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양지바른 곳 (3)
결국, 난 다급하게 염력을 풀고 날아오는 쇠사슬을 피했다.
콰앙-!
정확히 내 머리 위에서 생성된 쇠사슬을 바닥을 찍었고, 땅바닥엔 구멍이 생겨 4층이 훤히 보일 정도다.
‘저게 내 머리를 찍었으면…….’
못해도 머리에 구멍 뚫리는 건 확정이다.
하필이면 이런 능력자가 있다니.
염력 하나만으로는 저 능력을 막을 수 없단 걸 깨달았다.
생성되는 위치는 내 머리 위인 게 고정인 듯하나, 문제는 속도다.
너무 빠른 속도로 내려치는 형태이기에, 염력으로 막는 건 현재 상태로는 무리였다.
‘속도를 간과하고 있었어…….’
생각해 보면 박우민을 내쫓을 때도, 박우민의 소환체는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
그저 거대하기만 했지, 어쨌든 한 자리에 고정된 형태이기에 염력으로 조종하는 게 가능했지만.
지금 의문의 푸른 쇠사슬은 그럴 수 없었다.
‘큰일인데…….’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
그 순간.
“……!”
어느새 박우민이 내 눈앞까지 다가왔고.
미처 반응도 하기 전에.
화악-!
그의 손바닥이 내 얼굴을 움켜쥐었다.
그 상태로 무언가를 뽑아내는 듯한 행동을 취했다.
강만식이 그 행동을 취할 때.
내 몸에서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가 내 몸에 꽂혀 있었는데, 그걸 갑자기 뽑아내는, 딱 그런 느낌이다.
“…어?”
강만식의 손에는 회색의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분명히 저건 내 몸에서 뽑아낸 물체다.
“아무래도 말로 안 통할 놈 같으니까. 이렇게 해서라도 불게 해야겠지?”
[뭔가 이상해……! 저 행동은 내가 헌터의 능력을 볼 때랑 비슷한 거잖아!]
흑염룡도 강만식의 행동을 보고 수상하다고 여겼는지, 곧장 그의 이마 앞으로 갔다.
흑염룡이 취한 행동은 상대의 능력이 뭔지 확인할 수 있는, 정령만이 가진 특권.
그것을 실행하던 참이다.
흑염룡은 강만식의 이마에 손을 댔고, 양피지를 뽑아냈다.
“음?”
흑염룡이 눈에 보이진 않지만, 강만식은 어떤 불쾌한 기분을 느낀 듯하다.
잠시 반응을 보였다.
[윤도원…… 이거 봐봐…….]
드디어 강만식이 가진 능력의 정체를 확인하는 순간이다.
[추출 Lv 60]
[복제 Lv 60]
두 개의 능력을 가진 강만식.
하지만 능력의 정체는 여전히 난 모른다.
[추출은 내가 헌터의 능력을 확인할 때 사용하는 건데…… 저놈은 그런 용도로 사용하는 게 아닌 것 같아. 분명히 네 몸에서 뽑아낸 무언가는……!]
하지만 흑염룡의 설명보다 강만식의 행동이 먼저다.
강만식이 내 이마에서 뽑아낸 회색의 물체는 징그럽게 꾸물꾸물하더니, 모습이 완전히 바뀌었다.
“저건…… 나?”
“신기하지? 이게 내 능력이야. 비록, 몬스터 상대로는 써먹기 힘든 거지만. 너 같은 애송이한테는 제격이지.”
회색 물체의 외형은 분명 내 모습과 똑같았다.
‘나’라는 사람이 두 명이 된 것이었다.
심지어 회색의 나와 본래의 나 사이는 가느다란 회색 줄기로 연결된 상태였다.
“너희들은 저놈이 나한테 못 붙게 만들어.”
“예.”
명령을 받은 다른 헌터들은 내 앞을 막아섰다.
“네가 뭘 믿고 까분 건지는 모르겠다만. 상대를 잘못 짚었어.”
퍼억-!
“끄억……!”
강만식은 회색의 나의 복부를 강타했다.
그런데 그 통증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져, 내장이 뒤틀리는 것만 같았다.
[그렇구나…… 복제는 윤도원 네 영혼을 복제하고, 그대로 추출해서 저렇게 모형으로 쓰는 거야. 그리고 모형을 가격하면 통증이 고스란히 본체로 넘어간다. 그게 저놈이 가진 진짜 능력.]
퍼억-!
“꺽……!”
주륵.
입가에서 옅은 핏줄기가 흘렀다.
뻐걱-!
“크학……!”
이번엔 조금 더 둔탁한 소리가 나자, 옅은 핏줄기가 아닌, 내가 결핵 환자라도 된 것처럼 피를 뭉태기로 토했다.
