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전쟁 선포? (4)
정다혜도 무언가 이상한 기류를 감지했는지, 군말하지 않고 포털을 열었다.
포털을 연 뒤엔.
“언니들! 빨리 들어가요!”
일사불란하게 부원들을 전부 포털 안으로 강제로 집어넣다시피 하며 이 장소에서 벗어났다.
이제 나와 흑염룡만 남았다.
흑염룡은 어느덧, 눈에 초점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가 되었다.
‘이성을 완전히 잃었어.’
인간들이 우릴 저렇게 대하는데 자신도 인간을 주인으로 둘 필요가 없다는 그 말.
그렇다면 내가 본 영상은 시오스와 아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지금 흑염룡의 상태를 보니 정상적으로 대화를 통해 상황을 알아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강제로라도 정신을 차리게 만들어야만 했다.
“흑염룡!”
일부러 소리쳤지만, 역시나 내 목소리는 흑염룡에게 닿지 않았다.
지금은 완전히 이성을 상실한 상태이기에 그런 것으로 보였다.
마치 흑염룡에게는 두 개의 인격이 있는 것 같다.
평소 나와 티격태격하며 지내던 흑염룡을 일반 흑염룡이라고 한다면.
지금은 정말 흑염룡이란 별명 그대로, 흑화한 상태다.
정말 무슨 짓을 저질러도 이상하지 않다.
[우리들은… 인간들에게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으려 했는데 왜 우릴 이렇게 끔찍하게 만드는 거야…….]
알 수 없는 말만 중얼거리는 중이었다.
“흑염룡! 정신 차려!”
영상에서 봤던 그것이 어떤 현상인지.
그리고 흑염룡이 그것을 보고 나서 왜 저렇게 이성을 잃은 상황이 된 건지.
아무것도 모른다.
어떠한 방법으로든,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과정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만 했다.
여전히 초점이 없는 눈동자로 흑염룡은 나를 노려봤다.
마치 공포영화에서 보던 귀신이, 사람을 해하려고 할 때 짓던 표정과 너무나도 똑같았다.
드디어 내 목소리가 닿은 걸까, 이런 상황에 나를 갑자기 노려보는 저 행동이?
그런 기대가 들었지만.
[당장 나를 저기로 안내해.]
기대는 무참히 깨졌다.
흑염룡은 아직도 흑화한 상태에서 벗어날 기미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영상 자막에서 봤던 것처럼.
문제의 장소는 미국 네바다주.
그 위치도 제대로 모른다. 미국을 모르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어디에 있냐고 묻겠냐마는, 모든 주의 이름을 꿰차는 사람도 없을 거다.
난 자막으로 본 네바다주라는 그 주가.
미국에서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인근 주에는 또 어떤 주가 있는지 전혀 모른다.
[으윽……! 끄윽……!]
그런데 흑염룡의 이상행동이 시작됐다.
갑자기 제 머리카락을 부여잡더니, 공중에서 발버둥 치는 것처럼 머리를 세차게 흔드는 것이다.
[이렇게……! 그만하라고 애원했는데! 왜! 녀석이 괴로워하는 소리를 계속 무시한 거야……?]
흑염룡이 말하는 녀석은 또 누구고.
그만하라고 애원했다는 것은 또 뭘까.
아무래도 내가 듣지 못하는 어떤 소리를 실시간으로 듣고 있는 모양이다.
[으으으윽……! 끄윽!!]
흑염룡의 신음은 점점 더 심해졌다.
혼자서 중얼거리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 나는 여전히 영문을 모를 뿐이었다.
흑염룡의 괴로움이 지속되던 순간.
펄럭-!
갑자기 거대하게 변한 흑염룡의 날개가 활짝 펴졌고.
드드드득-!
그 날개의 표면이 변하기 시작했다.
본래 검은 박쥐 날개와 비슷했던 날개는 시멘트가 굳어가는 것처럼, 표면이 회색으로 변하며 단단해지고 있었다.
일개 박쥐가 단단한 피부를 가진 가고일로 진화하는 형태로 보일 정도다.
하지만 난 본능적으로 흑염룡의 변화하는 날개를 보자마자 깨달았다.
‘그냥 놔두면 안 된다……!’
특히 흑염룡의 날개 표면.
내겐 너무나 익숙한 색깔과 질감이다.
바로 게이트의 틀.
그것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지금 흑염룡은 점점 게이트로 변하는 중이다.
