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욕심 (2)
“걸리는 거? 뭐?”
“아니, 그 활류를 통해서 미국으로 간다는 건 이해를 하겠는데.”
“근데?”
이게 뭐가 걸린다는 걸까?
활류를 통해 문제가 발생한 미국으로 갔을 때, 누군가가 나를 보게 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미국에서 게이트가 언제 열릴 줄 알고? 그걸 흑염룡이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거야?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만약 그게 가능했으면 내가 영상을 보여주기도 전에 넌 이미 어느 정도 수상한 걸 파악하고 있었을 거 아냐?”
“…….”
상당히 날카로운 지적이다.
사실 이 부분은 조금 망각하고 있었다.
이지은의 말은 이렇다.
미국에서 발생한 문제.
일단 첫 번째 조건은 게이트가 만들어져야 한다.
하지만 이지은이 문제의 영상을 보여주기 전까진, 흑염룡도 게이트가 열렸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자신이 만든 게 아니라서 그런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이지은은 설명을 덧붙였다.
“결국에 활류라는 건 미국에도 게이트가 열린 상태에서만 가능한 거잖아? 알 수 있는 방법 있어?”
영상으로 접하는 게 아닌, 마치 현장에 있는 것처럼 열리는 즉시 알아낼 수 있냐는 질문이다.
레드뷰 영상은 이미 미국에서 몇 시간 전에 일어난 일이 퍼진 것.
나는 즉시 알아내야 한다. 몸은 한국에 있지만, 눈은 문제의 미국 네바다주에 향해 있어야 한다는 뜻이 되는 거다.
“으음…….”
난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이 방법은 도통 해결할 수 있는 돌파구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흑염룡. 그런 방법…… 없어?’
[있기야 한데, 엄청 불편하지.]
그래도 아예 없는 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여긴 찰나.
‘어떤 방법인데?’
[던전 안에서 계~속 대기해야지. 어차피 활류를 이용하려면 출구를 지정해야 하는데. 그때 내가 모르는 던전이 생겨났다면 그게 미국에서 열린 게이트란 뜻이니까.]
너무 원시적인 방법이다.
말 그대로 내가 던전에 들어가서 살아야 하는 수밖에 없단 뜻이다.
아무래도 이 방법은 효율적이지 않지만, 지금 상황에서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아예 없는 건 아니야.”
흑염룡의 답변을 듣고, 이지은에게 알렸다.
“대신 좀 귀찮을 뿐이지.”
“무슨 방법인데?”
이지은에게도 흑염룡에게 들은 것을 그대로 전했다.
“그건 너무 심하잖아. 언제 열릴지도 모르는 게이트를 위해 계~속 던전 안에서 대기? 효율적이지 않아.”
나도 공감하지만, 이것 말곤 방법이 없는데 어떡한단 말인가.
그때, 정다훈이 손거울 같은 것을 만들더니,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이렇게 보고 있으면 되는 거 아니에요?”
“응?”
그제야 정다훈이 손거울 같은 것의 정체를 보여줬다.
그 안에는 분명히 레드뷰 영상에서 봤던 그 장소가 그대로 나오는 중이다.
심지어 부랴부랴 어떤 공사를 하는 중인 것을 보아.
아마도 몬스터로 인해 파괴된 시설을 급하게 재건하는 것 같았다.
“뭐야……? 다훈아, 너 이런 것도 할 줄 알아?”
“네. 보고 싶은 곳 볼 수 있어요. 워프는 안 되더라도 보는 건 돼요.”
무려 9,500km나 떨어진 곳을 멀리서도 보다니.
인간 인공위성이 따로 없다.
“어……?”
이지은도 문제점의 해결 방법을 생각 외로 너무 간단히 찾아 버리자, 당황한 모습이다.
“다훈아, 가 본 적도 없는 곳을 그렇게 볼 수가 있어?”
“응. 난 되던데?”
누나 정다혜의 물음에도 의기양양하게 답했다.
“아~ 누난 직접 가 본 곳만 워프가 된다고 했지?”
“……그랬지.”
“난 돼! 이렇게 보고 있으면 되잖아!”
[저 꼬마…… 대단한데? 설마 그 정도로 될 줄은…….]
흑염룡도 당황하면서도 기쁜 목소리다.
