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음지에 남은 자들 (6)
정훈섭이 일주일이나마 연습한 것들을 선보였다.
하지만.
“야, 우민아. 네가 보기엔 어떠냐?”
“이건 너무 심한데.”
둘의 반응은 상당히 불만족스러웠다.
정훈섭은 그가 살면서 이 정도로 능력에 집중한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 공간 창조를 해 보였다.
강만식이 늘 말한 것처럼, 복잡한 미로 형태를 만들었다.
정훈섭이 개인적으로 판단하기엔 꽤 쓸만한 미로라고 생각했지만, 둘의 반응을 보고선 불안했다.
“형님, 이건 너무… 형편없잖아?”
“그래, 길이 훤히 다 보이네. 그대로 B급 출신이라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과대평가였던 건가.”
정훈섭은 이들의 반응을 절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고작 몇 초 정도를 훑어보고는 길이 보인다는 건지.
그들의 허세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표정 보게?”
강만식의 눈에 그런 정훈섭의 표정이 보이지 않을 리가 없었다.
“…….”
“표정 보니까 못 믿겠다, 이거지?”
마음을 꿰뚫어 보는 눈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인가.
정훈섭은 입을 꾹 다물었다.
“우민아. 직접 보여 줘라. B급이라 말로는 안 통하나 봐.”
“예.”
박우민이 나서서 저벅저벅 걷기 시작했다.
현재 정훈섭이 만든 미로들은 이 강당을 가득 채운 게 아니다.
축구 경기장으로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이기에, 지금의 정훈섭 재량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따라서 일부분만 미로로 만든 상태.
본래의 장소였던 강당으로 나가는 출구도 당연히 있다.
“출구만 찾으면 인정할 텐가? 나와 형님이 이 미로를 보자마자 형편없다고 한 것에 대해.”
“해 보시죠.”
“더 확실하게 하지. 당신이 말한 제한 시간 안에 나가줄게.”
도발로 느껴졌다.
‘그래, 어디 한번 해 봐라.’
정훈섭도 박우민의 도발을 받기로 결정하며 호기롭게 답했다.
“5분. 5분 안에 찾아보시죠.”
“풉, 이딴 허접한 미로 나가는데 무슨 5분이야. 우민이를 무시해도 정도가 있지. 우민이도 S랭크야.”
정훈섭의 답을 듣고 강만식이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
“5분? 장난하나. 이딴 건 15초면 충분해.”
이어지는 박우민의 답.
답을 뱉은 즉시 박우민은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어어……?’
그런데 그가 향하는 방향을 보고 정훈섭은 아차 싶었다.
정말 걸음을 떼자마자 출구가 어디 있는지 아는 듯이, 출구가 있는 쪽으로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럴 리가 없는데…… 어떻게……?’
현재 이 셋이 있는 곧은 미로의 중앙.
외곽에 있는 출구를 향해 나가야 하는 방식인데, 박우민은 이 미로를 이미 공중에서 내려다본 것처럼, 출구가 어디 있는지 너무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렇게 박우민이 예고한 15초가 완전히 지나기 전인 13초 경이 지났을 때.
박우민의 모습은 미로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정훈섭도 알 수 있었다.
박우민이 이 미로에서 나갔다는 것을.
자신의 미로가 형편없다고 핀잔을 줬던 그 말들이.
절대 허세가 아니었다.
밀려오는 허탈함에 전의를 상실했고, 그로 여파로 정훈섭이 만든 미로는 무참히 깨졌다.
털썩.
미로가 깨지면서, 그의 무릎도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동시에 접이식 철제 의자에 앉아 있던 강만식이 일어났다.
“믿기지가 않을 거야, 그렇지? 넌 분명히 최선을 다해 완벽한 미로를 만들었다고 생각했을 거니까.”
“…….”
부정할 수 없었다.
동시에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어떻게 잠깐의 행동 그 하나만을 보고 자신의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었던 걸까.
그 근거가 도대체 뭘까.
그런 생각이 가득 자리 잡게 되었다.
“솔직히 기대는 안 했어. 내가 예고한 약속의 시간은 한 달. 그런데 그걸 깨고 일주일 만에 부른 거니까.”
