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화. 새 사람 (1)
섬광이 터진 뒤에.
체험하면서 느꼈던 것처럼, 내 피부는 드래곤의 피부와 같이 단단한 비늘로 변했다.
“뭐야……? 능력이 또 있어……? 도대체 몇 개를 가진 거야!”
강만식의 한 마디.
“그래봤자지.”
하지만 이미 그는 승기를 다 잡았다고 여긴 모양이다.
그대로 추출한 내 복제한 영혼.
영혼은 이전에 봤던 것처럼, 나와 똑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정훈섭 씨!”
“……옙!”
역시나 공간 창조를 사용하는 정훈섭과 미리 합을 맞춘 게 확실하다.
복제한 영혼을 추출한 뒤, 강만식은 곧장 그를 불렀고 정훈섭은 자신의 능력인 공간 창조를 다르게 적용했다.
이미 권다정을 가두는 용도로 사용했으면서, 안에 있던 권다정은 내보내고, 나를 가둔 것이다.
이 현상을 겪으며 하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정훈섭의 공간 창조는 동시에 여러 개를 만들 수 없다는 것.
이미 공간 창조란 능력은 내가 겪어봤다.
최초로 마주친 크루즈, 더스티가 있던 던전에서.
그때 던전에 억지로 들어가게 된 정다훈은 제 몸을 보호하기 위해 공간 창조 능력을 사용했고, 그곳에서 더스티가 내는 강풍에 끌려가지 않으며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정다훈은 나와 자신이 만든 장소에 함께 있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나 혼자네?”
배경은 사무실이 아닌, 어느 미로로 바뀌었으며, 미로의 길도 실시간으로 바뀌는 중이다.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출구를 숨기려는 것처럼, 미로가 지속적으로 바뀌고 있었다.
“흑염룡. 이 공간 창조. 그렇게 대단해 보이진 않지?”
[응, 초보적이야. 너무 단순해.]
흑염룡까지 이런 반응이면 난 확실히 알 수 있다.
정훈섭의 능력은 관리부원이라는 대단한 직위를 가지기엔 상당히 부족하단 점을.
그런 그를 애써 관리부원으로 임명한 이유도 역시, 강만식의 능력 때문이다.
“흑염룡, 보통 헌터의 능력은 유전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잖아?”
[……그랬지?]
“그럼 정훈섭의 정체도…… 누군지 알 것 같지 않아?”
[정다혜와 정다훈의…….]
“너도 나랑 생각이 같구나.”
나이대, 능력, 이름.
삼박자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기에 어려운 추측도 아니었다.
하지만 정다혜에게 듣기엔, 분명 교도소에 있다고 들었다.
헌터들이 가는 교도소는 어떤 곳인지 정확히는 몰라도 존재는 안다.
석방이 없는 곳. 영원히 사회와 격리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나왔을까?
뭐, 이것도 어렵지 않을 거다.
최현민과 강만식이 무슨 수를 썼겠지.
투웅. 투웅.
추측하던 중, 용의 비늘로 변한 내 몸에서 간지러운 촉감이 났다.
“저쪽은 이미 시작했나보구나?”
정훈섭이 만든 공간 창조 밖에는 강만식이 추출한 내 영혼의 복제품이 있을 것.
그 복제품을 향해서 총공격을 가하는 중으로 보였다.
하지만 비늘의 가호 덕분에 난 아무런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가려울 뿐이다.
“드래곤.”
[뭐지?]
“일단은…… 고맙다. 부탁 들어줘서.”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서 그랬을 뿐이다. 단, 약속은 지켜라. 가호를 내가 너에게 줬다고 해서 끝이 아니야.]
“협박으로 들리네? 그리고 끝이 아니란 건……. 네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 회수할 수 있다, 이렇게 들리는데?”
[잘 알아들었다.]
“걱정 마. 그럴 일은 없을 거니까.”
난 약속은 확실하게 지키는 사람이다.
“그나저나, 이 가호를 설명할 땐 분명히 지속시간이 짧다고 했는데, 얼마나 되는 거지?”
[고작해야 5분 정도일 거다.]
“5분?”
하지만 별로 짧게 느껴지지 않았다. 5분이라는 시간이 ‘고작해야’라고 말할 정도로 허무맹랑하게 짧은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꽤 긴데?”
[짧은 거다. 크루즈와의 전투에선 더더욱. 5분 안에 크루즈 전부를 처리할 수 있나?]
더스티 때를 생각해 봤다.
확실히…… 크루즈의 최약체인 더스티를 상대할 때도 5분은 훌쩍 넘겼으니, 짧은 시간은 맞다.
그러나 상대가 크루즈일 때만 해당되는 것.
상대가 인간이라면 5분이란 시간은 충분하다.
“그럼 5분 안에 나가면 그만인가?”
