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우리들만의 장소 (1)
“…….”
“…….”
최현민도, 강만식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생각할 시간이 그렇게 오래 필요한 건가요?”
언제까지고 기다리고 있을 생각이 없기에, 답을 재촉하듯 찔러 봤다.
그제야 최현민 협회장이 반응했다.
“그러니까. 자네가 원하는 것은. 말은 직할 부서이지만, 내가 절대로 관여하지 말라는 거 아닌가?”
“맞는데요?”
“아무리 그래도…….”
“그게 뭐 어때서요? 어차피 초월석 알아서 주기적으로 상납하겠다는데. 이 정도면 훌륭한 조건 아닌가 싶은데?”
“…….”
내 생각으로는 정말 합리적인 거래라고 생각한다.
물론, 세상일이라는 게 어디 전부 내 뜻대로 흘러갈까?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잘 알고 있다.
세상에는 섭리와 정해진 규정이란 게 있고, 그 틀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경우에나 해당한다.
틀에서 벗어나기 힘든 거지, 벗어나는 게 완전히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초월석이 귀해진 시대에서 나에게는.
게이트를 만들 능력을 가졌고, 세상이 원하는 초월석을 충분한 숫자까진 아니더라도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능력을 갖고 있기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만약, 수용할 수 없다면?”
최현민이 나름대로의 강경책을 내놨다.
사실 나한테는 별로 타격도 오지 않는 말이다.
어차피 나는 잃을 게 없다.
오히려 현재로선 협회만 잃을 게 많지.
그런데도 쉽게 수긍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건, 그의 고질적인 성격 문제라고 봐야 했다.
“그럼 뭐. 굳이 말을 해야 알까 싶은데. 이민 가 버리는 방법도 있고.”
“헌터는 마음대로 협회의 허가 없이는 출국할 수 없는데?”
“내가 언제부터 헌터였는데요?”
“…….”
하긴, 최현민 입장에선 늘 헌터들하고만 대화를 하고.
여기 협회장실도 용무가 있는 헌터들만 출입했을 것이니, 그 사실을 계속 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난 확실하게 그의 기억에 내가 헌터가 아니란 것을 박아 넣듯이 강조했다.
생각해 보면 최현민에게도 전혀 손해 볼 것 없는 장사 아닌가?
지금의 내 무기는 초월석을 만들 수 있는 것을 제외하고도 신분이란 무기가 있다.
공인 신분인 헌터가 아닌, 자유로운 일반인.
약점이 아무것도 없는 나의 완벽한 신분에, 스스로 헌터가 되어 약점을 만들겠다는데.
이보다 더 최현민에게 남는 장사가 어디 있는가?
최현민도 분명하게 알 것이다.
그러나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고자 하는 무언가가 있고, 그게 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으니 선뜻 수용할 수 없는 상태인 것은 분명하다.
“헌터 신분이 아니라고 해도 충분히 출국 금지 정도는 내릴 수 있어.”
“범죄자도 아닌데요?”
그때, 신동원이 대신 답했다.
흉악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아닌데 무슨 근거로 출국 금지를 내릴 수 있냐는 뜻이다.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사람을 죽이길 했어, 뭘 했어?
정녕 저런 사람이 협회장이란 자리에 어울릴까, 그 자질이 심히 의심되었다.
‘하긴, 저러니까 문서도 털렸겠지.’
내가 최현민 협회장을 잘 아는 것 아니지만, 적어도 실력으로 당당하게 협회장 자리에 오른 인물은 결단코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실력에 그렇게 자신이 있었으면 이런 더러운 짓도 하지 않았겠지.’
주로 실력은 없으면서 감투는 쓰고 싶은 사람들이 보이는 행보와 정확히 일치했다.
최현민은 신동원의 말에 곧장 반박했다.
“협회장실을 턴 것만으로도 중대한 범죄 아닌가?”
“뭐, 그렇게 여기실 수 있죠. 그런데 그 서류를 세상에 까발리면 과연 세상의 눈이 여기 있는 우리 고객님, 윤도원 씨를 범죄자로 볼까요, 협회장님을 범죄자로 볼까요?”
“…….”
“다 아실만한 분이 이런 저급한 협박을 하고 계시니, 참 답답하네요.”
다시 한동안 최현민은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주먹을 불끈 쥔 뒤에 마치 선심 쓰듯이 말했다.
“그래, 좋아. 원하는 게 정확히 뭔지 말해 봐.”
