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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67화 (67/200)

§ 67화. 음지에 남은 자들 (4)

게이트가 하나 더 생성되었다.

이로써 이곳에 생긴 게이트는 두 개.

아직 갈 길이 멀다.

“흐흐흐.”

난 새롭게 생성된 게이트를 보며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유독 손쉽게 얻은 느낌이다.

[하아…….]

잠시 게이트로 변하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흑염룡은 사람이 지쳤을 때 벽에 손을 짚고 축 늘어진 것처럼, 공중에서 뜬 채로 게이트에 손을 짚으며 상체가 축 늘어졌다.

사람…… 아니, 정령이 갑자기 늙어 보이는 것만 같았다.

뭐, 사실 내가 딱히 신경 쓸 건 아니다.

나는 앞으로 이렇게 많은 게이트를 펼쳐 놓기만 하면 된다.

“자~ 이번엔 뭐가 좋을까?”

난 행복한 고민에 젖어 들었다.

어떤 주제로 여기 모인 흑염룡과 부원들에게 써먹고, 게이트를 또 만들지.

그 획기적인 방법을 고민했다.

“언니이…….”

입맛을 다시는 내 모습을 보며 신보미가 이지은에게 말했다.

내가 지금 상황에서 입맛을 다신다는 행동이 어떤 의미를 품은 것인지 정확히 아는 눈치다.

“응, 왜.”

“나 이 부서 괜히 온 거 같아…….”

“솔직히 나도…….”

하루가 채 지나지도 않았을 무렵, 그들은 이미 마음속에 후회를 품었다.

이런 귀여운 불만이 역시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저들이 저렇게 부정적이면 부정적일수록, 게이트는 더 늘어나게 될 거니까.

중2병의 최대 적은 같은 중2병.

이유는 아무리 획기적인 방법을 생각해도, 먹히지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상대도 중2병 환자라면, 다 생각해 본 적이 있거나 아니면 실제로 자신이 한 적이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일생을 진중하게 살아온 저들에겐 내 중2병에 익숙해지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

호신호다.

그리고 의도하진 않았지만, 하다 보니 다들 여자라는 것도 나에겐 큰 행운이다.

이런 썰렁하고 오글거리는 개그들을 같은 남자한테 한다고 남자가 오글거리기나 하나?

주먹만 날아올 거다.

아, 물론 정다훈은 예외.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이이기 때문에 이런 개그를 해도 타격이 없을 거다.

개그맨들이 가장 웃기기 힘들다는 사람이 어린이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다.

이 최적의 조건에서 최고의 효율을 찾으면 된다.

그러던 중, 이번에도 꽤 좋은 게 떠올랐다.

“저기 있잖아. 얘들아.”

“입 닫아요. 한 번 그런 오글거리는 거 했으면 최소한 한 시간 동안은 입 닫고 있어요.”

하지만 신보미가 진심으로 정색을 하며 열을 냈고, 나도 모르게 그 기에 눌려 입을 닫고 말았다.

“최소한 한 시간.”

한 시간을 강조한다.

쿨타임이라는 게 없던 나의 중2병에 강제로 중2병을 주입하고 있다.

“한 시간은 너무 기오. 30분/!/”

“……하, 이걸 또 이렇게 말장난을 한다고요? 설마 그거 4달러 패러디하는 거예요?”

한 유명한 드라마의 장면을 말하는 중이다.

“오~ 이런 것도 알고. 어쩌면 보미 너도 꽤 훌륭한 적임자가 될 수 있는 상인가?”

“왜? 이번엔 왕이 될 상이냐고 묻지?”

“그거 좋은데? 자네도 중2병의 왕이 될 상인가?”

“제발 입 닫아요. 괴로우니까.”

난 못 이기는 척, 입을 닫고 다시 컴퓨터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 내가 검색한 것은 걸그룹 아이돌이 컴백했다는 기사.

일부러 소리를 내서 읽었다.

“걸그룹 ‘블랙 하트’가 이번에 컴백했다네? 섹시 여전사 컨셉? 이건 너무 흔하지 않니?”

“예~ 예~ 차라리 그렇게 아이돌 기사나 보세요. 이제야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이네.”

신보미는 비아냥을 건넸다.

하지만 그 목소리 속에는 분명하게 만족감이 가득했다.

“크흐, 다 가졌어. 얼굴도 예뻐 돈도 잘 벌어, 팬도 많아. 팬이 많으니 명예도 있다고 볼 수 있겠네. 그렇지?”

“예~ 관심 없습니다~ 그냥 조용히 혼자 읽으세요, 부장님.”

