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협회장과의 협상 (1)
“저게 뭡니까?! 고객님?!”
신동원을 비롯해, 장길수까지 내게 소리쳤다.
분명하게 더스티가 맞다.
하지만 조금 이상한 건 있었다.
분명히 내가 던전 속에서 본 더스티는 몸체가 상당히 컸고, 표면이 바위로 이루어진 듯했다.
그러나 게이트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더스티는 크기도 상당히 작아졌으며, 무엇보다 겉모습이 달랐다.
여기저기 뜯어져, 겉으로 보기에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흑염룡……. 설마 드래곤이 당한 건…….’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더스티 10마리가 동시에 달려들어도 끄떡없다고.]
흑염룡의 목소리는 오히려 차분했다.
‘그런데 어떻게 더스티가 나올 수 있던 거야……?’
[나온 게 아니라.]
흑염룡이 거기까지 말한 순간.
콰직-!
“어어……?”
신기한 광경은 또 일어났다.
바로 드래곤의 얼굴만 게이트 밖으로 나와서, 작아진 더스티를 그대로 입속에 넣고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털썩.
“저건 또 뭐야……?”
순간 드래곤의 위엄을 봐서였을까.
한사코 당당했던 신동원, 장길수까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보다시피 나온 게 아니라 드래곤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한 거였지.]
흑염룡은 설명을 마저 이었다.
쿵!
그렇게 게이트는 완벽하게 무너지며 잔해로 변했고.
늘 그렇듯이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
다들 처음 보는 현상에 서로 대치하던 신동원이건, 강만식이건.
잠시 얼어붙었다.
***
“그래서. 계속 이렇게 의미 없이 대치할 건가? 강만식 길드장?”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신을 차린 신동원과 강만식.
이제 본질적인 문제로 돌아왔다.
상황이 전부 끝났는데도 이젠 강만식 일당은 우리를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몸으로 출입문을 필사적으로 막는 중이었다.
우린 그런 강만식과 실랑이를 벌이게 됐다.
“나도 궁금하네? 그쪽들이 원하는 건 이거 하나였지 않았어?”
나도 가세했다.
바로 그들의 원래 목적이었던 중국 협회 비문.
이것을 얌전히 둘려줄 테니 그냥 꺼졌으면 좋겠단 뜻을 노골적으로 비쳤을 뿐이다.
“아니지.”
신동원이 물을 땐 가만히 있더니, 내가 묻자 무시하는 듯한 목소리로 답했다.
오호라, 신동원은 무섭고 나는 그렇지 않다, 이건가?
“그럼 뭔데? 원하는 게 뭐가 더 있냐고.”
“그 꼬맹이. 우리한테 넘겨.”
강만식의 목적은 이번에 정다훈이 된 듯했다.
“다훈이는 왜? 진작 버린 거 아니었나?”
“버리긴 뭘 버려? 너 아까 신동원 길드장이…….”
“호칭 제대로 하자니까? 강만식 길드장. 그쪽 시간은 3년 전에 멈춰 있어? 나 태강 그룹 본부장이라고.”
“……어쨌든. 저 양반이 한 말 못 들었냐? 여기 온 얘네들. 관리부원들인 거.”
자신의 주위에 있는 박우민을 비롯한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그게 뭐? 정다훈이랑 무슨 상관이라고?”
“도원 씨. 다훈이도 관리부원이래요.”
내가 나서서 강만식에게 따지는 사이, 이지은이 귓속말로 전했다.
아, 그런 거였구나?
정다훈도 관리부원이었다라…….
뭔가 앞뒤가 맞아가는 느낌이다.
정다훈을 왜 관리부원으로 넣었는지 나는 알 것 같아서다.
이제 정다훈의 능력도 봤고, 심지어 강만식의 능력에 직접 맞아 보기까지 했으니까.
하지만 이건 현재 중요한 건 아니다.
“그래서 뭐? 다훈이가 관리부원이건 뭐건 이제 상관없어지지 않았나?”
“뭐 인마?”
“당신이 직접 버렸잖아. 전투 능력도 없는 저 어린애를 던전 안으로 밀어 넣었으니까. 내 눈엔 그 행동이 버리는 걸로 보였는데.”
“주변에 백 좀 생기더니 사람 태도가 달라졌구나?”
“아니, 그것보다 왜 자꾸 여기에서 고집부리지? 엄연히 이것도 무단침입죄 아닌가? 안 그래요? 본부장님?”.
