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전쟁 선포? (5)
최현민은 강만식의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과연 강만식은 이 사태를 두고 어떤 묘책을 마련했는지, 은근히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저희가 선수 치는 게 어떻습니까? 아끼다가 똥 된다는 말도 있는데.”
“선수를 쳐?”
정확히 의미하는 바를 몰랐다.
강만식의 머릿속에 든, 선수를 친다는 의미가 훤히 그려지지 않았다.
“네. 듣자 하니 최근에 윤도원의 부서도 방문하신 적이 있다면서요?”
“누구한테 들었어? 그건?”
“어차피 협회장님 행보야, 조금만 알아보면 금세 알 수 있지 않습니까. 헌터계의 셀럽인데.”
“뭐, 그렇기야 하지.”
굳이 불법적인 방법까지 손대지 않아도 강만식의 말처럼 쉽게 알아냈을 거다.
더군다나 강만식은 직할 부서인 관리부장.
그런 직급을 가진 녀석이기에 어느 정도 위치가 있는 협회 직원 하나만 붙잡고 물어봐도 쉽게 답해줄 수 있으니까.
헌터계의 셀럽이란 뜻은, 헌터계에서 딱 한 명만 될 수 있는 협회장 자리에 있는 유명인이란 뜻과 마찬가지였다.
유명한 연예인의 공항 패션 같은 것도 쉽게 기사화되는데, 무려 헌터 협회장이란 사람의 동향을 알아내는 것도 강만식 정도 되는 헌터라면 어렵지 않았다.
“그때 혹시 게이트 숫자 보셨어요? 윤도원도 자신만의 공간을 가졌으니 게이트를 꽤 만들어두었겠죠?”
“32개였네.”
“32개……?”
강만식도 정확한 숫자를 듣고는 한껏 놀란 반응이다.
최현민이 윤도원의 부서를 방문했던 날은 무려 2주 전.
2주 전에 32개였다면, 2주가 지난 지금은 얼마나 더 늘어났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지금쯤이면 최소 60개 이상은 있을까요? 1주일 만에 32개였는데, 2주가 더 지났으니까.”
1주일에 평균 30개 정도로 계산한 값이다.
“아마 그렇지 않을까?”
윤도원에게 물어도 알려주지도 않을뿐더러, 속내를 드러내는 초보적인 짓은 할 수 없기에.
저들끼리 추측을 할 뿐이다.
하지만 현실은 윤도원의 부서엔 2주가 지난 지금에도 43개.
기존 게이트에서 고작 11개밖에 늘지 않았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선수를 친다는 게 어떤 의미야? 정확히.”
“3주 전. 협회장님이 윤도원의 신규 부서 창설 합의가 끝나고, 제게 말씀하신 거 있잖아요?”
“아~ 그거?”
협회장과 윤도원의 부서인 양산부와는 직할 관계이긴 하나, 서로 관여할 수 없다는 그 조항.
그것을 강조하며 강만식에게 넌지시 행동 지침을 일러 주기도 했다.
윤도원이 앞으로 만들 게이트를 약탈하건, 어쨌건.
할 수 있는 방법 동원해서 초월석을 몰래 빼내 오는 쪽으로.
이 일이 착실하게 성공할 경우, 최현민은 협회장직을 스스로 내려놓으면서 자연스럽게 윤도원과의 합의는 없던 게 된다.
협회 직할이 아닌, 협회장 직할이기에 한 기관의 장이 바뀌었을 경우, 새로운 협회장과 다시 합의해야 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니까.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될 것이 바로 지금 최현민 앞에 있는 강만식.
최현민은 협회장이란 달콤한 열매를 내려놔야 하기에, 그 열매를 먹을 사람도 자신이 그나마 믿을 수 있으며, 실력도 어느 정도 있는 자여야 한다.
적임자는 강만식밖에 없어서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진짜 최현민의 속내는 달랐다.
강만식에게 협회장 자리를 내주는 것?
그것까지 거짓말은 아니다. 실제로 그럴 생각이었으니까.
그러나 이 계획을 강만식에게 말했을 때, 최현민은 분명히 이렇게 강조했다.
“대신, 내가 그렇게 기반 닦아서 자리 넘겨줬으면. 적어도 내 노후는 책임지겠지.”라고.