그러나 내가 게이트를 만들었던 과정과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
‘쿵!’ 소리가 나며 갑자기 게이트로 변하는 것이 아닌.
점차 흑염룡이 날개부터 게이트로 천천히 변화하는 중이다.
그전에는 갑자기 변하던 것이, 지금은 준비 과정이 눈에 보일 정도가 되었다는 뜻은 무엇일까?
깊게 고민하지 않아도 답은 금세 떠올랐다.
지금 흑염룡이 만들려고 하는 게이트는 전보다 훨씬 더 큰 위력을 가졌을 것.
게다가 처음 영상을 접하고 나서, 달라진 흑염룡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내 부서가 있는 이곳 또한 화면 속에 나온 것처럼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말을.
단순한 협박이 아닌, 실천하는 중이다.
‘흑염룡은 게다가 정령의 왕. 못할 것도 없어.’
저렇게 이성도 잃을 정도로 분노한 상태라면, 평소 오글거리게 해서 만들었던 게이트보다 훨씬 더 위력이 클 것이다.
게이트의 위력이 크다는 것은, 곧.
안에 든 몬스터가 가진 힘도 거대하다는 것.
이대로 놔뒀다간 이 장소도 레드뷰 영상에서 나온 미국의 상황과 똑같이 될 거다.
‘최소한 흑염룡을 이성이라도 찾게 만들어야 해.’
그럴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힘으로 굴복시키는 방법?
잠깐만 생각해도 이건 절대 정답이 아니란 걸 알았다.
가뜩이나 분노한 상태인데, 그런 흑염룡에게 능력을 이용해 굴복시킬 수 있는 방법은 결코 확실한 수단이 되지 못한다.
사람의 경우에도 이성을 잃을 정도로 잔뜩 화가 난 상태가 폭력적으로 변할 때.
똑같은 폭력으로 맞서면 결과는 어떻던가?
서로 사지 중 어디 한 곳은 부러지거나 치아 몇 개도 날아갈 정도로 처절한 개싸움밖에 안 된다.
따라서 난 그런 강압적인 방법보다도 훨씬 평화적이며 확실한 방법을 생각해 내야만 했다.
흑염룡의 이성을 되찾게 할 수 있는 평화적이면서도 확실한 방법.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이룰 수도 없고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됐을 때.
‘……그게 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확실한 게 떠올랐다.
‘드래곤. 네가 나한테 말을 걸었던 것처럼. 나도 너를 향해 말을 걸 수 있는 거. 맞지?’
지금 상황에서는 기댈 수 있는 게 시오스들의 수호신, 드래곤밖에 없다.
주변에 다른 눈들이 있을 때, 흑염룡에게 정신으로 대화하는 것처럼.
내 안에 드래곤이 있다고 생각하며 속으로 드래곤을 불렀을 때.
[무슨 일이지?]
다행히 드래곤은 내 질문에 곧장 답했다.
그러니 나도 드래곤에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은 분명했다.
‘도와줘. 흑염룡이 미쳐 날뛰려고 해.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흑염룡이라. 누굴 말하는 거지? 아무리 너를 주인으로 섬겼다고 한들. 난 시오스들의 수호신이다. 나에게 말할 땐 너만의 용어가 아닌 공식적인 용어로 말해라.]
‘…….’
이런 상황에 이런 걸 따지는 게 못내 짜증이 나긴 했지만.
드래곤의 말은 틀린 게 하나 없다.
엄연히 정령들의 신분으로만 치면 난 드래곤 밑에 있는 것도 맞으니까.
‘린느. 시오스들의 왕.’
[나를 그쪽으로 불러 봐라. 나도 듣고는 있었으나,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으니까.]
드래곤의 답을 듣고 난 곧장 드래곤을 이곳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미 한번 해 봐서 어렵지 않다.
더스티가 있던 던전에서 불렀던 것처럼, 그대로 재현했다.
펄럭!
그러자 내 뒤에는 작은 포털형 게이트가 생성되었고.
드래곤의 거대한 날개가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이 모습을 정면으로 보고 있자면, 내 등에 날개가 달린 것과 같이 보일 거다.
[…….]
동시에 흑염룡의 표정도 변했다.
[시오스의 지도자여.]
드래곤의 목소리가 들렸고.
이젠 드래곤의 얼굴이 내 머리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대가 본 것을 내게 보고하라.]
드래곤이 명했다.
***
협회장실.
강만식이 간만에 최현민을 찾았다.
강만식은 최현민에게 한 영상을 보여줬다.
