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욕심 (1)
게이트에 들어가기에 앞서, 난 게이트 틀에다가 임의로 문양을 새겨 넣었다.
언뜻 보면 낙서로 보일 정도다.
[뭐 하는 거야?]
“표시하는 거지.”
[무슨 표시?]
“활류가 내게도 성공적으로 적용되면, 이 표시를 한 게이트가 아닌 다른 게이트로 나올 거니까.”
[아하.]
지금 43개의 게이트가 모여 있는 이곳은, 정렬된 간격으로 펼쳐져 있는 게 아니다.
중구난방으로 어지러운 상태이기에, 활류가 내게 적용되어, 내가 들어간 게이트가 아닌 다른 게이트로 나온다고 해도 쉽게 알아차리기 힘들다.
그래서 따로 표시를 넣는 거다.
던전에서 나왔을 때, 게이트 틀만 확인하면 활류가 성공적으로 적용된 것인지, 아닌지 금세 알아차릴 수 있으니까.
그리곤 게이트로 들어갔다.
***
간만에 들어온 게이트.
이제 긴장감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게이트 속에 있는 몬스터들도 크루즈가 아니라면 내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로 다가오지 않았던 게 가장 컸다.
아무래도 몬스터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받은 적도 있고, 심지어 시오스의 수호신인 드래곤과도 자주 대화를 한 여파인 듯하다.
내가 살다 살다 던전과 몬스터들에 익숙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우리가 들어온 던전의 배경은 평화로운 숲의 모습.
여유가 생겨서 그런 걸까?
유독 숲과 같은 자연을 본뜬 던전이 많은 것 같았다.
“흑염룡. 내가 갑자기 궁금해서 그런데.”
[뭐?]
“던전은 유독 자연의 배경이 많은 것 같다? 특히 이런 숲 같은 던전.”
[아~ 그거야 당연하지.]
“당연한 이유가 뭔데.”
[우리 고향의 모습이랑 가장 비슷하니까.]
“그래?”
시오스의 고향은 숲과 같은 자연적인 환경이었던 듯했다.
하긴, 정령이라고 하면 뭔가 자연과 친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그 이유를 정확히 알았다.
“아무튼. 시작해 봐. 그 활류라는 거, 어떻게 해야 해?”
[으음, 기다려 봐.]
흑염룡은 출구인 게이트로 향했다.
그리곤 게이트에 손만 집어넣곤 뭔가 열심히 정신을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흑염룡의 표정이 좋지 않다.
잔뜩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것이 부정적으로 다가왔다.
“왜? 문제 있어?”
설마 활류가 안 되는 건가……?
하긴, 활류라는 건 던전이 완전 정복되기 이전에 사용한 시오스들의 특권이라고 했으니.
지금은 던전이 완전 정복되어 버려 그 방법이 막혔을 수도 있었다.
활류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면, 미국으로 직접 비행기 타고 가야 하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그렇게 되면 상당히 골치가 아픈 일로 변하는 것이기에, 나도 간절하게 기도를 하던 중.
[문제라고까지 할 건 아닌 것 같은데…….]
다행히 완전히 부정적인 소식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럼?”
[어디로 나갈지 모르겠어서.]
“그게 무슨 소리야? 어디로 나갈지 모르겠다니?”
[그러니까 활류라는 건 다른 게이트로 나가는 거잖아. 그 출구를 어디로 정할지 모르겠다는 뜻이야. 다 내가 모르는 던전들이니까.]
무슨 뜻인지 알겠다.
현재 던전은 43개가 있다.
그러나 이 43개 던전은 기존에 시오스들이 만들어둔 정식 던전이 아닌.
내가 3주간 흑염룡을 괴롭힌(?) 결과물이다.
따라서 43개의 던전 전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특징이 있는지.
그것을 모르기에 확실히 어디로 나갈지 모르겠단 뜻이다.
난 흑염룡의 머리를 살짝 툭 쳤다.
[아야! 왜 갑자기 때려!]
“멍청아, 그게 뭐가 중요해. 어디로 나갈지 모르겠다는 거.”
[중요하지!]
“아니지. 출구를 정한다는 뜻은 뭐야?”
[아……?]
활류는 정식 던전이 없는 지금도.
사용할 수 있단 뜻으로 바꿔 말할 수 있었다.
애초에 활류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나갈 출구를 지정할 수 있는 일 자체가 없을 거니까.
“어디로 나갈지 몰라도 상관이 없지. 어차피 게이트는 다 내 부서에 밀집되어 있는데, 어디로 나가든 내 부서란 뜻이잖아.”
