표하면서도 내 의견을 따라줬다.
‘덤으로. 권다정이란 저 사람이 함께 들어가도 몬스터가 공격하지 않게 만들 수 있지?’
[그건 너랑 함께 있어야 할 텐데. 어쨌든 던전을 집으로 생각하는 몬스터들도 있는데. 흙을 채집한다고 하면, 당연히 화가 나는 몬스터도 있겠지.]
‘귀찮게 되겠네.’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난 권다정을 데리고 게이트 앞에 섰다.
“흙이 있는 던전이면 되죠?”
“물론이지!”
원하는 만큼의 흙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나보다 나이가 많은 여자가 어린이처럼 들뜬 모습이다.
“가 봅시다.”
그렇게 난 권다정을 데리고 게이트 하나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비늘의 가호는 완전히 끝이 나고, 정상적인 피부로 돌아왔다.
게이트에서 나왔을 때.
던전의 배경은 신전이었다.
나와 흑염룡이 처음 들어갔던 던전과 같은 그런 신전이다.
“……꽝이군요. 얼른 나갑시다.”
“쳇.”
그리고 두 번째 던전에서.
“오오오오!! 좋아! 아주 좋아!”
들어오자마자 폴짝폴짝 뛰며 좋아하는 모습이다.
두 번째 걸린 던전의 모습은 동산이었다.
초록빛의 작은 산과 언덕이 광활하게 깔린 곳이다.
“이거면 됐죠?”
“나 진짜 눈물 날 거 같아. 세상에…… 이거 진짜 나한테 주는 거 맞지?”
얼마나 감격을 받았으면 저런 모습일까.
실제로 눈가에 눈물이 조금 고인 것 같았다.
“약속은 지킨다고 했잖아요? 누구와 달리.”
“으음…… 나를 저격하는 소리인가?”
강만식을 아주 쉽게 배신한 그 일이 그래도 찔렸던 모양이다.
“그런 의도는 없었습니다. 왜요, 나중에 저도 배신하시려고?”
“너 배신하면 난 믿을 구석이 없어지는데?”
“모르죠. 그때 또 강만식한테 붙을지.”
“음…… 그때 되면 난 완전 노예가 될걸. 이번과 달리 정말 그렇게 되면 내가 그 인간이 필요해서 먼저 접근한 게 되니까.”
무슨 말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그런 사정이 있는 듯이 보였다.
그런데 ‘이번과 달리’?
그렇다는 뜻은 강만식이 먼저 필요에 의해 찾아갔다는 게 되는데…….
역시 둘의 사정은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권다정이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이어서 말했다.
“그러니까 너도 내가 언제든 배신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거 아냐?”
“당연하죠? 본 게 있는데?”
숨김없이 답했다.
굳이 숨겨야 할 이유도 없으며, 나도 고작 이번 한 번 도와준 것 가지고 그녀를 전부를 믿는 건 아니다.
게이트를 하나를 준 건, 어차피 다른 게이트가 많기 때문.
결정적으로 게이트 속에 있는 초월석만 온전하면 된다.
권다정의 능력을 보아하니, 혼자서 초월석을 가지고 나올 수 없는 상태라고 생각했기에 넙죽 줬을 뿐이다.
“그럼 나도 부원으로 받아주는 건 어때? 그게 확실히 하고 좋은 거 아냐?”
“부원이 됐다고 배신을 안 한다는 보장은…… 뭐 어떻게 하지요? 그리고 강만식과 함께 왔을 때도 어쨌든 강만식의 부원 아니었어요?”
“어…… 맞긴 한데. 정식 부원은 아니고 그냥 잠깐 용병 같은 개념이었지?”
“제게 제시한 부원의 개념은 정식 부원으로 임명해 달라, 그럼 절대 배신 안 하겠다. 뭐 이런 건가?”
“그렇지!”
단순히 정식 부원으로 임명한다고 배신을 안 할 리가…… 있나?
언제든 배신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움직이는 게 편했다.
“으음.”
“정 못 믿겠으면 누나랑 혼인신고 할래? 그럼 하고 싶어도 못 하잖아?!”
정말 신박한 사고방식 속에서 사는 사람이었다.
어떤 개념을 가지고 있으면 그런 결론으로 도출되는지 정말 신기했다.
“그 혹시, 죄송한데. 나이가 몇 살이에요?”
“나? 서른다섯. 왜? 더 어려 보이지?”
“……아, 예.”
[혼인신고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게 떠올랐어…….]
흑염룡은 제 머리카락을 쥐어뜯듯 부여잡곤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 있었다.
아~ 그랬지.
그러고 보니…… 나도 흑염룡한테 비슷한 소리를 했었지?
잠시 잊고 있었던 과거의 일화가 나도 떠올랐다.
“푸흡!”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뭐야? 갑자기 왜 웃어? 비웃는 거야?”
“아뇨, 아니에요. 좋아요. 정식 부원. 최현민 협회장한테 통보할 테니까 그렇게 하시죠. 어차피 이 게이트 이용하려면 우리 부서에 있어야 하니까요.”
