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음지에 남은 자들 (1)
“앉으시죠? 감방 생활이 힘들긴 한가 봅니다? 마지막에 봤을 때랑 비교하면 인상이 말이 아니네.”
강만식이 정훈섭에게 말했다.
정다혜와 정다훈의 친부 정훈섭.
50대 중반의 죄수 신분이다.
본래 그는 건장한 체격이었지만, 현재는 광대뼈가 그대로 드러날 정도로 피골상접한 상태다.
게다가 개인위생 상태도 엉망이라 할 수 있었다.
너저분하게 자란 수염하며, 이발도 제대로 하지 않았는지 머리가 덥수룩하게 자란 것은 물론.
잔뜩 낀 기름기로 인해 머리카락에서 빛이 날 정도다.
정다훈은 영문도 모른 채, 일단 강만식과 마주 보며 앉았다.
“교도소 밥은 어떻수? 벌써 몇 년이나 살았지?”
“당신이 여길 왜…….”
모든 게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강만식이 연락도 없이 갑자기 나타난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그의 말투에서 일말의 친근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 당혹스럽겠지. 그럼 안부 인사 집어치우고.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지. 당신 능력이 정확히 뭐였지?”
“내 능력은 갑자기 왜 알고 싶은 거죠?”
“당신 아들내미. 손이 기가 막혔는데, 아비씩이나 되는 양반은 어떤지 궁금해서. 피는 못 속인다는 말 있잖아? 그 꼬맹이가 그런 능력을 가졌는데, 아비도 연관 있는 능력을 가지지 않았겠어?”
“공간 창조밖에 없는데.”
“공간 창조라…….”
강만식은 이것 때문에 정훈섭을 찾았다.
협회장 최현민과의 은밀한 거래를 한 뒤,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만식이 원했던 능력은 범위가 큰 워프.
단순하게 공간을 창조하는 능력을 가진 정훈섭은 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그래도 쓸모없는 능력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다.
정다훈의 경우에도 공간 창조는 있었다.
만약, 정다훈과 버금가는 수준의 공간을 창조할 수 있다면.
강만식이 가진 능력과의 궁합이 좋으니, 두고두고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은 확실했다.
‘워프가 없다면…… 귀찮지만, 워프 능력자를 늘려서 커버하는 방법은 있어. 하지만 공간 창조는 빈 정다훈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을 텐데.’
워프 능력자를 늘린다는 강만식의 생각은 이렇다.
예를 들어 한 워프 능력자가 워프할 수 있는 거리가 고작 5km 정도라면.
그런 워프 능력자가 10명 있다면, 각자 5km씩 떨어트린 상태로, 징검다리 형식의 워프가 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50km의 거리를 워프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물론, 실력이 좋은 워프 능력자. 바꿔 말하면 워프 레벨이 높은 능력자의 경우엔 한 명이 300km도 워프할 수 있지만, 지금은 그 수준까지 바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공간 창조? 어떤 식으로?”
“간단합니다. 공간 속에 공간을 만드는 거죠. 예를 들면…….”
정훈섭은 곧장 면회실에서 자신의 능력을 선보였다.
면회실의 배경이 바뀌었다.
둔탁하고 답답한 면회실이 아닌, 탁 트인 초원의 배경이 되었다.
치지지지지직-!
그러자 정훈섭에 차고 있던 수갑에서 강한 스파크가 일어났다.
“끄윽……!”
이 교도소는 오직 헌터만을 수용한 특별 교도소.
죄수 전부가 범죄를 저지른 헌터들이다.
그렇기에 헌터들이 능력을 사용하면, 감시하고 있던 교도관이 강한 전류를 발생시켜 능력을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일반인이라면 저 전류를 맞은 순간 쇼크사에 이를 정도로 강도가 심하지만, 헌터들은 괴로워하면서 능력 발현이 되지 않는 수준으로 끝이다.
수갑에서 전류가 흐른 순간, 정훈섭의 능력은 즉시 중단되었고, 초원이 사라진 뒤 다시 둔탁한 면회실로 돌아왔다.
“뭐, 그냥 눈속임 정도네?”
강만식은 정다훈의 상태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능력을 냉철하게 평가했다.
하지만 정다훈의 능력과는 정말 근본적으로 다르다.
정훈섭의 원리는 공간 속에 공간을 만드는 것.
비눗방울로 치면, 거대한 비눗방울 안에 작은 비눗방울을 새롭게 넣는 것과 같았다.
바로 거대한 비눗방울이 면회실이고, 초원은 작은 비눗방울이다.