아까와 말이 달라진 느낌이었다.
적어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라고 협박했으면서 지금은 도리어 기대하지 않았다니.
당최 그 속을 알 수 없었다.
“기대를 안 했으면… 왜 부른 겁니까. 어차피 제가 못할 걸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되는데.”
이 의미 없는 짓을 왜 한 것인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래서 B급은 안 되는 건가. 생각하는 방식이 이렇게 단순하다니.”
“……예?”
“너 혼자 연습하게 놔두고, 내가 예고한대로 한 달 뒤에 불러서 그 능력을 시험해 봤으면. 결과가 어떻게 됐을 거 같아? 오늘과 달려졌을 것 같아?”
정훈섭도 생각해 봤다.
교도소에서 나오고, 정훈섭이 지낸 곳은 따로 강만식이 지정한 호텔.
방이 몇 개나 있는 꽤 고급스러운 호텔이었다.
그 호텔은 정다훈이 처음 강만식에게 있었을 때, 감금되다시피 지냈던 곳이지만 정훈섭이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다만 정다훈과 상황이 달랐던 것은, 룸서비스를 비롯해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정다훈처럼 복종시키려고 밥을 굶기거나 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정다훈이야 10대의 어린이이니 그런 방법이 통했지만, 50대가 넘은 정훈섭 상대로는 통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훈섭도 거의 평생을 빚쟁이에 쫓겨 살다가, 사고를 쳐서 교도소 신세를 지게 되었는데, 생에 처음으로 만끽하는 호화에 연습이나 제대로 될까.
자신이 생각하기엔 열심히 한 것 같지만, 남들의 냉철한 시선으로 판단했을 땐 그렇지 않았다.
그런 환경에서 한 달이 지난 뒤.
결과를 까 봤을 때?
오늘과 다르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는 정훈섭도 부정할 수 없었다.
“한 달 뒤에 오늘 결과였으면. 넌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잖아?”
“…….”
“다시 돌아갈래? 철장으로?”
그의 단호한 질문에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래서 널 이곳으로 부른 거야. 한 달이라는 시간을 줬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혼자만 연습하게 놔두면 진전이 없을 것 같았거든. 그리고 오늘의 결과를 보니까 어떻지? 정답이었잖아?”
하지만 그게 장소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잘 몰랐다.
“장소가 바뀐다고 해서… 제 능력이 더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 겁니까?”
“호텔 같은 곳보다야 이렇게 광활하게 넓은 곳에서 네 능력을 연마하는 게 더 낫지 않겠어? 넌 어차피 공간 속에 또 다른 공간을 만드는 부류니까.”
“……아.”
무슨 말인지 알았다.
이렇게 무식하게 큰 장소를 택한 이유까지도.
축구 경기장으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넓은 장소에 자신만의 공간을 가득 채우는 것.
이 역시 정훈섭이 살면서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왜냐, 그의 능력의 한계가 분명했으니까.
공간 속에 다른 공간을 만드는 방식이기에, 주로 방 안에 다른 공간을 만드는 방식이 전부였다.
그렇다 보니 자신이 새롭게 창조하는 공간도 면적이 딱 그 방의 면적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것이 뜻하는 것은 단 하나.
정훈섭의 능력은 그가 위치한 장소의 면적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는다.
그의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이 강당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리고 네가 상대할 녀석들은 우리보다도 훨씬 까다로운 놈들이야. 우민이가 방금 만든 미로를 나가는 데 걸린 시간이 정확히….”
“13초였죠.”
“오호, 세고 있었어? 그래. 13초. 네가 영혼 갈아 넣다시피 만든 미로를 고작 13초 만에 나갔다고.”
그러니 허탈함에 지금 무릎까지 꿇고 있지 않던가.
“그런데 네가 상대할 놈들? 우민이가 13초 만에 나갔지만, 걔들은 3초 만에 나갈 거야. 아니. 3초까지 걸릴까? 1초도 안 걸릴 것 같은데.”
이렇게 얘기를 들으니 강만식이 상대해야 할 적이 괴물로 느껴졌다.