슬쩍 신동원을 바라봤다.
그 대단하신 태강 그룹의 법무팀을 들먹여달라는 신호였다.
‘제발 눈치채라…….’
[그렇게 난해하게 말해서 저 사람이 눈치채겠냐?]
흑염룡은 나를 타박했지만.
“뭐, 그렇죠. 다만 여기 소유주도 헌터. 그리고 상대는 헌터 협회 직할 관리부장. 둘 다 헌터라서 일반적인 죄가 성립이 안 될 가능성이 높긴 한데……. 그래도 저희가 누굽니까? 최대한 힘 써보죠.”
다행히 강만식은 내 신호를 잘 받았다.
역시, 이럴 땐 기업인의 눈치가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이건 강만식을 향한 은은한 협박이기도 했다.
자신이 무적이라고 믿었던 방패인 관리부장도, 국내 대기업이 작정하고 나선다면 금이 가는 걸 넘어, 부서질 수 있다는 은은한 협박.
이제 신동원이 나섰다.
“강만식 길드장? 어차피 여기에서 대치한다고 달라질 거 없는데. 당신도 원하는 게 남아 있고, 우리도 남았고. 그리고.”
“그리고?”
“당신 주인 협회장 씨도 원하는 게 남아 있지 않나?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선 협상이 불가피한 상황 같은데. 그 정도 머리는 안 돌아가나, 혹시?”
“뭐 어쩌자는 거지?”
“보아하니, 당신도 명령받은 입장에서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겠지.”
이번엔 신동원이 내게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일단 강만식을 비롯한 관리부원들을 이 건물에서 쫓아내기 위해 구실을 만들 테니, 호응해달라는 소리로 들렸다.
“안 그렇습니까? 고객님?”
이젠 대놓고 내가 묻기까지.
역시, 내가 생각하는 게 맞았다.
강만식은 이제 내게 시선을 고정했다.
“일단 이거 가져가고.”
팔랑.
협회장실에서 털어 온 중국 협회 비문을 던져서 건넸다.
친절하게 앞까지 다가가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을뿐더러.
괜히 가까이 갔다가 무슨 짓을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네 눈으로 본 거 전부를 전해. 협회장에게.”
“…….”
강만식은 대답하지 않은 채, 내 눈만 노려봤다.
난 몸을 살짝 틀어, 등 뒤에 남은 4개의 게이트를 가리켰다.
“협회장도 저거 알려주면 좋아할 거 아냐? 그런데 저 게이트의 주인은 나니까. 나랑 협상해야지? 이곳은 이제 내 경호원들이 지킬 건데, 경호원들을 제압하고 약탈할 생각인가?”
이미 신동원이 자랑하는 태원 서큐리티의 정예팀 실력은 직접 확인했다.
특히 장길수라는 사람.
그는 등장하자마자 말 몇 마디로 박우민은 물론, 강만식까지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적어도 협회장을 등에 업은 강만식을 상대로 쉽게 지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럼 그 꼬맹이랑 이지은 넘겨.”
그는 여전히 이지은과 정다훈에게 집착하는 모습이다.
정다훈을 왜 고집하는지는 알겠지만.
이지은까지는 왜 그런지 모르겠다.
자신의 치부 전부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 그런가?
그렇게 생각하니 더더욱 보낼 수 없었다.
데려가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위험한 녀석인 건 분명하니까.
“아니. 지은 씨랑 다훈이는 내가 데리고 갈 거야. 그게 내 조건이야.”
“…….”
“시간 끌면 끌수록 손해 보는 건 너 아냐? 협회장에게 명령받고 온 거라며?”
믿고 보낸 사람인 만큼, 속전속결로 끝내길 원했을 거다.
그러나 계속 시간이 지체된다면 최현민도 뭔가가 이상하다고 느낄 거고, 강만식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게 되는 건 당연한 얘기.
난 강만식이 처한 상황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시간 싸움으로 간다면 어차피 이기는 쪽은 나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몇 시간, 혹은 며칠까지 흘러도 어차피 나는 잃을 게 하나 없고.
반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강만식 쪽은 잃을 것만 생겨날 거니까.
“그래, 해 보자 이거지?”
강만식은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내게 던졌다.
난 염력 능력을 사용해 날아오는 휴대폰을 천천히 내 손에 안착시켰다.