결국 틀에서 벗어나는 게 아닌, 공간 속에 다른 공간을 만들어 다른 곳에 온 착각이 들게 만드는 것이 전부였다.
“미로 형식으로는 못 만들어?”
“해 본 적은 없습니다만. 그런데 왜 갑자기 제게 관심을 보이는 거죠?”
나이는 정훈섭 쪽이 훨씬 많지만, 죄수 신분이기에 정훈섭은 강만식에게 깍듯한 태도를 보였다.
반면에, 강만식은 정훈섭을 부하 다루듯이 굴었다.
“당신 아들.”
“다훈이가 왜요?”
“얼씨구, 언제는 아들내미가 밥을 처먹는지 어떤지 관심도 없던 양반 입에서 ‘다훈이’? 소름이 끼치네.”
“저도 반성 많이 하고 있습니다. 자식들에게 늘 미안하죠. 못난 아버지 둬서 고생시킨 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왜 내 눈엔 진심이 안 보일까?”
정말이었다.
강만식 눈에는 그저 변명으로만 들렸다.
기회주의적인 변명이란 뜻이었다.
“오히려 당신이 반성을 하지 않아야 여기에서 나갈 수 있어.”
“……예?”
나갈 수 있단 말에 정훈섭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헌터들의 교도소는 다른 말로 ‘헌터들의 무덤’이라고 불린다.
교도소 생활이 악명 높아서?
아니다. 오히려 헌터들의 교도소에는 일과란 게 없다.
일반인의 교도소에선 정해진 일과가 있고. 운동 시간 등등. 규칙대로 움직이지만, 이곳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전부다.
그로 인해서 미쳐버리는 헌터도 있으며, 자살을 하는 헌터도 속출하곤 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무덤이라 불리기엔 부족했다.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으니.
바로 헌터들의 교도소에는 석방이 없다는 점. 이것은 죄수 전체에게 적용되었다.
무기징역. 그렇기에 교도소를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이곳에서 나이가 다 해서 죽던, 미쳐서 죽던.
어느 쪽이건 죽어야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반성을 하지 않아야 나갈 수 있단 말이 아무리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반성하지 말란 뜻은 뭡니까?”
“간단해. 당신 아들이 사고를 쳤으니, 아비인 당신이 수습하라고. 내가 당신한테 준 12억. 그걸 또 카드 치는데 썼냐고 따지려고 온 거 아니거든. 따지려고 했으면 몇 년 전에 진작 따졌겠지.”
정훈섭이 도박으로 진 빚은 10억. 나머지 2억은 생활 정착하는 데 쓰라고 준 돈이었다.
“다훈이가 사고를 쳤다니요?”
“뭐, 깊게 알 건 없고. 어차피 차차 알게 될 거니까. 아무튼, 이거 하나만 묻지. 내가 이 교도소에서 당신을 나오게 한다면, 내게 충성을 맹세할 텐가?”
“…….”
정훈섭은 말을 아꼈다.
사실, 이미 답은 정해졌지만 너무 선뜻 답하면 강만식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입은 가만히 있어도, 그의 눈동자는 바쁘게 굴러갔다.
“숨김없이 말하는 게 좋을 거야.”
강만식은 단번에 정훈섭의 생각을 파악했다.
“……당연한 걸 왜 묻습니까.”
직설적이 아닌, 돌려서 답했다.
“솔직해지라고. 내가 지금 장난치는 것 같아?”
“……시키는 건 뭐든 하죠.”
“좋아. 하지만 지금 당신 수준으로는 너무 부족해. 내가 원하는 수준이 되어야 해.”
“어떤 수준을 말하는 거죠?”
“내가 말한, 복잡한 미로 형식의 공간을 만들 수 있는지. 또한, 만들었다고 해도,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이 들어갈 수 없도록 막을 수 있는 수준이 될 것. B급 헌터였다며? B급이면 그 정돈할 수 있지 않아?”
“해 본 적은 없지만…….”
정훈섭은 마음을 다잡았다.
오직 죽어야만 석방이 되는 이 지속에서 나갈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해 보겠습니다.”
“좋아 딱 한 달 준다. 그 안에 내가 원하는 수준이 되면 자유를 주지.”
하지만 문제는 존재했다.
“교도소 안에서 어떻게 능력을 연습한단 말입니까. 이걸 방금 봤으면서.”
자신의 손목에 채워진 수갑을 보여주며 말했다.
“내가 그 생각 안 했을까 봐? 내일, 가석방이 될 거야. 내가 데리러 올 거고.”
