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음지에 남은 자들 (2)
“왜 그렇게 보세요?”
정말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들이다.
특히 장길수가 유독 심했다.
눈을 비비며 다시 확인하는, 과장된 행동을 보이기까지 했다.
“아니, 도깨비를 다루는 분이 왜 이런 거에 놀라요.”
“방금 뭐예요? 왜 갑자기 게이트가 생성된 거죠?”
“자, 일단은. 테이블을 조금 옆으로 옮깁시다.”
바로 테이블 옆에 게이트가 생성됐다.
따라서 실수로 젓가락이라도 떨어트려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면 화기애애한 집들이는 거기에서 끝나고, 레이드로 전환해야 했기 때문이다.
게이트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테이블을 옮겼다.
역시, 공장으로 사용하던 곳이라 그런지.
장소가 넓어도 너무 넓다. 이런 식으로 장소를 낭비해도, 한 층에 게이트 최소 300개 이상은 펼치고도 남을 정도로 보였다.
테이블을 옮긴 뒤, 난 장길수에게 설명했다.
내가 만드는 게이트가 어떤 원리로 나오는지.
저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흑염룡의 존재, 그리고 그 흑염룡의 감정이 변할 때마다 저렇게 게이트가 된다고 설명했다.
그중에서도 난 오글거리는 쪽을 선택한 이유가 보통은 분노나 슬픔은 사람이 조절할 수 있지만, 오글거리는 건 정말 조절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크흐, 그거 현명하신 판단이었네요.”
장길수는 진심으로 나를 칭찬했다.
“수양 생활을 오래 한 저도 방금은 정말 주먹을 불끈 쥐었거든요.”
하긴, 스님 출신이니 마음의 평화를 다잡는 일에는 도가 텄을 것.
그런 장길수도 흠칫할 정도라고 하니 뿌듯했다.
‘후후, 역시. 난 아직 죽지 않았어.’
[하…… 방심했다가 한 대 맞아 버렸어…….]
흑염룡은 고작 한 번에 진이 빠진 듯했다.
‘바짝 긴장하고 있어. 언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몰라.’
[진짜 짜증 난다니까. 정말 싫은데, 게이트를 만들려면 또 어쩔 수가 없고…… 하아, 기구한 내 삶…….]
“아무리 그래도. 나한테는 그런 짓 하지 마세요. 도원 씨.”
이지은이 경고했다.
정말 열이 조금 받은 모양이다. 얼굴이 화끈거려 빨개진 상태다.
절대 술 때문에 저렇게 된 게 아니란 것쯤은 알았다.
“언니! 그럼 우리한테 한다고!”
옆 테이블에 있던 신보미가 소리쳤다.
하긴, 나랑 처음 만났을 때도 욕설을 서슴지 않았던 신보미 아니던가?
그때 나한테 했던 욕은 진심이었던 게 분명하다.
“저도 싫어요…….”
정다혜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시끄러워요~ 나 부장이거든? 감수하세요~”
하지만 이젠 상황 달라졌다.
난 이들의 부장. 꼰대스럽지만, 그냥 직위로 밀어붙였다.
내가 이지은을 처음 봤을 때도 그녀의 진중한 성격을 마음에 들어 했다.
그 이유? 방금과 같은 상황 때문이다.
감정은 전염병과 같다.
내가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아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나와 다른 감정을 느끼면 이상하게 나도 그 감정에 동요된다.
대표적으로 개그 프로그램도 그렇다.
나는 별로 안 웃긴데, 주변 사람 모두가 웃고 있으면 의도하진 않아도 따라서 웃게 되는 그런 전염이 강하다.
흑염룡은 나와 함께 있는 한, 내성이 생길 것.
아무리 내가 머리를 쥐어 짜내서 기발한 오글거리는 방법을 터득 한다고 해도.
너무 자주 접했기 때문에 나중엔 무뎌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게이트는 생성 중단된다.
그것을 방지하는 게 바로 이지은의 진중한 성격이다.
이지은은 나처럼 가볍고 평범한 인생을 살아오지 않았기에, 이런 중2병에는 내성이 아예 없는 상태.
따라서 흑염룡만을 오글거리게 하는 것보단, 주변 인물인 이지은. 그리고 정다혜와 신보미까지.
이들을 이용한다면 비교적 오랜 기간 오글거리는 방법을 써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난 피식 웃었다.
‘완벽해.’
[너 또 이상한 생각 했지?]
‘아니야. 진짜 아니야. 이번엔 결백해.’
