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80화 (80/200)

§ 80화. 가호 (5)

단순히 초월석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왜냐, 내 계획은 현재 사용할 수 있는 게이트와 초월석이 한국에 있다는 것을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는 미국 협회에게 알리는 것이었으니까.

철저하게 비밀로 치부했던 초월석을 하나도 아니고 뭉텅이로 까발리는 것과 마찬가지기에, 앞으로 신동원이 가질 초월석도 그 가치가 현저하게 떨어진다고 느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미국 협회에 이를 알리는 순간, 어떤 견제가 들어올지 아예 예상할 수가 없어요. 분명히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조건으로 견제가 들어올 게 뻔한데요.”

그의 답은 조금 달랐다.

“무시할 수 없는 견제요?”

“고객님은 SF 길드 직원으로도 일해 봐서 알지 않나요? 던전이 완전 정복되기 이전 시대에서. 헌터력도, 국가 경제력도. 그리 강하지 않은 나라에서 던전을 많이 보유했을 때의 상황이요.”

완전 정복되기 이전의 시대라면

던전 하나당 초월석 하나라는 공식이 성립된다.

이는 던전이 완전 정복된 이후의 내 상황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내가 가진 게이트는 43개.

따라서 초월석 43개가 확보된 것이나 다름이 없는 상황.

물론, 그 안에 크루즈가 점령한 던전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나 나를 제외한 세상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공식은 그대로 성립된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신동원이 말한, 무시할 수도, 예상할 수 없는 견제라는 건 아마 이런 것과 같을 것.

해당 국가가 가진 던전은 많은데, 그에 비해 초월석을 수급할 수 있는 헌터의 풀(pool)이 적은 나라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인도가 그렇다.

일단 기본적으로 국토가 넓다는 건 가진 던전이 많을 거라는 게 기본 상식.

하지만 인도의 국가 경제력을 생각하면 헌터 육성과 같은 인프라가 정말인지 타국에 비하면 절망적인 수준이다.

러시아, 중국 등도 국토가 넓기로 유명하지만, 그래도 이 두 나라는 인프라가 어느 정도는 갖춰져 있기 때문에 만만한 곳이 아니다.

그래서 인도와 많은 거래를 했다.

특히 미국이.

표면적으로는 FTA나 정상회담부터 시작하지만, 실제 그 내용은 인도는 미국에게 던전을 빼앗긴 것이나 다름없었고.

미국은 인도에게 미국 입장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을 선심 쓰듯이 던져주는 꼴이었다.

그 부분까지 생각한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신동원이 물었다.

“제 말이 뭔지 알겠습니까?”

“네, 그렇게 말씀하시니 바로 와닿네요.”

조금은 나를 반성하기도 했다.

이렇게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던 게 큰 이유다.

약간의 변명을 하자면, 깊게 생각할 여유가 없던 것도 크다.

미국에 있는 정령을 안전하게 데리고 오기만 하면 드래곤이 내게 준다고 했던 비늘의 가호.

이미 그 위력을 맛보기 수준으로라도 체험해본 결과, 분명 앞으로도 내가 헌터 생활을 하는 데 있어 절실하게 필요한 가호는 맞다.

가장 기본이 되는 비늘의 가호가 그런 말도 안 되는 능력을 가졌는데.

그보다 상위 가호로 취급되는 날개, 발톱, 정신은 어떤 위력을 가졌을지 감히 상상도 안 된다.

단순히 가호를 가지고 싶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면, 미국에 있는 이름 모를 정령은 계속해서 똑같은 꼴을 당하고.

그때마다 레드뷰 영상처럼 몬스터는 계속 튀어나올 것.

그것을 막기 위한 조급함도 있다 보니 깊게 생각할 수 없었던 상황이다.

“일단 가장 확실한 건.”

신동원이 내게 강조했다.

“미국에게 먼저 고개를 숙이는 것과 같이, 굴복하는 형태로 들어가는 건 안 됩니다.”

“그 뜻은, 저들이 아쉬워서 나를 찾아오게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들리네요?”

“정답이죠.”

“하지만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죠?”

“저도 고객님한테 듣고 레드뷰 영상을 확인했을 때. 제 비서가 그러더군요.”

