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가호 (1)
[수호신님! 고작 이런 일에 가호라니요! 너무 쉽게 넘겨주시는 게 아닙니까?]
오호라. 반응 봐라?
흑염룡이 저런 반응이면, 그 가호란 게 내 예상대로 대단한 무언가란 뜻은 확실하다.
“가호란 게 뭔데. 그래서.”
궁금한 건 못 참지.
가호의 정체부터 파악했다.
[내겐 네 가지의 가호가 있다. 각각 비늘, 날개, 발톱, 정신이라고 불리지. 수행자, 네가 가진 능력과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면 돼.]
난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럼 결국엔 가호 하나를 내게 준다고 한 건. 능력 하나가 늘어나는 것밖에 안 되는 거 아냐?”
[수행자. 네가 이해하기 쉽게 능력이라고 설명했을 뿐이지,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초월석에 저장하는 형태인 능력과 동일선상에 두지 말라는 경고처럼 느껴졌다.
“그러니까 뭐가 어떻게 다른 건데?”
[간략히 설명하면, 가호를 사용하게 되면 너와 내가 융화된다. 정해진 시간 동안 넌 내가 되는 것이지.]
그 말은 시오스의 수호신이라 불리는, 드래곤이 된다는 뜻이다.
이렇게만 보면 상당히 대단한 능력 같긴 하지만, 역시 정확한 능력의 위력을 알 수 없기에 와닿지는 않았다.
[수호신님! 가호는 딱 한 명에게만 줄 수 있잖아요……! 시오스 역사에서도 수호신님의 가호를 받은 정령이 없는데 어째서…….]
하지만 여전히 흑염룡은 드래곤을 만류하는 모습이다.
미국에서 일어난 일은 생명에 위협을 느낀 시오스 정령 하나가 벌인 일.
현재 위태로운 상태인 정령을 데리고 오면 가호를 준다고 드래곤이 말했다.
따라서 흑염룡 입장에서도 미국에 있는 정령을 데리고 오는 일을 누구보다도 바랄 텐데도.
가호를 주겠단 일을 극구 만류하는 걸 보면, 정말 시오스 사이에선 진귀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난 드래곤의 설명 중에서 여전히 걸리는 게 있었다.
“일정 시간? 어째 느낌이 가호를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절대 늘릴 수 없다는 것 같이 들리네.”
처음 내가 능력을 가졌을 때도 지속 시간은 상당히 짧았다.
은신, 염력. 전부 제약이 많은 상태였다.
그러나 지속적인 연습과 실전에서도 사용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뒀으나.
지금 드래곤의 말을 들어 보니 가호에는 그런 긍정적인 요소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
드래곤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럼…… 별로 대단한 것처럼 느껴지진 않는데?”
진심 반, 농담 반이다.
무려 시오스의 수호자인 드래곤의 가호인데 어떻게 능력보다 뛰어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다만 가호를 얻기 위해서는 미국으로 직접 가서 정령을 데려와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결정을 일부러 미루는 거다.
[시오스는 너희 인간들보다 훨씬 튼튼한 몸을 가졌다. 그런 시오스도 소화를 할 수 없는 가호인데, 하물며 인간인 네가 억지로 가호의 지속 시간을 늘렸다간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
강력하긴 하나, 역시 인간이라는 한계에 부딪히는 중이다.
“그럼 그 가호. 안 받을 테니까 정령은 데리고 오지 않아도 되지? 어차피 난 가호가 없어도 중2병이라는 가오는 있거든.”
[말장난하지 마라. 그리고 가호를 어째서 거부하는 거지?]
“시오스들도 소화할 수 없다는 건. 드래곤 네가 여태 시오스에게 가호를 주지 않았던 이유 아니야?”
[그렇다.]
“그런 시오스보다 몸이 약한 나인데 그 가호를 받아봤자 위력이 제대로 나오겠냐고. 차라리 내가 가진 능력들을 더 성장시키는 게 낫지.”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수호신님. 가호까지 주시려고 하는 건…… 너무 성급한 선택이라고 보여집니다.]
[아니다. 수행자 저 녀석에겐 가호가 필요할 거다.]
조심스럽게 만류하는 흑염룡과 달리, 드래곤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
“나한테 가호가 필요하다니? 왜?”
시오스에게 한 번도 준 적이 없다는 가호.
분명 시오스에게 준다고 하더라도, 줄 후보는 정해져 있을 거다.
