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크루즈 (1)
휘이이잉-!
결국, 강풍에 의해 내 몸은 어딘가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흑염룡……!”
[끝이야…… 끝…….]
완전히 멘탈이 나갔구나.
상황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는 중이다.
그 사이, 강풍에 의해 몸은 이미 어딘가로 빨려 들어갔다.
“흑염룡! 정신 차려봐!”
어쨌든 이 던전에 크루즈가 있는 건 확실하다.
정령의 왕 흑염룡이 저렇게 벌벌 떨게 만들 정도의 무시무시한 위력을 가진 크루즈.
말로만 듣던 의문의 세력을 내가 직접 보게 된 순간이다.
그렇기에 적어도.
크루즈가 어떤 특성을 가졌는지 알아야 했다.
크루즈를 상대해 본 적이 있는 흑염룡이 그것을 알려줘야 하는데…….
[끝이라고…….]
흑염룡은 계속 저 말만 반복 중이다.
이래 가지곤 흑염룡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내 몸은 무아지경으로 어딘가로 끌려가기만 했고, 중간에 뭐라도 잡고 버티려고 해도 당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있으니 그럴 수도 없었다.
“누나아…….”
그러던 중, 강풍 속에 섞여서 들린 한 아이의 목소리.
얼핏 들어도 남자아이의 목소리였다.
이 게이트로 들어온 사람은 단 한 명.
분명 저 목소리의 주인이 그 아이이리라.
“다훈이니?!”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소리쳤다.
“……누구세요?”
다행히 정다훈도 내 목소리는 들을 수 있는 것 같다.
소리치자마자 곧장 답하는 걸 보니.
하지만 소리만 가까운 곳에서 들릴 뿐, 위치를 볼 수 없었다.
[맛있는 게 하나 더 들어왔군.]
그리고 들린 음산한 목소리.
음침한 지하에서 말하는 것처럼 크게 울리는 목소리다.
게다가 소름이 끼칠 정도의 저음.
사람 목소리가 아닌 것쯤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크루즈?’
본능적으로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애초에 크루즈가 점령한 던전은 시오스가 만든 안전장치인 몬스터 같은 게 없다고 했으니까.
[흐흐흐흐.]
정체 모를 크루즈는 기쁜 미소를 흘렸다.
심지어는 쩝쩝거리며 입맛을 다시기도 했다.
[새로 굴러들어온 놈이 훨씬 맛있어 보이네. 영양가가 가득해.]
쩌억-!
흠칫한 소리와 함께.
어두웠던 이곳에 드디어 한 줄기 빛이 생겨났다.
다만, 빛이라고 해도 눈이 부시게 밝거나 형광등처럼 이곳 전체가 보일 정도는 아니다.
아주 옅게 튼 무드등과 같았다.
빛이 생기고 나서 마주한 것은 공룡의 이빨처럼 거대한 이빨들.
그 속에 있는 점액질이 가득한 혓바닥.
빛은 그 혓바닥에서 나오고 있었다.
[더스티…….]
“흑염룡!”
그제야 흑염룡이 정신을 차렸다.
마침 반가운 소식이다.
[윤도원……! 정신 차려야 해!]
그리곤 갑자기 나를 다그친다.
내가 여태껏 정신 차리란 소리를 얼마나 했는데.
아니다, 괜찮다.
지금이라도 저렇게 정신 바짝 차리고 나를 훈계하는 게 훨씬 낫다.
[빨려 들어가지 마! 저놈한테! 이 강풍은 저놈 입에서 나오는 거야!]
어느덧 내 몸은 더스티라 불리는 크루즈의 입과 몇 뼘 차이가 나지 않는 곳이었다.
[최대한 떨어져!]
그 말에 나도 정신이 번쩍 들며 발악을 시작했다.
절대 더스티라는 저 녀석의 입으로 빨려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하니, 강풍에서 무조건 버텨야 한다.
[더스티는 크루즈의 졸병. 할 줄 아는 건 딱 하나! 강풍으로 빨아들여서 집어삼키는 게 전부야!]
이제 보니 흑염룡이 갑자기 정신을 차린 이유도 상대 크루즈의 정체를 확실히 알아서 그런 모양이다.
정말 공포에 질리도록 벌벌 떨게 하는 크루즈가 아닌, 고작 졸병 하나 정도이니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듯했다.
“파훼법은?”
[죽이면 돼.]
“간단하게도 말하네. 약점이나 이런 것 물어보는 거다.”