“뭐라고요?”

“사실은 던전이 어딘가에 남아 있는 거 아니냐고요.”

일반인의 시선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느껴질 수 있다.

나야 드래곤과 흑염룡 덕분에 그 짧은 영상 하나로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옆에서 알려줄 존재가 없으니까.

“왜 그런 생각을 가졌겠어요?”

“그야 당연히…….”

현재 일반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니까.

“다들 힘드니까 그렇겠죠.”

그렇지 않아도 여기저기에서 시위가 열리고 있다는 소식은 이미 오래전부터 접했다.

하지만 멈출 줄 모르고 치솟는 중인 물가 때문이라도, 일반인들에게 몬스터의 등장 소식은.

지금 이 순간에선 재앙의 소식이 아닌, 정말 말 그대로 마른 가뭄에 단비와 같은 소식으로 들렸을 것이다.

“네, 그거예요. 저도 솔직히 레드뷰 영상 처음 봤을 때 한 생각이기도 해요.”

“어딘가에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던전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거요?”

“네. 하지만 고객님한테 모든 것을 들으니, 그제야 진실을 알 수 있었던 거죠. 만에 하나, 정말 어딘가에 모르는 던전이 있었다면. 기존에 사용 중이던 초월석이 효력을 잃었을 리도 없잖아요?”

이 사실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신동원은 하고 싶은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미국 협회가 아쉬움에 먼저 매달리게 만드는 거, 어렵지 않습니다. 전 레드뷰 영상을 봤을 때 던전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생각 다음으로, 또 하나 든 생각이 있어요.”

“뭐죠?”

“혹시 미국에도 고객님과 같은 능력자가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요.”

충분히 일리 있다.

미국에도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정령이 있으니 몬스터가 튀어나온 것이고.

그 정령이 주인을 제대로 섬기기만 한다면, 흑염룡과 나의 관계처럼 서로 공생하는 관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에 있는 정령은 어떠한 이유인지는 몰라도, 그 주인이 정령의 생명에 위협을 줄 정도로 괴롭혔기에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것도 충분히 실현될 수 있죠. 미국에도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정령이 있던 거니까요.”

“그 상황은 제가 정확히 모르는 거니까 넘어가고. 어쨌든 지금 현 상태로 봤을 땐, 미국에서 게이트를 만들 능력은 없다는 건 확실한 게 아닌가요?”

신동원은 핵심을 찔렀다.

난 흑염룡을 쳐다봤다.

지금 신동원이 말하고 있는 주제가.

정말 진실이 될 수 있냐는 질문이다.

[너 같으면 크루즈한테 초월석을 줄 거야?]

답변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질문이었다.

‘아니? 절대 안 주지.’

내가 마주친 크루즈는 더스티라는, 크루즈의 최약체.

하지만 더스티가 가진 힘은 상당히 위협적이다.

헌터 하나를 집어삼키고, 헌터의 시체는 흔적도 찾을 수 없이 사라지며, 헌터가 가진 능력만 자신이 빼내어 크루즈만이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변형시키는 역할이었으니까.

그런 크루즈에게.

능력의 힘이 담긴 초월석을 주는 것 자체가 자살 행위나 다름이 없다.

[그거랑 똑같지. 이미 그 정령도 제 주인에게 몹쓸 짓을 당했는데. 주인을 위해 게이트를 만들어?]

‘하지만 게이트는 현재 시오스에게도 필요하잖아.’

[그 녀석도 누군지는 몰라도 제 주인과 거래를 했을 건 분명하잖아.]

거래라 하면, 나와 흑염룡이 나눈 약속처럼.

일정 수 이상의 게이트를 유지할 때, 초월석을 하나씩 준다는 그런 거겠지.

‘확실히 그렇겠군.’

아무리 시오스에게 현재 크루즈가 넘어올 수 없도록 만드는 게이트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해도.

동시에 인간에게도 초월석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다.

생명에 위협을 준 주인에게 게이트를 만들어준다는 건.

이런 위급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는 초월석을 준다는 것과 마찬가지.

따라서 정령에게 필요한 게이트라 해도, 제 주인에게도 필요한 일이니, 더는 게이트를 만들지 않을 거란 강한 확신이 들었다.

