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전쟁 선포? (3)
미국 네바다주의 한 군사 비밀기지.
보안을 철저히 유지한 채로, 그들은 오늘도 여전히 실험 중이다.
파란색 액체가 가득 담긴 캡슐.
아지랑이와 같이 희미한 물체가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라진 상태다.
원체 집중하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았던 그 아지랑이는 이제는 정말 모든 집중을 다 해도 아예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흐음…… 왜 그게 안 보이지?”
갑작스러운 현상에 장소에 모인 연구원들은 모두 당혹감에 휩싸였다.
그중에서도 이 연구의 책임을 맡고 있는 팀장이 가장 비상이다.
연구 결과, 현재 저 캡슐 안에는 존재를 정확히 규정할 수 없는 어떠한 생명체가 사는 것은 확실했다.
이전에는 ‘그것’의 생체 반응이 없었기에, 정확히 규정할 방법을 몰랐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새로운 형태의 생명체’라고 규정한 뒤, 실험을 진행 중이다.
생명체라고 확신할 수 있었던 것도.
전류를 가할 때마다 미세하게 들리는 이명 때문이다.
연구원들은 지금까지 캡슐을 통한 전류 방출을 단 한시도 멈추지 않았다.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캡슐로 보내는 전류의 양이 더욱 강하면 강할수록, 초월석이 가진 에너지와 비슷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그 에너지를 차곡차곡 모아, 이미 수명이 다한 초월석에 입히는 실험까지 진행됐다.
[……린느님, 이젠… 한계입니다…….]
하지만 연구원들이 절대 알 수 없었던 하나의 사실.
바로 캡슐 안에는 시오스의 정령이자 대정령 린느의 부하인 오르문이란 정령이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오르문, 그가 갇힌 캡슐에 충격을 가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오르문이 받는다.
하지만 문제는 인간들의 기술로 만들어낸 전류는 그에게 생명에 지장을 줄 정도의 무기가 아니란 것.
평소 인간에게 이 정도 양의 전류를 방출하게 되면 1초도 걸리지 않아 감전사에 이르고, 몸체가 터질 수도 있지만.
이세계의 생물인 정령의 몸엔 생채기 하나 없었다.
그런데도 오르문이 한계라고 중얼거린 이유는.
결국, 전류가 그의 정신을 서서히 망가트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몸에는 피해가 없다고 해도, 전류로 인해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다가 결국, 정신이 망가지기 시작한 것.
오르문은 벌써 얼마나 오래 이곳에 갇혀 있었던가?
이미 이성을 제대로 부여잡을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정신은 완전히 다른 세상에 가 있었다.
치지지지지직-!
[끄흑……!]
다시 한번 강한 전류가 오르문의 전신을 휘감을 때.
뚜둑!
혼신의 힘을 다해 부여잡던 그의 이성이 완전히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린느…님…… 죄송…….]
그는 끝내 마지막 말을 장식하지 못한 채, 몸체가 변하고 말았다.
쿵!
오르문도 결국엔 게이트를 열 수 있는 정령.
그러나 윤도원 옆에 있는 흑염룡과 달리 그는 이성이 완전히 뒤틀리면서, 정상적이지 않은 게이트를 만든 것이다.
“오오……! 다들 저것 좀 봐요!”
반면, 오르문이 게이트로 변하면서 일어나는 현상을 이곳 기지에 있는 모두가 목격했다.
거대한 푸른 액체가 든 캡슐에 게이트처럼, 문틀이 생기고.
그 속이 포털 형식으로 변한 것이다.
“……게이트인가?!”
연구진들은 금세 축제의 분위기로 바뀌었다.
갑작스럽게 이곳에 게이트가 생긴 것이 못내 이상하긴 했지만, 어쨌든 의문의 실험체를 가둔 캡슐은 명백하게 게이트로 변했다.
그러나 그 순간.
-끄르르르르르.
짐승과 곤충의 울음소리가 정확히 반씩 섞인 것 같은 괴상한 소리.
“뭐야… 이건?”
연구실에 있는 연구진들은 일동 당황했다.
그리고 게이트로 변한 캡슐 사이에서 뻗어 나오는 괴상한 발톱.
“저… 저거…! 몬스터 아니야?!”
분명하게 몬스터의 발톱이다.