“자, 그럼 문제는 해결된 거네? 다훈아. 피곤하긴 할 텐데, 넌 앞으로 거기를 계속 감시하고 있다가 게이트 열리면 그때. 나한테 바로 알려줄 수 있어?”
“네! 그리고 안 피곤해요. 어차피 할 거 없어서 심심했는데, 이거 보고 있으면 되잖아요!”
해맑게 답하는 것도 기특했다.
즉흥적으로 세운 계획치고는 일이 잘 풀린다.
그리고 꽤 나쁘지 않은 계획이라고 생각됐다.
이제 우린 미국에서 게이트가 열리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
그날 밤이 되었을 때, 뉴스에선 이런 속보가 흘러나왔다.
-미국 네바다주에서 일어난 화제의 영상 소식입니다.
역시, 이제 공식적으로 전 세계에 전부 퍼진 시점이다.
뉴스의 속보로도 다룰 정도면 전 세계인이 다 알게 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니까.
-처음 이 영상의 존재가 알려졌을 때, 인류는 혹시 던전이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기대를 품었는데요.
역시나.
몬스터를 보고 떠오르는 생각은 그것밖에 없을 거다.
-하지만 미국 협회가 공식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해당 영상은 미국의 한 영화사에서 제작 중이던 영화의 한 장면이라는데요.
“풉.”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떻게 사태를 수습하려나 궁금했는데…….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니.
세상 사람들이 그걸 믿기나 할까?
그래도 이해는 된다.
곧이곧대로 발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 안 되는 억지라고 생각해도 그렇게 우겨야만 했으니까.
아나운서의 보도는 계속됐다.
-장면이 너무 리얼한 탓에 그런 오해가 생긴 거라고 합니다. 협회에서는 국민들에게 오해를 일으켜 송구하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뉴스를 들으면서도 난 정다훈의 손거울을 쳐다봤다.
“영화의 한 장면이면 저건 뭐냐.”
지금도 열심히 재건 중인 문제의 장소.
심지어 한국은 밤 9시로 어둑어둑하지만, 현재 미국은 해가 밝게 떠 있으며 화창하다.
시차가 있기에 저쪽은 완전히 아침이다.
그래, 숨기고 싶겠지.
나도 그 마음은 이해된다.
하지만 누군지 모를 정령을 괴롭힌 주인.
도대체 어떤 식으로 괴롭혔기에 정령이 그런 몬스터를 만들어 버릴까?
그 실태도 직접 파악하고 싶었다.
[다시 보고 있으니까 화나네.]
‘진정해. 너까지 화내면 우리도 저기 뉴스에 나온다.’
[그거 때문에 꾹 참고 있다.]
‘조금만 기다려 보자. 그 정령한테는 또 그런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한 일이지만, 구출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어.’
[나도 알아.]
게이트가 다시 나타나기만을 빌어야 했다.
***
그로부터 일주일가량이 지났을 때.
여전히 게이트가 열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정다훈이 잘 때 빼고는, 하루 전부를 투자해서 지켜보는 중이다.
그래도 신기한 건 있었다.
정다훈이 비추는 곳엔 거대한 파란 액체 말고는 아무것도 채워진 게 없는 캡슐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 캡슐.
흔히 SF 영화를 볼 때 과학적인 실험을 하는 장면에서 꼭 나오는 그런 캡슐과 상당히 비슷하게 생겼다.
“왜요?”
정다훈은 내 반응을 살피며 물었다.
너무 노골적으로 같이 보고 있어서일까, 내심 내 반응이 이상하다고 여긴 모양이다.
“아, 아니야. 그냥 저 캡슐. 내가 영상에서 봤던 게이트랑 크기가 같은 것 같아서.”
“그래요? 그냥 무슨 실험을 하는 곳 같은데.”
“나도 저 곳의 정체가 궁금하다.”
그 뒤로도 정다훈의 손거울을 같이 지켜봤다.
그러다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바로 정다훈이 비추고 있는 곳 전부를 샅샅이 뒤져도, 정령의 모습이 보이지 않다는 것이다.
‘흑염룡.’
[왜.]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게. 미국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왔으면 저 장소에 너와 같은 정령이 있어야만 가능하잖아?’
[그렇지?]
‘그런데 내 눈에는 안 보이거든? 정령의 모습이. 혹시 넌 보여?’