정령은 기계가 아니다.

생명체이며, 생각이란 걸 한다.

더군다나 인간과 말이 통하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지금은 흑염룡의 말이 옳았다.

‘그런데 흑염룡.’

난 한 가지 중요한 사항을 물었다.

[왜?]

‘드래곤이 가호를 준다고 했을 때, 내가 미국에 가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했잖아. 정다훈의 능력을 이용해도 무려 9,500km나 떨어진 곳에 워프가 될 리가 없다고.’

[그랬지?]

‘그런데 넌 쉬운 거 아니냐고 그랬었어.’

[당연히 쉬운 줄 알았지.]

‘헌터들이 사용하는 능력의 원래 주인은 너희들이잖아. 시오스.’

그 말은 무엇인가?

저들이 평소에 9,500km나 떨어진 거리도 아주 쉽게 도달할 수 있었던 방법이 있기 때문에.

쉽다고 느껴진 것밖에 되지 않았다.

난 이런 근거들을 흑염룡에게 제시하며 물었다.

‘할 수 있는 방법. 분명히 있지?’

[아~ 그거? 근데 지금 상황에서는 못하지 않을까?]

역시, 뭔가 방법이 있었던 모양이다.

시오스들이 사용했던 방법이.

‘일단 그거부터 설명해 봐. 들은 뒤에 결정해야겠어.’

[아, 간단해. 내가 말하는 지금 상황은 던전이 완전 정복된 상황을 말하는 거니까.]

‘그럼 혹시, 던전을 이용해서 세계 여기저기를 왔다 갔다 했다는 거야?’

[응.]

이미 시오스들이 크루즈로부터 후퇴하기 위해 인간계로 넘어 올 때.

세계 여기저기에 자신들의 던전을 만들어 놨다고 했다.

따라서 던전은 세계 여기저기로 퍼진 포털과 같은 개념이다.

‘한국에 있는 던전으로 들어갔다가 미국으로 나올 수 있다는 거 아냐?’

[응. 우린 그렇게 이용했으니까. 우리만의 특권이야. 우리만 사용할 수 있다고. 이런 능력은 초월석에 넣지 않았어.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가진 거니까.]

그렇다는 건 아무리 원래 주인이 시오스라고 해도.

헌터 중에선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그럼 시오스만의 특권을 나를 위해서 사용할 순 없고?’

[으음…… 그건 해 본 적이 없는데.]

부정적이긴 하지만, 시도해 볼 가치는 있다.

‘지금 상황에선 믿을 게 그거밖에 없는데?’

[……무슨 뜻인지 알겠어.]

흑염룡도 어느 정도 동조하는 답이다.

“고객님?”

신동원의 물음에 내가 한동안이나 말이 없자, 그가 내 정신을 깨워줄 생각으로 물었다.

“아, 네.”

“미국이. 게이트를 만들 수 없는 상황. 맞지 않을까요?”

마지막 질문을 다시 반복하는 그다.

“네, 그거 때문에 제 정령이랑 말하고 있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물었거든요.”

“아, 그래요? 뭐라던가요. 고개님의 정령이요.”

“그럴 거라고 하더군요. 제 주인을 등지게 된 상황과 다를 게 없다고.”

“그럼 더더욱 상황은 편하게 된 것 아닌가요? 미국이 게이트를 자력으로 만들 수 없는 현재 상황이라면. 아쉬움으로 고객님에게 먼저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으니까요.”

아직까지는 세계에서 최초이자 유일하게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게 나다.

당장에는 긍정적인 신호지만, 이 역시 소위 말하는 유통기한은 있다.

흑염룡과 같은 시오스의 정령들은 세계 곳곳에 퍼진 상황.

따라서 그런 정령들이 자신의 주인을 찾게 되면, 내가 가진 능력도 결국엔 유일이 아니게 된다.

물론, 최초라는 타이틀은 있겠지만, 그런 건 현재 인간들 상황에서 아무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흑염룡.’

[응.]

‘인간계에 퍼진 시오스 정령들. 그 총원이 어떻게 돼?’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시오스들 말하는 거지?]

‘물론이지.’

[가만히 있어 보자……]

흑염룡은 잠시 입을 다물고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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