퉁. 퉁.
투두둥!
여전히 비늘에서는 타격감이 느껴진다.
밖에선 아주 열심히 강만식이 만든 복제품을 두들기고 있는 모양이다.
출구만 찾아서 나가면 된다.
하지만 난 헛웃음이 나고 말았다.
출구의 위치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상한데……?”
바로 강만식의 능력 때문이다.
그가 가진 추출과 복제를 내게 사용하는 과정에서.
그가 만든 복제품은 회색의 형태를 띤다.
그러나 결정적인 결점이 있었으니. 바로 회색의 줄기가 내 몸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렇다.
내 몸과 연결된 회색의 줄기는 저 멀리까지 뻗어간 상태.
밖에 있는 복제품과 연결되어 있는 줄기가 뻗어갔다는 뜻은 무엇인가?
이 줄기만 따라가면 출구가 나온다는 뜻이다.
“너무 어설프잖아? 강만식답지 않게.”
혹시 또 함정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아마 이건 강만식도 모르는 치명적인 단점으로 보였다.
애초에 공간 창조 능력의 주인인 정훈섭은 미리 약속된 상황이 나와야만 그대로 행동한다는 것.
상황이 변하는 것에 따라 유동적으로 대응하는 능력이 아예 없었다.
게다가 공간 창조 능력도 상당히 불안하다.
처음엔 권다정을 가두더니, 이제 날 가둘 차례엔 오히려 가뒀던 권다정은 내보내고 나를 그 안에 넣은 것만 봐도 그의 능력이 위력적인 수준이 아니란 뜻이었다.
난 줄기를 따라 뛰었다.
비늘의 가호가 없었다면 벌써 그로기 상태가 되어 쓰러졌겠지만, 고통을 느끼지 않으니 줄기가 졸지에 출구로 인도하는 이정표가 되어 버린 순간이다.
한창 줄기를 따라가던 중이었다.
“이런 거구나?”
출구에 가까워지자, 갑자기 미로의 형태가 또 바뀐 것.
하지만 내게는 큰 위력도 아니다.
미로의 형태, 심지어 출구의 위치도 실시간으로 바꾸는 것 같은데, 어차피 난 줄기만 따라가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출구 앞에 당도했을 때다.
“드래곤, 가호의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약 2분 정도.]
아무리 형편없는 미로라고 해도, 출구의 위치나 형태가 계속 바뀌어 여기까지 오는 데 대략 3분의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이제 2분.
2분 안에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
그렇게 출구로 바로 나갔다.
***
“……뭐야, 어떻게 된 일이야?”
내가 정훈섭의 공간 창조에서 나오자, 강만식과 휘하의 관리부원들은 눈은 동그랗게 뜨고 놀란 모습이다.
일단 첫째.
내가 너무 빨리 나온 것이 믿을 수 없었을 거다.
그리고 두 번째.
그렇게 열심히 복제품을 향해 총공격을 가했는데도, 어디 하나 다친 곳 없이 말끔한 내 상태도 놀랍겠지.
“정훈섭 씨! 뭐해! 다시 가둬!”
그래도 현재로선 정훈섭의 능력은 성가신 게 맞다.
3분 안에 나올 수 있다고 해도, 내게 남은 가호의 지속시간은 이제 고작 2분.
다시 나왔을 땐, 유리한 상황을 잃고 난 쓰러지게 될 것이다.
정훈섭이 다시 나를 가두기 전.
난 그를 향해 염력을 사용했다.
이번에 사용한 방식은 묶어두는 게 아닌, 허공에 몸을 띄운 본연의 방식이다.
“아저씨는 자고 있으세요.”
그리고 마구잡이로 흔들었다.
퍽! 퍽!
“끄억……! 꺽!”
정훈섭의 몸은 천장과 바닥을 왔다 갔다 하며, 이리저리 부딪혔다.
마치 거인 한 명이 그의 몸체를 잡고 천장과 바닥을 번갈아 가며 패대기를 치는 모습으로 보였다.
정훈섭의 능력은 이렇게 봉인.
난 곧장 권다정을 쳐다봤다. 정훈섭의 능력을 봉인하기 위해 여전히 흔든 채다.
“권다정 씨라고 했죠?”
“……어?”
“야! 저놈 입 막아!”
위기를 느낀 강만식이 부원에게 명령했다.
치리릭-!
또다. 그 푸른 사슬.
푸른 사슬은 이번에 내 머리를 향해 낙하했지만.
팅.
사슬은 그대로 튕겼다. 내 몸에 생채기를 하나도 내지 못한 채로.
“부장님……! 저놈 몸이 이상합니다……!”
꽤 당황한 반응이다.
“그래, 계속 그렇게 당황하고 있어. 금방 끝내줄게.”
