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가호 (3)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며 몬스터 제압에 나선 로버트 윤.
‘이상한데…… 강해도 너무 강해. 내가 알던 몬스터가 아니야.’
로버트 윤도 수상한 것을 깨달았다.
‘이건 아예…… 종이 다른 느낌이야…….’
정확히는 뭐라고 해야 할까?
그간 자신이 정복했던 던전 속 몬스터들을 사람에게 길들여진 애완견이라고 한다면.
지금 마주하는 몬스터는 같은 동물이지만 격이 아예 다른 맹수를 마주하는 느낌이다.
‘저들 연구 때문에 이렇게 된 건가?’
슬쩍 등 뒤에 있는 연구진을 바라봤다.
‘그건 억측이겠지. 인간의 연구가 어떻게 몬스터를 더 강하게 만들겠어.’
어차피 혼자 추측해도 답을 얻을 수 없다.
로버트 윤은 저 몬스터를 없애고, 이 기관을 수습하기 위해 온 사람.
따라서 몬스터 제압이 먼저였다.
“끄흐윽……!”
로버트 윤은 자신의 능력을 정말 한계치까지 방출했다.
그의 능력은 ‘압축’.
자신이 지정한 구역을 말 그대로 압축시켜버리는 것.
지정한 구역에 생명체가 있으면, 짓이겨 형체도 없이 사라지게 하는, 마법에 가까운 능력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대하는 몬스터는 몸집이 거대한 것만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거대한 몬스터가 처음은 아니지만, 이건 단단해도 너무 단단하잖아!’
압축을 자신의 인생 최대치이자, 한계치까지 끌어올리는 중인데도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다.
“더럽게 질기네!”
푸슛!
이젠 한계치를 넘어섰다.
과한 능력의 사용으로 로버트 윤의 피부가 찢어지며, 옅은 핏줄기가 터졌다.
그래도 효과는 있었다.
문제의 몬스터의 몸체가 공업용 압축기에 짓이기듯이, 형체가 일그러지며 작아지는 것이었다.
“얼른……!”
기합과 같은 외침에, 겨우 몬스터를 없앨 수 있었다.
“후우…….”
몬스터가 사라진 직후.
로버트 윤은 털썩 주저앉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로버트 윤 헌터마저 저렇게 맥이 빠질 정도의 몬스터였다니…….”
뒤에선 연구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감탄인지, 경악인지. 감정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당신들. 조금 이따가 얘기 좀 합시다.”
로버트 윤은 바들바들 떨리는 손짓으로 휴대폰을 꺼냈고, 레드뷰를 틀었다.
그가 튼 영상엔 방금 자신이 없앤 몬스터가 활개를 치며 이 기관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뉴스 속보였다.
“이거 뒷수습해야 할 거 아니야.”
***
“다훈아!”
“……네?”
부원들이 돌아오자마자 난 정다훈을 붙잡고 물었다.
“혹시, 너 미국으로도 워프 가능하니?”
“갑자기 미국은 왜요……?”
“너도 아까 그 영상 봤지? 몬스터가 튀어나와서 활개를 치는 거.”
“네.”
“거기로 가야 하는데, 혹시 가능할까 싶어서.”
“거리가 얼마나 돼요? 여기에서 거기까지요.”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략 9,500km정도?”
“그 정도가 얼마나 되는 거지……?”
갸우뚱하는 정다훈을 보니 딱 봐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거리를 물었는데도 얼마나 먼 거리인지 가늠을 하지 못하는 건, 정다훈이 살면서 처음 듣는 높은 단위의 거리였기 때문이다.
하긴, 저 나이대 아이에게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가 300km정도 된단다.”라고 말해도 그게 얼마나 걸리는지 모른다.
차라리 “차로 대충 4시간 정도 걸려.”와 같이.
시간 단위로 말하는 게 좋다.
“비행기로 대충 12시간은 걸릴 것 같은데.”
미국이 원체 넓다 보니, 지역마다 소요 시간이 다르다.
그래서 평균적인 시간으로 말했다.
“12시간……? 그럼 엄청 먼 거 아니에요?”
역시, 시간으로 말하니 금세 알아들었다.
“응. 그 정도로 멀어. 그런 거리를 워프할 수 있어?”
“……안 해 봤어요. 안 될 것 같은데.”
무리도 아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기대도 안 했다.
어린 정다훈이 이 나이부터 9,500km나 되는 거리 워프가 가능하다면.
세계에서 독보적인 워프 헌터가 될 거다.
“그렇군……. 아쉽네.”
