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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52화 (52/200)

§ 52화. 양지바른 곳 (2)

“얼마나 걸려요!”

난 거의 초 단위로 신동원을 재촉했다.

하지만 신동원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있는 걸까?

짜증을 낼 법도 한데,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거의 다 됐습니다.”란 답만 반복했다.

이렇게 조급할 수밖에 없는 것이.

신보미에게 추가적인 연락은 없었다.

연락이 없다는 뜻은 무언인가?

정신을 통해 대화하는 신보미와 이지은.

그런데 지금 그 방법으로도 소식을 전할 틈이 없어, 신보미도 우리에게 알려줄 게 없다는 뜻이 된다.

그만큼 현재 집 안에서 일어나는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은 분명했다.

[윤도원!]

가뜩이나 초조해서 짜증까지 나려고 하는데, 흑염룡의 목소리가 좋지 않다.

“또 왜?”

하도 답답해서, 이번엔 처음으로 육성으로 답했다.

내가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신동원은 그런 나를 의아하게 쳐다볼 뿐, 무슨 일이냐며 묻진 않았다.

[누가…….]

“누가 뭐! 빨리 말해! 답답하게 하지 말고!”

[누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어.]

“……뭐? 얼마나?”

[한 명인 것 같아.]

“한 명……?”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만식 무리가 집에 있는 건 이미 알고 있지만.

그 속에 끼어 있는 사람이 누군가?

바로 이지은과 정다훈.

게다가 정다훈을 그렇게 데리고 다닌 이유도.

중국협회의 비문처럼, 어린이를 던전 안으로 밀어 넣으면 몬스터의 출몰이 없다는 사실을 그대로 따라 하려는 게 아니겠는가?

“들어간 사람의 정체는 모른다고 했지?”

[응.]

왠지 내 예상이 맞는 것 같다.

한층 더 초조해져서 신동원을 바라봤을 때.

그는 이미 계약서에 자신의 도장을 찍은 뒤 내게 내밀었다.

“다 됐습니다. 계약 내용은 태원 서큐리티에 보호를 의뢰하는 내용. 읽어 보시죠. 제가 장난질했는지, 안 했는지.”

“지금 그럴 시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몇 장이 넘는 계약 내용을 어떻게 일일이 확인하고 있는단 말인가.

난 펜만 집어 들고 서명란에 사인하려고 할 때였다.

“그래도 조바심에 하는 말이지만. 계약은 신중해야 하는데요.”

이 인간이 왜 이런 상황에 또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는 걸까.

하지만 역시, 따지고 들 시간 없다.

대신 협박 하나만 남겼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 가르지 않는다고 했잖아요? 이 계약이 거짓이면 어차피 쪽이 팔리는 건 본부장님밖에 없죠.”

“쪽 한 번 팔리고 초월석 얻을 수 있다면 싸게 먹히지 않을까요?”

진심으로 말하는 것 같지는 않다.

“괜찮아요.”

사사삭.

난 서명을 마쳤고, 계약서를 신동원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만에 하나. 이 계약서 조항에 장난질을 쳤다고 해도, 전 빠져나갈 구멍은 물론. 역풍 먹일 구멍도 많으니까요. 잘 아시지 않습니까? 세상은 초월석을 무제한으로 생산하는 저를 원하니까 태강 정도는 가뿐하게 뭉갤 수 있는 고래들도 많다는 걸요.”

나름대로 꽤 의미심장한 협박이다.

당신이 만에 하나 장난질을 쳤다고 하자.

그럼 나도 태강 따위는 버리고 다른 곳에서 얼마든지 도움을 받을 수 있단 뜻이다.

대한민국에 대기업이 태강 하나만 있나?

다른 곳도 차고 넘친다.

아니 꼭 한국에만 있어야 하나?

세계로 가면 그만이다.

세계에선 날 원하고, 한국이란 울타리는 나를 품기엔 너무나 좁으니까.

기업인씩이나 되시는 분이 이걸 모를 리가 없었다.

“겉보기엔 초라하고, 볼품없어 보이는데. 속은 아니군요.”

신동원도 의미심장한 답과 함께 계약서를 받아들였다.

내 서명을 확인한 뒤.

“좋습니다. 계약은 완벽하게 성사되었고. 이제 어떻게 해 드릴까요?”

“태원 서큐리티. 바로 제 집으로 와야 하는 데, 얼마나 걸립니까? 제가 먼저 가서 시간 끌고 있을 생각인데.”

“하하하, 참 속을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라니까.”

이번에도 신동원은 호탕하게 웃었다.