[그러네……?]
하긴, 흑염룡이 이 활류를 한창 이용했을 땐 나라와 나라 사이도 이동한, 대륙 이동이었으니 어디로 나가야 할지가 중요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는 건 확실하다.
“어쨌든, 활류를 사용할 수 있단 거잖아. 아무 곳으로 지정해 봐.”
[다 됐어!]
흑염룡은 즉각 출구를 지정했다.
“이제 나가기만 하면 돼?”
[응.]
활류라는 거, 생각 외로 복잡한 철자 없이 꽤 간단하게 이루어지는 능력이다.
던전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야 하는 것도 아니기에 몬스터와 마주칠 일도 없는 게 가장 편했다.
그렇게 출구를 지정한 흑염룡.
난 다시 게이트 앞에 섰다.
꿀꺽.
나와 흑염룡이 동시에 살짝 긴장하며, 침을 삼켰다.
“잘 되길 빌자. 염룡아.”
[제발……!]
흑염룡은 간절함을 담아 기도하는 손짓을 보였다.
그렇게 난 게이트 밖으로 나섰다.
***
두근. 두근두근!
게이트 밖으로는 성공적으로 나왔다.
하지만 난 게이트틀과 등을 진 상태.
이제 이 틀에 내가 들어가기 전에 남겨 놓은 표식이 보이지 않으면 활류가 성공한 것이었다.
그렇게 천천히 고개를 들어 게이트틀을 확인했다.
[어……!]
“아……?”
[없다!!]
활류는 대성공이었다.
활류가 실패했다면, 내가 나온 게이트틀에 낙서로 새긴 표식이 있어야 하지만, 지금 게이트틀엔 아무것도 없이 깔끔하다.
따라서 활류는 내게도 적용이 된다는 뜻이었다.
[으음, 그래도 이해가 안 되네?]
아주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지만, 흑염룡은 그대로 의문을 품었다.
“왜? 잘 됐는데.”
[이 활류라는 건 우리 시오스의 특권이었다고. 나도 인간을 대상으로 한 건 이번이 처음이야. 그게 될 줄도 몰랐고.]
[그건 아마 내 영향을 받아서 그런 게 아닐까?]
그때, 드래곤이 불쑥 우리 대화에 끼어들었다.
[수호신님?!]
“뭐야, 드래곤. 음침하게 듣고 있었냐?”
[음침하게라니. 말이 심하군, 수행자.]
“흑염룡과 달리 넌 정신만 이어진 상태인데다가 목소리만 들리니 당연히 음침하게 보이지.”
[들리는 걸 애써 귀를 막을 필요는 없잖아.]
[그런데 수호신님. 수호신님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 게 아니란 건 무슨 뜻인가요?]
[내 가호를 체험하게 한 것도 있고, 무엇보다 수행자는 나를 불러낼 수 있으니. 그 영향이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지.]
“음, 그런가?”
그게 일리가 있다면 있을 거다.
그렇다면 직접 확인해 보는 방법이 가장 최선의 방법.
난 즉각 부원들을 전부 소집했다.
이지은, 신보미, 정다훈, 정다혜.
이렇게 네 명을 게이트 앞으로 집합시킨 뒤에 추가적인 실험을 진행했다.
난 일단 부원들에게 활류가 무엇이고, 시오스의 특권이라 불리는 이 능력을 이용해 미국으로 갈 것이란 계획까지 설명한 뒤였다.
“활류? 말만 들었을 땐 꽤 편해 보이네.”
이지은의 소감이다.
“아무튼, 그래서 너희들 상대로도 적용이 되는지 실험하고 싶어서. 다들 동의하지?”
“던전 들어가는 건 처음인데…….”
그 당돌하던 신보미의 자신 없는 말이었다.
“아, 보미 넌 처음인가?”
“예, 뭐. 제가 가진 게 전투 능력도 아니고. 들어갈 일이 있어야죠..”
나처럼 비공식 헌터였으니, 더더욱 들어갈 일이 없었을 거다.
신보미도 인생에서 처음으로 던전에 들어가는 날이 찾아왔다.
“긴장할 거 없어.”
“그런데 능력을 가진 사람이 던전 안에 들어가면 몬스터들이 반응한다면서요? 그럼 우린 누구한테 기대요? 오빠한테 기대기엔 영…….”
이젠 불신 가득한 눈초리로 날 쳐다봤다.
은근히 내가 약하다며 도발하는 듯이 느껴졌다.
