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전쟁 선포? (1)
“……?”
내 질문에 최현민은 아리송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곤 쉽사리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니, 내가 노골적으로 물은 질문이.
그의 정곡을 찌른 듯했다.
“이게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소리지?”
도리어 화를 내는 듯한 답변이다.
나를 그렇게 저급한 인간 취급하다니, 너무한 거 아니냐.
난 순전히 윤도원 부장 자네를 보러 온 걸세.
저런 게이트 따위가 관심사가 아니란 말이네!
라며 정말 열과 성의를 다해 연기하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협회장님 헌터계에 없었으면, 스크린에서 볼 수 있었겠네요?”
“뭐?”
연기를 이렇게 잘하시는 분인데.
연예 기획사는 뭐하냐.
어서 계약해서 배우로 써야지.
그런 의미의 말이었다.
아마 최현민이 배우가 된다면, 국내에서 악덕 기업인이나 정치인 배역으로 유명한 중년 배우 뺨은 몇 대나 가뿐하게 때릴 정도의, 악역 전문 중년 배우가 탄생할 건 분명했다.
심지어 최현민의 실제 성격, 출신과 딱 들어맞으니 몰입감 제대로다.
기업, 정치 관련 악역으로 나오면 천만 관객 정말 우습게 달성할 것 같다.
“허허,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군.”
“예~ 당연히 모르시겠죠. 나이도 드신 분이 젊은 사람들 센스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지금 놀리는 건가?”
“아뇨, 보나 마나 저보단 이 게이트에 관심이 있어서 온 것 같은데, 자!”
이제 최현민과 악수했던 손을 빼고, 게이트를 향해 손짓했다.
지금의 내 손짓은 마치, 어느 행사에서 특급 게스트를 소개하는 MC의 손짓과 같았다.
“실컷 구경하시죠. 혹시 개수가 궁금하세요? 제가 알려드리죠. 32개입니다. 현재.”
“지금 뭐 하는 거야!”
역시 그 성격 어디 가겠나.
최현민은 버럭 화를 냈다.
“그러는 협회장님은. 지금 뭐 하는 건데?”
나도 그의 태도에 맞춰, 내 태도도 급변했다.
“……뭐?”
“연락도 없었고. 우리가 약속한 것은 서로 관여하지 않기로 했었는데, 이렇게 불쑥 찾아오는 게 뻔한 거 아냐? 게이트 얼마나 있나 직접 확인하려고 한 거지.”
심지어 이곳은 지방이다.
협회는 수도인 서울에 있고.
거리로만 치면 150km가 넘는다.
그런 먼 거리를 제 발로 직접 찾아올 만한 가치가 있어야 하는데, 그 가치는 게이트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그가 차를 타고 왔을지, 아니면 워프 능력자를 데리고 왔을지는 내 알 바 아니지만, 지방에 있는 내 부서에까지 왔다는 게 중요하다.
“윤도원 부장. 자네는 사람을 너무 의심하는 게 병이야. 우리가 서로 관여하진 않기로 했지만, 안부도 묻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 않던가? 엄연히 난 협회장이고. 이 부서도 협회장 직할 부서니까.”
“고작 안부 하나 묻겠다고 150km가 넘게 떨어진 이곳을 온 게 더 이상하지. 아주 편리한 현대 문물, 휴대폰이란 게 있는데.”
“…….”
“그러니까 실컷 구경하라고요. 그리고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 게이트가 32개….”
“그 얘기는 그만하지. 정말 그런 목적 아니니까.”
또 연기한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답은 그렇게 하면서 여전히 눈은 게이트로 향해 있는데.
나도 처세술에 통달한 사람은 아니지만, 적어도 사람 눈빛을 보고 대강 무슨 생각을 하는지 유추할 수 있는 수준은 된다.
“그래요? 정말 안부 차 방문하신 겁니까?”
“그렇다니까.”
“그래요, 저 잘 지내고 있고 부원들도 아주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으니 안부는 끝났죠?”
“……뭐?”
“그리고 게이트들도 잘 지내고 있어요. 목적인 안부 전하셨으니 이제 돌아가시죠?”
“먼 길 왔는데 차 한 잔이라도 안 내주나?”
가지가지 한다, 정말.
“우리가 차를 즐겨 마시는 부원이 하나도 없어서요.”
난 지갑을 꺼내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며 협회장에게 건넸다.