다들 정말 내 중2병의 시간이 끝난다고 여긴 것 같았다.

말은 저렇게 매정하게 하지만, 적어도 표정은 긴장이 사라졌다.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마음의 준비를 하는 듯한 눈치였는데 지금은 그런 게 말끔히 사라졌으니까.

“부럽다~ 부러워~ 저렇게 다 가진 삶.”

난 일부러 그들의 안심을 더욱 확고하게 끌어올리기 위해 과도한 반응을 보였다.

[왜 이래? 너 평소엔 이런 거 보지도 않았잖아? 연예인에 관심도 없지 않았어?]

나와 가장 오래 붙어 있던 흑염룡까지 이런 소리를 하다니.

아무래도 기다리던 때가 온 것 같았다.

“그래도 부족한 게 하나 있네.”

“뭐가 부족해요. 다 가진 거 맞구만.”

신보미가 무심코 대답했다. 이때다.

“나, 윤도원을 못 가졌으니까.”

그 말이 끝나는 동시에.

쾅!

“진짜 적당히 해. 이젠 화나려고 하니까.”

이지은이 나를 한 대 때릴 기세로 쳐다봤다.

그녀의 주먹은 나 대신 책상을 내리친 상태다.

[정말…… 많이 미쳤구나……? 이렇게 작정하고 달려드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 아, 안 돼…….]

쿵!

흑염룡은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되었다.

덕분에 게이트 또 하나 확보.

게이트로 변한 흑염룡을 확인한 뒤.

이지은에게 답했다.

“Thank you, Lady.”

윙크를 찡긋하며 남긴 감사의 인사다.

“지금 그 찡긋 뭐야? 눈 파 버린다……?”

“…….”

아무리 친구처럼 말도 편하게 하는 사이가 됐다지만, 정말 진심이 엿보인 살벌한 이지은의 말이다.

***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어느덧 일주일이 가까워졌을 때였다.

[허억…… 헉…….]

흑염룡은 내 옆에 있는 것을 버거워할 정도로 지친 모습이다.

[그만…… 이제 그만…… 충분해……. 이 정도면 정말 당분간은 충분하다고……. 주인님, 제발 그만해 주세요…….]

심지어 이런 애원까지 남겼다.

흑염룡의 안색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눈가가 퀭하게 푹 들어갔고, 볼살도 쭈그러든 듯이 사라져, 광대뼈가 툭 튀어나온 것처럼 보였다.

마치 병으로 인해 식음을 전폐한 사람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난 계산을 해 봤다.

이 부서가 공식적으로 일과를 가지게 된 게 벌써 일주일째.

일주일 전의 흑염룡과 지금의 흑염룡은 완전히 다른 정령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게다가 흑염룡은 인간인 내가 봐도 한 미모를 자랑했던 정령인데.

지금은 다 늙은 할머니처럼 보일 정도로 마법에 걸린 것처럼 변해버렸다.

흑염룡이 저렇게 초췌해진 이유.

바로 시도 때도 없이 나의 중2병은 터져 나왔으며, 그때마다 흑염룡이 제물이 됐기 때문이다.

터져 나오는 것을 굳이 억제할 이유가 있던가?

게다가 이곳은 우리들만의 장소.

애초에 이러기 위해서 만든 곳이다.

그래서 참지 않고 곧장 입 밖으로 속에 있던 말을 꺼냈고, 그때마다 흑염룡은 게이트로 변했다.

그런 순간이 전과 비교하면 너무 잦아졌기 때문일까.

나도 모르게 흑염룡이 게이트로 변할 때마다, “흑염룡을 제물로 바쳐 게이트를 소환하고 턴을 마친다!”라는 말도 서스럼없이 나왔다.

유명한 카드 게임 만화에서 주로 나오는 대사를 인용한 것뿐이다.

그 결과.

게이트는 무려 32개.

고작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만들어낸 결과다.

일정한 간격으로 정렬된 건 아니지만, 난잡하게 펼쳐진 게이트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대단……하네.”

그때, 이지은이 내 옆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오면서 그녀는 귀에 있던 이어폰을 뺐다.

이지은이 이어폰을 끼고 있던 이유도 일주일 간의 변화 중 하나다.

하도 내가 부원이 싫어하는 중2병을 자주 하다 보니, 아예 ‘게이트의 시간’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게이트의 시간이란, 말 그대로 내가 게이트를 만들기 위한 수단인 중2병을 마음껏 하는 시간.

하루 중에 고작 2시간이다.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아침부터 그런 말을 들으면 컨디션이 전혀 상쾌하지 않고, 차라리 점심 먹고 나서 하는 게 가장 옳다며 강제로 정한 시간이다.