[불안하네…….]
흑염룡은 이제 사소한 나의 생각 하나하나에 딴지를 걸었다.
“뭐가 그렇게 기분 좋아서 웃으시는 거예요?”
장길수가 물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화제는 전환되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고객님, 저희가 여기 상주하면서 정확히 할 일이 뭐죠? 저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오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일?”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정확히 말하면 아직은 할 일이 없으시죠.”
“오호, 아직은 할 일이 없다라? 저희까지 여기로 부른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제가 저번에 말했던 것 같은데? 전 솔직히 최현민 협회장 안 믿거든요.”
“하긴, 최현민 그놈이 능력이 다른 쪽으로 발달한 놈이니까.”
마치 죽마고우를 대하듯이, 장길수는 유독 최현민에 대해서 해박하게 아는 듯했다.
“네, 팀장님도 잘 아시는 것 같네요. 뒤에서 뭔 짓을 할지 모르는 양반이라서. 불안해가지고요. 아직 제 힘이 자력으로 그들의 견제를 극복할 정도로 완벽하진 않아서요.”
“잘 선택하셨습니다. 저희도 이렇게 지내는 거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장길수는 적어도 이곳으로 온 것에 대해서 불만은 없었다.
“팀원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죠.”
“다들 저와 같은 마음입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자, 한잔~”
장길수가 건배를 권했다.
내 아버지뻘 같았지만, 지금 그 순간에는 친한 친구와 편하게 술 한잔하는 느낌이었다.
새롭게 채워진 잔을 비운 뒤.
난 장길수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팀장님.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도 되나 싶네요.”
“뭐든 물어보세요. 제가 누구처럼 켕기는 게 많은 사람은 아니라서 답하기 곤란한 건 없거든요.”
정말 자신감 넘치는 말투를 보니, 청렴결백한 사람은 확실한 듯했다.
“그렇다면…….”
장길수가 물으라고 했으니, 정말 궁금한 것을 물었다.
“왜 수령사 길드장님이었던 팀장님이 태강 길드에 들어갔는지, 그 후에는 본부장님이랑 함께 자발적으로 은퇴했는지. 그게 궁금했죠. 수령사는 비록 옛날 길드긴 해도, 제가 알 정도로 유명했던데.”
“아~ 그거요?”
개인적으로 난 가슴 아픈 얘기라고 생각해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물었는데, 장길수는 오히려 가볍게 여기는 듯했다.
“특별한 이유 없습니다. 원래 정상적이라면, 제가 최현민 위치에 있을 예정이었는데, 최현민이 그 자리를 뺏은 거죠.”
“……예?”
그러니까, 그 말을 풀이하자면……. 최현민의 위치라 하면 협회장 아닌가?
그런 협회장 자리가 예정대로라면 최현민이 아닌, 장길수가 되었어야 했는데.
어떠한 이유 때문에 지금 최현민이 협회장이 되었단 뜻이 된다.
“그게…… 특별한 이유 아닌가요?”
“어차피 지난 일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저도 최현민 그놈 안 좋아합니다. 단순히 협회장 자리를 뺏어서가 아니라, 그냥 사람 됨됨이가 안 된 놈이었거든요. 예의도 없고.”
하기야, 스님 출신이었던 장길수라면.
예의범절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겼을 거다.
그래도 무려 협회장 자리를 뺏긴 것에는 너무 관대해서 더 혼란스러웠다.
“최현민 그놈이 선동과 날조에는 아주 도가 튼 놈이거든요. 저를 협회장 후보에서 몰아내려고 별 추잡한 꼬투리를 다 잡았거든요. 결과적으로 전 협회장이 되지 못했고, 거기에 염증이 나서 수령사도 해체, 그냥 아무 직급도 가지지 않은 편한 삶을 살고 싶어서 태강의 길드원으로 들어간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한때 길드장이었던 사람이 남의 길드 밑으로 들어가기로 한 결정은 힘들었을 텐데…….”
일반인 회사원만 하더라도, 부장 정도 되는 간부의 직급을 가진 사람도.
부장 직급을 내려놓고, 다른 회사의 일개 사원으로 입사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싶었다.
“어차피 지난 일입니다. 본부장님 따라서 은퇴한 이유도, 제 상황 다 이해해주고 도와준 사람이 본부장님인데. 같지도 않은 꼬투리로 은퇴하시니, 정말 헌터계에는 애정이 사라지게 되더군요.”
심지어 신동원이 은퇴하게 된 것도 최현민의 작품 아니던가.
