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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51화 (51/200)

§ 51화. 양지바른 곳. (1)

‘누군지는 모르고?’

[모르지! 게이트에 눈이 달린 건 아니니까!]

‘혹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게이트에 침입하려는 괴한이 누구인지는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금세 떠올랐다.

‘집 주위를 서성이던 SF 길드원. 그들인가?’

[나도 걔들밖에 없다고 생각해. 일단 게이트 안에 들어가진 않았어. 주변에서 맴돌고 있는 것 같아.]

‘넌 그걸 어떻게 그리 정확히 아는 거야?’

게이트에 신경이 달려 있어서 흑염룡과 공유하는 것처럼, 실시간으로 정확히 전달했다.

[내가 직접 만든 거니까 당연히 알지. 던전을 안을 느끼는 게 아닌 게이트 주변만이야. 그런데 주위에 있는 게 한둘이 아닌 느낌이야.]

한둘이 아니라면 역시, 집 주위를 포위한 SF 길드원이 맞는 듯하다.

자리에서 피하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만약, 계속 그 자리에 있었으면 잡히는 건 시간문제다.

[어떡해? 이대로 뺏길 거야?]

흑염룡의 질문과 동시에.

툭, 툭.

정다혜는 다급하게 내 팔을 찔렀다.

“왜?”

“이거요. 방금 보미 언니한테 온 연락.”

메시지의 내용을 보여줬다.

“왜 갑자기……?”

다름 아닌 이지은이 정다훈을 데리고 느닷없이 서울로 온다는 것.

심지어 이 사실을 알린 후 1분이 채 지나지도 않은 신보미의 이어진 메시지는 다음과 같았다.

-벌써 도착했대. 협회라는데……?

1분 만에 부산에서 서울까지.

정다훈도 워프 관련 능력일 게 뻔하니 그 먼 거리를 1분 만에 온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리고 다시 한 통의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어……? 언니 지금 도원 오빠한테 빌려준 집에 가 있대! 강만식, 다훈이까지 함께라는데?

상황이 너무 빠르게 흘러갔다.

흑염룡의 질문대로, 가만히 앉아서 던전을 뺏길 생각은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어차피 오늘 양지바른 곳으로 가려고 하지 않았던가?

마침 잘 됐다.

이참에 나도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움직이면 된다.

신동원은 상황을 아무것도 모르다 보니 그저 우리의 반응으로만 보고 무슨 일인지 대충 유추하는 눈초리였다.

“본부장님.”

“네.”

“바로 준비해달라는 거. 얼마나 걸립니까?”

“얼마나라면……?”

“정말 말 그대로 지금 당장 필요하게 됐습니다.”

“정확히 어떤 상황이길래 그렇죠?”

“아까 보셨던 게이트가 펼쳐진 곳. 거기에 강만식이 급습했다네요.”

“허허……. 좋지 않군요.”

신동원도 썩 유쾌한 반응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나와 똑같이 조급한 반응이 보일 정도다.

이미 게이트가 펼쳐진 방을 본 사람이다.

게다가 난 그것들을 준다고 했으니, 전부 자신이 가질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한 게 당연하다.

그런데 중간에 불청객인 강만식이 끼어 버렸으니.

그것은 나아가 협회장 최현민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뜻이 된다.

이렇게 되면 5개의 초월석 전부가 협회로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한 5분 정도면 어느 정도는 되는데 말이죠.”

“5분이요? 정확히 어느 정도라는 게 어디까지 되는 거죠?”

“일단 우리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이 답을 들은 난 화가 먼저 났다.

이런 상황에 계약서 사인이라니.

결국엔, 초월석을 자신에게 주겠단 물질적 증거를 확보하겠다는 욕심이 먼저 아니란 뜻인가?

“이 상황에 계약서라뇨? 제가 초월석 건은 약속한 거잖아요?”

버럭 화를 내며 따지려고 들었을 때.

신동원은 차분하게 손바닥만 보이며 설명했다.

“지금 시간 없다고 했습니다. 제가 말한 계약서는 초월석을 확실하게 제공하겠단 내용의 계약이 아닌데요.”

“그럼요?”

“태원 서큐리티. 의뢰자 신분으로의 계약서입니다. 도원 씨가 말했잖습니까? 강만식 그놈과도 맞부딪쳐야 하는데 지금은 혼자라서 무리라고.”

“그 말인즉슨, 본부장님이 개입할 확실한 명분을 위해?”

“그렇죠. 지금 도원 씨는 정식 헌터가 아닌, 일반인. 경비 업체인 태원 서큐리티에 의뢰할 수 있는 신분이 아닙니까?”