미국 네바다주에서 갑자기 정체불명의 몬스터가 나타났고, 그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투입된 헌터 대부분이 사망했다는 소식이다.
영상을 보고 난 뒤, 최현민의 반응은 충격적으로 보였다.
“이게 뭐야……? 언제부터 올라온 거야?”
“몇 시간 안 됐습니다. 그런데 이 동영상의 존재가 알려지자마자 거기 밑에 조회수 보시면.”
“……120만?”
몇 시간 되지 않았는데 120만이 넘는 조회수가 얼마나 높은 수치인지는 요즘 세대의 문화와 친하지 않은 최현민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120만이 뭐? 우리나라 인구 4,000만으로 잡으면, 아직은 소수만 아는 사실 아닌가?”
“아니요. 몇 시간 되지 않았는데 120만이면. 앞으로 24시간 지났을 때, 전국민을 넘어 전세계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말이죠, 협회장님. 제가 온 게 이것 때문이기도 한데요.”
“흐음…….”
최현민은 영상을 계속 지켜봤다.
영상이 원체 짧기에 그 속에서 활개하는 몬스터의 모습만 얼핏 보일 뿐, 구체적인 특징이나.
문제의 장소가 정확히 어딘지.
그 무엇도 알 수 없었다.
“제가 그 영상을 보면서 의심 하나가 생겼어요.”
“의심? 어떤 의심?”
“이 세상에는 윤도원 같은 능력자가 한 명만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이 들던데요.”
순간, 최현민의 동공도 흔들렸다.
그래, 강만식의 말이 이번에는 무조건 옳았다.
던전은 틀림없이 완전 정복된 상태이며.
이것은 세계 중앙 협회에서도 공인한 사실이기에 거짓은 아니다.
아니, 애초에 잘못되었을 일도 없다.
세계 중앙 협회라는 곳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기관이 아닌, 모든 국가의 헌터 협회가 절대적으로 따르는, 공신력 있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와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상당수의 헌터들을 저승길로 보낸 몬스터의 존재.
진압에 투입된 미국 헌터들의 평균 랭크는 영상에는 설명되지 않아 확정할 순 없으니 상당수가 희생된 만큼 몬스터도 강력하단 뜻이 된다.
그리고 몬스터가 강력하단 뜻은 곧 최상급 초월석을 보유한 던전이라는 뜻.
“미국에서도 윤도원 같은 능력자가 있는 게 아닐까. 이런 합리적인 의심이 강하게 드는데요.”
“그럴…… 수 있지.”
오직 한국에만 있다고 믿었던, 던전 완전 정복 시대에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능력자.
그리고 영상으로 보니, 윤도원보다 그 능력의 정도가 더 강한 것은 확실했다.
적어도 윤도원이 만든 게이트를 정복하던 중에 희생자가 생기는 일은 없었으니까.
“그래서 말입니다. 저 사태가 일어난 것도 윤도원 같은 능력자는 이미 그쪽 협회랑 협력하는 중이고, 만들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게이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초월석을 얻기 위해 레이드를 진행하던 중, 예상을 뛰어넘는 강한 몬스터의 등장 때문에 은폐하던 사실이 드러났다. 이렇게 보이는데, 어떠세요?”
정황으로 봤을 때, 최현민도 그 사실에 동의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미국에서도 이미 비밀리에 초월석 물량을 확보해 둔 상태고, 값어치를 몇십 배는 부풀려서 세계 상대로 장사를 할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저희는 완전히 죽 쒀서 개 주는 꼴인 것 같은데요.”
이미 윤도원이 만든 게이트를 어떻게 약탈하고, 그 속에 있는 초월석을 전부 협회에 귀속시킬지를 고민하던 때였다.
심지어 최현민이 최근에 직접 파악한 게이트의 숫자는 무려 32개.
윤도원이 조금 더 많은 게이트를 만들길 기다렸다가, 다량의 초월석을 확보하고.
그것을 세계 시장에 풀 계획을 가진 최현민에게는 치명타다.
미국에도 윤도원과 같은 능력자가 있고, 차곡차곡 모은 초월석을 풀어 버리면, 후에 한국 협회에서 풀 초월석은 희소성이 상당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건 안 되지! 우리가 원조여야지! 하~ 나 참. 미국에도 이런 능력자가 있을 줄이야. 하긴, 헌터 능력이란 게 한 명만 가진 능력이란 법은 없으니 그걸 의심했어야 하는데.”
그들은 조바심에 이런 얼토당토않은 오해를 하고 말았다.
“그래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