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화. 욕심 (6)
“흙? 평생……?”
약발이 꽤 든 듯하다.
이제 권다정의 눈동자에선 빛이 날 정도였다.
이 순간만큼은 내가 최면술사라도 된 듯하다.
흙과 평생이라는 두 단어만으로 사람 하나를 완전히 매혹시킨 듯이 보였으니까.
“정훈섭 씨!”
그때, 강만식이 호통쳤다.
“예, 예……!”
그의 호통에 반응하는 나이 지긋한 아저씨.
한 번도 보 적이 없는 그 아저씨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나이가 저렇게 지긋한 아저씨가 왜 강만식을 대통령 대하듯, 하는 걸까?
물론, 관리부원들 전원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긴 하지만.
저 아저씨의 경우에는 달랐다.
다른 관리부원들보다 더 절박해 보인다고 해야 할까?
그런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름이…… 정훈섭?
어딘가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모호한 느낌이다.
“얼른! 그간 연습한 거 꺼내!”
강만식의 호통이 이어졌다.
내가 권다정을 던전의 흙으로 매수하려 하자 다급하게 보인 저 행동.
그렇다면 정답은 딱 하나밖에 나오지 않던가?
나와 권다정의 대화가 길어질수록, 내 쪽으로 넘어올 가능성이 다분한 사람이란 것을.
그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움직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약점 확보.’
‘네…… 네?!’
강만식의 공략법을 찾은 성취감에 혼자 속으로 말했을 뿐인데, 신보미가 반응했다.
난 일단 무시했다.
흑염룡과 달리, 신보미와 나는 처음으로 연결된 탓에 일일이 반응하는 게 불편하긴 했지만, 무시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상황이 상황인지라 신보미도 내 쪽에 잔뜩 집중했다는 것도 알았다.
“얼른 시작하라고! 정훈섭 씨!”
“예……!”
강만식의 세 번째 호통이 날아듬과 동시에.
나와 조금 거리를 두며 마주 보고 앉았던 강만식이 의자에서 튀어 올랐다.
그의 손이 내 이마로 향한다.
이미 한 번 당한 적 있는 저 행동.
내 영혼을 추출하여, 나와 똑같은 형체로 복제하고, 복제한 형체를 가격하여 내게 타격을 주는 그 방식.
이미 당한 걸 또 당할쏘냐.
파훼법은 찾았다.
강만식의 이마가 내 손에 닿지만 않게 하면 된다.
난 곧장 그의 몸을 향해 염력을 사용했다.
드드득!
윤활유를 바르지 않은 톱니바퀴가 억지로 굴러가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절로 들렸다.
“으윽……!”
강만식은 내게 손을 뻗은 채로 몸이 굳었다.
“같은 건 두 번은 안 통해.”
염력을 반대 원리로 이용했을 뿐이다.
염력은 본래 물체를 띄우는 힘.
즉, 중력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과 같은 원리다.
흔히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들을 그대로 실전에 적용했다.
중력을 자유자재로 움직인다는 뜻은.
바꿔 말하면 굳이 띄우는 형태가 아닌, 붙잡는 형태로도 가능하단 것.
지금 강만식의 모습이 그러했다.
그의 발은 땅바닥에서 약 한 뼘가량 떨어진 채로, 몸이 완벽하게 굳었다.
“크흐흑……!”
이까지 악물며 어떻게든 내게 다가오려고 했지만, 난 그럴수록 더욱 철저하게 강만식만 막았다.
치리링-!
그 순간, 간만에 듣는 소리가 들렸다.
내 머리 위로 구름이 생성되고, 그 안에서 쇠사슬이 움직이는 소리.
아, 그래.
이것도 당한 적 있었지.
치리링-!
푸른 사슬이 내 집중을 방해하기 위해 강하하는 그 순간.
키킹……!
이번엔 낙하하는 사슬을 묶어뒀다.
빠른 속도로 낙하하던 사슬은 내 염력에 영향을 받아 그대로 멈췄다.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다.
사슬 끝의 뾰족한 칼날이 정확히 내 눈 바로 앞에서 멈췄으니까.
‘위험했어…….’
‘오빠! 괜찮은 거예요?! 무슨 상황인데요!’
‘보미야.’
‘네!’
‘조용히 하고 있어라. 집중 흐트러진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그냥 가만히 있어.’
‘다 들리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냐고요! 위험했다면서요!’
‘이거 은근히 불편하네.’