나도 이젠 답답해서 미칠 노릇이다.
여태껏 원하는 것을 계속 말했는데, 그간 뭘 듣고 또 말하라는 건지.
한숨을 쥐며 답했다.
“후우…… 여태까지 들은 건 뭡니까, 그럼?”
“아니 그거 말고. 자네만의 독립적인 부서. 정확한 활동 범위나 무엇을 협회로부터 지원받고 싶은지. 그런 정확한 부서의 기준을 말하는 걸세.”
“그 뜻은.”
“들어줄 테니 일단 말해 보라고.”
꽤 큰 결심을 한 것으로 보였다.
“협회장님……!”
강만식은 억울한 목소리를 냈다.
그가 저런 목소리를 낼 정도면, 그의 결단은 확실시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정말 말 그대로 듣기만 하는 거면 상당히 곤란할 겁니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
신동원이 나에게 했던 것처럼, 일단 말만 들어볼 수도 있을 노릇이니까.
그 어느 때보다 지금 나는 신중해져야 한다.
“나도 바보는 아닐세. 자네 덕분이라면, 우리 한국은 초월석을 유일하게 얻을 수 있는 국가가 돼. 단순히 화폐가치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그 가치는 거대하지.”
그래, 이제야 협회장다운 면모를 보이는 중이다.
“좋습니다.”
난 그렇게 내가 원하는 부서의 조건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부서 이름은…… 아직 미정이니 넘어갑시다. 어차피 중요한 거 아니니까. 부서원은 철저하게 제가 임명한 사람들로만 구성할 겁니다. 협회장님의 별도 승인 없어도요.”
“……내키진 않지만, 알겠네.”
최현민은 한사코 부정적인 반응만 보였다.
이것까지 이해 못할 건 아니다.
아무리 내가 특별하다고 한들, 이런 특혜를 나에게 주면 다른 헌터나 길드의 눈치도 봐야 하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니까.
하지만.
알 게 뭐야? 내가 굳이 헌터 신분을 가지려는 약점을 만드는 것도, 다 앞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보답하기 위함인데?
철저하게 나만 생각하면 된다.
“또한, 헌터 신분이 되었다고 한들, 제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해외 출국이나 허가받지 않은 계약의 금지 등등. 헌터 신분에서 오는 제약이 저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뜻이죠. 이건 저뿐만 아니라 제가 거느린 부원 전부에게 해당됩니다.”
“그래…… 솔직히 말하면 어려운 조건이긴 하지만. 내가 협회장에 자리에 있는 한, 꼭 지켜주지.”
그 순간 신동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눈치인데 꾹 참는 듯했다.
아무래도 내가 파악하지 못한 허점을 그는 파악한 모양이다.
“대략 이 정도입니다. 부가적인 조건들은 지속적으로 조율하시죠. 오늘로 끝이라는 게 아니란 뜻입니다.”
혹시 모르는 대비책이다.
모든 협정을 여기에서 끝내면, 분명 나중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내가 예상도 하지 못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하거나 하는 것들이다.
그렇기에 조건을 계속해서 조율할 것이라고 못 박듯이 말했다.
“좋아. 정말 끝인가?”
“그렇습니다. 일단은요.”
“그럼, 궁금한 것을 묻겠네.”
“얼마든지요.”
“자네가 원하는 대로 독자적인 협회 직할 신규 부서를 내주지. 단, 자네가 말한 대로 독자적인 것이기 때문에 해당 부서에서 일어난 일은 나와 무관하다는 뜻이 되는 건가?”
솔직히 말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나만의 부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협회 직할 부서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책임과는 아예 연관이 없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꼬리 자르기처럼 보였다.
정말 문제가 발생했을 시, 자신은 살겠다는 뜻으로 들렸으니까.
상관없다. 어차피 문제라는 건 발생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하시죠.”
“좋아. 그럼 구체적인 부원은? 내가 알 필요 없나?”
“전부 알 필요는 없지만…….”
답하면서 슬쩍 강만식과 눈을 마주쳤다.
“몇 명은 알 필요가 있겠네요. 지금 당장 임명할 거니까.”
“그게 누군데?”
여전히 난 강만식과 눈을 마주친 채다.
그는 영문 모르는 표정을 짓고 있지만, 난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아테네 길드장 이지은. 그리고 기존 관리부원이었던 정다훈. 이 둘은 제가 데리고 갑니다.”
