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60화 (60/200)

§ 60화. 협회장과의 협상 (3)

신동원의 차를 타고 이동 중이다.

이 차에 타고 있는 사람은 그의 기사를 제외하면 나와 신동원뿐.

약속한 대로 협상에 참여하는 건 나와 신동원이기 때문이다.

이지은과 정다혜, 정다훈은 여전히 그 집에 그대로 있고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경호팀도 함께 남아 있다.

실력 확실한 경호팀이니 집에 대해서는 걱정을 그만해도 된다.

신동원은 여유롭게 휴대폰을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어, 나야. 법무팀들 전원 소집해서 협회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어. 헌터 관련 법률과 연계되는 일반 법률과의 연관성 등등. 꼬투리 잡을 수 있는 거 전부를 숙지한 채로.”

딱 그 말만 하고 끊었다.

[그런데, 윤도원.]

그러던 중, 흑염룡이 내 이마에서 양피지를 꺼냈다.

양피지를 확인하곤 아리송한 표정을 지은 채로 날 불렀다.

‘왜?’

[이거 봐.]

[은신 Lv 23]

[염력 Lv 32]

[만물 Lv 5]

그 사이 레벨이 오른 나의 능력들이다.

은신은 2레벨로 미미한 성장이지만, 염력의 경우는 아니었다.

본래 19레벨이었는데 갑자기 32레벨.

급상승한 모습이다.

‘왜 저러지?’

[이 짧은 사이에 갑자기 염력을 많이 사용해서 그런 거 같은데? 저번처럼 게임 하면서 혼자 연습하는 게 아니라, 정말 실전에서 사용한 거잖아.]

‘역시, 난 실전에 강한 타입이 입증된 건가?’

[또, 또. 그렇게 자만하지 말고.]

어찌 됐건, 레벨이 오른다고 나쁠 건 없다.

그리고 지금 수준도 한참이나 모자라다.

강만식의 경우엔 추출과 복제.

두 가지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레벨도 전부 60.

10단위로 정확하게 떨어지는 것을 봐선, 아마 그게 강만식에게 한계치인 듯했다.

흑염룡은 말한 적이 있다.

능력의 레벨은 한계가 없다.

한계가 없다는 뜻은, 사람마다 그 한계점이 다르단 뜻이다.

누군가에겐 10레벨이 한계일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그보다 훨씬 위로 갈 수 있다.

절대적으로 정해진 능력 레벨의 한계란 게 없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한 것뿐이다.

현재까지 내가 본 레벨 중에서 가장 높은 건 강만식인 60.

따라서 60이 최고점이라고 볼 수 있다.

‘과연 내 레벨은 몇이 한계점일까? 흑염룡.’

[나도 모르지. 확실한 건 너 하기 나름이라는 것밖에.]

‘그나저나 만물은 4레벨이나 올랐다라.’

시오스의 수호신인 드래곤을 불러낸 뒤에 생긴 변화다.

[착각은 하면 안 돼. 만물의 본질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만든 거야. 그러니까 드래곤을 만든 게 아니라, 다른 공간에 있는 드래곤을 우리가 있던 던전으로 오는 길을 만든 거니까.]

‘그렇게 자세히 설명 안 해도 안다.’

그래도 비약적인 발전임에는 틀림없다.

0레벨 때는 용을 써도 먼지 하나 만들기 벅찼는데.

드래곤을 불러낸 이후로는 그 레벨이 눈에 띄게 상승했으니까.

지금 내 상황에서 레벨이 상승했다는 뜻은, 만들 수 있는 게 많아졌다기보다.

어떻게 하면 이 만물이란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지를 알아냈다고 봐야 했다.

이런 생각에 입을 꾹 다물고, 무표정으로 생각에 잠겼을 때.

흑염룡은 내 눈치를 보고, 응원이라도 하듯이 말했다.

[너무 조급해하지는 마. 만물은 특히 아주 특수한 거기 때문에 다른 능력들과는 다르니까. 예를 들면…….]

뭔가를 곰곰이 생각한 뒤 예시를 들었다.

[다른 능력은 레벨 10의 위력이 만물은 1에서부터 나올 수도 있는 법이야.]

‘시오스들의 특급 병기라면서, 너무 추측만 하는 거 아니야? 너희들이 만들어 놓고도 위력을 제대로 모르는 것 같은데.’

