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음지에 남은 자들 (5)
촬영을 마쳤다.
내가 촬영한 동영상 길이는 고작해야 20초 남짓.
잠깐 한눈팔면 그대로 끝날 정도로, 정말 짧은 시간의 동영상이다.
이지은은 여전히 의아한 표정이다.
도대체 이 짧은 동영상이 어떤 보험이 된다는 것일까, 이런 추측을 하는 중이다.
“궁금하지? 내가 왜 보험이라고 하는 건지. 사실 말을 달리하면, 나에겐 보험이지만 남에겐 핵폭탄이 될 정도의 위력을 가진 동영상이라 할 수 있지.”
“그러니까 게이트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왜 보험이란 건지는 모르겠는데.”
“굳이 알려주진 않을게. 너도 나 봐서 알지? 나 상당히 극단적인 거.”
“……잘 알지. 그래서 네가 저번에 뜬금없이 혈액형 물을 때, AB형은 오히려 너 같다고 한 이유가 너무 극단적이라서 그랬던 거고.”
“아무튼. 그 극단적인 모습, 가능하면 꺼내고 싶지 않지만 과연 상황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줄지 미지수구나.”
“네가 그 정도로 말하는 거면…… 그래, 나도 네가 생각하는 그 일이 안 왔으면 좋겠네.”
적어도 이지은은 나를 응원하는 목소리다.
“나도 마찬가지다.”
***
정훈섭은 얼굴에 무언가를 쓴 채로 차에 올라탔다.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고, 밖이 전혀 보이지 않는 두꺼운 천.
보통 첩보 영화에서 인질들을 어딘가로 끌고 갈 때, 얼굴에 씌우는 천과 똑같았다.
심지어 그의 손은 밧줄로 꽁꽁 묶여 포박된 상태다.
이곳이 교도소도 아닌데, 수감자 신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었다.
강만식은 한 달의 시간을 준다고 했는데, 일주일째가 된 오늘 갑자기 이런 호출이 날아들어 당혹스러웠다.
그런 불안하고도 불쾌한 기분에 정훈섭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다행히 얼굴에 무언가를 씌웠을 뿐, 입에 재갈까지 물리진 않았기에 말은 할 수 있었다.
“저기… 저를 어디로 데려가시는데 이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저한테는 별로 좋은 기억이 아니라 그런데, 이것 좀 풀어주시면 안 됩니까?”
촤르르르륵.
바로 옆에서는 카드가 펼쳐지는 소리가 들렸다.
저 소리를 듣고 있자니, 차 안이 카지노가 된 것 같은 기분까지 들 정도다.
차에서 올라타기 전부터 저 소리를 계속 듣고 있었다.
“어이.”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
연신 시야를 가리는 천을 쓰고 있어서 상대가 누군지 알 순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목소리로만 봤을 땐 강만식보다 상당히 젊은 사람이란 것이었다.
“조용히 하고 가지? 나 관리부원이야. 너 따위가 그렇게 말 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젊으신 분 같은데…….”
순간 울컥했다. 아무리 귀를 씻고 들어도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리며 젊은 누군가인데.
이렇게 말을 막 하니, 자신도 모르게 속에 있던 말이 튀어나온 순간.
핏.
자신의 얼굴에 씌워진 천에도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외부의 빛까지 차단한 천이 찢어지면서, 일말의 빛이 천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 덕에 자신이 쓴 천 안으로 무언가가 날아든 것인지 보였다.
‘트럼프 카드?’
심지어 마술용 트럼프 카드도 아니고.
편의점이나 동네 슈퍼에서 아주 쉽게 구할 수 있는, 흔하디흔한 트럼프 카드였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트럼프 카드 한 장이 이 두꺼운 천을 뚫고 들어온 것도 모자라, 천 안에 박혔단 점이다.
두꺼운 천을 뚫을 정도면 이 안에 박히는 것이 아닌, 그대로 관통해 나갈 것이 분명하다.
카드는 그런 물리적인 법칙을 완전히 무시하고, 정훈섭의 눈과 가장 가까운 곳에 꽂힌 상태다.
잠시 정훈섭이 문제의 카드를 노려보고 있었을 때, 카드 스스로가 공중에서 회전했다.
‘뭐야, 카드를 통한 능력자인가?’
그렇다면 물리법칙을 완전히 무시한 카드가 이해가 된다.