“자, 말해보실까. 너는 이지은이 SF 길드로 심어 놓은 첩자인가?”
“내가… 왜…….”
그렇다고 강만식에게 지진 않을 거다.
이대로 굴복할 수는 없었다. 처음부터 이지은이 이걸 걱정했다.
내가 친히 모습을 드러낸 이 이유가 강만식에게 지려고 한 건 절대 아니다.
“그래? 그럼 둘이 언제 알게 됐지?”
뻐억-!
이번에 강만식은 내 모형의 턱을 가격했다.
“끄윽……!”
턱이 인간의 급소라더니.
정말 정통으로 이렇게 맞은 적이 처음이다.
정신이 아찔하다.
그로기 상태라는 게 이런 걸 뜻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잠깐이라도 눈을 감으면 그대로 기절할 것만 같다.
“언제 알게 됐냐니까? 엉?”
뻐억-!
뻐억-!
아찔한 와중에도.
정신을 최대한 집중해서 염력으로 강만식의 행동을 제어하려고 했지만.
“야. 쟤 또 잔재주 부린다.”
“네.”
치리링-!
푹-!
“끄아아악!”
이번엔 푸른 쇠사슬이 내 허벅지를 찔렀다.
아찔한 것을 넘어 화끈한 고통에 난 몸부림쳤다.
“네가 입 안 열면 넌 죽어. 너 다음은 이지은이니까.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냐? 죽는 순간까지도 로맨스 찍으시게?”
“개소리… 집어치워…….”
이제 내게 남은 희망은 단 하나.
신동원의 정예팀.
그들만 기다려야 했다.
‘시간 다 됐는데… 왜 안 오는 거야…….’
거, 재벌 아저씨…….
약속한 시간 지났는데 이러면 됩니까.
신뢰 쌓자면서 벌써부터 이렇게 지키지 않으면 어쩌자는 겁니까…….
“진짜 입을 열 생각이 없구나? 상관없어. 어차피 너 아니어도 이지은한테 알아내면 그만이야. 그러니까.”
꿀꺽.
이번엔 제법 강단 있는 말이다.
나도 모르게 침을 삼키게 되었다.
“죽어. 어이, 그 쇠사슬 여기 이 부분 있지.”
강만식은 내 모형의 심장 부분을 정확히 가리켰다.
“여기에다가 찔러 넣어.”
“굳이 모형에다가요? 본체에다가 해도 되잖아요?”
“몰라? 모형에 입힌 피해가 본체로 넘어갈 때 몇 배는 더 뻥튀기돼. 내 능력 중에 복제도 있잖아. 고통도 복제하는 거지.”
“아하~”
복제를 또 그런 식으로도 활용하는구나…….
하지만 강만식이 나를 없애려는 건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몰라서다.
내가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능력자라는 것.
일단은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잠깐…….”
“뭐야? 이제 입을 열 마음이 들었어?”
“어…… 정신이 확 드네. 봉인한 흑염룡이 멋대로 날뛸 정도로.”
“뭐라는 거야, 이 미친놈이? 너무 큰 고통에 정신이 나갔나?”
“그런데 흑염룡이라고 할 수가 없네……. 피를 이렇게 흘려서야. 그 피가 흑염룡을 적셨으니 적염룡인가…….”
“이거 완전 또라이네?”
“크크큭, 부장님. 맛이 완전히 갔는데요?”
“강만식. 특히 너는 날 죽이면 안 될 텐데. 난 흑염룡의 주인. 내 안에 있는 흑염룡은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녀석이거든.”
[윤도원!]
지금 이 상황에서 그게 무슨 불필요한 말이냐는 타박이지만, 일단 이렇게라도 시간 끌어야 했다.
어째서 신동원의 정예팀이 그렇게 오래 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살 방도를 찾아야 했다.
“뭐?”
역시, 예상대로 핵폭탄급으로 충격적인 사실에 강만식의 행동이 멈췄다.
“저 게이트들. 다 내가 만든 거라고. 던전이 완전히 사라진 이 시대에서. 나를 죽이면…… 네 주인님이 많이 빡치실 거 같은데. 정말 죽일 거야?”
“내 주인님……? 누굴 말하냐?”
“누구겠어. 협회장밖에 더 있나.”
“허허, 이 어린놈의 자식이 말하는 꼬라지 좀 보게. 감히 나를 협회장의 개 취급하네.”
“어쩌라고. 내 눈엔 개로 보이는데. 목줄만 없을 뿐이지.”
“그래? 내 눈엔 죽으려고 작정한 걸로 보이는데?”
“죽여, 그럼. 나 죽이면 어차피 뭐 되는 건 너밖에 더 있어?”
애초에 얘기가 통하지 않는 녀석이었다면, 내가 게이트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을 무시하고 그대로 죽였을 것.