“…….”
정훈섭은 잠자코 듣기만 했다.
이 교도소에서 나갈 수 있단 희망을 가진 사람이 없는데, 강만식은 정말 촛불을 끄는 것처럼 간단하게 말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미 확정이 난 듯하다.
헌터만을 가둔 교도소. 나가려면 협회장의 별도 승인이 필요한데, 그 과정까지 마쳤다는 뜻이 됐다.
“당신. 내 직급이 뭔지는 알지?”
강만식이 물었다.
“SF 길드장…….”
“말고.”
“협회 직할 관리부장.”
“그래. 내일 가석방을 받은 당신은 임시로 관리부원이 된다. 그리고 기존에 있던 관리부원들이 당신을 감시할 거야. 정확히 한 달 내에 내가 원하는 수준의 능력을 가졌는지, 아닌지를 실시간으로 파악해야 하니까.”
“만약…… 원하는 수준이 되지 못했으면요?”
“알면서 뭘 물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는 거지. 그러니까 당신 하기에 달렸어.”
강만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지. 정다훈을 내게 보낸 것도 당신의 선택. 그리고 가석방을 받기로 한 것도 당신의 선택이야. 책임 확실하게 지라고.”
“다훈이가 쳤다는 사고는……. 그리고 반성하지 말라는 결정적인 이유는 뭡니까. 뭐라도 하난 알아야죠.”
“아~ 그렇지. 제일 중요한 거지. 반성하지 말란 거.”
강만식이 면회실을 떠나기 직전. 그에게 비수와 같은 말을 남겼다.
“당신은 나오게 되면 당신 자식들이랑 싸우게 될 거야. 근데 상관없잖아? 어차피 도박에 미친 놈이었는데. 자식은 안중에도 없었잖아? 내일 보자고. 자식과 싸우기 싫으면 당연히, 여기에 남으면 돼.”
쾅.
강만식은 문을 세게 닫으며 나갔다.
“……뭐?”
정훈섭은 귀를 의심했다.
설마, 자식과 싸우게 될 줄은 전혀 예상도 못했다.
“그래도…….”
그는 자식들과 싸운다는 말보다, 이 교도소에서 나갈 수 있단 말이 더 기억에 남았다.
***
“크흐~ 좋다!”
우리의 집들이가 한창이다.
하지만 다 같이 모여서 먹는 게 아닌, 나와 장길수, 이지은이 한 테이블에 앉았고.
나머지 장길수의 팀원과 내 부원들이 옆 테이블에서 함께했다.
소주를 들이켠 장길수는 걸쭉한 목소리를 냈다.
정말 진심으로 기분이 좋아 보였다.
“크흐, 저도 좋네요.”
심지어 이지은도 꽤 걸걸한 목소리를 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이지은은 이해할 수 있다.
나와 처음 만났을 때도. 연신 강만식의 감시 때문에 밖을 마음대로 못 돌아다녔던 그녀다.
이제 그런 족쇄가 완전히 풀렸으니, 저렇게 자유로운 목소리도 다 내는 법이다.
“음, 근데 지금 보니까 말이죠.”
장길수가 우리 둘을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현재 나와 이지은이 나란히 앉은 상태다.
장길수는 그러면서 손으로 액자 모양을 하고는 우리 둘의 얼굴을 자신의 손안에 담았다.
“두 분이 꽤 잘 어울리시네? 선남선녀를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어머, 벌써 취하신 거예요?”
이지은은 이제 이런 농담도 아무렇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난 머릿속에서 번개가 치는 것처럼, 무언가가 번뜩였다.
‘이거라면……!’
[야, 너 불안하게 왜 그래. 갑자기.]
그래, 이 분위기를 이용하면 또 한 건 올릴 수 있다.
난 이지은의 쪽으로 돌려 앉으며,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지은아……!”
“……?”
“내 안에 너 있는데, 네 안에 난…… 언제 들어갈 수 있니?”
“옴마야?”
장길수는 정말 당황스러운 반응이었고.
“하, 술맛 떨어지게……!”
이지은은 분노했는지, 꽉 쥔 주먹을 덜덜 떨었다.
쿵!
흑염룡은 게이트가 되었다.
“아싸! 한 건 끝! 자, 다시 한잔하시죠!”
게이트가 새롭게 생성된 것을 확인하고 난 본래의 분위기로 돌아왔다.
“……허허?”
장길수를 포함한 그의 팀원이 방금 일어난 일에 눈을 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