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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55화 (55/200)

§ 55화. 우리 기업의 VVIP 고객님 (2)

“내가 SF 길드에서 직원으로 일하고 월급까지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는데, 그걸 이제야 알아차리다니…….”

정말 한심해서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나왔다.

“…신분 위장한 줄 알았지. 가짜 신분으로 이지은이 심어 놓은 첩자.”

뭐, 켕기는 게 많은 너라면 그렇겠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단 뜻이다.

원래 도둑이 제 발 저리지 피해자가 제 발 저리지는 않으니까.

“내가 무슨 국정원 요원이야? 신분까지 위장시켜줄 백이 어디 있냐고. 평범한 서른 살짜리 직장인에 지나지 않는데.”

“…….”

강만식은 헛다리 제대로 짚었다.

“자, 이제 어떡할까요, 고객님? 이대로 협회 직행?”

“도원 씨! 다훈이……! 강만식이 강제로 집어넣었어요!”

신동원이 물었을 때, 이지은이 말했다.

어느덧 흐느끼는 것을 완전히 멈추었고.

상황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흘러가는 것을 깨달은 뒤에 생기를 찾은 모습이다.

“다훈이?”

하지만 신동원은 모르는 이름이고, 상황이었다.

“다훈이란 꼬마가 있어요. 본부장님은 아시죠? 꼬마가 왜 필요한지.”

“아~”

“강만식이 강제로 집어넣었다고 하니, 제가 직접 나서 데리고 나와야겠습니다. 그러니 태원 서큐리티……. 아, 이름이 너무 기네. 그냥 경호원들이라고 할게요. 경호원들은 이 게이트는 물론, 저 두 명도 같이 지켜주세요. 제가 나올 때까지.”

“그러면 추가 비용 붙는데?”

이 상황에서도 그걸 굳이 말하고 싶으십니까, 재벌 아저씨.

“알겠으니까 해 주시죠?”

“물론이죠. 이리 오시죠. 새로운 고객님들.”

정다혜와 이지은이 내 쪽으로 오려고 할 때.

역시나 그들을 막으려는 놈이 있었다.

바로 푸른 쇠사슬로 나를 집요하게 괴롭혔던 그놈이다.

놈이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자, 즉각 반응한 장길수가 앞을 막아서며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허튼짓 안 하는 게 좋아. 젊은 친구. 점잖게 행동하자고.”

“…….”

하지만 상대는 고분고분한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눈동자엔 어떻게든 반항을 해보고 싶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떨어져. 일 크게 만들지 말고.”

강만식이 명령한 뒤에야, 마지못해 자리를 비켰다.

“드디어 정신 차렸구나? 강만식이.”

“……닥쳐.”

“에휴, 기대한 내가 바보지. 넌 나중에 따로 얘기해야겠네. 애송이는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애송이인가.”

이지은과 정다혜까지 내 쪽으로 온 뒤에 신동원에게 강조했다.

“제가 나올 때까지 이 게이트를 저들로부터 지켜야 합니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족속들이라.”

“족속……?”

족속이란 단어에 비하의 뉘앙스가 담겨 있어서일까.

강만식이 유독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지만.

뭐, 어쩌라고?

난 이제 든든한 백이 있는데.

“맡겨만 주시죠. 값은 확실히 하니까. 자, 경호원들. 각자 위치로.”

신동원의 한 마디에 4명의 경호원이 서로 일정한 거리를 벌린 채 위치를 잡았다.

신동원은 장길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소개했다.

“특히 이분. 나보다 나이 많으신 분인데, 실력이 정말 확실한 분입니다. 고객님은 모를 수도 있겠지만, 이분이 태강 길드에 들어오기 전엔 ‘수령사’라는 길드를 가지셨던 분이죠.”

“수령사 길드라면……?”

“오, 들어봤습니까? 고객님? 허허, 부끄럽군요.”

장길수가 직접 반응했다.

그래, 수령사 길드.

들어봤다.

길드장이 상당히 괴짜로 알려져 있다.

길드 이름이 무슨 절처럼 ‘~사’로 되어 있는 이유도.

본래 스님이었던 자가 헌터가 되어서라고 했다.

그게 벌써 몇 년 전일까.

수령사라는 길드는 못해도 20년 전에 존재했던 길드다.

20년 전이면 내가 고작 10살이 되던 때.

심지어 흑염룡과 만나기 전이다.

그런데도 내가 알고 있는 이유는, SF 길드 입사 때, 선배들이 말해줘서다.

그래서 길드장의 이름은 몰라도, 그런 이름의 길드가 있었다는 건 아는 거다.