그러나 주춤하는 행동을 봤을 땐 충분히 약발 먹히는 중이다.
그렇다 보니, 나도 세게 나갈 수 있었다.
“나중에 협회장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어차피 목숨줄이 위태로운 건 너지, 내가 아니야. 내가 게이트를 만들 수 있단 사실은 저기 있는 이지은도 알고 다 알거든.”
“그래? 그럼 다 같이 이 자리에서 없애 버리면 되겠네?”
이지은과 처음 만났을 때.
왜 그토록 강만식이 잔인한 놈이라고 한 줄 알겠다.
정말 앞뒤 안 가리고 사람 죽일 생각만 하고 있으니.
사람의 탈을 쓴 몬스터라고 보는 게 맞겠다.
아니, 몬스터가 아니지.
몬스터는 엄연히 시오스의 것이고, 난 그런 몬스터에게도 도움을 받은 적이 있으니까.
무조건 몬스터가 악의 존재는 아니다.
그러니 강만식은 사람의 탈을 쓴 크루즈.
그거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여기에 있는 사람이 전부인 것 같아? 더 있어. 멍청아.”
“…….”
“얼마나 더 있는지 모르지? 그러니 네가 날 죽이면. 여기로 오지 않은 다른 사람이 나중에 이 사실을 협회장에게 알리겠지.”
꽤 고민하는 눈치다.
그리고 내 말에 거짓은 없지 않은가?
실제로 이 자리에 있지 않은 단 한 사람.
신보미.
만에 하나 우리가 여기에서 죽는다고 하더라도, 신보미는 죽은 우리를 위해 움직일 것이니 내가 가진 능력을 후에 협회장이 알게 될 것이다.
“또 있었구나… 그렇구나…….”
강만식은 회색 모형을 떠나, 내 앞에 쪼그려 앉았다.
하지만 난 이미 몸이 만신창이로 땅바닥을 기고 있기에, 그가 쪼그려 앉아도 올려보는 꼴이 되고 말았다.
“네가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능력자인 건 굳이 추궁하지 않아도 진실이라는 걸 알 수 있지. 전 세계는 정말 던전이 완전 정복된 줄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 좁은 나라인 한국에 게이트가 5개나 있으니까.”
“그래, 너도 헌터인데 이 정도 눈치는 있어야지.”
“그런데 말이야. 싸가지가 너무 없어. 네 특출난 싸가지 덕분에 우리 말을 고분고분하게 듣지 않을 것 같단 말이지.”
순간 서늘한 감촉이 등골을 덮쳤다.
본능이 지금 내게 말하는 중이다.
강만식 저놈이 뭔가 다른 끔찍한 것을 할 작정이란 것을.
“팔다리 정도는 없어도 게이트 계속 만들 수 있잖아? 그치?”
“…….”
“표정 보니까 맞는 것 같네? 야.”
“옙, 부장님.”
강만식은 푸른 쇠사슬을 소환하는 헌터를 불렀다.
“얘 몸통만 남겨놔. 죽이지만 않으면 되는 거니까.”
“그러죠.”
치리링-!
이 미친놈…….
진짜로 이럴 줄은 몰랐다.
하지만 너무 늦은 느낌이다.
어느 순간 보니, 내 몸 위에는 푸른 구름이 정확히 4개가 생성되었고, 그 속에서 쇠사슬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불구로 만들고 말 잘 듣게 개조한 다음, 내 부원으로 받아주마. 그리고 넌 게이트만 공장처럼 찍어내면 돼. 그럼 협회장 그 양반도 좋아할 거거든.”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게 아니라.
가둬놓고 알만 낳게 하겠다는 마인드라니.
사람 너무 착하게 봤다.
이건 내 불찰이다.
‘하아…….’
역시, 너무 성급했나.
시간이 촉박하다고 여겨서 세운 계획에 허점이 너무 많다니.
저지르고 나서 깨달으면 뭐 하나.
완전히 망했는데.
치리링-!
사슬이 곧 나올 거다.
아아, 미안해 지은 씨.
이건 내 불찰이야.
음지에서 양지로 진출하고, 양지바른 곳에서 활동하겠단 생각이었는데.
그 양지바른 곳이 나의 활동지가 아닌, 내 묫자리가 되고 말았구나.
끼릭-!
쇠사슬이 나를 향해 튀어나왔다.
카앙-!
그런데 흑염룡의 크기와 비슷한 도깨비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들고 있는 몽둥이로 쇠사슬을 쳐냈다.
마치 야구에서 타자가 투수의 공을 치는 것과 같았다.
‘뭐지……? 이 도깨비는?’
그 직후.
벌컥-!
“늦어서 죄송합니다! 고객님!”
동시에 5층 출입문이 열리며 우렁찬 남성의 목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