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우리들만의 장소 (3)
“생각이라. 그 생각 좀 알려줄 순 없습니까? 도대체 어떤 근거를 두고 그렇게 자신만만한지 알고 싶거든요.”
“근거요? 그딴 거 없는데?”
“…….”
신동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지 않아도 눈이 원체 큰 양반이, 저렇게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니 정말 붕어가 따로 없었다.
순식간에 그런 우스꽝스러운 얼굴로 인해, 그가 가진 사회적 위치를 망각할 정도였다.
“근거 없는 자신감. 줄여서 근자감. 그런 말이 괜히 생긴 줄 알아요?”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죠?”
“진심인데요?”
사실은 아니다.
그런데 굳이 말로 장황하게 풀 생각이 안 들어서 그냥 그렇다고 넘긴 거다.
이미 오늘 많은 일을 겪어서 피곤하다.
적어도 돌아가는 이 길에서는.
원하는 것 전부를 얻었으니 홀가분하게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뿐이다.
“눈 좀 감고 있을게요. 쉬고 싶네요.”
“……그러시죠.”
“아~ 그리고 당장 준비해 주셔야 할 게 있어요.”
“그게 뭐죠?”
“저한테 빌려주시기로 한 공장 부지. 그곳에 생활용품을 비롯한 가구들 싹 다 구비해 주세요. 준비된 다음에 제 부원들 데리고 갈 생각이니까.”
“부원이…… 정확히 몇 명이었죠?”
“어디 보자.”
신보미, 정다혜, 정다훈, 이지은.
그리고 나.
고작 다섯 명밖에 되지 않는다.
“5명이네요.”
“알겠습니다. 어차피 공장 직원들 기숙사 시설은 그대로 남아 있으니, 생활 공간은 그걸 그대로 이용하면 될 거 같고. 사무실에 특별히 필요한 거 있어요?”
“없습니다. 게이트를 다수 수용할 수 있는 공간만 넉넉하게 확보해 주세요.”
“그건 어렵지 않죠. 그래요, 쉬고 있어요. 내가 알아서 조치할 테니까.”
그렇게 난 시트에 고개를 잔뜩 젖히며 눈을 감았다.
‘흑염룡.’
[왜.]
‘기분 어때? 이 꽃돌이가 네가 원하는 것을 전부 가져다줬잖아? 조금 늦긴 했지만, 네가 원하는 상황이 이제야 이뤄진 건데. 안 고마워?’
[응. 그런 말만 안 했으면 더 고마웠을 거 같아.]
‘까칠하긴.’
[쉬기나 해. 피곤할 거 아냐. 그리고…….]
우물쭈물한 목소리다.
지금은 눈을 감고 있어서 흑염룡의 얼굴이 보이진 않지만, 어딘가 부끄러워하는 것은 분명하게 느껴졌다.
[수고했어.]
‘어허. 수고란 말은 손윗사람에게 쓰는 말이 아니야. 이럴 땐 고생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면 돼.’
[또 분위기 깨네. 그런데 손윗사람이 뭔데? 그렇게 어려운 인간들의 말은 내가 잘 몰라.]
‘난 네 주인이잖아. 너보다 위에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손윗사람이라 불러.’
[……그래. 알겠으니까 그만 입 닫아. 감동 좀 깨지 말고.]
정말 진심이었는지, 친히 고사리같은 손으로 내 턱에 올렸다.
‘중2병에게 감동이 어디 있어.’
[제발.]
겉으론 눈을 감고 있지만, 속으론 흑염룡과 티격태격하며 나의 부원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정말 안전한, 우리만의 공간을 가진 날이다.
***
“어떡해…… 언니…….”
정다혜는 이지은에게 들었다.
이지은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유가.
자신의 동생 때문이란 사실에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정말 큰 충격을 받은 듯이, 손은 입을 가리는 행동을 보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야. 미안해하란 뜻으로 말한 거 아니야. 이걸 모르다가 나중에 네가 알게 되는 것보다, 내가 먼저 말하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아무리 그래도 언니…….”
“난 정말 괜찮아. 만에 하나. 강만식 그 인간이 너를 흔들 작정으로 이런 사실 가지고 협박해도. 절대 넘어가지 말란 뜻으로 말한 거야.”
“언니…….”
급기야 눈물을 보였다.
아무리 당사자인 이지은이 괜찮다지만.
그걸 어떻게 쉽게 받아들일까?
어떤 방법으로 사죄하면 좋을지 당최 떠오르지 않았기에 눈물이 나고 만 것이다.