[아니. 나도 안 보여서 1주일이나 열심히 찾고 있었는데.]
같은 정령인 흑염룡에게도 보이지 않는다라…….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정다훈이 손거울 형태로 감시하는 이것이 현재로선 상당히 유용하지만, 정다훈의 눈에 보이지 않는 건 우리에게도 보이지 않는단 뜻이 된다.
정령은 분명히 저 문제의 장소에 있다.
그러나 나와 흑염룡이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도 정령의 모습을 볼 수 없는 이유는 그것 말곤 없기 때문이다.
‘완벽한 해결방안인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네.’
정령의 상태까지 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것 같지만…….
아쉽게도 그런 기대는 버려야 했다.
‘아니다. 좋게 생각하자. 너무 욕심이겠지. 정령의 상태까지 여기에서 파악하려는 건.’
[……그래도 걱정되네.]
이미 심각한 일을 당한 정령인데, 다음엔 또 어떤 심각한 일을 당할지를 걱정하는 모습이다.
정령의 왕이니, 당연한 모습이긴 하지만 애잔하게 느껴졌다.
‘조금만 참아.’
그렇게 답하던 순간.
한동안이나 조용했던 내 휴대폰이 진동했다.
“음?”
휴대폰에 찍힌 이름을 보자 절로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이 이간이 왜…….”
내게 전화를 거는 중인 사람은 다름 아닌 강만식이었기 때문이다.
“강만식…….”
옆에 있던 정다훈도 휴대폰에 있는 이름을 보고 움츠러든 모습이다.
그의 밑에 있었을 적, 악몽이 떠오른 모양이다.
왜 갑자기 전화를 해대는 걸까.
나와 강만식이 서로 안부를 물으며 지내는 덧없는 사이는 절대 아닌데.
전화를 받았을 때.
-양산부장. 요새 잘 지내나? 근데 이름이 양산부가 뭐야? 입에 전혀 감기질 않네.
시비인지, 뭔지 알 수 없는 말을 해댔다.
“뭐지? 우리가 서로 연락할 일은 없을 거 같은데.”
-싸가지는 여전하네. 아~ 그래. 명색이 나랑 같은 직할부장인데 이젠 싸가지 없어도 용서가 되지.
“유치하게 시비 걸려고 전화한 건가?”
-당연히 아니지.
“그럼? 본론만 말하지. 전화비 아까워.”
-무제한 안 쓰나? 내가 요금제 바꿔줘?
“시간 아깝단 뜻이다.”
-그냥. 신규 직할 부서가 창설됐는데 화분이라도 하나 사줄까 해서. 뭐, 형식적인 축하라도 남겨야 하지 않겠어? 엄연히 사무실인데 그런 화분 하나쯤 있어야 분위기가 살지.
“화분은 무슨.”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아마 화분을 나한테 주면 그 화분을 염력으로 이용해서 그대로 강만식한테 던져 버릴 것 같은데.
“내 몸에 구멍 뚫은 사람한테 화분 받고 싶지는 않다.”
일부러 과거 이야기를 들췄다.
내가 최현민과 협상하기 전에 일어난 일.
제 부하를 시켜, 푸른 사슬로 내 몸에 구멍까지 뚫었던 양반에게 화분을 받으면 퍽이나 잘 키우겠다.
-아 그거야 당시 상황이 그랬던 거잖아. 오해가 서로 많았고. 그래서 말인데. 내가 꽤 괜찮은 화분 하나 샀거든. 전해주려고 하는데.
“그렇게 전해주고 싶으면 택배 붙이던가. 착불로 보내든 어쩌든 알아서 하고.”
-화분을 어떻게 택배로 보내. 소중히 전달하기 위해 내가 직접 가야지
오호라, 결국엔 목적은 이거구나?
난 강만식의 답변을 들은 그 순간, 장길수에게 받은 호출벨을 만지작거렸다.
언제든 누를 수 있는 준비를 마친 거다.
-언제 갈까? 그래도 같은 부장인데 식사라도 대접해 주겠지?
“최현민 협회장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뭘 자꾸 오려고 해? 내 부서에서 당신 반길 사람이 있기나 한가?”
-아~ 어차피 오지 말라고 해도 갈 거야. 아마 1시간 내로 도착할 거 같은데?
이거 완전히 작정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