정훈섭의 눈에 선명히 보이기 시작하는 카드의 문양.
회색의 조커였다.
‘조커…….’
그런데 문양 속에 있던 조커가 갑자기 카드에서 튀어나왔다.
마치, 옛날에 유명한 일본 공포 영화 중에서.
TV 속에 우물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그 우물에서 머리카락이 긴 한 귀신이 TV를 향해 성큼성큼 기어 오더니.
이윽고 TV 밖으로 실제로 튀어나왔던 것처럼.
지금 회색 조커 문양이 그랬다.
문양이 그대로 제 몸을 찾아, 실체화했다고 보는 게 옳았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다면. 문양이 그대로 실체화를 한 것이기에 크기는 상당히 작았다.
마치 작은 요정으로 보일 정도로.
하지만 조커의 행동은 요정과는 거리가 너무나도 멀었다.
스릉.
갑자기 단검을 뽑고는, 정훈섭의 눈알과 아주 가깝게 가져다 대며 분명하게 그의 눈을 노리고 있었다.
“조용히 갑시다. 내가 이렇게 강압적으로 해야 해?”
‘저런 식으로 능력을 사용하는 건가? 보통 이런 능력은…….’
소환 카테고리를 가진 능력자들이 이런 식으로 자신이 평소에 좋아하던 물건을 통해 능력을 사용하는 건 알고 있었다.
비록, 지금은 죄수의 신분이긴 하나.
그는 먼 과거에 활발히 활동했던 B급 헌터였으니까.
동료였던 B급 헌터 중에서도 소환 능력자들은 더러 있었기에 잘 알았다.
‘하지만 그때 동료들이 사용한 능력과 뭔가 결이 다르다.’
작고 왜소한 실체화된 조커.
그러나 조커가 가진 몸체처럼, 그 힘까지 약해 보이진 않았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옆에 있는 헌터는 자신과 달리 전투력이 상당한 헌터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다.
“……알겠습니다.”
일단 꼬리를 말았다.
저런 상대와 괜히 자존심 싸움을 해 봤자, 손해 보는 것은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은 강만식 덕분에 교도소를 떠난 상태.
강만식의 측근으로 보이는 사람인데, 저런 사람과 마찰이 생겨 다시 교도소로 돌아갈 순 없었기 때문이다.
차는 꽤 오래 달려, 드디어 정차했다.
“내려.”
옆에 있던 헌터가 정훈섭을 끌고 내리면서, 어딘가로 인도했다.
“어~ 왔어?”
강만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거 벗겨.”
그리고 그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비로소 정훈섭은 시야를 완벽하게 찾았다.
“여긴…….”
그러면서 자신이 현재 어디에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뭐 하는…… 곳입니까?”
겉보기엔 특별한 게 없는 곳이다.
일반적인 체육관과 똑같이 보였다.
그 외 어떤 특별한 장치도, 시설도 없는, 영락없는 체육관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딱 하나 특별한 것을 꼽아본다면.
상당히 넓었다.
일반적인 체육관과 비교하면 못해도 3배 이상의 면적을 자랑할 정도로, 실내인 이곳을 축구 경기장으로 사용해도 될만한 크기다.
그렇게 공허할 정도로 넓은 곳에, 강만식이 접이식 철제 의자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왔어? 오래는 안 걸렸지?”
“……예, 안녕하십니까.”
정훈섭은 자동적으로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 그리고 너를 데리고 온 걔는 내 오른팔. 아마 내가 없을 때 너와 함께 있을 거니까 내가 소개시켜주지.”
그제야 정훈섭도 자신을 데려온 헌터의 얼굴을 제대로 봤다.
‘역시…….’
예상대로 젊은 헌터였다.
그의 얼굴을 보면서 차 안에서 일어난 무례한 일들이 다시 떠올랐지만, 막상 얼굴을 보니 그런 생각은 금세 사라졌다.
상대 얼굴을 본 것만으로도 기에 눌려 위축되어서?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얼굴을 마주 보고 있자니, 다른 감정이 들어서다.
‘부럽군…….’
정훈섭은 과거를 회상했다.
고작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헌터.
그런데도 관리부장이라는 강만식이 직접 ‘오른팔’이라고 말할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면, 최소 A. 어쩌면 S급이 당연했다.