그것만 지켜준다면, 얼마든지 협회장직을 순순히 넘겨줄 수 있다는 뉘앙스로 말했고, 강만식은 철석같이 믿었다.
강만식에게도 협회장이란 자리는 가장 탐나는 최고의 자리였으니까.
그러나 실상 최현민은 속으로 강만식이 자신의 노후 따위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이미 최현민이 현직 협회장으로 있을 때.
더군다나 전 세계 던전이 완전 정복되어 초월석 공급이 끊긴 이 시국에.
산유국도 아닌 한국의 어느 공장 부지에서 갑자기 석유가 콸콸 솟듯이, 다량의 초월석을 확보하고 공급한다면?
게이트를 만드는 능력자인 윤도원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는 것은 막을 수 없다.
분명히 던전은 완전 정복이 되었다는 세계 중앙 협회의 선언이 있었기에 전 세계가 그렇게 믿는 중이었으니까.
그 출처를 정확히 밝혀야 확보한 초월석도 제 가치를 잃지 않는다.
그렇기에 윤도원의 노출은 막고 싶어도 막을 수가 없는 상황이 온다.
하지만 최현민은 처음부터 윤도원의 노출까지는 막을 생각이 없었다.
윤도원의 존재를 노출시키되. 자신이 발굴한 것으로 날조하면 그만이니까.
그리고 윤도원이 다수의 게이트를 만들 수 있도록, 협회장이 직접 나서서 도와줬다는 식으로 포장하면.
초월석 공급이 끊긴 세상에서 초월석을 만들어 공급하는 세계의 구원자라는 공로와 명예는 온전히 윤도원만의 것이 될까?
아니다.
윤도원이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준 최현민의 공로도 함께 인정이 되는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최현민이 비록 협회장직을 내려놓았다고 해도, 세계를 위한 노력을 한 위대하고도 혜안 깊은 선구자가 되는 것과 다름이 없는데.
국가 차원에서 그에 대한 보상이 없을까?
아니, 단순히 국가 차원을 넘어, 세계 차원의 보상이 쏟아질 게 불 보듯 뻔했다.
따라서 최현민은 협회장이 된 강만식이 자신의 노후를 책임지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이미 부귀영화의 기반을 만들어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하지만 게이트를 만드는 능력자인 윤도원이.
처음엔 세계 유일의 능력자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미국에서 일어난 일을 보니 어쩌면 유일은 아닐 수 있단 생각이 들어서다.
유일이 될 수 없다면 최초가 되어 그 가치를 높게 받아야 하는 숙제가 생겨났다.
강만식이 이어 말했다.
“제게 협회장직 물려주는 대신, 노후 확실하게 하란 말씀. 늘 잊지 않았거든요.”
“기특하군. 감동이야.”
겉으로는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그래, 나 대신 네가 현장에서 칼을 휘둘러야 나도 그 책임을 회피하지.’
속으로는 악마의 속내를 마음껏 드러냈다.
강만식이 마음을 읽는 능력자도 아니고.
어차피 자신의 생각이 들킬 일 없다는 안도감에서 나온 거만함이었다.
“네. 칼을 휘두를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정훈섭을 이례적으로 교도소에서 빼내어 훈련시킨 결과. 3주 만에 쓸만한 수준은 됐더군요.”
“오호? 그래? 역시, 아직 녹슬지 않았나 보군.”
“B급치고는 상당히 쓸만해요. 솔직히 나이가 있어서 더는 발전할 수 없다고 판단했지만, 의외더군요.”
“어쨌든. 그렇다는 뜻은. 해 버리겠다는 거지? 자네가 말한 선수를 치자는 것과도 연관이 있고?”
미국에서 일어난 일로 인해 세계는 점점, 어딘가에 미처 확인하지 못한 던전이 있을 거라는 여론이 형성되는 중.
하지만 윤도원의 존재를 아는 최현민과 강만식은 미국에도 윤도원과 같은 능력자가 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먼저 초월석 공급을 풀어 버리면, 정말 아끼다가 똥 되는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풀고 최초라는 타이틀이라도 가져와서 초월석에 프리미엄 붙여야죠. 1주일 뒤에 바로 시작할 생각입니다.”
