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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66화 (66/200)

§ 66화. 음지에 남은 자들 (3)

아침이 다가왔다.

30년째, 늘 아침을 맞이했지만, 오늘 맞이하는 아침은 상당히 새로웠다.

바로 내가 최현민 협회장에게서 따낸 부서인 ‘양산부’가 공식적으로 첫 일과를 시작하는 날이다.

사실, 우리 부서는 할 게 아무것도 없다.

이 부서를 만든 이유도. 내가 정식 헌터의 신분을 받으려고 했던 게 다였기 때문이다.

신보미, 정다혜, 정다훈, 이지은.

‘양산부’는 이 네 명을 강만식을 비롯한 관리부, SF 길드원의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 보호하는 우리라고 봐야 한다.

사무 사무실의 모습은 황량하기가 그지없었다.

기존에 이 공장이 활발히 생산 활동을 할 때.

3천 명이 넘는 직원들이 일했던 공간이기에, 크기가 그만큼이나 넓다.

그런 곳에 우리는 달랑 테이블 5개, 컴퓨터 5대가 전부다.

사실 이 컴퓨터도 무언가 할 일이 있어서 갖다 놓은 건 아니다.

명색이 사무실인데 임대를 기다리는 휑한 상가 건물처럼 두고 싶지는 않았기에 조악하게나마 이런 구성을 해둔 것이다.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 솔직히 컨디션이 최상이라곤 할 순 없었다.

이는 나만이 아닌, 내 부원들도 전부 마찬가지다.

괜히 이마를 짚은 채로 앉아 있거나, “푸우…….”하고 한숨을 가득 채웠다.

어제 집들이 개념으로 시작한 우리의 조촐한 파티가 화근이었다.

다들 술을 많이 마신 상태이기에, 그 숙취 때문에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단, 두 사람은 예외다.

어린이인 정다훈. 그리고 사람이 아닌 흑염룡.

[그러게 술 좀 작작 마시지. 갑자기 신나서 들이붓더니.]

‘잔소리하지 마라. 어제는 그래도 되는 날이었어.’

[예, 예. 어련하시겠습니다. 주인님.]

흑염룡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정말 한심하단 듯이 말했다.

나도 술을 이렇게 들이부은 적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아마…… 내가 처음 20살이 되었을 때.

이제 미성년자라는 감옥으로부터 해방했다는 사실에 기뻤던 신년 1월 1일이 되는 자정.

인생 처음으로 필름이 끊겼을 때와 비슷한 양으로 마신 것은 확실했다.

난 부원들에게 물었다.

“다들, 해장이라도 해야지. 뭐 먹을까?”

“라면이요!”

하지만 들려오는 것은 정다훈의 활기찬 답이다.

“…또?”

어제도 먹고. 그제도 먹고… 그전에도 먹고… 그 전부터 계속 먹고…….

아무리 좋아하는 거라고 해도 이렇게 연속으로 먹으면 질릴 텐데. 정다훈은 그런 기색이 없었다.

난 라면이란 단어를 듣자마자 헛구역질이 나올 뻔했다.

내색은 하지 않았다. 정다훈에게 라면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기 때문에, 그 단어를 듣자마자 헛구역질을 하면 상처받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신, 최대한 좋게 말하며 회유했다.

“어… 다훈아?”

“네! 이번엔 어떤 라면 먹어볼까요? 라면 종류 많잖아요!”

“그러니까… 어제도 먹었는데 오늘은 다른 거 먹는 게 좋지 않을까?”

“……제가 억지로 먹자고 한 거였나요?”

나의 회유에 정다훈의 얼굴에 갑자기 먹구름이 드리우더니, 우물쭈물하게 답했다.

나 참. 저러면…….

[어이, 주인님. 그냥 먹어 줘라. 애가 저렇게 원하잖아. 못 먹을 것도 아닌데.]

그래, 흑염룡의 말대로다.

나이가 무기인가. 어쩔 수 없었다.

“그래. 대신 오늘은 하얀 국물 라면 먹자.”

“오! 그건 처음 먹어봐요! 좋아요!”

국물이 하얗건 빨갛건, 다 똑같은 라면이지만. 이렇게라도 다른 종류를 먹어야 그나마 괜찮을 것 같았다.

“다들…… 괜찮지?”

혹시나 싶어 부원들을 묻자, 전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가 다훈이랑 같이 사서 올게요. 편의점 위치도 봐 뒀으니까 어렵지 않아요.”

정다혜가 나서서 정다훈을 데리고 갔다.