“뭘 얼마나 걸립니까? 어디든지 3분 내로 원하는 곳에 배치 가능하죠. 경비의 생명은 신속. 게다가 태원 서큐리티의 직원들 출신이 어디? 태강 길드. 내가 저 친구의 능력을 보며 한 말. 기억 안 나요?”

정다혜를 가리키며 한 말이다.

처음 그녀가 워프 능력을 보였을 때 정말 유용한 능력이라며 감탄하던 그 말이 떠올랐다.

“경비 업체는 신속이 생명 아닙니까? 그 신속이 대한민국에서 최고라서 우리 태원 서큐리티가 업계 1위가 된 이유죠. 워프 능력자는 그렇게 희귀한 능력자가 아닙니다. 흔한 능력이지만, 저마다 워프할 수 있는 거리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따라서 태원 서큐리티에 있는 직원 중 워프 능력자도 있다는 소리.

그래, 그렇다면 말이 된다.

어떻게 경비 사업에 뛰어들자마자 1위 기업이 된 건지.

사람들이 감히 상상이나 할까?

경비원이 자동차로 출동하는 게 아니라 워프로 출동한다는 것을.

“하지만… 헌터 신분을 벗은 지금 상태에서 헌터 능력을 쓰면 안 되잖아요……?”

“그건 다 방법 있으니까 여태껏 그렇게 해 왔겠죠. 주소나 빨리 알려줘요. 나도 그쪽으로 애들 보낼 테니까. 지금 급하다고 하지 않았나?”

나도 모르게 시계로 눈이 갔다.

약속한 시간인 5분이 조금 지나, 7분이 되고 말았다.

그에게 집 주소만 알려준 뒤.

정다혜에게 소리치듯 말했다.

“길 열어! 다혜야!”

“네!”

포털을 넘기 직전.

신동원에게 당부일지, 협박일지 모르는 말을 남겼다.

“이번에 신뢰 한 번 쌓아보자고요. 고마움을 넘은 신뢰.”

“그러면 초월석 프리미엄 붙어서 에누리 좀 쳐 주시나?”

그래, 나에게 초월석이 있는 한.

신동원은 일단 믿어도 될 것 같다.

그는 진심으로 다를 도와주는 게 아니다.

정말 전형적인 비즈니스 관계.

그는 원하는 걸 내가 갖고 있고.

또 내가 원하는 건 그가 갖고 있고.

이 상호작용이 깨지지 않는 한,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킨다는 철저한 비즈니스 마인드가 깔려 있었다.

차라리 이게 낫다.

백 마디의 사탕발림보단 노골적인 한 마디의 저 의도가.

그러니 지금 당장은 믿음이 갔다.

“하는 거 봐서요.”

“훌륭합니다.”

“얼마나 걸립니까? 그래서?”

“태원 서큐리티 중에서도 가장 비싸고 내 경호까지 맡는 최정예 팀을 보냈으니까 2분이면 충분할 겁니다. 상대가 상대인지라 이 정도로 조치하지 않으면 나도 불안해서요.”

“좋습니다. 기대하죠.”

난 그 말만 남기고 정다혜와 함께 포털 속으로 들어갔다.

***

포털에서 나오자.

“이건 또 누구냐?”

제일 먼저 눈에 띈 건 강만식.

그리고.

“흑… 흑흑…….”

이지은은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흐느끼고 있었다.

“언니…….”

정다혜가 그런 이지은을 향해 다가가려고 하자, 시커먼 남자무리가 정다혜의 앞길을 막았다.

“누구냐, 넌?”

난 남자무리를 살폈다.

‘내가 봤던 SF 길드원들이 아니다.’

정작 집을 침입한 건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래도 전부 낯선 자들은 아니었다.

6명이나 되는 무리 중에 내가 분명히 아는 얼굴이 둘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강만식, 박우민.’

이 두 사람이 저렇게 붙어 있는 걸 처음 보는 순간이다.

내 눈동자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더 빠르게 움직여, 한 사람을 더 찾았다.

바로 게이트로 들어간 의문의 한 사람.

내 예상대로라면 그 사람이 정다훈이 될 것이다.

정다훈이 어떻게 생긴 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의 나이대는 알고 있지 않은가?

꼬맹이.

이 한 명만 찾으면 되지만…….

‘없어.’

예상대로 어린이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사람인데?”

그때 강만식이 내 앞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길드장님.”

“길드장님? 내가 SF 길드를 가지고 있긴 한데. 그 친근한 인사는 뭐지? 낯설지도 않은 사람이고. 우리 어디서 본 적이 있던가?”