미국이 먼저 풀고, 후에 한국이 풀면 그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비싸게 팔 수 있는 골든 타임을 놓치게 된다는 뜻이었다.
“푸하하하!”
최현민은 호탕하게 웃었다.
비웃음은 절대 아니었다.
“뭐가 그렇게 재밌으세요?”
“아니, 이제 보니 자네 정말 협회장직에 어울리는 사람이라 그렇지. 그런 것까지 생각하다니, 기특한데?”
물론, 이것 역시 강만식을 말로써 조련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지만.
강만식의 온 신경은 오직 협회장 자리에만 있기에, 최현민의 속내까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최현민은 이왕 박차를 가했으니. 추진력 있게 끝까지 가 보자는 생각으로 넌지시 물었다.
“그런 생각이라면 지금 당장 해도 되지 않아? 왜 굳이 1주일을 더 기다리려고 해? 그 1주일 사이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데.”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선 1주일이 한 달보다도 훨씬 더 긴 시간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정훈섭 때문입니다. 쓸만한 수준이지, 수월한 수준은 아니라서요. 그리고 계획도 세워야 하고. 최소 1주일은 더 필요해서입니다.”
“음, 그렇군.”
강만식 쪽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게 작은 추임새만 보였다.
“그런데 정훈섭이 그렇게 순순히 따라? 제 자식들이랑도 싸우게 될 텐데?”
최현민은 이제 이게 궁금했다.
아무리 정훈섭과 그의 자식들이 견원지간과 가깝다고 하더라도.
결국 제 핏줄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가 없는데, 정훈섭은 이를 완전히 등진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부모가 죽으면 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정훈섭이 망나니 부모라고 해도, 여태까지 자식들을 돌 보듯이 보는 게 의아했기 때문이다.
“네. 흔쾌히 수락하던데요? 교도소에서 완전히 석방된다는 것과 제 부원이 된다는 조건을 거니까.”
“허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쯧쯧.”
최현민은 설마 했지만, 정말 정훈섭은 부모 이하.
아니, 인간 이하라는 말이 어울렸다.
“뭐, 어차피 토사구팽당할 운명인데. 써먹을 수 있을 때 써먹어야죠. 정훈섭 건은 크게 신경 쓰지 마십시오.”
“하긴,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는 법이니까.”
극한의 환경인 교도소에서 살다가, 석방된 정훈섭이 청렴하게 살까?
기대할 걸 기대해라.
강만식도 이 순리를 아는 듯했다.
자유를 얻은 정훈섭이 사회에서 활동하면 결국엔.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게 되는 법.
다시 사고를 칠 것이고, 그의 인생 마지막은 결국 도돌이표처럼 돌고 돌아 교도소가 될 것임을 확신하는 눈치였다.
최현민도 정훈섭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거라고 생각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럼. 저질러 버리는 겁니다?”
결의를 다신 강만식의 한 마디였다.
“하지만 자네, 분명히 명심해야 해.”
“어떤걸요?”
“그 일을 하는 순간 평생 윤도원과의 전쟁을 선포하게 되는 거야. 나야 어차피 나중에 협회장직 사임하면 녀석과 부딪칠 일 없지만, 협회장이 되는 자네에게는 피곤한 상황이 많이 일어날 거니까.”
이제 와서 선구안이 대단한 척, 위하는 것처럼 보이는 형식적인 말도 잊지 않았다.
“어차피 그래봤자 협회장은 못 거스르잖아요? 미국에도 같은 능력자가 있으면, 까라면 까야 하고. 결국엔 윤도원도 피지배층이 되는데.”
군인에게 계급이 모든 것이라면.
같은 공인 신분인 헌터에겐 직급이 모든 것이다.
협회장 강만식, 그리고 일개 헌터 윤도원.
적어도 강만식이 협회장으로 있는 한, 윤도원이 지금처럼 앞뒤 사정 안 가리고 날뛸 상황은 없다는 뜻이 된다.
왜냐, 미국에도 같은 능력자가 있다고 믿는 중이기에.
윤도원이 가진 능력이 독보적이지 않게 되니까.
“좋아. 기대하지. 곧 취임사 준비해야겠네?”
“일단은 이게 먼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