정말 여러 사람 보낸 협회장이다.
난 잠시 생각해 봤다.
장길수 같은 사람이 협회장이라면 어떨까?
일단 그럼 강만식 같은 헌터는 설 자리가 없게 된다.
말하는 것에도 느꼈지만, 장길수는 헌터라면 실력과 인성을 중요시하는 것 같았다.
그런 사람이 헌터의 대통령, 협회장 자리에 있으면 덩달아 사리사욕만 챙기는 강만식 같은 헌터는 사라지게 될 것.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단 소리도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난 그에게 내 희망사항을 담은 질문을 했다.
“그런데 팀장님. 은퇴를 번복하는 일 같은 건. 아예 구조적으로 불가능해요?”
“네, 불가능하죠.”
아쉽게 됐다.
정말 장길수 같은 사람이 협회장이 되면 참 좋았을 텐데.
“또 무슨 생각에 잠기셨어요?”
“아, 아닙니다.”
장길수의 잔에 술을 다시 채웠다.
그래, 오늘은 어차피 편하게 쉬려고 모인 날.
나도 복잡한 생각은 버렸다.
***
다음날 오전이 되었을 때.
정훈섭이 수감 중인 독방 앞에 교도관이 다가왔다.
“6974.”
교도소에 들어온 순간 자신의 이름은 사라지고 숫자로만 불리게 된다.
늘 짜증 나는 번호였지만, 오늘의 정훈섭은 달랐다.
“기다리고 있었수.”
아니, 오히려 설레서 잠을 설칠 지경이었다.
그는 잠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듯했다.
얼른 자면 아침이 올 것이고, 아침이 찾아오면 난 이 지옥에서 나갈 수 있다.
흡사, 소풍 전날의 어린이처럼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듯했다.
너무 기대를 했기 때문일까?
오히려 잠은 오지 않았고 ‘나가면 뭐부터 하지?’ 이런 설렘에 잠을 설치게 됐다.
눈꺼풀이 무거울 정도로 피곤한 상태지만, 자신을 부르는 번호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와.”
교도관은 정훈섭의 독방 문을 열고 그를 밖으로 나오게 했다.
그렇게 교도관과 함께 교도소 복도를 느긋하게 걸으며 정훈섭이 물었다.
“다 된 거요?”
“……그렇다.”
“나 가석방 맞지요? 지금 밖으로 내보내는 길이고?”
“조용히 해.”
교도관이 심혈을 기울여 입단속을 시키려 했다.
다른 죄수가 듣기라도 하면 골치 아픈 상황이 나오기 때문이다.
“푸하하하하하!”
자유에 완벽하게 다가갔다고 여긴 정훈섭은 복도에서 쩌렁쩌렁한 폭소를 터트렸다.
“난 간다! 너희는 죽어야 나가겠지만, 난 살아서 나간다! 잘 있어라! 가석방 받았거든! 크하하하!”
기분을 너무 낸 정훈섭은 결국 교도소가 발칵 뒤집힐 도발을 하고 말았다.
“뭐?! 야! 교도관! 왜 저놈은 가석방이야! 가석방이란 거 없잖아!”
철컹! 철컹!
교도소 문을 주먹으로 치며 항의하는 죄수들이 빗발쳤다.
“이런……!”
교도관은 난색을 표하며 호루라기를 불었다.
삐이이익-!
그러자 대기하던 다른 교도관들이 일제히 복도로 튀어나와 수감자들을 진정시키려 애썼지만, 이미 상황은 너무 늦고 말았다.
“6974. 이런 식이면 우리가 가석방을 거부할 수 있어.”
정훈섭을 인솔하는 교도관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경고했다.
“네가 뭔데? 협회 직할 관리부장보다 높아? 같잖은 협박하지 말고 빨리 내보내기나 해. 너희가 거부한다고 해도 협회에서 이미 결정 난 사안이잖아?”
“…….”
반박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정훈섭은 교도소를 폭동이 일어날 수준으로 뒤흔든 뒤에야 교도소에서 나왔다.
밖을 나오니, 강만식이 이른 아침부터 차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훈섭은 강만식에게 넙죽 절을 올렸다.
상대가 나이가 어리건, 뭐건.
그런 건 아무런 상관이 없다. 지금 정훈섭에게는 저 지옥에서 벗어나게 해준 강만식이 신으로 보였으니까.
“감사합니다. 꼭 보답하겠습니다.”
“타기나 해. 오늘부터 한 달이야. 명심해.”
“네. 물론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