[그야 이론상으론 그런데 실제로 운용한 적은 없잖아. 그래서 나도 확실히 없는 거지.]

‘알만하다.’

일단, 그 부분은 접어두자.

어쨌든 활용법은 확실하게 알았으니 흑염룡의 말대로 조금 걸리더라도 차츰차츰 익숙해지면 그만이다.

지금 당장 내가 집중해야 할 것은 바로 협회장과의 협상.

이 협상에서 원하는 것을 얻어야 한다.

그럴 자신도 있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요? 그렇게 말 많으신 분이 입도 꾹 다물고.”

신동원이 물었다.

“그냥요. 이것저것 생각 정리?”

“그래요? 얼른 마무리하셔야 할 텐데? 다 왔습니다. 협회.”

창문에는 협회 건물이 가깝게 보이기 시작했다.

***

“누나아…….”

“다훈아아…….”

5년 만에 재회한 두 남매는 애틋하게 서로를 껴안은 채로, 아직도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그러나 이 모습을 보고 있는 이지은은 마음이 불편했다.

‘얼른 말해줘야 하는데…….’

그토록 찾고 싶었던 동생을 곁에 둔 것이 제삼자가 보기에도 흐뭇하고 기쁘지만.

정다혜가 꼭 알아야 하는 사실이 있지 않던가?

정다훈으로 인해 사람 둘이 죽었고 공교롭게도 그게 자신의 부모님이란 것.

이지은도 정다훈을 탓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이 사실을 계속 숨기다가 나중에 정다혜가 알게 되고 나서 받을 충격을 생각하자니 침묵할 수 없었다.

심지어 자신의 아버지 때문에 정다훈에게도 그렇게 교육을 했었는데, 동생이 그런 사고를 저질렀다고만 생각할까 봐 겁이 났다.

‘그래도 말하는 게 나아. 나중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모르니까.’

더군다나 강만식 때문이다.

그렇게 집요하게 정다훈을 원했고, 지금은 윤도원에게 뺏겼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

게다가 정다혜의 얼굴도 직접 보았기 때문에 몰래 접선하여 이 사실을 놓고 협박하고도 남을 사람이란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이지은은 애써 용기를 내어, 정다혜의 등 뒤로 다가갔다.

그리곤 손가락으로 소심하게 그녀의 등을 콕콕 찔렀다.

“네, 언니. 왜요?”

“잠깐…… 나 좀 봐. 얘기할 게 있어.”

“여기에서 얘기하시지 왜?”

“따로 얘기해야 하니까. 이리 와 봐.”

이지은은 그렇게 정다혜를 아무도 없는 옆방으로 데리고 갔다.

***

“자네군? 술이라도 한잔하면서 얘기할 텐가?”

신동원과 함께 협회장실에 들어섰을 때.

협회장 최현민이 양주병을 보이며 한 말이다.

상당히 비싼 양주였다.

기가 차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저기요. 우리가 무슨 노인정 봉사활동 온 게 아닌데 말이죠.”

“노인정…… 봉사활동……?”

“예. 독거노인 술 상대해 주러 온 거 아니란 뜻입니다. 안 그래요? 본부장님?”

“그럼요. 엄연히 공적인 자리인데 술을 권하다니. 그리고…….”

신동원의 목소리가 변했다.

끝으로 갈수록, 이를 질끈 깨무는 듯한 목소리였다.

“술은 참 내가 안 좋아하게 돼서요.”

최현민을 노려보며 말했다.

하긴, 술에 얽힌 비화가 있는 사이인데 술이 달갑게 다가올 리가 있나.

양주가 비싸건, 귀하건. 아무런 상관이 없다.

지금 양주병은 신동원의 눈엔 그저 요물로밖에 보이지 않을 테니까.

“장난치지 마시고. 정식으로 정중하게 대하시죠. 최현민 협회장님.”

신동원이 무섭게 경고했다.

지금 그의 신분은 일반인.

게다가 서로 얽힌 비화가 있는 일반인이니, 다른 헌터들처럼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거나 공손한 말투를 쓰는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어디 하나만 잘못 걸려봐라.

갈기갈기 물어뜯어 주마.

이런 속마음이 노골적으로 보일 정도다.

“……앉지.”

우리의 대응이 예상 밖이었는지, 멋쩍어진 최현민은 양주병을 진열장 안에 넣어놓고, 자리에 앉았다.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협상.

최현민과 강만식이 나란히.