그러나 정확히 어떤 종류의 몬스터인지, 이 장소에 있는 자들 중에서 누구 하나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이들도 게이트와 초월석을 연구하던 자들이기에, 헌터가 아니더라도 몬스터의 유형쯤은 자체적으로 제작한 백과사전이 있어 전부 숙지를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지금 눈앞에서 완전히 처음 보는 형태의 몬스터가 나타난 것이다.
발톱 하나가 나룻배와 비슷한 크기가 되며 무엇보다 검은색이다.
얼핏 보면 거대한 거북이의 발이라고 볼 수 있지만, 어딘가 달랐다.
“어서……! 주둔 중인 헌터 불러!”
연구팀장이 소리쳤고, 연구진들은 일제히 각자의 인터폰을 들며 다급하게 S.O.S를 요청했다.
게이트를 연구하는 곳이니만큼, 연구소에 주둔하며 연구진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미국의 헌터들이 있었다.
헌터들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속전속결로 문제의 장소에 도착했고.
연구진들이 헌터의 얼굴을 보며 ‘살았다.’라고 안도한 순간.
푸슛-!
푸부북-!
여기저기에서 찔리고 찢기는 소리가 나며, 연구실은 한순간에 핏빛 세상이 드리웠다.
한 연구진의 발에 무언가가 데굴데굴 굴러 자신의 발을 툭 쳤다.
“흐익……!”
다름 아닌, 이곳의 상황을 진압하러 온 헌터 중 한 명이 몸이 없는 채로 목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순식간에 연구실은 피 냄새를 동반한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천장도 뚫리며, 지하에 있던 연구실에 햇빛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
이지은이 내 손목까지 붙잡고 끌고 가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서 이렇게 다급하고 초조한 행동을 한 번도 보인 적 없던 그녀가.
이렇게까지 하니, 괜히 불안해졌다.
“왜, 뭔데……? 말이라도 하면서 갈 수 있잖아?”
“설명하기 힘들어. 직접 봐.”
그렇게 이지은에 의해 이끌려 온 곳은 그녀의 컴퓨터.
이지은의 컴퓨터 모니터에는 유명한 동영상 콘텐츠 사이트인 ‘레드뷰’가 띄워진 상태다.
이지은은 레드뷰를 통해 세계 뉴스를 보던 중이었다.
다만, 생방송 뉴스가 아닌 이미 지난 방송의 뉴스다.
국내 뉴스는 아니었다.
해외 뉴스 원본에 한국어 자막을 입힌 영상이었다.
아무래도 누군가가 며칠 전이나 혹은 바로 어제 일어난 일을 자막 작업을 하느라 이제야 올린 것 같았다.
화면에서는 거대한 거북이 형태의 몬스터가 인간 사회에서 날뛰는 중이었다.
거대한 거북이 형태의 몬스터는 심지어 외형이 전부 검정색과 녹색으로 뒤섞였다.
마치 피부 전체가 썩어 여기저기에 곰팡이라도 핀 것만 같았다.
-미국 네바다주에서 몬스터가 등장해……!
-던전 완전 정복은 거짓된 정보?
-몬스터가 등장했단 것은 아직 던전이 남아 있단 뜻. 초월석이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야…….
“흐……흑염룡…… 이거…….”
[…….]
거북이 형태의 몬스터.
내게 너무 익숙하다.
던전에서 이미 한 번 화면 속에 있는 검은 거북이와 상당히 닮은 거북이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으니까.
그런데 지금 화면 속에 있는 거북이의 형체는 너무나 이상하다.
시오스들의 몬스터들인 그 거북이와는 크기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컸으며, 무엇보다 피부색이 너무 이질적이었기 때문이다.
검정과 녹색이 섞인 것과 기괴한 외형을 보자니 난 딱 한 종류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바로 크루즈.
더스티의 몸에는 녹색이란 게 없었지만, 그래도 화면 속에 보이는 지금 저 거북이와 상당히 유사한 형태였다.
“흑염룡?”
그런데 흑염룡은 내가 불렀는데도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상하다고 여기고, 흑염룡을 돌아봤을 때.
“……너 왜 그래?”
처음 보는 흑염룡의 표정이다.
몸을 정말 심할 정도로 떠는 중이다.