정다혜가 만든 포털을 만들었을 때.

“누나 포털 별로야. 들어가면 막 멀미 나는 느낌이야. 이번엔 내가 만들까? 내 포털은 그런 거 없는데!”

“얼른 들어가기나 해.”

잠시 티격태격한 남매의 모습을 보이곤, 둘은 함께 포털 속으로 사라졌다.

“……저기, 지은아.”

어제 조촐한 파티 속에서 일어난 또 하나의 변화.

이지은과 정말 친구처럼 말을 편하게 하게 됐다는 점이다.

어차피 나와 동갑인데다가, 이제는 내가 그녀의 부장.

이런저런 상황을 종합해 보니 그 전처럼 거리감이 느껴지는 ‘씨’와 같은 호칭은 그만하라는 장길수의 제안을 듣고, 우리 둘 다 그렇게 하기로 했다.

“왜?”

이지은이 무심하게 답했다.

“라면…… 먹고 싶냐?”

“지금 뒷담하려는 거? 부장이 돼서?”

“……무서워서 말을 못 하겠네.”

이지은은 웃자고 한 말이겠지만, 원체 그녀의 성격이 진중한 탓에 이런 농담도 웃음기 싹 빼고 한다.

그렇다 보니 엄격한 동갑내기 선생님을 만난 듯했다.

“표정은 풀고 말해라. 무섭다, 야.”

“그래?”

이지은은 작은 손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확인했다.

“별로 안 무서운데.”

“그래, 예쁘기만 하지?”

그 순간, 이지은의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아, 미쳤나 봐. 진짜 왜 그래요? 제발 그렇게 훅 들어가지 말라니까요? 아니 그리고 사람이 좀 텀이 있어야지 무슨 시도 때도 없이 게이트 만들라고 그래?”

이젠 신보미도 한마디 거들었다.

나도 그냥 웃자고 한 말이었는데, 이런 내 말 한마디 전부가 저들 눈에는 게이트를 만들기 위한 작업으로 보인 모양이다.

“어…… 이건 조금 억울한데.”

[휴우……. 신보미 아니었으면 위험했다.]

아깝다.

솔직히 노린 건 아니었지만, 이왕 또 만들면 좋긴 한데.

우리끼리 수다를 떨며 아침을 열던 중에 장길수가 나를 찾아왔다.

“저, 고객님?”

“아, 네.”

“죄송하지만 저희가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혹시 무슨 일이 있습니까?”

“다름이 아니라. 본부장님 호출입니다. 게이트가 아직 처리되지 않은 그 집 있잖아요?”

이지은이 가진 그 상가 건물을 말하는 것이다.

현재 이 시국의 보물, 게이트 4개가 방치된 채로 우린 이곳으로 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해당 게이트 4개는 내가 1년 치 정산으로 신동원한테 알아서 정복하고 알아서 초월석을 가져가라고 한 곳이었다.

물론, 그 속에서 크루즈가 나오면 골치가 아파지긴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직접 들어가서 가져다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당장 신동원도 해당 게이트를 정복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아마 정말 정복할 때쯤, 내게 말할 것이다.

그때 내가 잠깐 같이 들어가 주고, 크루즈가 이미 점령한 던전인지 아닌지.

이것만 확인해 주면 됐다.

이 부분 역시, 어제 장길수와 거하게 한잔 걸치면서 미리 얘기해 놨다.

크루즈란 존재도 그들에게 미리 일러뒀고, 실제로 그들은 크루즈를 본 적이 있지 않은가?

게이트에서 갑자기 드래곤 머리가 튀어나와 구체 형식의 더스티를 집어삼켰던 그 장면.

그때 그 더스티가 크루즈라고도 미리 알려줬다.

“네.”

“아무래도 강만식이나 최현민. 그 작자들이 불안하다고. 일단 그 게이트를 지켜야 할 것 같다고 해서요.”

명백히 따지면 내가 해당 게이트는 신동원에게 넘겨주었으니, 소유권은 그에게 있다고 봐야 했다.

“아, 물론이죠. 그런데…… 팀장님이 빠진 것을 알면 강만식 그놈이 이쪽에 무슨 허튼 수를 쓰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희가 준비했죠. 그 부분도 염두에 두고요.”

장길수는 빨간 버튼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기계를 내게 건네줬다.

“장난감…… 같이 생겼네요?”

“처음 보시죠?”

“아니요. 본 적은 있어요. 이거…… 편의점 카운터 밑에 있는 호출기랑 똑같이 생겼네.”