그리고 그들과 마주 보면서 나와 신동원이 나란히 앉았다.

최현민이 먼저 협상의 장을 열었다.

“대충 강만식 부장한테는 들었어. 자네가 원하는 게 있다면서? 뭔지는 모르지만.”

“잘 들었네요.”

“그 원하는 걸 말해보게.”

“그 전에. 협회장님이 원하는 건 정확히 뭡니까?”

“정확히 뭐라니?”

“비문 훔친 건…… 죄송하게 생각 안 할게요. 어차피 비리의 증거였고, 결정적으로 돌려줬으니까 그걸로 끝. 그럼 더는 원하는 게 없어야 하는데. 아, 혹시 협회장님도 제가 만드는 게이트가 필요하세요?”

“우리만이 아닌 세계 전체가 갈구할 텐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현실을 지적하는 답변.

솔직히 조금 무시했었지만, 괜히 협회장은 아니다.

현실 상황을 들먹이며 얘기하니, 꼬투리 잡을 구석도 없었다.

게다가 단순히 원한다라는 단어보다 갈구한다는 단어를 사용해 자신의 심정을 세계 상황에 빗대어 말한 것 같았다.

“그래요. 그 원하는 걸 제 조건에만 잘 맞춰주시면 제가 알아서 상납할 수 있을 텐데 말이죠.”

“그러니까 말해보라는 게 아닌가? 원하는 게 뭔지.”

난 슬쩍 신동원과 시선을 맞췄다.

눈빛으로 보내는 신호다.

신동원이 고개를 끄덕인 뒤에 본론을 꺼냈다.

“저를 비롯해서 제가 지정한 몇몇을 정식 헌터 신분으로 인정해줄 것.”

“자네가 지정한 몇몇이 누군데?”

“협회장실 턴 공범이라고 해 두죠.”

내 답에 최현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중범죄를 일으킨 사람들이라면, 전부 존재를 숨기는 게 마땅한데 왜 도리어 전원 정식 헌터로의 신분 전환을 요구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은 확실하다.

“그게 끝인가?”

“그럴 리가 있습니까. 둘째.”

“말해보게.”

“이건 제 요구를 먼저 말하기 전에, 확실하게 알아두기 위해 질문을 하나 해야겠군요.”

“뭐든지. 성심성의껏 답해주지.”

“성심성의는 이 상황에서 선택이 아닌 의무일 텐데요?”

“……말이나 해 보게.”

“협회장님 옆에 있는 강만식처럼. 개인적인 조직을 거느리려면 일정 랭크 이상이 되어야 합니까?”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군.”

“강만식처럼 멋대로 행동할 수 있는 완장과 다름없는 관리부 같은 조직을 거느리려면 S급 이상이 되어야 하냐고요.”

“랭크는 상관없네. 다만, 강만식 부장이 운영하는 관리부의 경우는 내가 믿고 맡길 수 있다고 판단하는 사람에 한해서만 그 권한을 부여하는 거야.”

“그 말은. 정해진 건 없고, 오직 협회장 재량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게 되네요?”

“그렇지.”

최현민의 답을 듣고, 신동원과 눈빛을 마주쳤다.

이건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서 쳐다본 거다.

나는 SF 길드 일개 직원 생활을 보냈지만, 신동원은 길드장을 지냈던 인물.

그렇기에 최현민이 지금 거짓말을 하는지, 하지 않는지 가장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런 상황에서 거짓말을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만은…….

최현민은 그러고도 남을 정도로 내게 신뢰가 없다는 뜻이다.

신동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답이 거짓이 아니란 뜻이다.

“좋습니다. 그 독립적인 조직. 저도 만들 수 있게 권한을 주시죠?”

“잠깐…… 뭐?”

이제야 당황한 기색이 보인다.

“말 그대로. 강만식 길드장처럼 관리부라는 독립적인 조직을. 저도 만들 수 있게 해 달란 말입니다. 협회장님이 직접 시인하셨잖아요? 별도 절차 필요 없이 오직 협회장 재량으로 가능하다고.”

“자네가 뭘 잘못 알고 있는가 본데……. 강만식 부장이 이끄는 관리부도 협회장 직할 부서이기 때문에 최종적으론 내 지휘를 따라. 완전히 독립적인 조직이 아니라고. 그런 조직은 협회 어디에도 없어.”

“그럼 이제 만들어 보면 되겠네요. 나는 그럴 자격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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