과연 한때 길드장을 지냈던 인물인 걸까.

솔직히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이미 거기까지 계산해 놨다니.

그렇지 않아도 집을 급습한 게 강만식 무리이니, 나 혼자 가는 건 역시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하지만 일종의 보험인, 신동원이 거느린 태원 서큐리티의 직원들.

전 태강 길드원들이라면 충분히 승산은 있었다.

“당장 준비해 주세요.”

신동원은 대답 대신 직접 일어나 컴퓨터로 향했고, 클릭 몇 번이 끝난 뒤에 계약서를 출력했다.

동시에 난 정다혜에게 한 가지를 전했다.

“지은 씨한테 5분 정도만 시간 끌어달라고 해. 내가 직접 갈 테니까. 그때까지만 끌어 달라고. 보미한테 그렇게 전해.”

“네!”

기다려라.

계약서 서명란에 사인이 끝난 순간, 난 바로 양지로 올라간다.

***

“지은아. 재미있는 걸 숨기고 있었구나?”

“…….”

강만식은 관리부원들과 함께 이지은이 소유한 상가 5층에 도착했다.

이지은의 옆에는 정다훈이 잔뜩 움츠러든 상태로 벌벌 떨고 있었다.

마치 이지은이 엄마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의 옆에 꼭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 애를 쓰는 모습이었다.

그들의 앞에 펼쳐진 5개의 게이트.

이것들을 처음 봤을 때 강만식은 물론, 관리부원들까지 전부 놀란 눈치였다.

“그래, 이런 걸 숨기고 있었으니 오는 길도 전부 은신으로 덮어씌웠구나?”

강만식 정도 되는 헌터에게 은신이 무슨 대수랴.

은신이라는 건 길을 막는 용도가 아닌.

그저 보이지 않게 가리는 것이다.

즉, 입구의 자리는 변하지 않은 상태다.

강만식이 이 출입문을 찾는 방법도 상당히 원시적이었다.

손을 벽에 짚은 상태로 천천히 진입한다.

그러다 보면 문고리가 손에 걸릴 것이고, 그걸 그대로 돌려서 열면 그만이었다.

“나 참. 여기에 초월석 5개나 있었는데…….”

화악-!

“끄윽……!”

강만식은 이지은의 머리채를 덥석 잡았다.

“제주도 찍고 부산. 무슨 개고생을 한 거냐? 심지어 넌 다 알고 있었으면서 감히 나를 똥개 훈련 시켜? 내가 누군지 몰라서 그래?”

“난… 모르는 일이야.”

“네가 어떻게 모르지? 이 건물 네 거 아니었나?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해?”

“모르는 일이라고.”

이지은의 눈에도 독기가 서렸다.

어차피 다 들킨 거.

더는 고분고분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 반항심이 가득 들었을 그때.

‘언니! 5분만 기다려 달래요! 시간 끌 수 있으면 끌어달라고 도원 오빠가 전해왔어요! 5분 뒤에 직접 거기로 가겠대요!’

신보미의 목소리다.

‘5분…?’

이 상황에서 5분은 너무나 길지만, 윤도원이 직접 온다는 희망이 있었다.

과연 윤도원이 직접 이곳으로 와서 무언가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들었지만.

그래도 이지은은 그 실낱같은 희망에 기대어야 했다.

“내가 가진 집이라고 해서. 집 안에 일어난 모든 일을 내가 다 알아? 너도 네 길드에서 일어난 모든 일 모르잖아.”

믿는 구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일까.

여전히 눈가에 서린 독기는 하나도 빼지 않은 채로, 똑바로 강만식의 눈을 맞추며 살벌하게 말했다.

그녀가 말한 ‘네 길드에서 일어난 모든 일’이란.

바로 윤도원을 말한 것.

자신의 길드 직원이 이런 대단한 능력을 지닌 헌터였음에도, 아무것도 몰랐던 그를 지적하는 것이다.

“눈에 뵈는 게 없구나?”

하지만 강만식은 분노 대신, 옅은 미소와 함께 답했다.

그러면서 검지와 중지만 세운 손가락을 이지은의 눈동자를 겨누며 이어 말했다.

“어차피 달고 있어도 눈에 뵈는 게 없는데. 뭐하러 놔둬? 그냥 확 터트려도 되지 않을까?”

“…….”

그렇게 잠시 둘의 신경전이 지속되던 중, 먼저 그만둔 쪽은 강만식이다.

그는 잡고 있던 이지은의 머리채를 내동댕이쳤다.