처음엔 나름 잠이 깬다고 긍정적이었으나, 결국 한계는 온 것인가.

그마저도 자신들은 항마력이 없어서 견디기 힘들단 이유로, 신보미를 주축으로 부원들이 멋대로 정한 ‘게이트의 시간’인 오후 2시부터 4시까지는.

졸지에 그들의 ‘이어폰 타임’이 되고 말았다.

처음엔 이지은도 부원들에게 아무리 그래도 게이트를 만드는 일은 이 시국에서 상당히 중요한 일인데, 너무 야박한 게 아니냐며 타박은 했지만.

하루 지나고 나니까 자신까지 이어폰을 끼고 있는 만행(?)을 보였다.

“이어폰 타임은 잘 보냈냐?”

“네가 적당히 했어야지. 게이트 32개나 만들어 놓고 무슨 욕심이 생겨서 그렇게 또 만들려고 한 거야. 우리들 생각도 해 줘야지.”

“그치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지은 쨩은 내게 관심이…….”

텁.

이지은은 강제로 내 입을 막았다.

“내가 이래서 이어폰 끼는 거야. 알았어? 지금 오후 4시 지났거든?”

난 그녀의 손을 뿌리치며 답했다.

“아니 귀엽기만 하잖아, 뭐가 듣기 싫다고.”

“확 씨.”

“오우, 박력 있어라.”

이지은이 이렇게 폭력적인 모습을 보인 것도 최근 변화 중 하나다.

“아무튼. 왜 그렇게 흡족한 표정으로 보고 있어? 게이트 펼쳐 놓은 거. 네가 원하는 대로 된 것에 대한 성취감 뭐 그런 건가?”

“음~ 비슷하지만 정답은 아니야.”

“그럼?”

“이렇게 펼쳐 놓은 상태로. 뭘 할 수 있을까, 그걸 생각 중이었거든.”

일주일 동안은 게이트 생성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지금 32개의 게이트가 그 결과물.

하지만 이 32개 게이트는 전부 온전히 지켜지지 않을 것이다.

“너무 수상하잖아.”

“수상해? 뭐가?”

“최현민 협회장이랑 강만식. 특히 강만식은 자신의 보물과 같은 정다훈을 잃었는데도, 연락 한 번이 없어.”

휴대폰을 이지은에게 보이며 말했다.

강만식이 정다훈을 보물로 여기는 것은 그의 능력과의 궁합 때문이다.

그렇기에 협상 당시에도 내가 정다훈을 데리고 간다고 했을 때, 협회장에게 반사적으로 따지기까지 했다.

그렇게 소중한 능력을 가진 정다훈을 잃었음에도, 그동안 나에게 욕설이나 협박의 전화, 문자가 일절 없었다는 게 수상했다.

하루 이틀이면 허탈함에 술이라도 걸쳤겠거니, 하며 생각을 하겠지만.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조용하단 것은 뭐겠어?”

게다가 이지은은 오랜 시간 동안 강만식의 손아귀에 놀아났다.

이 뜻을 모를 리가 없었다.

“또 뭔가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지. 절대 이렇게 물러날 양반이 아니지.”

하지만 이번엔 대응하기가 비교적 쉬웠다.

그들이 무엇을 준비하건, 그 목표가 너무나 예측하기 쉬울 정도로 확고하기 때문이다.

“분명히 이 게이트들을 노릴 거야, 그렇지?”

“하지만 네가 알아서 주기적으로 협회에 초월석 공급하기로 약속했다고 하지 않았어?”

그 물음에 난 손가락을 딱 튕겼다.

“바로 그거야! 내가 초월석 알아서 상납한다고 했는데, 여태 아무런 말이 없다니까?”

신동원처럼. 이용료로 월마다 일정 개수의 초월석을 공급한다.

이런 말이 아예 없었다.

애초에 이런 말을 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

“뻔하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가 만든 게이트를 뺏겠다. 이거 아니겠어?”

“하지만 그러지 못하도록 조항에 박아놨잖아? 완전히 독립적인 부서라서 협회장도 관여할 수 없다고.”

“그걸 순순히 받아들인 순간, 난 느꼈지. 아~ 저 양반 뭔가 꾸미는 게 있구나~ 하고.”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거다.

내 예측은 점차 확신으로 변해가는 중이다.

“보험이나 들어야지.”

난 그렇게 휴대폰으로 동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내가 촬영하는 것은 32개의 게이트들이다.

“뭐 하려고?”

“말했잖아? 보험.”

“……그 동영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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