“정말?! 나 받아주는 거야?!”
[야, 아무리 그래도 너무 성급한 결정 아니야?]
아니다.
생각해 보니까, 권다정. 부원으로 받아도 괜찮다.
현재 내 부원은 총 네 명.
이지은, 신보미, 정다혜, 정다훈.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이었던가?
전투 능력이 하나 없는 사람들이다.
지금처럼 강만식이 부서로 직접 쳐들어왔을 때, 피신해야 하는 사람들만 있었지만.
그러나 그중에 권다정이 끼어 있다면?
적어도 부서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하나 더 생긴 것이다.
게다가 권다정은 목숨과도 같이 여기는 던전의 흙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부서도 함께 지킬 터였다.
이런 이유들을 흑염룡에게 설명했다.
‘그러니까. 성급한 거 아니야.’
[그래도 배신을 저렇게 잘하는 사람인데…….]
‘뭐, 어차피 날 배신해도 남는 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니까. 난 잃을 게 없고, 반면에 저 사람은 잃을 게 많거든.’
[아무리 그래도 쟤 마음에 안 들어. 이상한 헛소리를 너무 잘해.]
‘응, 부원으로 들이려는 건 그런 이유도 포함이야. 그래야 게이트 만들기 쉬울 거 같아서.’
[……교활한 놈.]
어쨌든. 이건 이렇게 정해졌다.
“그럼 앞으로 흙 채집하게 될 때, 저랑 함께 들어와야 합니다. 게이트 앞에 팻말이라도 붙여요. 약속한 것처럼, 내가 준 거니까.”
“지금 당장 하면 안 되나?”
“네. 안 돼요. 그리고 이미 여기로 오기 전 들렸던 건물 털면서 흙 채집하지 않았어요? 거기에서도 꽤 얻었을 것 같은데.”
“……눈치가 빠르네. 참, 그거 지은이가 가진 건물이라며.”
“지은이랑…… 친해요?”
“친하진 않고 서로 얼굴이랑 이름 정도는 알지? 그래도 한때 같은 관리부원이었는데.”
“아, 그렇구나.”
이지은과 안면이 있는 사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서로 좋게 생각하는 안면일지, 무엇일지 모르지만.
지금은 중요한 게 아니니까.
“나가죠. 처리할 일이 있으니까.”
“대신 일 처리되면 바로 채집 시작하기다?”
“그때 가서 얘기하죠.”
***
게이트에서 나온 뒤.
뺏던 팔찌를 다시 착용했다.
‘보미야.’
‘어떻게 된 일이에요! 괜찮아요?!’
‘음…… 여긴 대충 끝났어. 거긴 어때? 장길수 아저씨 말이야.’
‘아직도 안 일어나요. 꿈쩍도 안 해요. 정말 숨을 쉬는 채로 죽은 것 같다니까요?’
숨을 쉬는 채로 죽었다는 게 표현이 이상하긴 했지만.
어떤 의미인지는 알 것 같았다.
분명히 숨 쉬며 자고 있는데 아무리 깨우려 해도 안 일어나니, 정말 죽은 것처럼 보였을 거다.
‘일단은…… 이쪽으로 넘어와.’
‘넵!’
그렇게 잠시 피신했던 내 부원들 전부가 돌아왔다.
어느덧 권다정의 꽃은 꽃가루 방출을 멈췄다.
장길수가 여태 잠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수면 상태를 유지하려면 화분의 꽃이 지속적으로 꽃가루를 방출하는 게 아닌, 정해진 일정 시간 동안만 꽃가루를 마시게 하면 되는 것으로 보였다.
역시나 화분의 꽃은 본래 시오스들의 것이었기 때문에 아주 잠깐 노출된 것만으로도 지금 강만식과 그의 휘하 관리부원들은 세상 모르게 자고 있었다.
부원들이 전부 돌아왔을 때.
“……다정 언니?”
이지은은 권다정을 곧장 알아봤고.
“어머, 얘! 지은이야?! 얼굴이 왜 이렇게 달라졌어?!”
권다정은 유난히 호들갑을 떨며 이지은을 맞이했다.
저게 소위 말하는 ‘여자어’라는 건가? 별로 반가워 보이지 않는데 반갑게 맞이하는 게 딱 그랬으니까.
“제 얼굴이 어디가 달라졌는데요?”
이지은도 나와 비슷한 생각인 것 같았다. 권다정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예전보다 훨씬 예뻐졌는데? 밝아진 거 같기도 하고.”
“아, 네. 밝아진 건 사실이고. 예뻐진 건…….”
“아니야?”
“아니요, 원래 예뻤어요.”
[왜 쟤도 너를 닮아가냐?]
흑염룡은 그런 이지은이 불만스러웠다.
“누나…… 저 사람…….”
“다훈아. 보지 마. 눈길도 주지 마!”
그러던 중, 정다훈과 정다혜의 목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