“난 다훈이 용서했어. 사실 용서할 필요도 없었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저 어린애가 당시 부모님이 타고 있던 차 번호를 기억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으니까. 그게 안쓰러웠어.”
이지은은 그런 정다혜를 안아주며 등을 토닥였다.
“정말 괜찮아. 그러니까 넌 앞으로 동생이랑 잘 지내면 돼. 알았지?”
“…….”
정다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알았다는 답 자체도 지금 이지은에게는 죄스러운 일이 될 수 있었으니까.
“마음에 담아두지 마. 그럼 화날 거 같으니까.”
“……알았어요.”
그제야 마지못해 답했다.
‘이러면 된 거겠지. 잘 된 거야.’
이지은도 말하고 나니, 속에 맺혔던 응어리가 사라진 느낌이었다.
***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며칠 사이 많은 일은 아니지만, 중요한 일은 존재했다.
첫째. 협회장 최현민에게 신보미와 정다혜 그리고 나.
이 세 명은 협회가 인증한 정식 헌터가 되었다.
신보미와 정다혜의 경우엔 특별한 전투 능력도 없고, 그 능력의 위력이 제대로 입증되지 않았기에 C급.
반면에 내 경우에는 처음부터 무려 S급의 랭크를 인정했다.
하긴, 게이트까지 만들 수 있고, 남들에게 없는 능력을 가진 나인데.
S급은 당연지사.
그리고 중2병은 S 아니면 성미에 안 찬다.
하지만 이지은의 경우는 달랐다.
본래 그녀의 랭크는 S. 그러나 완벽한 내 부원이 되면서, 랭크가 최하급인 E급으로 강등되었다.
최현민은 이렇게 설명했다.
던전이 완전 정복되기 이전엔 그녀의 능력이 상당히 유용하며 인류에 꼭 필요한 능력이었지만.
이제 던전이 사라진 지금.
그녀는 능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조율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지은은 그래도 오히려 홀가분한 반응을 보였다.
왜냐, 그녀가 E급으로 강등되면서 소유하던 아테네 길드는 자연스럽게 해산이 되었기 때문이다.
헌터법상으로, 길드장은 A급 이상이 되어야 하는 조항이 있다고 한다.
길드장이었던 이지은은 이 조항에 부합한 자격을 잃었기에, 아테네 길드도 이제 역사의 뒷길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누군가에게 양도하지도 않고, 어차피 자신이 자발적으로 가지고 싶었던 길드도 아니기에.
고민도 하지 않고 해산을 결정한 것이다.
이제 두 번째.
우리 부서의 이름을 정했다.
고민 끝에 정한 이름은 ‘양산부’. 던전이 완전히 사라지고, 초월석도 사라진 이 시대에 게이트를 찍어내는 것은 초월석을 양산하는 것과 같다.
그 양산에서 따온 이름이다.
솔직히 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정한 이름은 아니니까.
본래 나는 ‘세상을 구원할 부서.’를 줄여 ‘세구부’라고 지을 생각이었는데, 부원들의 맹반대 때문에 접어야 했다.
부서 이름까지 그따위로 유치하게 짓지 말라는 그들의 비난을 혼자서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번째.
최현민이 작성한 각서 조항을 확인하고, 일단 서명까지 마쳤다.
본래 각서에는 ‘신설 부서’라고 포괄적으로 명시되어 있었는데, 내가 부서 이름을 말하자 최현민이 ‘양산부’라고 수정하면서 공식적으로 우린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되었다.
네 번째.
우린 이사를 왔다.
신동원에게 임대받은 공장 부지로 우리 다섯 명이 함께 온 것이다.
비록 공장 부지는 지방인데다가 주변에 편의점조차도 없을 정도로 외진 곳이지만.
우리에겐 정다혜, 정다훈이 있지 않던가?
그들의 워프 능력만 이용하면 번화가에 사는 것과 별반 다름이 없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이렇게 우리만의 공간을 꾸리게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우리가 함께 모인 사무실에 손님이 찾았다.
바로 장길수.
며칠 전, 이지은의 건물에서 강만식 일파에게 곤욕을 치렀을 당시.
나를 도와줬던 장길수를 포함한 그의 팀원도 전부 이곳으로 와 있었다.
내가 신동원과 체결한 계약은 파기되지 않고, 오히려 그 범위가 확대되어 나만이 아닌 내 부서원 전체를 보호할 의무를 포함하게 되었다.