하긴, 이해된다.
흑염룡과 달리 서로 떨어진 상태이기에 내가 작은 반응만 보여도 과한 반응이 나오는 것.
결정적으로 신보미도 이 상황을 보고 있는 상태가 아니니 그럴 거다.
‘보미야. 팔찌 빼면 너한테도 안 들리는 거지?’
‘……그렇긴 한데? 왜요?! 지금 상황에서 빼려고요?’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거든.’
‘자, 잠깐……! 오……!’
그 순간, 난 팔찌를 빼 버렸다.
그러자 갑자기 배터리가 방전되어 꺼져버린 휴대폰처럼.
순식간에 신보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후~ 좋네. 이제 조금 집중할 수 있겠어.”
내게도 중요한 순간이다.
한 번에 무려 12명이나 상대해야 하는 난관.
솔직히 여기까지 해본 적은 없다.
처음 관리부원들과 맞닥뜨렸을 때도 당하기만 했지, 내가 반격한 적은 없으니까.
게다가 관리부원인 만큼, 랭크도 상당한 헌터들.
이런 헌터들을 대상으로 내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엄청난 집중이 필요하다.
그 상황이 이제야 마련되는 중이다.
“야……! 빨리 어떻게든 해봐……!”
강만식의 당황한 목소리.
부원들에게 소리치는 중이다.
자신의 몸이 움직이지 않으니, 나머지 부원을 총동원하여 날 공격하라는 소리였다.
관리부원 전원이 움직였다.
아니, 이제 보니 딱 2명을 제외하고다.
정훈섭과 권다정만은 부동의 자세를 취했다.
정훈섭은 현 상황에서 도움이 되는 능력을 가지지 않은 것으로 보였고, 권다정은 내가 그녀를 던전의 흙으로 현혹하는 바람에 상당히 고민하는 눈치다.
나를 향해 각자 가진 능력들을 쏟아내려는 관리부원들.
특히 그 중에선 박우민이 가장 경계 대상이다.
이미 예전에 한 번 상대해 본 적이 있지 않은가?
카드만 고를 수 없게 만들면 된다.
아니나 다를까. 박우민이 카드를 선별하려 할 때, 그의 손을 염력으로 묶었다.
“……뭐야, 이거.”
카드 한 장을 검지와 중지 사이에 낀 채, 그 상태로 굳었다.
“형님……! 형님도 지금 이거에 당하는 중입니까……?”
“이게 도대체 뭐야! 석화도 아니고!”
석화? 아무래도 헌터 중에는 카시오페아와 같은 그런 능력이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난 본질적으로 다르다.
염력을 통해서 묶은 거니, 석화와는 차원이 다르다.
나를 향해 능력을 발현하려는 헌터들을 대상으로 전부 염력으로 묶어버렸다.
“하아…… 하아…….”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두피가 화끈해지며, 피부는 따끔따금하다.
[……괜찮아? 너 지금 무리하는 중이야. 소화할 수 있는 한계치를 넘은 거라고.]
정훈섭과 권다정이 빠졌으니, 10명의 헌터를 상대로 광범위한 능력을 구현하는 중이다.
이렇게 규모가 큰 염력은 나도 처음.
그 단점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 거다.
한 명에게만 염력을 사용해 몸을 묶는다면, 몇 시간이나 지속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 대상이 무려 10명이나 되다 보니, 지속 시간이 10분의 1 이상으로 줄어버리는 것도 당연하다.
그 증거로 서서히 강만식의 손이 내 이마와 가까워졌다.
“이봐요…….”
난 간간이 그의 움직임을 막으며 권다정에게 말을 걸었다.
“…….”
권다정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볼 뿐이다.
“권다정 씨라고 했지? 저 꽃의 주인.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약속은 지키거든?”
“그래서……?”
“이봐! 정훈섭 씨! 급한 대로 권다정 저년한테 능력 걸어! 쟤는 지금 상황에서 필요가 없어!”
강만식이 중간이 끼어들었다.
“……예? 원래 저희 계획은 부장님이 영혼 추출하면 그때 부장님의 모습을 숨기는 용도라고……?”
“닥치고 내 말대로 하라고!”
“……예!”
정훈섭이란 사람은 더 이상한 모습을 보였다.
정해진대로만 꼭 해야 하는, 강박증이라도 있는 것처럼.
상황에 따라 유동적인 움직임을 보일 줄 모른다.
이상하다, 왜 그럴까?