“보미야. 헌터 중에서 너만 나를 무시하는 거 같아.”
“아니죠, 무시라니. 설마 제가 부장님을 무시하겠어요?”
조곤조곤 따지는 그 앙칼진 목소리가 오늘 유독 더 듣기 싫어졌다.
완전히 비꼬는 것 같이 느껴졌으니까.
“그냥 조용히 하고 있어. 넌 조용히 하고 있을 때가 제일 예뻐.”
“……제발.”
그 순간, 신보미는 갑자기 자신의 귀를 막았다.
“……왜?”
“오빠 입에서 예쁘단 소리 나오니까 왜 이렇게 짜증이 나면서 오글거리지?”
“나…… 아무것도 안 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안 했을지 몰라도, 지난 3주를 생각해 보시죠?”
“아.”
틈만 나면 게이트를 새로 만들려고 안간힘을 썼으니, 충분히 그런 프레임이 씌워질 수 있었다.
“됐고. 들어가자. 너랑 입씨름할 시간 없어.”
“예, 예~”
그렇게 우리 다섯 명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게이트에 들어간 뒤, 곧장 흑염룡은 활류를 이용해 출구를 아무 곳으로 지정한 뒤였다.
[다 됐어!]
하지만 부원들 눈엔 흑염룡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직접 흑염룡의 말을 전달해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다.
“다 됐대. 나가 봐.”
“우리 먼저 나가?”
이지은이 물었다.
“응. 그래야 하지 않을까? 던전 출구를 조율할 수 있는 게 흑염룡인데, 먼저 나갔다가 안 되면 다시 들어올 수 없으니까.”
“아, 하긴 그렇네.”
“그러니까 나가 봐.”
그렇게 나를 제외한 부원 넷은 동시에 게이트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몇 초 뒤.
게이트를 분명히 나갔던 부원들이 다시 들어오는 현상이 일어났고.
“우욱……!”
그들은 나오자마자 철푸덕 주저앉으며 헛구역질을 해댔다.
“우웩……!”
심지어 정다훈은 정말 구토까지 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뭐야, 왜 그래?”
그 몇 초 사이에 무슨 일을 당했기에 저러는 걸까?
“흑염룡. 활류 확실히 지정한 거 맞지?”
[맞는데……. 분명히 했다고.]
흑염룡도 꽤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부원들은 두통을 느끼는지, 전부 머리를 감싸 쥐는 행동을 보였다.
그나마 가장 빨리 정신을 차린 건 이지은.
“으윽…….”
애써 일어서려고 했는데도, 휘청거리며 다시 풀썩 주저앉았다.
“왜 그래, 지은아?”
“활류라는 거…… 우리한테는 적용 안 되는 거 맞지?”
“지금 상황 보니까 그래 보이는데……?”
“우리한테는 실험하지 마라. 너한테만 되는 거 같아. 어지러워 죽겠네.”
“무슨 일이 있었는데?”
“게이트 밖으로 나가자마자 갑자기 우리 몸이 허공에서 빙빙 돌았어. 아마 허리케인에 휩쓸리면 그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은데.”
그래서 나오자마자 다들 저렇게 헛구역질을 하고, 정다훈은 정말 구토까지 한 상황이었구나.
이해됐다.
“……그래?”
“응. 그 뒤엔 무언가에 튕기듯, 몸이 날아갔고 정신 차리니까 여기 던전 안으로 복귀하게 됐네? 어윽…….”
여전히 멀미가 가시질 않았는지, 말을 하면서도 올라오는 헛구역질을 애써 참는 모습이었다.
[역시, 너한테만 되는 거구나. 신기하네.]
이로써 확실하게 정해졌다.
활류라는 건 오직 나에게만 사용가능한 모양.
물론, 그 이유를 흑염룡도, 드래곤도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아무리 드래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가호가 내 몸에 있는 건 아닌데. 이게 가능한 일인가?”
[아니면 너한테 염력과 만물이 있어서 그런가? 우리 시오스가 딱 하나만 만든 특별한 능력이니까.]
의심되는 정황은 많으나, 무엇하나 확실히 정할 순 없었다.
“일단. 나가자. 흑염룡, 출구 다시 지정해 줘.”
이렇게 되면 미국은 나 혼자 가야 하는 상황이다.
‘이건 또 이것대로 골치 아픈데.’
혼자서 미국이라…….
그렇게 게이트에서 나온 뒤.
“그런데 도원아. 걸리는 게 있는데.”
이지은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