그래서 장길수와 그의 팀원들도 우리의 부서로 넘어오게 된 것이었다.
“오, 어서 오세요. 그런데 본부장님은 왜 안 오신 거래요?”
“회사 일이 바빠서요. 저희와 달리 셀럽 아닙니까. 사회적인 위치도 있으니 저희처럼 한가하게 활동할 수 없죠.”
“아~”
솔직히 잠깐 잊고 있었다.
요 며칠 사이 너무 가까이, 자주 붙어 있어서 그런가.
그가 대한민국의 로열 패밀리인 셀럽인 걸 망각하게 됐다.
이제 그도 사태가 일단락 되었으니, 잠시 그의 일상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나저나.”
장길수가 먼저 의미심장한 눈초리로 말을 꺼냈다.
“왜요?”
“명색이 집들이인데. 요거, 요거. 안 하세요?”
술잔을 들이키는 손짓을 보였다.
정말 마시고 싶은 눈치다.
“술 좋아하세요?”
“뭐, 적어도 빼진 않습니다.”
“그런데 스님이었다고 하지 않으셨나……?”
“그건 과거고. 현재는 아니니까 된 거 아니겠습니까? 마침 저희 팀원들 식사도 못 했는데. 식사 겸 요거, 요거. 어떠세요?”
특히 ‘요거’라고 말할 때마다 술잔 들이키는 손짓이 함께 나왔다.
마치 요거라는 단어와 저 손짓이 기계처럼 한 세트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래요, 까짓거. 마침 저도 팀장님한테 궁금한 것도 있었는데.”
“오호, 저한테요?”
“뭐, 달가운 얘기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궁금한 건 못 참는 성미라.”
“그렇다면 더더욱 요거가 빠질 순 없죠.”
“다들 괜찮나?”
부원들에게 물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고, 누구 하나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단 한 명이 소심하게 손을 들었다.
정다훈이었다.
“어, 다훈아. 왜?”
“라면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 정다훈에게 라면은 아마 세상 모두가 원하는 초월석만큼이나 소중한 것일 거다.
게다가 이제 정말 제 누나와 헤어지지 않게 되었으니, 그게 먼저 생각난 모양이다.
“다훈아! 너 며칠 동안 라면만 먹었잖아! 또 먹게?!”
그런데 정다혜가 혼내듯이 말했다.
며칠 사이에 정다혜의 성격도 정말 많이 변했다.
나와 처음 만났을 때의 소심한 모습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지고.
협회장실을 털러 갔을 때의 그 당돌함만이 남았다.
아마도, 본래에는 당돌한 성격이었는데 동생 걱정 때문에 소심하게 변한 듯했다.
하지만 이제 걱정이 사라졌으니, 정말 본연의 모습을 찾은 듯했다.
“이번엔 누나가 끓이지 마.”
“그럼 누가 끓여……? 너 내가 끓여준 것만 좋아했잖아.”
“아니야!”
정다훈을 쫄래쫄래 뛰어, 이지은의 품에 와락 안겼다.
‘오…… 저건 좀 부러운데?’
이지은의 품에 안긴 것이 부러운 게 아닌, 어린이가 저렇게 해도 귀엽게 봐주는 그 시선이 부러운 거다.
‘나는 누가 귀엽게 안 봐주나? 몸은 서른 살이어도 마음만큼은 정다훈보다 어린 소년인데.’
[뺨 맞을 일 있어? 제발 정신 차리세요. 너 이제 부장이야.]
무언가를 이뤄냈다는 성취감에 농담 한 번 했을 뿐인데 흑염룡은 너무 부정적이었다.
“오늘은 이 누나가 끓여준 거 먹을래! 누나 요리 못해서 맛없었어! 여전히 라면도 제대로 못 끓일 줄은 몰랐어!”
정다훈의 폭로(?)에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너 이…….”
물론, 정다혜만 빼고. 정말 진심으로 섭섭한 모습이었다.
“자, 오늘은 집들이나 하자. 물론, 내 집은 아니지만.”
***
“6974. 면회다.”
한 교도관이 독방에 수감된 죄수에게 말했다.
“면회……? 난 면회 올 사람이 없는데?”
“나와.”
교도관은 일방적으로 문을 열고, 수감자를 밖으로 나오게 했다.
그렇게 교도관을 따라 도착한 면회실.
수감자는 면회객의 정체를 보고 깜짝 놀랐다.
“당신은…….”
“오랜만입니다, 정훈섭 씨?”
강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