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협회장과의 협상 (2)
현재 내 상황에서 정식 헌터 신분이라는 것은.
독이 든 성배와 같다.
하지만 그런 성배라고 하더라도, 불가피하게 마셔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정식 헌터가 되려고 하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해가 안 되는데요? 세계에 도원 씨의 능력을 알리면…… 굳이 정식 헌터가 되지 않아도 되는데, 왜?”
[그건 안 되지. 그러면 키스톤을 노리는 놈이 더 많아진다는 뜻인데.]
흑염룡이 조용히 불만을 토로했다.
나도 이 부분은 동의했다.
아무리 많은 게이트를 펼쳐 놓는다고 해도, 결국엔 내 능력을 아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나를 돕는 사람도 많을까?
솔직히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내가 만든 게이트에 몰래 들어가, 초월석을 쏙 빼 오는 도굴꾼들만 많아지겠지.
즉, 내 능력을 아는 사람의 수만큼 내가 상대해야 하는 적이 늘어난다고 할 수 있었다.
이미 많은 사람이 내 능력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나 스스로가 게이트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지기 위해 내린 판단이다.
난 다시 역으로 물었다.
“본부장님은요? 제 능력을 다른 기업에서 알면 좋아요?”
“…….”
잠시 침묵하던 그는 이내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거 봐요. 싫은 이유가 뭔데요? 경쟁자가 늘어나면서, 본부장님이 가질 초월석이 줄어들 거니까.”
“부정은 안 하겠습니다.”
“그래서 세계에 제 능력의 존재를 알리는 건 무리입니다. 지금은 아니에요.”
“그 말은…… 나중엔 알릴 생각으로 보이는데?”
“네. 때가 되면 알려야죠.”
“그때라는 게 언제죠?”
난 속으로만 삼켰다.
‘크루즈가 다른 나라에도 등장했을 때.’
일단 나의 목표는 한국에서 크루즈가 등장하기 전에 어떻게든 내 존재를 협회가 알고, 나를 함부로 할 수 없는 위치를 만드는 것.
그건 어느 정도 이뤘다.
적어도 크루즈가 나타나기 전에 협회장과의 협상이 기다리는 중이니까.
아까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더스티는 이들이 크루즈라는 존재를 알고 있지 않으니, 그저 평범한 몬스터라고 생각할 게 뻔했다.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겠죠. 지금 당장이 아닌.”
난 그렇게 두루뭉술한 답만 내놨다.
“흐음…… 뭐, 정식 헌터가 되려는 것도 생각이 있어서 그렇다니까 믿긴 하겠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정말 추천하지 않아요. 정식 헌터가 되면 우리가 도움을 줄 방법이 현저히 줄어들고…….”
“그럴수록 약속한 초월석을 못 받게 되고.”
“……역시,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이래서 차라리 비즈니스 마인드가 좋다고 하는 거다.
노리고자 하는 게 명확히 드러나니, 나도 상대하기가 편했다.
“걱정 마세요. 그럴 일은 아마 없을 겁니다.”
“이렇게 확신하니 고맙기야 하지만…….”
“협회에서 이상한 짓만 안 하면요.”
“허허, 그건 조금 걱정스러운데.”
“그럼 하고 싶으신 말씀은 이게 끝인가요? 더 없고?”
“일단은 그렇습니다. 혹시 모르니 저희 법무팀에 연락은 해 놓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여러 방향으로 준비해서 나쁠 건 없다.
“그러시죠.”
“아, 참. 혹시 우리 정산은 언제 해 줍니까? 경호도 착실히 하는 중이고, 공장 부지도 주기로 했는데. 대금은 소식은 안 들리네?”
신동원이 은근슬쩍 속내를 드러냈다.
“성격 너무 급한 거 아닙니까? 아직 협회장과의 협상도 남아 있는데?”
“뭐, 그렇게 보이겠지만, 확실한 게 좋은 거 아닙니까? 그래야 참여하는 마음가짐도 달라지니까.”
그래, 신동원의 말대로 확실히 하는 편이 좋지.
그냥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직장을 다닐 때, 뭘 보면서 버텼나?
월급날 아니던가.
근데 그 월급날을 정해놓지 않고, “일단 일하고 있으면 알아서 줄게!” 이러면 나라도 일할 맛 안 날 거다.