“끅!”

그 바람에 이지은은 몇 걸음 밀려 넘어졌다.

강만식은 5개의 게이트를 쳐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래, 차라리 잘 됐지. 여기가 노다지일 줄은 누가 알았겠냐. 협회장도 좋아하겠네. 어이, 꼬맹이. 이리 와 봐.”

이제 강만식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정다훈이다.

그 순간, 이지은은 정신이 아찔했다.

게이트가 펼쳐진 이 방에서 정다훈을 갑자기 부른다는 것은?

이미 신보미에게 들어서 알지 않던가.

그렇게 철저하게 숨긴 정다훈을 노출한 이유.

그리고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한 이유도.

지금 강만식은 정다훈을 혼자 게이트 속으로 밀어 넣어, 초월석을 가지고 오게 시키려는 속셈이다.

“안 돼! 다훈아! 이리 와!”

이지은은 벌떡 일어나 정다훈을 안았다.

정다훈의 눈에 게이트가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의 얼굴을 품 안으로 묻었다.

“뭐하냐? 걔가 네 아들이라도 돼?”

“다훈이를 왜 갑자기 부르는데. 뻔하잖아. 얘를 혼자 게이트 안으로 밀어 넣으려고 하는 거 아냐? 너 처음부터 그럴 생각으로 데리고 다닌 거잖아. 제주도에서부터.”

“하, 하하! 하하하하!”

으르렁거리는 이지은과 달리, 강만식은 호탕하게 웃었다.

왜 갑자기 저런 폭소를 터트리는지 이해 못 하고 있을 때.

“꼭 이렇게 머리 나쁜 것들은 자백을 해요. 그럼 그렇지. 역시 너잖아? 협회장 금고 턴 좀도둑들.”

“……!”

아차 싶었다.

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져 버렸고, 다시 담을 순 없다.

그리고 계속 숨길 생각도 없었다.

비록 자신의 실수가 있긴 하지만, 어차피 곧 강만식도 알게 될 사실.

이지은은 당황하지 않았다.

“같은 사람한테 두 번이나 털린 게 더 멍청한 거 아니겠어?”

“오늘따라 우리 지은이가 주둥이를 잘도 나불거리네? 도대체 뭘 믿고 그러냐?”

슬쩍, 이지은은 시계를 확인했다.

아직 5분이 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시간을 꽤 끌었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언제 오는 거야……!’

다급함에 신보미에게도 말해봤지만.

‘아직 연락 없어요. 언니, 상황 많이 안 좋아요?’

돌아오는 건 희망적인 소식이 아니었다.

“뭣들 해? 저 꼬맹이 데려와.”

상대는 냉철하기 짝이 없이 강만식.

시간을 끌려줄 사람도 아니다.

관리부원들은 그의 명령을 받고 이지은 앞으로 다가왔다.

“내놓으슈. 좋게 말할 때. 우리는 몬스터랑 싸우는 존재들이지, 같은 헌터끼리 치고받을 존재는 아니잖수?”

“절대 안 돼……!”

“그럼 팔다리 분질러져도 난 모릅니다?”

필사적으로 이지은은 막으려 했지만, 관리부원을 당해낼 순 없었다.

애당초 이지은에게 전투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들개처럼 달라붙는 관리부원들에게 의해 정다훈을 그대로 넘겨주고 말았다.

“다훈아!!”

“자, 꼬맹이.”

이제 강만식의 앞으로 온 정다훈.

정다훈은 몸을 심하게 덜덜 떨었다.

“네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해. 저 안으로 들어가서 초월석을 가지고 오면 끝. 어때? 할 수 있지? 쉽잖아?”

“…….”

정다훈은 답을 생략한 채로, 고개만 도리도리 저었다.

“왜 못하지? 너도 엄연히 관리부원이잖아? 관리부원이 이런 간단한 일 하나 못해?”

‘…다훈이도. 관리부원이라고?’

새로운 사실을 하나 더 안 순간이다.

“무서워요…….”

정다훈은 거의 울다시피 답했다.

“딱 말해. 할 수 있어, 없어?”

하지만 상대가 누군가.

이런 호소가 통할 리가 없다.

오히려 강만식은 표정을 도깨비처럼 굳히며 물었다.

“……없어요.”

정다훈은 강만식의 눈을 피하면서 답했지만.

“아니. 있어.”

텁!

정다훈의 목덜미를 잡자.

“어어……?”

정다훈은 당황했지만, 그것도 잠시다.

화악-!

강만식은 그대로 정다훈을 게이트 안으로 던져 버렸다.

“다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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