‘지금 이놈들도 나한테는 충분한 괴물인데, 그보다 더 괴물이 있다고……?’
그러면서 한 가지 의문도 들었다.
‘잠깐… 분명히 강만식이 날 가석방시키면서 한 말이 있었는데……?’
자식과 싸우게 될 것이니 자식들에게 미안한 말 가지지 말란 것.
그 말이 지금 걸린 순간이다.
“혹시…….”
“뭐.”
“저한테 자식에게 미안한 마음 가지지 말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그리고 너도 어차피 그럴 생각이었으니까 지금 가석방을 받은 거 아니었나?”
“그렇습니다만, 한 가지 궁금해서요.”
“뭐가?”
“부장님이 상대할 적 중에서… 제 자식들도 포함이 되어 있는 겁니까?”
“그걸 이제야 알았어?”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이렇게 들으니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다혜와 다훈이가 그 정도는 아닐 텐데요……?”
그 둘을 직접 키운 장본인이다.
비록 빚쟁이에 쫓겨 자식들 신경을 완전히 껐다고 해도, 애기 때부터 봐 온 아버지인데, 어찌 모를 수가 있을까.
그런 비범함을 가지고 있었다면.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시점부터 징조란 게 보여야 했는데 장녀 정다혜, 차남 정다훈은 그런 모습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그거야 네 생각이고. 말 나온 김에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주지. 잘 들어.”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는 정훈섭.
의자에서 일어난 강만식은 철제 의자를 정훈섭 앞으로 끌고 왔다.
그리곤 등받이를 팔걸이처럼 걸치며 앉았다.
“정다훈이 처음 내게 왔을 때. 당신과 비슷한 미로를 만들었어. 그때 역시, 우민이가 직접 실험에 나섰지. 실험이라고 하면 방금 한 것처럼 제한 시간 안에 나갈 수 있느냐, 없느냐였고. 결과가 어떻게 된 줄 알아?”
***
“부장님.”
나와 이지은이 32개의 게이트를 펼쳐 놓은 곳에 있을 때, 신보미가 나를 찾아왔다.
그런데 나를 부르는 호칭이 수상했다.
평소에 부장님이란 소리를 잘 하지 않고, “오빠”가 기본 호칭.
화가 날 땐 “저기요!”라며 날 대했는데, 오늘 처음 자발적으로 나를 향한 호칭이 부장님이다.
“뭐야…? 네가 언제 나를 부장님이라고 불렀…….”
그 순간, 신보미가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보였다.
“손님 왔어요.”
“손님? 웬 손님?”
손님이면 나랑 사전에 약속이 되었어야 하는데, 난 그런 약속 한 적 없다.
“잘 지냈나? 윤도원 부장?”
그리고 들린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난 표정이 절로 찌푸려졌다.
왜 이 목소리의 주인이 말도 없이 이곳으로 왔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현민 협회장님.”
“오랜만에 보는 것 같군.”
최현민이 말도 없이 불쑥 쳐들어온 것이다.
심지어 내가 있는 곳은 게이트를 펼쳐 놓은 곳.
최현민은 나를 향해 악수를 하면서 내 뒤에 펼쳐진 게이트를 보고 말았다.
“오호.”
탐욕이 가득히 느껴지는 그 한 마디.
그는 나와 악수를 하고 있음에도 눈은 명백히 32개의 게이트가 펼쳐진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주인아… 저거 숨겼어야 하는 거 아냐?]
불안한 흑염룡이 물었다.
흑염룡은 최근 게이트를 무리하게 만드느라 초췌했지만, 나와 똑같이 최현민의 모습을 보자마자 정신이 번쩍 든 모습이다.
‘음… 아니. 차라리 잘 됐지.’
비록, 최현민이 반가운 손님은 아니지만.
난 그가 직접 다수의 게이트를 확인한 지금 상황이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차라리 잘 됐다니? 저 인간이 직접 보고 있는데도?]
‘아니. 오히려 잘 되었어.’
난 악수를 하며 최현민 협회장에게 노골적으로 물었다.
“탐나죠? 게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