[입 안. 더스티의 겉은 단단해서 쉽게 뚫을 수 없어.]
“그렇단 말이지.”
일단 더스티로부터 멀리 벗어나자.
강풍은 여전히 세차게 부는 중이고, 무언가를 잡고 지탱할 것도 없다.
하지만 괜찮다.
“흑염룡. 이래서 염력이 크루즈를 상대하기에 꼭 필요하다고 한 거냐?”
[비슷해. 더스티는 최약체라서 다행이지만.]
계속해서 염력을 사용하며 버텨냈다.
처음 이 던전에 들어섰을 땐 영문도 모른 채 끌려 왔지만, 지금은 다르다.
상대가 어떻고, 빨려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지 등등.
필요한 정보를 얻다 보니까 염력 사용을 위해 집중하는 것에도 어렵지 않았다.
“저기요……?”
정다훈의 목소리가 상당히 가까운 곳에서 들린다.
나는 염력으로 버티는 중인데, 정다훈은 어떻게 더스티가 일으키는 강풍으로부터 몸을 지키는 중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일단은 빛이 절실히 필요했다.
더스티의 혓바닥에서 나오는 빛은 그야말로 아주 희미하게 형체만 볼 수 있는 정도이기에, 이 상황에선 실용성이 아예 없다고 봐야 했다.
“빛…… 빛…….”
아니면 발광물체라도 어디 없을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주위를 둘러볼 때.
[네가 만들어. ‘만물’을 가지고 있잖아.]
흑염룡이 제안했다.
하지만 “그래, 그게 있었지!”라는 감탄사보다.
“레벨 0짜리로……?”
이런 패배감이 먼저 들었다.
[이 상황에서 기댈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는데 그럼 어떡할 거야?]
그래, 염력과 은신 하나만 믿고 시오스의 수호신이란 드래곤과도 맞선 적이 있는데.
레벨 0이 어디 대수냐?
휘이이이잉-!
[얌전히 먹혀라.]
흑염룡과 이 상황에서 타개할 방법을 찾던 도중, 더스티는 다시 행동을 개시했다.
전보다 강한 강풍을 일으키면서 우리를 입속으로 삼킬 기세가 가득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강풍이 느껴지지 않았다.
‘뭐지…?’
강풍뿐만이 아닌, 더스티의 그 음침한 목소리까지 완전히 차단된 듯이 조용했다.
여전히 빛은 없었다.
그래도 더스티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니 불안감이 가셨다.
“누구세요? 처음 듣는 목소리였는데.”
어둠 속에서 들린 정다훈의 목소리.
손으로 바닥을 더듬거리면서 그의 위치를 찾기 시작했다.
신기한 것이, 현재 내 상태가 어떤지 눈으로 볼 순 없지만, 확실히 느껴지는 게 있다.
바로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이란 것이다.
텁.
손에서 다른 이의 온기가 느껴진다.
조막만 한 손 크기.
그러면서도 따뜻한 손.
분명하다. 정다훈이다.
“누구세요…….”
목소리가 이제 애처롭게 변했다.
혼자서 무서운 이곳에 있다가, 같은 사람이 있다라는 사실만으로 기뻐하는 듯했다.
“안심해, 다훈아. 나는…….”
지금 상태에서 정확한 설명은 필요가 없겠지.
대충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만 설명했다.
“네 누나 친구야. 너 혼자 여기로 들어왔단 소리 듣고 데리러 왔어.”
“정말요……?”
“응. 그런데. 여긴 어디야? 아까 그곳이 아닌 것 같은데.”
“제가 만든 곳이에요. 갑자기 강풍이 불어 가지고, 피하려고요.”
오호라.
아무리 최약체긴 해도, 무려 크루즈가 있는 장소였는데.
그곳에서 별도로 자신만의 장소를 만들었다라?
정다훈의 능력이 뭔지 몰랐을 땐 그저 누나인 정다혜와 비슷한 능력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결국엔 워프라는 큰 틀을 벗어나질 못할 것으로 예상했더니…….
완전히 다른 개념인 듯하다.
이참에 정다훈의 능력을 제대로 알아보기로 했다.
그러면 크루즈가 있는 이 던전에서 탈출이 가능할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어떻게 가능해? 던전 안에 너만의 장소를 또 만들었다고?”
“제 능력이에요. 전 가능해요.”
[……꼬맹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대단한데.]
흑염룡도 꽤 놀란 눈치다.