“난 많이 봤는데 기억 못 하나 보네.”

“많이 봤어? 나를?”

“지은 씨 말이 맞았구나? 당신이 관심 있는 건 헌터들 뿐이지, 일반인한테는 관심 없고.”

도통 영문을 모르는 소리를 늘어놓는다는 반응으로 강만식은 고개만 갸웃거렸다.

“그러니까 일반인이란 뜻인가? 네가?”

“그렇지. 한때 당신이 준 월급으로 산 사람이니까.”

딱!

그제야 뭔가가 떠올랐는지, 손가락을 튕겼다.

“아아~ 엘리베이터!”

“참 빨리도 기억하네.”

“잠깐, 근데 내 직원이 이지은이랑 붙어먹었던 놈이야? 그렇다는 뜻은…….”

강만식은 주저앉은 채로 흐느끼는 이지은에게 다가가, 그녀의 머리채를 덥석 잡았다.

“언니!”

이 행동에 가장 놀란 것은 정다혜.

이런 폭력적인 강만식의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본 게 처음인 듯했다.

“네가 심어 놓은 거냐? 저 자식.”

“……좋을 대로 생각해.”

흐느끼던 것을 멈춘 이지은의 눈빛은 매섭게 변하며, 반항심 가득한 채로 답했다.

나도 저런 무서운 이지은의 모습은 처음이다.

[윤도원. 여기 있는 놈들 전부 다 보통이 아니야.]

한편, 남자무리를 눈으로만 훑어본 흑염룡이 말했다.

‘그럴 거다. 내가 봐도 그래 보이니까.’

시간만 확인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신동원이 보낸 정예팀이 오니까 아주 조금만 버티면 된다.

하지만 역시, 시간은 기다려주는 법이 없다.

“여전히 눈에 뵈는 게 없구나. 지은아.”

강만식의 손이 이지은의 머리로 향했다.

척 봐도 쓰다듬는 따스한 손길이 아니다.

머리통을 터트릴 파멸의 손길로 느껴졌다.

“멈춰.”

난 그에게 말하며, 그대로 염력 능력을 분출했다.

드드드드-!

할 수 있는 최대치로 한 탓일까.

주변에 있는 사물이 진동하거나, 무게가 가벼운 것들은 허공에 떴다.

“이건…….”

“형님! 이거예요! 이게 제가 느끼던 거예요!”

박우민이 말했다.

그래, 넌 이미 나한테 한 번 당한 적이 있지.

그러니 이렇게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거다.

“오호라, 네가 우민이 쫓아내고 차도 박살 낸 그놈이구나? 아니, 워프는 딱 보니 네 옆에 있는 계집애 같으니까 년놈들이군?”

“그래서?”

“그 차가 얼마짜린데. 손해배상은 해야지?”

“그 손부터 놔라. 어차피 네가 볼일 있는 건 그쪽이 아니라 나일 텐데? 이거. 찾으려는 거 아냐?”

협회장실에서 턴 중국 협회의 비문을 보이며 말했다.

이에 강만식은 이지은에게 관심을 완전히 끄고, 내 앞으로 걸어오려고 했지만.

나는 그의 진입을 막기 위해 염력을 최대치로 분출하는 중이었다.

따라서 강만식은 마음대로 걸을 수 없는 상태였다.

“이거 꽤 성가시네. 처음 보는 형태의 능력인데, 뭐냐?”

“네가 알 건 없고. 정다훈 어디 있어. 설마 게이트 안으로 들어간 게 정다훈이냐?”

“눈치는 빠르네.”

강만식의 답에 정다혜가 황급히 게이트를 쳐다봤다.

5개의 게이트 중에 어느 게이트로 들어간 지 모르기에, 발만 동동 구르면서 초조하게 지켜보는 중이다.

“다혜야. 걱정하지 마. 어디로 들어갔는지는 내가 알아낼 수 있으니까. 금방 데리고 올게.”

“다훈이…….”

“걱정하지 마.”

“야. 이 성가신 것 좀 치워 봐. 저놈이랑 긴히 할 얘기가 있으니까.”

“옙.”

강만식이 박우민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명령하고 나자.

치리링-!

내 머리 위에서 푸른 구름 같은 것이 생성되었다.

상대도 여전히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인데, 그가 가진 능력은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보였다.

문제는 푸른 구름 속에서 쇠사슬이 움직이는 것 같은 불쾌한 쇳소리가 났다는 것이다.

그 순간.

치리릭-!

날카로운 창날과 같은 쇠사슬이 내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

미처 염력으로 막을 새도 없이 빠른 속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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