“가격 협의 아직 안 봤잖아요? 경호비는 월 50억이라는데. 아시다시피 전 그만한 현금 없고. 초월석으로 대신해야 하는데. 초월석의 가격은 책정 불가잖아요?”
“우리 고객님이 생각하시는 가격으로 불러 보시죠. 경호비에 부지 이용료까지 포함한 합당한 금액.”
돈 얘기 나오니까 귀신같이 나를 칭하는 말이 고객님으로 바뀌었다.
정말, 이런 건 타고난 듯하다.
하지만 미리 생각해둔 적정가는 있으니, 당당하게 불렀다.
“분기별 초월석 하나.”
“분기라고 하면…… 몇 분기를? 설마 한국인데 2분기는 아니죠?”
보통 해외에선 1년을 6개월 단위로 끊은 2분기로 많이 사용한다고 들었다.
그렇게 되면 1년에 고작 초월석 2개밖에 안 되니, 한국에서 흔히 사용하는 분기로 하자는 그의 고집이었다.
난 피식 웃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걸 생각하다니.
“4분기.”
“오~”
만족스러운 답변에 신동원은 손가락을 튕겼다.
그리곤 손가락을 활짝 펴서 내게 건넸다.
“뭡니까?”
“주셔야죠. 가격 책정도 다 됐는데.”
“알아서 가져가세요.”
“……알아서 가져가라니요?”
“저기 옆 방에 게이트 4개 남았잖아요? 이 정도면 1년 치로 충분하죠?”
“……네? 저희더러 지금 게이트로 직접 들어가서 가져오라는 겁니까?”
“네. 초월석은 게이트 안에 있으니까.”
“우리가 이 계약할 때 보여준 초월석도 있으면서?”
“그건 협회장이랑 협상할 때 써야 하고.”
[너도 참…… 대단하다. 그거 하나 가지고 몇 명을 홀리는 거냐.]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흑염룡의 말투다.
하긴, 생각해 보면 이 초월석 하나로 몇 명과 협상 중인지 나도 헷갈린다.
하지만 내가 약속을 안 지킨 것도 아니고.
애초에 초월석을 준다고 했었지, 내가 직접 던전으로 들어가서 회수한 초월석을 준다고는 안 했다.
초월석은 어차피 우리가 만든 게이트 안에 있는 던전에 온전히 있으니, 던전만 주고 알아서 가져가라고 하면 그만 아닌가?
“저기, 고객님. 우리 상황 알면서……? 지금 던전 정복 마음대로 못하는 상황 아닙니까.”
“본부장님. 혹시 군대 안 갔다 왔죠?”
“그건 왜…….”
“군대엔 이런 말이 있어요.”
“무슨 말이요.”
“군대에서 나쁜 놈은 나쁜 짓을 한 놈이 아니라 나쁜 짓을 하다가 걸린 놈이다.”
“그게 지금 상황에서 무슨 뜻인지……?”
“안 걸리면 장땡이란 뜻이죠.”
협회에 걸리지 않도록 알아서 가져가란 뜻이다.
어차피 그 정도 실력은 있는 사람들 같으니까.
“아니, 이렇게 막무가내이면 안 되죠.”
신동원이 따지려는 순간.
내 휴대폰이 울렸다.
확인해 보니 아직 저장하지 않은 모르는 번호다.
하지만 누군지 짐작이 갔다.
왜냐, 이 타이밍에 전화가 올 곳은 딱 한 곳밖에 없었으니까.
강만식밖에 더 있을까?
난 전화가 오는 중인 화면을 신동원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본부장님이랑의 얘기는 끝났고. 이제 시작이네요?”
“…….”
“준비합시다.”
그렇게 전화를 받았다.
***
협회로 돌아온 강만식은 윤도원에게 받은 중국 협회 비문을 최현민에게 반납했다.
최현민은 이에 안도했지만, 곧이어 들려오는 소식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뭐?”
이지은의 내통자가 바로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능력자라는 것.
이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근데 왜 혼자 왔어? 그런 녀석이면 데리고 와야지.”
“그게……. 신동원 길드장이 뒤를 봐주고 있더군요.”
“신동원 길드장……?”
“네, 심지어 장길수 길드장도 함께였습니다.”
“신동원에 장길수……?”
최현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나같이 듣고 싶지 않은 이름들이 연속으로 나온 탓이다.
특히나 신동원의 경우, 자신의 비리를 직접적으로 알고 있는 자.