하긴, 그런 능력이 없었으면 강만식의 눈에 들지도 않았겠지.
그런 면에서는 충분히 납득이 됐다.
“그래서 여기로 피신한 거야?”
“네. 밖의 상황을 보고 있었는데…… 어두워서 보이지도 않고…….”
단순히 피하는 것에 끝나지 않고, 밖의 상황까지 볼 수 있다니.
이런 상황에선 그야말로 최고의 능력이었다.
“다훈아. 어디까지 가능해? 정확히 네 능력이 뭐야?”
“기본은 워프에요. 그런데 남들이랑은 조금 달랐어요. 별도의 공간을 만들 수도 있고, 그 공간에 누군가를 가두거나, 아니면 제가 들어갈 수도 있고…… 그리고 또…….”
정말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모양이다.
목소리로 듣고만 유추했을 땐,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의 가짓수가 얼마나 있을지 손가락으로 세고 있을 것만 같았다.
“혹시 빛이 있는 공간을 만드는 건? 불가능해?”
“이상하게 그건 안 됐어요.”
하지만 정작 가장 필요한 것은 봉인된 듯하다.
본래에는 할 수 있는데 이곳에서만 이상하게 안 된다는 것처럼 들렸다.
[더스티 때문일 거야. 더스티는 암흑 크루즈라고 불리는 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까는 게 특징이니까.]
“역시, 그런가…….”
“그런데 형은 혼자 있는 게 아니에요……? 아까부터 누구랑 대화하는 거예요?”
정다훈도 내가 누군가와 대화하는지 상당히 궁금해했다.
“나가서 알려줄게. 지금 알려줄 수 있는 게 아니…….”
쿵!
그러던 중.
갑자기 뒤틀리는 공간.
동시에 내 몸은 들썩였다.
“으악!”
정다훈도 깜짝 놀랐는지, 비명을 질렀다.
쿵! 쿵!
쩌적-!
쩌저적-!
이젠 충격을 넘어서, 어딘가에 금이 생기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뭔가가 제 공간을 공격하고 있어요.”
[더스티일 거야. 자신이 만든 강풍으로도 먹잇감이 끌려오지 않으면, 몸체에서 촉수를 뽑아서 억지로 데리고 오거든.]
“그런데 더스티가 왜 우릴 삼키려고 하는 건데? 꼭 집착하는 것처럼. 단순히 죽이려는 의도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더스티는 크루즈에게 우리 키스톤과 비슷한 개념이야.]
“키스톤과 비슷한 개념?”
[응. 키스톤의 능력을 가진 상대를 집어 삼키고, 몸체는 그대로 녹여 버리고 그 능력만 추출해서 저들만의 형태로 바꾸는 거거든.]
이렇게 들으니 더스티는 생명체일지, 아니면 기계일지 모를 녀석이다.
어쨌든 확실한 건 딱 하나.
“그럼 더더욱 나는 더스티에게 잡히면 안 되겠네?”
시오스가 크루즈 대항용으로 만들었다는 염력.
그리고 그것과 세트인 만물.
가장 귀한 자원을 가지고 있는 게 나다.
[당연하지. 어떻게든 나가야 해.]
“나갈 방법은 저 더스티를 없애야만 가능하단 거지?”
[응.]
정다훈이 가진 능력은 고작 장소에 관한 것밖에 없다.
따라서 정다훈의 능력을 이용해 더스티를 공격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내가 가진 능력으로 더스티를 어떻게든 없애야 한다는 뜻이 됐다.
그러나 숨이 턱 막혔다.
염력, 은신, 만물.
그나마 실전에서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인 염력과 은신은 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소용이 없다.
반격할 수 있는 수단이 염력밖에 없는데, 문제는 더스티의 촉수가 어디에서 다가오는지, 직접 내 눈으로 볼 수 없기에 그 촉수를 조종하는 건 불가능했다.
염력의 레벨이 최대치에 도달한다면 눈으로 보지 않아도 가능하겠지만, 지금 내 수준에서는 꼭 눈으로 보고 반응을 해야만 했다.
“미치겠군……. 뭐 좋은 거 없을까?”
[만물을 이용하는 것밖에 없지]
그러나 레벨 0짜리로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답답하군. 시오스의 지도자가 선택한 인간이라길래 기대를 했겄만…….]
[……?]
“어?”
그런데 흑염룡이 아닌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이 목소리 역시.
분명하게 사람의 것은 아니다.
[나를 두고 왜 고민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