가장 중요하거나 강한 시오스에게 주는 게 마땅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드래곤의 가호를 받을 수 있었던 후보는 자연스럽게 정령들의 왕인 원로 정령.
즉, 흑염룡의 할머니인 레베카라는 정령이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모르나, 흑염룡은 지금 레베카를 대신하여 원로직을 임시로 수행하는 중으로 보였다.
전에 게이트에서 내게 도움을 줬던 거북이 몬스터.
그 몬스터가 흑염룡을 극진히 대접하는 것만 봐도 그랬으니까.
정령의 왕들도 받지 못한 가호를, 그들의 입장에선 한낱 미개하다고 볼 수 있는 인간인 내겐 필요할 거란 확신이 당최 이해되지 않았다.
[넌 시오스나 일반 인간과는 다른 것을 가지고 있잖나? 네 능력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다.]
“염력이랑 만물을 말하는 거냐?”
[그렇다. 내 가호도 그 능력들과 결합하게 되면 완전체가 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내 가호도 시오스들을 지키기 위해 사용해야 했던 것. 크루즈의 등장 전까지 시오스는 늘 평화로웠으니 가호를 줄 일도 없었던 것이다.]
단순히 강한 시오스가 없어서 주지 못했던 이유만 있던 게 아니란 뜻이다.
“크루즈가 등장하고 나서는?”
[당연히 그땐 주려고 했으나, 원로 정령인 레베카는 이미 너무 늙어 노쇠해진 상태. 그녀의 후계자였던 친딸은 크루즈에 의해 희생되었고, 자연스럽게 원로 정령은 너를 주인으로 섬긴 린느가 되었다.]
역시, 내가 예상한 대로.
흑염룡의 부모님은 크루즈에 의해 희생된 것이 정확히 맞았다.
[그러나 린느는 너무 어렸지. 오히려 준비되지 않은 원로였기에 줄 수 없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지.]
“잠깐, 정확히 크루즈들과의 전쟁을 얼마나 오랫동안 한 거야?”
흑염룡이 지금도 어리다는 게 이상했기 때문이다.
인류에게 던전이란 존재가 알려지고, 헌터라는 초인의 경지에 이른 새로운 인류가 등장하게 된 인류 빅뱅은 약 50년 전에 시작.
던전이 인간계에 생겨난 이유가 시오스들이 넘어오면서 생긴 것이니, 약 50년 전에 넘어왔다는 것이 옳다.
게다가 오랜 전쟁 끝에 인간계로 잠시 피신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난 시오스와 크루즈의 전쟁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이미 50년이란 시간만 봐도 흑염룡을 결코 어리다고 볼 수 없었지만, 드래곤의 답은 너무 단호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흑염룡. 너 정확히 몇 살이냐?”
못해도 50년 이상은 살았다.
그러나 지금 흑염룡의 얼굴은 주름 하나 없는 말끔한 피부.
몸체가 작은 건 정령이라서 그렇지, 인간으로 바꿔 보면 고등학생 정도다.
드래곤에게 어리단 말을 듣고 나니까 정말 흑염룡이 고등학생으로 보일 정도로 어렸다.
“너 15년 전이랑 달라진 게 하나도 없네?”
심지어 저 얼굴은.
나와의 첫 만남이었던 15년 전과 동일했다.
정말 시간이 멈춘 것처럼, 아예 성장을 하지 않는 듯이 보였다.
[나? 18살.]
설마. 정말로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것 같긴 하지만…….
실제 나이가 그랬을 줄은 정말 몰랐다.
“말이 안 되잖아? 인류 빅뱅이 시작된 건 약 50년 전이라고. 그 인류 빅뱅이 시오스가 인간계로 넘어오면서 시작된 거 아니야?”
[맞지.]
“그런데 네가 어떻게 18살이냐고. 넌 크루즈와 전쟁 중이었잖아? 인류 빅뱅보다 훨씬 더 시작된 크루즈와의 전쟁. 그 전쟁을 직접 겪은 거 아니야?”
[응, 맞는데?]
“그럼 50살보다 훨씬 많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아~ 그거. 정령들은 시간의 흐름이 달라. 인간들의 365일, 24시간의 개념이 아니야.]
“무슨 개념이 있는데?”
[그냥 쉽게 생각하면, 인간계보다 시간이 10배 정도 느려.]