확실히 고통이 아예 느껴지지 않으니, 정훈섭을 흔들면서도 권다정과 대화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났다.
여전히 권다정에게 집중한 채로 본론을 꺼냈다.
“당신은 보니까 던전의 흙만 있으면 됐던 거 아냐? 강만식도 그걸 약속한 모양이고.”
“…….”
그렇게 노골적이며 당당했던 사람이 지금은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고민하고 있는 중이겠지. 이 상황에서 어느 쪽으로 붙는 게 자신에게 가장 이득일지.
난 그녀의 결정을 보채기 위해, 혹할 만한 조건 하나를 걸었다.
“내가 분명히 말했었죠? 약속은 지킨다고.”
“그걸 다시 강조하는 이유가……?”
“지금 나를 도와주면 당장 원하는 만큼 흙을 주겠습니다. 아니, 그냥 게이트 하나를 통째로 줄게요. 흙이 있는 게이트로.”
“뭐어?! 정말이야, 그거?!”
반응이 정말 제대로 나온다.
권다정의 눈은 어느덧 반짝거리고 있었다.
“네, 어차피 당신은 초월석에 관심 없는 거잖아요? 흙만 필요한 거지.”
“오직 흙만 필요한 건 아니야. 초월석도 있으면 좋지.”
권다정이 슬쩍 욕심을 부리는 모습이다.
하지만 위기로 느껴지진 않았다.
알만한 사람이 왜 그럴까? 초월석을 손에 넣어 버리면 던전이 붕괴되는 알면서.
“그건 마음대로 해요. 초월석을 습득한 순간 일어나는 현상을 모르는 사람인가?”
“…….”
“그리고 흙을 채집하려면 던전 안에 들어가야 하는데, 몬스터를 처리해야 하는 번거로움까지 있는 거 아시죠?”
이번에도 말을 아끼며 섣부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게 정말 중요한 거다.
강만식과 함께 있으면 흙을 채집하기 전, 선행 과정으로 몬스터를 필수적으로 처리해야만 하지만…….
“나랑 들어가면 몬스터들이 날 공격하지 않아. 왜냐, 저 게이트들은 애초에 내가 만든 거니까. 주인을 알아보더라고. 몬스터들이.”
“……그게 정말이야? 헌터를 공격하지 않는 몬스터는 처음 보는데.”
“이번에 보게 될 겁니다. 아, 물론. 나와 함께 하기로 결정한다면.”
“어떻게 하면 되는데?!”
권다정은 곧장 결정했다.
“권다정 네년이 기어코……! 지금 나를 배신하겠다고?! 네가 그러고도 무사할 거 같아?!”
강만식이 으르렁거렸지만, 오히려 권다정은 콧방귀를 꼈다.
“어머나, 강만식 부장 씨. 내가 늘 말했잖아. 사람은 배부르면 딴소리하기 마련이라고. 그리고 내 몸에 손을 대기까지 한 사람을 이제 어떻게 따라? 우리 신뢰는 이미 깨졌지.”
“내가 언제 손을 댔다고……!”
“저기 천장이랑 바닥을 향해 춤추고 있는 아저씨가 날 가뒀잖아? 그게 손댄 거지. 그리고 강만식 부장 씨.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댁 같은 늙다리를 따르니, 저렇게 파릇파릇한 꽃돌이 따르는 게 낫지 않아? 심지어 댁보다 나한테 줄 수 있는 게 훨씬 많은데?”
그리곤 돌연 나를 쳐다보고, 윙크를 남기며 물었다.
“그렇지 꽃돌아?”
흐음…… 이상하다.
내 중2병이 슬슬 사라지고 있는 시점이었나?
저 사람이 윙크까지 하며 꽃돌이라고 말하는 순간, 온몸의 세포에서 전류가 흘렀다.
이게 소위 말하는 오글거리는 그 느낌인 듯하다.
[쟤 마음에 안 들어……. 너보다 심한 애 같아. 같이 있으면…… 후, 피곤하겠네.]
흑염룡이 반응했다.
그래? 피곤하겠어?
그렇다는 뜻은…… 권다정이 저런 모습을 착실하게 보여도 흑염룡이 언제든 게이트를 만들 수 있다는 뜻 아닌가?! 내가 굳이 힘쓰지 않아도.
‘오히려 좋아.’
난 씨익 웃으며 답했다.
“물론이죠. 그럼 저와 함께 하기로 하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돼? 내가?”
“저것들 전부 재워요. 그 화분으로.”
“쉽네~”
권다정이 내게 윙크를 남기며 손가락을 튕겼다.
치이이익…….
그러자 화분에선 안개와 같은 꽃가루가 방출되었다.
“이런 씨이…….”
강만식의 한탄은 아주 짧게 끝났다.
털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