수령사라는 길드가 규모만 작지, 당시 국내 모든 길드가 합세해도 무력으로는 수령사 길드장 하나를 못 당할 거라는 전설적인 길드장을 지금 여기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어쩐지 도깨비를 부리는 게……!”

그의 몸체 뒤로 나타났던 도깨비들도 다 이해가 되었다.

“다 제 귀여운 친구들이죠.”

도깨비가 귀엽단 것에는 공감할 수 없으나.

어쨌든 확실한 건.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들이란 거다.

‘의기양양했던 박우민이나 강만식이 이 사람한테는 꼬리를 말았던 이유가 다 있군.’

그런 그가.

어떤 이유로 태강 길드의 일반 길드원으로 들어갔고, 지금은 신동원을 따라 헌터를 은퇴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내게 실낱같은 희망이 아닌, 구원의 동아줄이다.

이제 정다훈을 구출하기 위해 게이트를 향해 등을 돌렸을 때.

“도원 씨. 저기 중앙에 있는 게이트예요.”

이지은이 알려줬다.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흑염룡이 알려줄 수 있는 것이지만, 이지은은 그거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모양이었다.

“고마워요. 그리고 고생했어요. 여태 저런 놈과 함께였다는 게 얼마나 고달팠을지 실감이 나네요.”

“괜찮아요. 오늘로 끝이니까.”

시선을 옮겨, 정다혜를 살폈다.

정다훈이 들어간 게이트를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중이다.

“걱정 마. 다혜야. 내가 데리고 올게.”

“……네.”

“데리고 오고 나서. 동생한테 라면 끓여줘야지?”

“그럴 거예요.”

“갔다 오마.”

“고마워요……. 오빠.”

“고맙긴.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신동원에게 공장부지 일부를 받기로 약속까지 받았다.

따라서 나는 이제 그곳으로 옮겨야 하는 몸.

그리고 이 집은 이제 비워야 했다.

생각을 다르게 먹기로 했다.

여기에 펼쳐둔 5개의 게이트는 결국, 내가 신동원에게 받는 공장부지로 옮기면서.

없애야 했던 것들.

어차피 없앨 거, 정다훈 덕분에 미리미리 그 이사 준비를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난 그렇게 게이트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이젠 게이트가 익숙해졌다.

과연 안에서 어떤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그런 걱정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

“무서워어어…….”

정다훈이 게이트 안으로 들어온 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체감이 되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다 있기 때문이다.

온통 어둠만 깔린 이곳.

천장도, 하늘도, 배경도, 바닥도.

그 무엇도 없이 정말 어둠만이 짙게 깔렸다.

오죽하면 자신의 몸을 자신의 눈으로도 제대로 볼 수 없을 지경이다.

그런 칠흑의 던전에 홀로 떨어진 정다훈.

앞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 보니, 자세는 자연스럽게 땅에 엎드려 기어가는 형태가 되고 말았다.

“누나… 보고 싶어…….”

물론, 정다훈도 늘 무서웠다.

강만식의 밑에 있을 때 그가 지냈던 방식은 호텔 방 안에 갇혀 산, 새장 안의 새.

넓은 객실에 혼자 있으면 뭐 하나.

그런 것 아무 상관 없는 어린이일 뿐이다.

어린이에겐 방의 크기가 중요하지 않다.

그 방에 누군가와 함께 있느냐가 중요하지.

그래서 늘 외롭고 무서웠다.

괜히 수도꼭지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라도 나면 화들짝 놀라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지금의 무서움은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정말 숨을 쉬기도 힘들 정도의 칠흑같은 어둠.

게다가 자신의 몸까지 볼 수 없을 정도이니, 가만히 있어도 정신이 망가져 이내 완전히 붕괴할 것만 같았다.

“흐흑… 누나. 누나……!”

정다훈 스스로도 어떤 누나를 찾는지 알 수 없었다.

라면을 사다 준 이지은이란 누나일까.

아니면 자신의 친누나 정다혜일까.

그런 생각도 들지 않을 정도다.

그저 이 무서움을 깨끗하게 중화시켜줄 단어가 누나란 단어일 뿐이고, 연신 주문처럼 그 단어만 내뱉는 중이었다.

쿠구구구구궁-!

그러던 중.

땅이 진동했다.

아니, 땅이 진동한 것인지, 이 공간 정체가 진동한 것인지 몰랐을 때.

휘이이이잉-!

어딘가에서 강풍이 불어닥치면서 의문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래 굶었는데 잘됐군. 꽤 영양가 있는 걸 가지고 있는 녀석이야.]

목소리가 끝나자 정다훈의 몸은 서서히 어딘가로 끌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누나……!!”

***

던전에 들어온 뒤.

일단 내가 먼저 한 것은 늘 그렇듯 던전의 배경부터 파악하는 것.