“죄송합니다…….”
“아니야, 미안해할 거 없어. 혹시나 싶어서 물은 거야.”
“그런데 미국은 갑자기 왜? 다훈이한테 영상도 말하더니……. 잠깐.”
이지은이 불길한 기운을 감지했다.
“너, 설마……?”
“아무래도 네가 지금 뭐 생각하는지 알 것 같다.”
난 조용히 이지은의 한 손을 덥석 잡고, 내 가슴 위에 올렸다.
“이 안에 너 있니?”
“집어치워라. 이런 순간에도 그러고 싶니? 심각한 얘기 중에 이러면 오히려 화만 나.”
“그렇게까지 심각한 거 아니라서 분위기 풀어 보려고 그런 거야.”
“그나저나 미국은 왜 가려고 하는데?”
아마 내게 친누나가 있었다면 이지은 같은 느낌이었을 거다.
잔소리가 끊이질 않는 게, 딱 친누나와 다름이 없다.
이지은과 동갑이라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다들 알아야겠지.”
난 드래곤과 흑염룡에게 들은 것들을.
부원들 전부에게 설명했다.
그들의 반응은 다 똑같았다.
충격을 받았는지, 선뜻 나서서 먼저 입을 연 사람이 없었다.
한 대 맞은 것같이 멍하다.
그 말이 딱 맞는 상황이다.
“그러니까 정령이 위태로워서 반격의 수단으로 그런 거란 말이죠?”
신보미가 물었다.
“응. 그래서 정황도 알아보면서, 내가 데리고 오려고.”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미국으로 못 가지 않나?”
이번엔 이지은이 말했다.
역시, 내가 걱정하는 것을 그대로 말하는 중이다.
“나도 그게 제일 문제야. 한국 협회의 출국 승인은 받지 않아도 되는데. 문제는 미국 협회의 입국 승인을 받아야 하잖아.”
“안 해줄 텐데. 미국이 원래 입국 승인 깐깐하기로 유명해. 던전이 완전 정복되기 전에, 나도 미국에서 의뢰가 들어와서 겨우 갔지, 그전에는 매번 입국 거절당했어.”
“특별한 사유 없이?”
“응.”
“그런데 네가 언제 미국을 가려고 했었어? 여행이라도 가려고?”
내 부원이 되기 전까진 강만식의 감시를 받으며 살았던 이지은이다.
그런 이지은이 느긋하게 미국 여행을 갈 리도 없었으니 문득 궁금했다.
“아니. 당연히 강만식이 넣었지. 감지 헌터가 던전 찾아줄 테니 보수만 조금 챙겨주면 된다는 조건으로.”
“그거 때문에 거절당한 거 아니야?”
내겐 특별한 사유 없이 거절했다고 했지만, 정확한 사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남의 나라 헌터가 자기네들 땅에 와서 던전을 찾아주고.
돈을 달라는데 달가워 보일 리가 없으니까.
“아니야. 나 같은 감지 능력자 귀해. 지금 세상이야 던전이 완전히 정복돼서 E급으로 강등된 거지, 감지 능력 하나로 S급까지 받은 나야. 미국도 제대로 된 감지 능력자가 없어서 던전 자국 파악을 못 하고 있었어. 갑자기 거절하다가 오히려 미국에서 먼저 오라고 의뢰한 것만 봐도 그렇잖아?”
듣고 보니 그렇다.
처음엔 거절하다가 미국이 필요하니까 오라고 한 것만 봐도.
확실히 미국은 타국 헌터에게 상당히 폐쇄적인 뜻이다.
“그럼 미국 협회가 승인할 수밖에 없는 방법. 뭐 없을까?”
“너 어차피 입국 신청서에 방문 지역 네바다주로 적을 거잖아?”
“그렇지.”
SF 길드 직원 생활을 하던 당시.
나도 헌터의 출국, 입국 신청서를 대신 작성해 본 적이 있어서 그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안다.
특히 헌터가 타국으로 향할 때에는 정확한 방문 지역과 기간을 명시해야 한다.
만일 이를 어길 시, 그에 해당하는 배상금을 물어야 하고, 헌터는 징계를 받게 된다.
그리고 해외에서도 외국인 헌터에 대한 감시가 살벌하다.
이 역시 신동원에게 들었던.
헌터들끼리 보이지 않는 사이버 전쟁을 치르면서 생긴 결과이리라.
따라서 내가 방문 지역을 속이고, 네바다주로 향하는 일도 불가능하다.
결국엔 남는 방법은 대표적으로 두 가지.