“뭔가. 이건?”
“돌아가시는 길에 카페에서 한 잔 사 드시라고요. 제 부서에 그딴 건 없으니까.”
“……됐네.”
빈정이 상했는지, 최현민은 만 원을 들고 있는 내 손을 치듯이, 뿌리쳤다.
도로 넣으라는 손짓이었다.
하긴 나처럼 이렇게 뒤도 안 돌아보고 막 나오는 헌터.
여태껏 본 적이 없겠지.
하지만. 알 게 뭐야?
난 그럴만한 능력을 가졌으니까 충분하다.
그리고 최현민 협회장은 지금 어떤 꼼수가 있는 게 확실하니, 더더욱 그와의 관계를 원만히 유지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칼은 내가 쥐고 있는 상태.
눈치 볼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럼, 어서 돌아가세요.”
“못 보내서 안달이군.”
“안부는 서로 전했으니까요. 배웅은 해드리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난 최현민 협회장의 어깨를 붙잡으며 거의 강제적으로 그를 끌고 갔다.
“여긴 워프로 오신 겁니까, 차로 오신 겁니까.”
“차로 왔네.”
“그럼 주차장으로 배웅해 드리면 되겠네요.”
그렇게 강제로 최현민의 차가 있는 주차장에 도착하자, 운전석에는 기사가 있었다.
‘그럼 그렇지. 이 양반이 직접 운전해서 왔을 리가 없지.’
무려 150km가 넘는 거리인데 피곤하게 자신이 직접 운전할 이유가 더더욱 없었을 거다.
마치 경찰이 현행범을 연행하는 것처럼, 난 최현민을 뒷좌석에 욱여넣었다.
차 문을 닫기 직전, 그에게 한 마디만 남겼다.
“협회장님.”
“또 뭔가?”
“일주일 만에 32개예요.”
게이트를 말하는 중이다.
“직접 보셔서 알잖아요?”
“하고 싶은 말만 하게.”
문전박대를 당한 여파가 아직도 남아 있기에, 그는 여전히 빈정이 상한 상태였다.
“일주일에 32개인데 한 달, 두 달… 일 년이 지난 뒤엔 과연 몇 개가 될까요?”
“…….”
잠시 우리는 서로 침묵하게 됐다.
서로 눈을 지그시 노려본 채로.
약 15초가량을 서로의 기 싸움 끝에. 내가 끝을 장식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해야 옳은 것인지.”
탁.
그 말만 남기고 난 차 문을 닫아 버렸다.
최현민도 당황했는지, 차는 곧장 출발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약 1분 정도 지났을 때.
차는 드디어 내 부서에서 떠났다.
[윤도원.]
“왜.”
[마지막에 한 말. 무슨 뜻이야? 어떻게 해야 옳은 것인지, 그런 말.]
“솔직히 하고 싶었던 말은 전에 내가 신동원 본부장을 처음 만났을 때 했던 말을 그대로 하고 싶었거든.”
[그 재벌을 처음 만났을 때 했던 말?]
흑염룡은 그새 잊은 듯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짓 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거든.”
[그럼 그렇게 말했으면 됐잖아? 무슨 뜻인지도 모르게 말하는 것보다 그게 훨씬 좋지 않았나?]
“아니지. 그러면 너무 노골적이잖아. 오늘 최현민 협회장이 온 걸 보고 확신할 수 있었거든.”
[뭐를?]
“저 양반은 내가 만드는 게이트 전부를 독식하고 싶은 거야. 그걸 어디에다 쓰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생각은 확실해. 그러니 난 최대한 모르는 척하면서, 당해줄 생각이지.”
[왜 당해……! 게이트 전부 뺏기는 거잖아 그럼!]
“아니지. 전부 뺏길 가능성은 없어. 심지어 게이트에 누군가가 들어가면, 네가 느낄 수 있잖아? 저번에 나한테 알려준 것처럼.”
한창 신동원과 협상하던 중에 흑염룡이 누군가가 게이트로 들어갔다며 말한 적이 있었다.
[그랬지.]
“근데 저들은 그걸 몰라. 내게 흑염룡인 네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자신들의 생각이 완벽하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그리고 저들이 사고를 쳐야, 내가 선을 넘을 수 있는 명분이 생겨.”
[선…? 무슨 선을 넘으려고.]
“그건 차차 보면 돼.”
최현민 협회장. 그리고 그 밑에 있는 강만식까지.