관리부원씩이나 되는 사람이.
관리부원들은 전부 랭크가 최소 A급 이상일 터인데.
꼭, 거인들 사이에 낀 난쟁이처럼. 그들의 역량을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이다.
마치 자신은 한참이나 랭크가 뒤떨어지는 사람처럼…….
정훈섭은 급하게 답하며 이제 권다정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잠깐! 강만식!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야?!”
권다정이 강만식에게 따지려 들 때.
“네년이야 말로.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약속도 안 지키는 년이……. 빠져 있어. 도움도 안 되는 년. 넌 나중에 보자.”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권다정이 강만식에게 주먹을 불끈 쥐었을 때.
감쪽같이 그녀의 모습이 사라졌다.
‘잠깐, 이거……?’
본 적 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정다훈에게.
공간을 새롭게 만드는, 공간 창조.
그 증거로 권다정이 있던 자리에는 노이즈가 낀 것과 같은, 크기가 큰 구체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공간 창조잖아? 별도의 공간을 만들고, 거기에 사람을 집어넣은 거야.]
흑염룡까지 나와 같은 생각이라면 확실하다.
공간 창조의 능력을 가진 정훈섭.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겠지.’
잡념은 일단 버린다.
괜히 잡념 때문에 일을 그르칠 수 있으니까.
내 쪽으로 넘어오게 하려던 권다정은 사라져 버린 상태.
이제 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뿐이다.
무력으로 이들을 제압하는 것.
그것밖에 없다.
‘이봐, 드래곤. 상황 듣고 있지?’
[뭐지? 수행자.]
‘내가 점점 힘에 부치는 중이거든.’
[그래서?]
‘나한테 주기로 한 비늘의 가호. 그거 지금 줄 순 없나?’
[이봐, 수행자. 그건 우리가 이미 약속한 조건이 있지 않았던가?]
비늘의 가호.
경험해 보지 않았던가.
가호를 받은 상태에선 어떤 공격에도 충격을 입지 않는다.
지금 내게 절실히 필요한 가호다. 염력으로 이들을 붙잡아두는 중이지만, 마치 단단한 족쇄에 서서히 금이 가면서, 풀릴 순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호를 받았다고 그 정령을 구출하지 않을 건 아니야. 하지만…… 상황 듣고 있으니까 알 거 아냐? 이대로면. 애써 만든 게이트 전부를 빼앗길 수 있는 상황이 나온다.’
[…….]
‘그렇게 되면 크루즈가 나타날 수 있고, 무엇보다. 그 정령도 구출 못 해. 활류를 사용하기 위한 게이트를 새로 만드는 과정까지 거쳐야 하니까. 우리 쪽에 게이트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그 정령이 또 폭주해 게이트를 만들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지.’
[협박인가?]
‘마음대로 생각해. 난 설득이지. 내가 그냥 달라는 거 아니잖아? 주기 싫으면 그때처럼, 잠깐 체험이라도 할 수 있게 해주던가.’
[체험은 몇 초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니 몇 초 안에 모든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은데?]
‘그럼 비늘의 가호라도 먼저 받자고. 우리에겐 이게 중요한 거 아니야?’
[…….]
드래곤은 그렇게 침묵으로 돌아갔다.
상당히 고민하는 중이라는 건 알았다.
하지만 드래곤이 고민하는 그 사이에도.
10명의 관리부원을 묶는 용도로 사용한 염력은 계속 금이 간 상태.
덥석.
어느덧 강만식의 손이 내 이마에 완전히 닿았다.
‘몇 초라도 더 늦으면 정말 돌이킬 수 없게 될 거야. 내 이마에 손 닿는 소리 들렸지? 설명할 시간도 없어. 몇 초 후엔. 난 정신을 잃을 거야.’
이제 강만식이 저 손을 당기듯, 떼면 끝이다.
그리고 공간 창조 능력이 있는 정훈섭이란 사람.
저 사람이 만든 공간에 가두겠지.
강만식이 정다훈을 중요하게 여긴 이유가 그들이 가진 능력의 시너지 효과 때문이었으니까.
그걸 재현하려는 거다.
[내 가호가 이렇게 가볍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닌데…….]
강만식은 내 이마에서 손을 뗐다.
‘끝났네. 미안하다. 드래곤. 게이트를 못 지켜서.’
[하지만. 네 말이 맞구나.]
그 순간, 내 몸에선 시력을 앗아갈 정도의 섬광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