예의는 밥 말아 먹었나.
“뭐지? 이건?”
“뭐긴, 뭐야. 네 번호 찍어. 내가 직접 너한테 연락하게.”
의도가 그리 순수하진 않지만, 어쨌든 협상을 진행하겠다는 의지는 보였다.
이번엔 군말하지 않고 그대로 내 번호를 강만식의 휴대폰에 입력한 채로, 던져줬다.
염력을 사용하지 않은 채다.
“이따 보자고.”
그렇게 드디어.
강만식 일당인 관리부는 이 집에서 나가게 됐다.
“후아……!”
그가 나가자마자 이지은은 참았던 숨을 토하듯이 뱉었고.
“누나아아……!”
정다훈은 더욱 목 놓아 울었다.
“그래, 다훈아…….”
정다혜는 그런 정다훈을 품에 안으면서 토닥였다.
그녀의 눈가에 말똥한 눈물이 맺혔다.
“감격적인 순간이긴 하지만…….”
신동원이 내 옆에 다가와서 조용히 말했다.
무언가 할 말이 많은 표정이다.
“네, 뭐죠?”
“잠깐 우리끼리 조용히 얘기할 수 있을까요?”
“그러시죠. 옆방으로 가시죠.”
게이트가 있는 방에는 이지은, 정다훈, 정다혜.
이 셋과 장길수를 비롯한 경호원을 남겨두고, 나와 신동원만 따로 옆방으로 옮겼다.
***
이제 나와 신동원만 있는 둘만의 공간.
누구도 듣는 사람은 없다.
“하고 싶은 말씀이 뭔데요?”
“정확히는 도원 씨의 생각을 묻고 싶은 거죠.”
“뭘요? 제가 협회장이랑 협상하자고 한 거요?”
“협상 자체는 제가 먼저 꺼낸 얘기니 그렇게 넘어가지만…….”
이 양반은 말을 참……. 괜히 어렵게 하는 재주라도 가진 것 같다.
그냥 속 시원히 말하면 될 것을 왜 이렇게 빙빙 돌리는지 모르겠다.
신동원은 자신의 안 주머니에서 계약서를 꺼냈다.
내가 경호를 의뢰한다는 내용의 그 계약서다.
“분명히 저한테 이걸 의뢰할 때 한 말이 마음에 걸려서요.”
“무슨 말이 걸린단 거죠?”
“저한테 도움을 요청하는 이유가. 정식 헌터가 되기 위해서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었죠. 그 과정에서 본부장님의 도움이 꼭 필요하니까.”
“그런데…….”
신동원은 이마를 긁적였다.
표정도 상당히 난처하게 변했다.
“아까 제가 강만식 길드장한테 한 소리 못 들었습니까?”
“어떤 거요?”
“정식 헌터는 허가되지 않은 계약을 멋대로 진행할 수 없다는 거요. 그것도 협회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했잖아요.”
“아~ 그랬죠. 근데 그건 큰 문제가 안 될 거 같은데?”
“문제가 안 되긴요. 지금이야 정식 헌터가 아니니, 어찌저찌 넘어갔는데. 협회장과의 협상 후, 정식 헌터가 되면 얘기가 달라져요.”
난처한 표정은 이제 심각하게 변했다.
진심으로 무언가를 걱정하는 중이다.
난 그게 뭔지 알 수 있었다.
“제가 정식 헌터가 되면 지금처럼 도와줄 수 없어서 그런 거죠?”
“잘 아시면서. 왜 굳이 정식 헌터가 되려고 하는 거죠? 되지 않아도 충분하지 않나? 현재 도원 씨 능력이라면.”
적어도 초월석을 품은 게이트를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정식이건 아니건 큰 상관이 없지 않냐는 뜻이다.
뭐, 내 전후 사정을 정확히 모르면 충분히 저런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저도 알죠. 하지만…… 지금 제 신분에서는 정식 헌터라는 신분이 꼭 필요해 보여서 그렇죠.”
“이유는요?”
“그럼 본부장님에게 역으로 묻죠. 한때 길드장을 지낸 적이 있으시니까.”
“뭐든 물어보시죠.”
“강만식처럼 협회에서 인정하는 자신만의 조직을 가지려면. 전제 조건이 정식 헌터 아닙니까?”
“……설마, 정식 헌터가 되려고 하는 게?”
“네. 강만식처럼 저만의 조직이 필요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