그런데 이건 쓸데없는 짓이 되고 말았다.

왜냐, 애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만 짙게 깔린 던전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흑염룡의 모습까지 보이지 않을 정도다.

그렇지 않아도 온통 검은색으로 치장한 녀석이 흑염룡인데.

거기에 배경이 어둠까지 깔리니, 정말 영구 지속되는 은신 능력을 가진 듯하다.

‘그렇다고 하기엔 이상한데?’

흑염룡의 모습은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왜 내 몸까지 내 눈으로 보이지가 않는단 말인가?

분명 시선 앞에 손바닥을 활짝 폈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흑염룡. 이건 어떤 형태의 던전이야? 온통 어둠밖에 없는 게 특징인가?”

[어어……?]

그런데 흑염룡의 반응이 이상하다.

필시 이것은 긍정적인 반응이 아닐 터.

처음으로 흑염료과 함께 던전에 들어갔을 때가 떠올랐다.

초월석을 두 개나 품고 있었던 신전 배경의 그 던전.

두 개의 초월석 때문에 안에 있는 몬스터가 흑염룡의 말을 듣지 않아 정말 죽음의 경계선에 발을 들이밀었다 돌아온 그 던전 말이다.

“설마, 이것도 초월석이 두 개인 그런 형태의 던전이야?”

[아니야…… 절대 아니야. 이 어둠…….]

“제발 뭐 특이사항 있으면 미리 말해라. 전처럼 상황이 닥치고 나서 말하지 말고.”

[…….]

그런데 상태가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

표정을 볼 수가 없으니 답답하지만, 목소리만 들어도 대충 어떤 표정일지 짐작이 갔다.

[이거 우리가 만든 던전 아니야…….]

“그게 무슨 소리야? 던전으로 향하는 입구인 게이트는 네가 만드는 거잖아?”

분명히 이미 만들어둔 던전에 길을 뚫는 역할이 흑염룡이 만든 게이트의 개념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런 게이트는 자신이 직접 만들었음에도, 속 내용물인 던전은 자신이 만든 게 아니라니.

이런 어불성설이 또 어디 있을까.

[정확히 말하면… 본래 우리의 던전이었지만, 지금은 그 소유권이 넘어간 던전이란 뜻이야……. 윤도원. 당장 나가야 해. 이건 내가 손 쓸 수 없는 던전이야!]

“네가 만든 게이트라 주변에 누가 있는지 느낄 수 있었으면서 왜 이건 못 느낀 거야……?”

[내가 말했잖아! 게이트에 한해서라고! 던전 안까진 나도 못 느껴! 얼른 나가!]

“나가면 몬스터가 튀어나오잖아?”

[이 안에 있는 건 몬스터가 아니라고!]

흑염룡이 소리치면서, 내 몸을 더듬거렸다.

흑염룡의 눈에도 내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기에 저렇게 더듬거리며 만지는 듯했다.

그렇게 흑염룡의 손은 내 어깨로 향했다.

“흑염룡… 너…….”

흑염룡의 손이 심각하게 떨린다.

이렇게 떠는 모습 처음…….

아, 아니다.

전에 분명히 한 번 본 적이 있구나.

바로 크루즈에 관해 설명했을 때.

[이 던전은 이미 예전에 크루즈에게 먹힌 던전. 즉, 이 안에는 우리가 만든 몬스터는 없어. 크루즈가 있는 던전이라고……! 나가. 나가야 해. 지금 네 상태로는 극복할 수 없어!]

“미쳤어? 정다훈 데리고 나가야지.”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너나 정다훈이나 어차피 이대로 있으면 다 죽은 목숨이라고!]

이렇게 화를 내면서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도 처음이다.

그만큼 절박한 상태를 표하는 중일 거다.

난 슬쩍 뒤를 돌아봤다.

그런데 이 던전이 품은 의문점 또 하나가 있었다.

“……어떻게 나갈 건데.”

바로 우리가 들어온 게이트가 이미 사라진 것.

처음 겪는 현상이다.

“그런데 게이트는 원래 사라지는 게 아니잖아? 그런데 지금은 왜…….”

[늦었어……. 아무래도 정다훈이 먼저 들어와 버려서 나갈 수 있는 제한 시간이 지나 버린 거야……. 이렇게 되면 이 안에 있는 크루즈를 없애기 전까진 절대 열리지 않아. 다 끝이야. 다…….]

흑염룡이 패배감에 찌들어 모든 걸 포기하려는 그때.

휘이이이잉-!

“으윽……!”

어딘가에서 강풍이 일렁이며, 내 몸이 끌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끝이야…… 끝이라고…….]

흑염룡은 실성한 것처럼, 그 단어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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