“잠깐……!”
그제야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낀 강만식이 입을 열었다.
“자넨 가만히 있어.”
최현민이 날뛰려는 그를 중재했다.
적어도 난 강만식이 왜 저런 반응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가 가진 두 개의 능력.
추출과 복제.
특히 추출은 그가 상대방과 연결된 영혼을 뽑기 위한 용도로 사용한다.
여기에서 연결되었단 뜻은 강만식이 뽑은 영혼과 본체의 신경이 연결되었기에, 고통을 공유한다는 뜻이다.
즉, 강만식이 추출한 상대방의 영혼에 타격하면, 본체에 그 피해가 그대로 전달된다.
난 이미 강만식의 방식을 겪어봐서 잘 알지 않은가?
이지은은 몰라도 정다훈에게는 그가 꼭 필요하다.
굳이 눈으로 보지 않아도, 왜 정다훈이 필요한지 쉽게 유추할 수 있던 이유도.
둘의 능력 궁합이 너무나 잘 맞기 때문이다.
워프만이 아닌, 별도의 공간을 만들 수 있는 정다훈.
보나 마나 강만식이 상대방의 영혼을 추출했다면, 강만식은 정다훈이 만든 별도의 공간에 추출한 영혼을 들고 그대로 숨을 것이다.
그 상대로 영혼을 타격하면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반격도 못 하고 빈사 상태에 빠질 수 있는, 그야말로 대인전에 한해서 사기적인 능력 궁합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런 정다훈을 뺏기면 자신에게도 타격이 크니까 이것만은 막고 싶었겠지.
하지만 이미 늦었다.
정다훈은 이제 강만식의 품을 떠나, 내가 거느린, 아직 이름을 정하지 않은 부서에서.
누나 정다혜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면 되니까.
난 이어서 최현민에게 말했다.
“또한, 제가 기존에 맺었던 태원 서큐리티와의 계약은 그대로 계승됩니다. 제 신분이 달라졌다고 계약이 파기되는 경우는 없단 뜻이죠.”
“그거야 헌터 신분에서 오는 제약은 자네 부서원들은 적용받지 않기로 약속했으니 당연하지.”
가장 불안했던 부분도 충족한 순간이다.
“일단 조율할 것은 이것으로 끝인가?”
“그렇습니다.”
“부서 위치는? 자네 생각을 보아하니, 협회에서 지낼 것 같지는 않은데.”
“부서 위치도 이미 정해놨죠. 여기 신동원 본부장님과 말이죠.”
내가 받기로 한 신동원의 공장 부지 일부.
거기에 우리의 부서를 세울 거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으로 달라고 한 거였어요? 처음엔 게이트를 다수 늘릴 목적이라고 하지 않았나?”
신동원이 조용히 귓속말로 전했다.
나도 똑같이 귓속말로 그에게 답했다.
“거기 건물이 1층짜리만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 생활할 곳 있는 걸로 아는데?”
“오호, 생활도 하시면서 게이트도 늘리시겠다라?”
“일단 얘기 안 끝났으니 이건 저희끼리 차차 조용히 얘기하죠.”
“그럽시다.”
우리의 귓속말은 그렇게 끝이 났다.
이제 최현민이 최종 선고를 하듯 말했다.
“좋아. 방금 자네가 말한 조항들. 서류로 작성해서 자네에게 보내지. 그 서류에 각자 서명만 하면 끝이네.”
“확실히 하자는 일종의 계약서인가요?”
“각서라고 보는 게 옳겠지.”
이 양반이 이렇게 협조적으로 나오는 게 내심 불안하긴 했지만, 확실한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전부를 얻은 순간이다.
최현민은 이제 자신의 명함을 내밀었다.
“뭡니까?”
명함에서 검은 기류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같이 보였다.
그저 평범한 명함인 것은 확실한데, 아무래도 최현민의 명함이라는 이유에서 괜히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자네가 아까 말했잖나? 자네를 포함해 몇 명을 정식 헌터 신분으로 인정해 달라고. 그 인원들 주민등록번호, 이름 등 신상 정보 알려줘야 가능하네. 내가 직접 처리해 줄 테니까 그쪽으로 보내라고.”
아, 그런 거였어? 괜히 의심했네.
난 명함을 짚고, 주머니에 넣었다.
“이따 연락드리죠.”
그리곤 신동원에게 말했다.
“가실까요?”
우린 서로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