어디 한번 넘어 봐라.
그 선을 넘은 순간. 내가 핵폭탄을 떨어트려 줄 테니까.
“아~ 기대되네.”
***
“한 번 맞춰 봐.”
정다훈이 강만식에게 왔을 때 만들었던 미로.
그 미로를 벗어나는데 과연 박우민이 얼마나 걸렸을 것 같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정훈섭이 뱉을 차례였다.
정훈섭은 잠시 생각했다.
자신의 막내아들 정다훈의 능력이 정확히는 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대단한 수준이니까 지금 강만식이 이렇게 말하는 중일 것.
그렇다면 자신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는 뜻이 된다.
“…30분?”
“장난하나.”
표정이 일그러진 것을 보고 오답인 것을 알았다.
“…1시간?”
“후, 감이 정말 없군. 정확히 알려주지. 14시간 걸렸다.”
“……예?”
어떻게… 14시간이나 걸릴 수 있는 거지?
막내아들 정다훈의 능력이 뭔지 정확히 모르지만, 미로를 만들었다곤 했다.
그렇다면 자신의 능력인 공간 창조와 같다고 여겼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14시간짜리 미로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단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어떻게 14시간을…….”
“여기에서 끝이 아니야. 처음이 14시간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형태로 만든 미로는 얼마나 걸렸을 거 같나?”
감이 도저히 잡히지 않아 입을 꾹 닫았다.
“무려 3일. 놈이 능력의 숙련도과 완벽했을 땐 또 얼마나 걸렸을 것 같지?”
3일도 놀라운데 이게 끝이 아니라니.
정훈섭은 입을 멍하니 벌린 채로, 이어질 강만식의 답을 기다렸다.
“최종적으로 박우민은 아예 못 나왔어. 정다훈이 직접 꺼내주기 직전까진. 일주일까지 못 나오길래 내가 꺼내라고 명령해서 그제야 나올 수 있었거든.”
“후우, 그때 생각하면 정말… 짜증 제대로 났죠. 심지어 전 그렇게 오래 걸린 줄도 몰랐어요. 그 안에 갇혀 있으면 시간 개념까지 사라졌으니까요.”
“…….”
도대체 막내아들은 어떤 수를 썼기에 일주일이나 S급 박우민을 가둔 걸까.
그 비법이 이제 궁금했다.
“그리고 너는 생각을 너무 단편적으로 해. 네 생각이 단편적이니 미로도 단순해지는 거지. 공간 창조는, 결국 네 상상력에 기반해서 나오는 법이잖아?”
정확히 알고 있다.
공간 창조 능력자는 헌터계의 화가라고도 할 수 있다.
화가가 도화지에 상상했던 것을 그림으로 완성하는 것처럼.
공간에 자신이 상상했던 것들을 채워 넣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뭐, 나이를 먹으면 뇌가 굳는다는 건 알고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현재 네 상태는 너무 심각해. 이따위 단순한 눈속임으로는 한계라고. 네 자식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는데. 호부견자는 흔하지만, 견부호자는 그렇지 않은 법인데……. 네가 그 어려운 걸 해냈군.”
호랑이의 아버지에게 개의 자식이 나오긴 쉽지만.
반대로 개의 아버지에게 호랑이 자식이 나오는 건 어렵다는 말, 견부호자.
자존심이 상했지만, 뭐라 반박할 순 없었다.
자신에게는 지금 그만한 힘이 없었으니까.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보는 건 어때? 넌 지금 미로를 만드는 방식이 공간 안에 하나의 공간만 만들던데.”
“다들 그렇게 합니다.”
“네 자식은 그렇게 안 했어. 공간 안에 공간. 창조한 공간에 또 다른 공간을 만들고, 또 만들고 이걸 무한대로 지속했다고.”
그런 방법이…… 가능하기나 한 걸까?
하지만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그게 아니고선 박우민을 일주일이나 가둘 방법이 없었을 테니까.
“그 방법을 고안해 봐. 앞으로 여기에서 지내면서 수련해. 네가 지낼 공간은 강당을 나가면 옆 건물이 있다. 특별 폐관수련 하라는 뜻이야.”
그리곤 의자에서 일어났다.
“다음에 다시 오지. 다음에도 형편없으면, 한 달이 지나지 않아도 교도소로 돌려보낼 테니까 알아서 하고.”
절대 그것만은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