편의점 카운터 아랫부분에는 경비 업체와 가까운 파출소의 경찰을 동시에 호출하는 벨이 있다.

근무 시간 중 강도나 기타 사고가 일어났을 시에 써먹는 비상 호출벨의 개념이다.

내가 막 성인인 20살이 되었을 때, 편의점 알바도 해 본 적이 있어 잘 알고 있었다.

“아~ 네! 그거랑 똑같은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만약 이곳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누르세요. 그럼 저희에게 신호가 오니까, 저희가 바로 이곳으로 워프해서 오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저도 다시 한번 강조드리겠습니다. 게이트 정복하려고 할 때 꼭 저와 같이 들어가야 한다는 말. 잊지 않으셨죠?”

“물론입니다. 크루즈의 던전인지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고 했잖아요? 크루즈의 던전이면 초월석은 어차피 없는 거고.”

“네.”

“그렇지 않아도 그 부분을 본부장님에게 전달하니, 만약 4개의 게이트 중 크루즈가 점령한 게이트가 나오면 크루즈가 점령한 던전 개수만큼 게이트 더 줘야 할 거라고 하던데요.”

헛웃음이 다 나왔다.

그렇다고 부정적인 의미의 헛웃음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계산은 철저하네요?”

“뭐, 본부장님 성격이겠죠.”

그래, 차라리 좋다고 생각했지.

이렇게 노골적인 비즈니스 관계.

나쁘지 않다.

“알겠습니다. 아, 혹시 저희 라면 먹을 건데 식사 같이하고 가실래요?”

“아닙니다. 저희는 호출이 먼저라서. 알아서 챙겨 먹을 겁니다. 그럼, 꼭 무슨 일 생기면 그 벨 누르세요.”

“네.”

“그 외에도 시간 날 때마다 와서 살피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장길수도 4개의 게이트가 펼쳐진 곳으로 갔다.

이윽고 정다혜와 정다훈이 돌아왔고, 우리 5명은 다 같이 모여 라면을 먹으며 오전을 보냈다.

어차피 할 일 같은 것도 없으니 다들 책상에 엎어져 잠깐 낮잠을 잤다. 그렇게 오후가 되었다.

“그런데 오빠. 우리 뭐 해야 해요?”

슬슬 무료함의 시간이 다가왔다.

오늘도 활발한 모습인 신보미가 물었다.

“응? 할 거 없는데?”

“그래도 명색이 부서인데. 그냥 이대로 있어요?”

“응. 뭘 해야 해? 심심하면 게임이라도 하던가.”

“아니…… 이래도 되는 건가?”

겉으로는 협회장 직할이라는 대단한 이름을 가진 부서인데, 실상은 무료하게 놀고만 있는 모습이니 이상하게 느껴진 것이었다.

난 이 순간이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모처럼 모인 이럴 때에……!’

[야, 잠깐만. 조금 쉬더니 컨디션 회복한 거야? 너 그 목소리 낼 때마다 꼭 게이트 하나씩은 나왔다고. 지금 그때랑 목소리 똑같은데?]

‘알려주면 재미없지.’

그래. 이 부서의 이름은 ‘양산부’.

마침 이 부서는 전에는 생산 활동을 활발히 하던 공장.

진짜 제대로 된 생산 활동을 벌일 차례다.

“가만있어 보자…….”

난 인터넷으로 한 가지를 검색했다.

흑염룡은 화면을 보면서 물었다.

[‘혈액형별 성격’? 지금 갑자기 이건 왜?]

‘다~ 쓸 곳이 있으니까.’

“보미야.”

“네?”

“너 혈액형 뭐야?”

“저요? O형인데. 왜요?”

“음. 지은이 너는 왠지 A형일 거 같은데?”

“나? A형 맞긴 한데. 그런데 뜬금없이 왜 혈액형을 물어?”

“음~”

내게 질문을 차례대로 하는 중이었지만, 답은 하지 않았다.

이제 내 시선은 정다혜에게 멈췄다.

“다혜는 AB형 같은데. 다훈이 너도 AB형?”

“어…… AB형은 사이코라던데. 저 사이코 아닌데…….”

정다훈은 우물쭈물하게 답했지만, 정다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이코로 따지면 도원이가 제일 AB형에 가깝지. 넌 혈액형 뭔데?”

이지은이 물었다.

고맙다! 원하던 질문이다. 나는 한 손으로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말했다.

“나? 미남형.”

“아오 씨…….”

이지은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 이런 얼굴은 모두의 이상형 아니야?”

“그만!”

[방심했다……. 갑자기 혈액형 검색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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