미국으로 워프시킬 수 있는 능력자를 찾던가.
아니면 미국이 나를 부르게 만들던가.
“역시, 이거밖에 없네. 지은아. 내가 너한테 줬던 초월석. 아직도 가지고 있지?”
이지은과 처음에 만나고, 한국 헌터계의 생태계를 확실히 안 뒤.
이지은의 상가 건물을 받으면서 줬던 초월석을 말하는 거다.
“당연하지. 어차피 쓸 곳도 없는데.”
“그걸 이번에 쓰면 어떨까?”
“그 초월석으로 미국이 먼저 움직일까……?”
내 생각에는 그렇다.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사용하려고?”
“뻔하지. 초월석 사진이랑 동영상 첨부해서 이거 줄 테니까 거기 문제의 지역을 방문하게 해달라고 해야지.”
솔직히 나도 말하면서 이게 정녕 맞는 방법인가 싶었다.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 방법이네. 미국 협회가 그걸 보면 장난 메일로 여길 거 같은데.”
“그래도 궁금하니까 답장은 하지 않을까? 미국도 초월석 귀한 상태니까.”
“그건 또 그렇긴 한데…….”
아무리 우리끼리 갖은 추측을 해도, 답을 내놓을 수 없다.
“아오, 몰라! 그냥 저질러 보자!”
이럴 때 답은 하나.
그냥 해 보면 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부딪쳐 보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그게 제일 확실한 방법이긴 하지만…… 왜 자꾸 불안하지.”
이지은도 내 결단에 부정은 하지 않았지만, 개인적인 고민은 있어 보였다.
역시, 무엇을 고민하는 중인지는 모른다.
“일단 초월석 가지고 올게.”
뾰족한 수가 없으니 시도할 수 있는 것 전부 시도하는 게 정답이다.
“알았어.”
이지은은 그렇게 초월석을 가지러 갔고, 난 휴대폰을 꺼냈다.
“흐음…… 그러고 보니 이거…….”
사진첩에 있는 동영상.
43개의 게이트를 담은 그 동영상이 눈에 갔다.
“이것도 같이 보내야 하나……?”
그런 고민도 들었다.
과연 초월석 사진과 43개의 게이트를 담은 이 동영상을 첨부하면 미국이 움직일까?
세계 헌터력 강대국인 그 미국이?
역시, 이것도 일단 해 보는 게 좋을 듯이 보였다.
계획에 없던 일이지만, 정령을 구출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최선이다.
이지은은 빠른 시간 안에 돌아왔다.
한 손에는 초월석을 들고서.
난 건네받은 초월석의 사진을 몇 장 찍어뒀다.
“그런데. 지은아, 너 영어 잘하냐?”
“……못하는데? 영어는 왜?”
“그야 미국 협회로 우리가 직접 보내야 하니까. 한국 협회 통하는 거 말고.”
그렇기에 우리가 직접 영문으로 작성해야 했다.
엄연히 미국 협회로 보내는 공문인데 번역기를 사용하는 멍청한 짓은 할 수 없다.
이지은은 영어를 못하니 패스.
신보미를 쳐다보자마자, 반응이 곧장 나왔다.
“전 국어도 못 해요.”
단칼에 기대도 하지 말라는 답이다.
“한국인이 국어 못하는 게 말이냐……. 그냥 모른다고 하면 되지. 꼭 말을 서운하게 해.”
“아무튼요. 전 몰라요.”
혹시나 싶어 정다혜를 쳐다보자, 정다혜는 고개를 저었다.
“에휴…….”
그래봤자 남은 건 정다훈.
난 정다훈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전 왜 안 물어봐요……?”
“너 모르잖아.”
“너무해요. 그래도 물어는 봐주지. 너무 무시하시네……. 그리고 저 영어 할 줄 알거든요! nice to meet you! hello! welcom!”
아는 영어 문장 총출동이다.
“그래. 장하다. 똑똑하네, 다훈이.”
적당히 그렇게 답하며 착잡한 이 마음을 어찌 해소해야 할지 모를 때.
“통역사 모집해 볼까?”
이지은이 물었다.
“아니야. 통역사 모집하면 결국엔 우리 게이트 있는 것도 알려주게 되는 꼴인데. 그건 피해야지. 비밀리에 진행해야 하니까.”
“그러네…….”
“후우~”
한숨 깊게 내뱉은 순간.
머리가 번쩍였다.
“……아, 잠깐만. 영어 잘하는 사람 있었잖아?”
난 곧장 휴대폰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