그렇기에 입막음하려는 용도로 헌터 자격 정지로만 끝내야 했고, 그들이 원하던 태강 길드의 지부는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장길수는 최현민도 익히 아는 사람이었다.
한때, 그와 협회장 자리를 두고 경쟁한 적이 있으니까.
당시 장길수가 가장 유력한 후보였으나, 최현민은 자신만의 특기로 그런 장길수를 제치고, 협회장이 되었기에 결코 달가운 인물이 아니다.
최현민의 특기는 선동과 날조.
애초에 실력으로 이길 수 없다는 판단에 그의 특기를 꺼냈던 것이다.
협회장 선정에서 패배한 장길수가 운영 중이던 길드도 해체하고 잠적했다가 후에 태강 길드로 들어간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안 시점이 태강 길드 사건 이후였기에, 최현민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다시 잠적했으니까.
최현민은 그저 장길수가 은퇴 후에 속세를 떠나 다시 스님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완벽한 오산이었다.
“조합 참 멋지네. 신동원, 장길수. 다 우리한테 꺼려지는 인물들이야. 어쨌든 그 둘이 그놈을 봐주고 있다고 했지?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윤…….”
“윤도원입니다.”
“그래, 윤도원. 그놈이 협상하자고 했다고?”
“예.”
“무슨 협상?”
“솔직히 뭘 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놈도 뭘 원한다고는 했는데, 그걸 말하지 않았으니까요.”
최현민은 턱을 매만지며 고민을 이었다.
신동원이나 장길수가 많이 껄끄럽긴 하지만, 그래도 희망적인 소식 하나가 있다는 것에 집중했다.
“놈이 확실히 게이트를 만든다는 거지?”
“네. 기존에 5개 있었는데, 하나가 소멸하고, 4개 남았습니다.”
“그럼 초월석 하나 얻었겠네? 하나가 소멸했단 뜻은 정복했다는 뜻 아니야?”
“그렇긴 한데. 초월석은 없던데요? 그리고 몬스터가 튀어나왔는데 저희가 일반적으로 아는 몬스터의 형태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게이트 안에 있던 다른 몬스터가 그 몬스터를 집어 삼키기까지 하던데. 그 뒤에 게이트가 사라졌고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최현민도 연신 이해할 수 없는 말만 하는 강만식이 슬슬 답답해졌다.
강만식이 직접 눈으로 보고 겪은 것들이지만, 강민식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따라서 윤도원이라는 그놈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듣고, 어떻게 구슬릴지를 생각해야 했다.
“협상하자고 했지?”
“네.”
“오라고 해. 지금 당장.”
이에 강만식이 휴대폰을 들고 통화 버튼을 누른 순간.
“휴대폰 나한테 줘. 내가 직접 얘기하지.”
최현민이 반강제적으로 그의 휴대폰을 뺏었다.
***
-윤도원이라는 친군가?
휴대폰에서 들리는 중년의 목소리.
당황스럽지도 않다.
강만식의 휴대폰으로 최현민이 전화했다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최현민 협회장입니까?”
-허허…… 나이가 어떻게 되나? 자네는?
“지금이 나이 따질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피곤하겠군. 예의범절이 없는 친구로 보이니까.
‘꼰대 중에서도 상꼰대 같네.’
말투에서 물씬 풍겨지는 그의 성격이다.
아마도 내가 협회장을 칭할 때, ‘님’ 자를 붙이지 않아서 저런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협회장이 상당히 까탈스럽단 소리를 SF 길드 직원이던 당시에 듣긴 했지만…….
이건 까탈이 아니라 꼰대 수준이다.
내가 만렙 중2병이라면, 이쪽은 꼰대로 만렙인 셈이다.
-지금 당장 협회로 와서 얼굴 보고 얘기하지.
“좋습니다. 그쪽은 협상에 누구누구 참여합니까?”
-그야 당연히 나랑 강만식 부장이지.
“그럼 저희 쪽은 저랑 신동원 본부장님만 갑니다. 강만식이 원하는 사람은 가지 않을 겁니다.”
강만식은 끝까지 정다훈과 이지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것을 단단하게 못 박는 소리일 뿐이다.
-무슨 소리야 이건?
“강만식에게 전하면 됩니다. 무슨 뜻인지 알 거니까. 저희도 바로 출발하죠.”
난 그렇게 통보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가시죠. 본부장님.”
자, 정식 헌터가 되는 날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