느리다는 뜻은 우리 인간은 24시간이 하루라는 시간의 기준이지만.
시오스들이 있는 이세계는 240시간이 하루란 뜻.
그리고 365일이 1년이 아닌, 10배인 3,650일이 1년이란 뜻이 된다.
“인간의 시간으로 따지면 너는……?”
[180살이겠지? 이건 너무 복잡하니까 그냥 내 기준에서만 말할게. 크루즈와 전쟁을 시작한 건 내가 7살 때. 그리고 내 엄마가 돌아가신 건 내가 9살 때. 키스톤을 인간계로 퍼트리기 시작한 건 13살 때. 이러면 이해가 되나?]
재빠르게 계산을 해 봤다.
흑염룡이 지금 18살이라고 했으니까 인간계로 초월석을 보관한 던전을 퍼트리기 시작한 게 13살 때니 5년 전.
인간의 시간으로는 50년 전이다.
딱 맞다.
그리고 크루즈와의 전쟁은 흑염룡의 나이로 11년 전.
즉, 내 시간으로는 110년 전에 시작됐다.
정말 오랜 기간 전쟁을 지속한 것은 맞았다.
“그럼 네가 나를 처음 만났을 때가 15년 전이니까…….”
[네 시간으론 그렇지. 내 시간으로는 1년 반 전이라고 봐야겠지? 네가 날 봉인한다고 했을 때, 난 정령계로 돌아갔으니까.]
[이제 궁금한 건 풀렸나? 수행자.]
드래곤이 물었다.
“대충은. 아무튼, 그런 이유에서 나한테 가호를 주려고 한다는 거잖아? 미국에 있는 정령을 데리고 오면.”
[그렇다. 내 가호를 받으려면 최소 25살 이상은 되어야 하는데, 7년이나 남았다. 그때까지 기다릴 순 없어.]
인간의 시간으로 환산하면 70년이다.
아직 크루즈와의 전쟁이 끝난 것도 아니고, 시오스들은 잠시 인간계로 피신을 온 거라고 했으니.
7년이 지나면 정말 크루즈에게 완전히 점령당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게다가 네가 가진 염력과 만물은 크루즈에게 대항하기 위해 만든 시오스들의 비밀 병기. 그걸 네가 가지고 있으니 내 가호도 너에게 들어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결국, 가호를 주는 궁극적인 이유는 나를 크루즈와 싸우게 하려는 거 아니야?”
이미 흑염룡에게 처음 던전이 가진 의미에 대해서 설명을 들을 때 결심은 했다.
그러나 너무 갑작스러운 게 문제였다.
그리고 결정적인 문제도 존재했다.
[미국에 있는 정령을 데리고 오기가 그렇게 싫은 건가?]
드래곤이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물었다.
그 순간.
흑염룡이 나를 노려봤다.
[정말 데려올 생각이 없어?]
“응.”
[…….]
내 답에 흑염룡의 표정이 굳어졌다.
“사람 말끝까지 들어. 내가 당장 미국으로 가도 문제가 많아서 그래. 난 너희들과 달리 정령이 아닌, 인간이라고. 그리고 여긴 인간계야.”
[무슨 문제가 많은데?]
“일단 난 헌터야.”
보통 헌터는 출국도 협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이 양산부를 창설할 당시, 이 규정에서 자유로워진다는 조항이 있어서 한국에서 나가는 건 큰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내가 그 조항을 걸었던 건 단순히 나를 지켜주는 태원 서큐리티와의 계약을 그대로 유효하게 하기 위해 걸었던 것.
내가 해외로 나가는 건 복잡한 절차가 있다.
어쨌든 나는 정식 헌터.
한국 협회의 승인을 받지 않고 나갈 수 있다고 해도.
헌터가 어느 국가를 방문할 땐, 협회가 해당 국가 협회에게 알려야 한다.
헌터 인원, 목적, 랭크 등등. 모든 것을 알리고, 해당 국가의 협회가 승인을 해줘야 한다.
따라서 헌터의 출국엔 두 가지 승인이 있어야 가능한 셈이다.
자국 협회의 출국 허가.
이 승인을 받으면 다음 단계가 방문할 국가 협회의 입국 허가 승인이다.
난 그런 문제들을 설명했다.
미국 협회가 과연 내 방문을 승인할지가 미지수다.
[정다훈의 능력 이용하면 되잖아?]
흑염룡은 별거 아닌 것처럼 답했다.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