저렇게 젊은 나이에 거대한 실력을 가졌단 것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자신은 그러지 못했으니까.
“박우민이요.”
박우민이 먼저 손을 내밀며 정식으로 인사했다.
“정훈…….”
“알고 있어.”
정훈섭이 그의 손을 맞잡고 자신의 이름을 말하려 할 때, 박우민은 그대로 손을 뿌리치며 강만식의 옆으로 향했다.
“…….”
이것은 죄수라는 신분에서 오는 차별이 아닌, 랭크에서 오는 차별이었다.
강만식이 말했다.
“내가 너한테 원래는 한 달을 준다고 했지만. 일주일 만에 불러내서 어리둥절했지?”
“……예, 그렇습니다.”
“간단해. 일주일 동안 얼마나 네 능력이 발전했는지, 보려고.”
“하지만. 분명히 한 달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왜 갑자기 일주일 만에…….”
“에휴, 이래서 랭크가 낮은 것들은……. 우민아.”
강만식이 고개를 절레 저으며 한탄하며 박우민의 이름을 불렀다.
박우민은 그게 무슨 신호인지 잘 알았다.
촤르르르륵.
차 안에서 내내 듣던 그 소리.
트럼프 카드다. 이미 저 트럼프 카드가 어떤 효과를 보였는지, 정훈섭은 차 안에서 직접 겪었다.
그렇다 보니 저도 모르게 몸이 경직되었다.
착.
박우민이 한 장의 카드를 뽑아서 보여줬다.
“……퀸(Q)?”
그런데 특이한 것은, 보통의 트럼프 카드면 색깔과 문양이 있어야 하는데 박우민의 카드엔 그게 없다는 것이었다.
드드드드!
박우민이 퀸이 적힌 카드를 보이고 몇 초 후.
정훈섭의 높은 천장 끝까지 떠올랐다.
“……?!”
무언가가 자신을 들어 올렸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뒤를 봤을 때였다.
“이게 무슨…….”
얼굴은 있지만, 눈코입이 없는. 중세 시대 드레스를 입은 거대한 달걀귀신이 나타났다.
“어이~”
그리고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의 강만식이 그를 불렀다.
“우민이의 그 퀸은 키가 3m가 살짝 넘어. 거기서 널 떨어트리면. 살 수 있어?”
“…….”
살 수는 있을 거다.
명색이 헌터니까.
하지만 어떠한 전투 능력도 없는 자신이 피해를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대로 떨어지면 저 딱딱한 바닥에 꽂히는 형태가 될 것이며, 그 이후의 결과는 안 봐도 뻔하다.
사지 중 멀쩡한 곳이 없고, 어쩌면 평생 불구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이봐, 정훈섭 씨. 내가 한 달 준다고 했다고. 정말 한 달 안에만 하면 된다는 그런 안일한 생각을 하면 어떻게? 마음만 먹으면 일주일 안에도 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 아냐?”
지금 당장 발전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경한 어조다.
“지금 당장은 무리입니다…….”
하지만 솔직해야 했다. 괜한 거짓말은 더 큰 화를 부른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에.
상대는 강만식이니까.
“하, 나 참. 지금 당장 보이라고 했어? 적어도 시도는 해 보이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고 처음부터 못 한다는 듯이 답하니까 내가 이렇게 말이 거칠어지는 거 아냐.”
“…….”
“이봐, 정훈섭 씨. 지금 내 옆에 있는 박우민도 관리부원이야. 그리고 댁도 임시 관리부원이고. 내 관리부가 무슨 동네 동호회인 줄 알아? 엄연히 엄선된 사람들만 올 수 있는 곳이라고.”
비수를 찌르는 말이었다.
강만식이 하는 말은 현재, 너에게 그런 특별함이 없는 건 알고 있으니 적어도 노력이라도 하는 모습을 보이란 것이었다.
노력한 자와 하지 않는 자는 결과적으로 발전에서 큰 차이가 나오니까.
정훈섭은 저도 모르게 패배감에 찌들어 할 수 없던 것처럼 말한 게 화근이었다.
“……해 보겠습니다! 일주일 동안 그래도 연습은 해 봤습니다.”
“이제야 말이 통하네. 우민아. 내려.”
“옙.”
정훈섭은 무사히 지상으로 내려왔고, 박우민이 만든 소환체도 사라졌다.
“보여 봐. 연습한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