저렇게 떠는 것. 본 적이야 있다.
크루즈인 더스티를 처음 봤을 때.
하지만 지금 흑염룡이 떠는 건, 그때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당시 흑염룡은 두려움의 떨림이었다면.
지금은 명백히 분노의 떨림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눈에 힘을 바짝 준 상태로 화면 속을 노려보는 중이다.
심지어는 호흡도 거칠다.
얼굴이 점점 빨갛게 달아오르기까지. 확실히 내가 처음 보는 흑염룡의 상태다.
“야……! 흑염룡! 정신 차려 봐!”
본능적으로 흑염룡을 진정시켜야만 한다는 생각에.
흑염룡의 양쪽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일부러 세게 흔드는 중임에도 흑염룡은 시선을 모니터에서 떼질 못했다.
화면 속에서 일어난 일이 자신과 무슨 연관이 있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 얼마나 큰 충격을 받은 것인지.
눈도 깜빡거리지 않고, 말도 하지 못할 정도로 분노한 상태다.
흑염룡은 꼭 오글거릴 때만 게이트를 여는 게 아니다.
감정이 요동쳤을 때.
대표적으로 한없이 우울하거나, 아니면 자신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분노에 끓었을 때, 게이트로 변한다.
지금 흑염룡의 상태는 후자에 해당한다.
누가 보더라도 자신의 행동을 쉽게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분노한 상태.
일단 진정시켜야 했다.
분명히 흑염룡이 예전에 내게 말한 적이 있었다.
자신이 화가 나서 게이트를 열게 될 경우, 드래곤이 게이트에서 튀어나올 것이며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 것이라는 그 귀여웠던 협박.
당시엔 그저 귀엽게 협박하는 줄만 알았지만, 지금 상태를 보니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정말 그렇게 하고도 남을 거다.
“지은아!”
“……응!”
“화면 꺼!”
일단은 보지 못 하게 하는 게 급선무다.
동시에 난 흑염룡의 시선을 차단시키기 위해 품에 안으며, 진정시켰다.
역시, 내 예상대로 지금 눈에 뵈는 게 없다.
평소에 내가 이렇게 안으려고 하면 사납게 반응했던 흑염룡이.
지금은 몸체에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다.
그러던 중,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흑염룡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어 ……야.]
하지만 너무 방대한 양의 분노가 응축된 목소리였을까.
화를 내는 게 아닌, 너무 나지막이 말하는 탓에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뭐?”
[저기. 어디냐고.]
“흑염……룡?”
[비켜.]
흑염룡은 내 품에서 도망치듯 벗어나, 무언가를 결심한 것과 같은 무표정으로 모니터 앞에 섰다.
하지만 이미 모니터는 내가 이지은에게 끄라고 했기에 끈 상태.
그렇게 까만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내게 말했다.
[다시 켜라고 해. 이거.]
“너 그 화면 보고 상태가 이상해졌는데, 내가 어떻게 다시 보여주겠…….”
[야.]
그런데 흑염룡이 내 말을 멋대로 끊으며,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딱 한 글자만 말했다.
“흑염룡……?”
[이 장소 전체도 화면 속에 나온 것처럼 만들어 버리기 전에. 틀어.]
내 부서가 있는 이곳을 통째로 날려 버리겠단 뜻이다.
“…….”
처음으로. 흑염룡에게 압도당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흑염룡이 절대 그 화면을 보도록 놔두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으로서 명령한…….”
핏.
그런데 내가 명령을 내리려던 순간.
흑염룡의 날개가 기이하게 길어지며, 내 볼을 스쳤고.
볼에선 옅은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인간들이 우릴 저렇게 대하는데. 나도 인간을 주인으로 둘 필요는 없어.]
“너 지금 뭐라고…….”
지금 흑염룡은 이성을 완전히 잃은 상태다.
“도원아……?”
한편, 이지은의 눈에는 내 볼이 스스로 터져 옅은 출혈이 나는 것처럼 보이자 걱정 가득하게 물었다.
이는 신보미, 정다혜, 정다훈.
내 부서원들 전부 마찬가지다.
“……다혜야.”
“네?”
“애들 데리고 다른 장소로 가 있어. 이 부서를 벗어나.”
“무슨……?”
“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