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양지에서 음지로 (7)
“미… 미안해요… 미안해요……. 용서해 주세요…….”
정다훈은 5월 8일이라는 날짜를 듣고,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는 것처럼, 식탁에 머리를 박은 채로 몸을 흐느끼며 그 단어만 반복했다.
정다훈의 그런 행동을 이지은은 알 턱이 없었다.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어린이가 갑자기 저렇게 서럽게 흐느껴 우니, 몸 둘 바를 몰랐던 이지은은 정다훈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어르고 달랬다.
“다훈아? 왜 그러니…? 뭐가 미안하단 거야?”
“누나 뒷좌석에 타고 있었다고 했죠…?”
“응.”
“제가 어렸을 때지만… 분명히 기억해요. 차 번호 외워뒀어요…. 5685…….”
그 순간.
이지은의 토닥거리는 손이 멈췄다.
“네가 그 번호를 어떻게 알아…….”
5685란 차 번호는 당시 부모님의 번호였으니, 이지은이 모를 리가 없었다.
5월 8일에 일어난 5685란 번호를 가진 차량의 교통사고.
토닥거림은 멈추고, 이지은은 잠시 이성이 날아간 채로 정다훈의 어깨를 덥석 잡았다.
“네가 어떻게 아냐고. 5년 전이면 너 고작 6살 때였어……!”
“누나 기억하죠…. 전 제 누나 만나고 싶지만 만날 수 없다고…. 누나와의 약속을 어겼기 때문이라고…….”
“죄짓고 살지 말랬는데 죄를 지었다는 거랑 둘을 죽였다는 게…….”
“네…. 그 차 사고. 저 때문에 생긴 일이니까요.”
이지은은 정다훈의 어깨를 붙잡은 손을 놓고 말았다.
둘이면 자신의 부모님을 말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분노 다음에 돌아오는 것은 의문.
그 당시 정다훈의 나이 고작 6살.
기껏해야 어린이집에 다닐 나이대의 그가 어떻게 사람이 죽을 정도의 사고를 일으킬 수 있었단 말인가?
아니, 무엇보다 정말 정다훈이 의도적으로 그런 것인지가 의심스러웠다.
어린이가 차 번호를 여태 외울 정도면 그만큼 충격적인 일이 분명하다.
그 충격적인 것은,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는데 일어났기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설마?’
그 순간 스치는 가설 하나.
분명히 정다훈은 6살 때면 누나와 헤어질 때였다고 했다.
그것을 바꿔 말하면, 강만식의 밑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다.
“다훈아……! 너 설마 그 사고 그 아저씨가 시킨 거니?”
그렇게 묻자, 정다훈은 고개를 조심스럽게 끄덕이기만 했다.
“말해 봐! 도대체 어떻게 시켰는데! 아니, 그런 걸 네가 조종할 수 있다고?”
정다훈의 능력은 이미 겪어서 안다.
정다혜와 비슷한 워프.
고작 그거 하나만으로 그런 인명사고를 일으키는 게 가능할까 싶었다.
“얼른! 용서할 테니까 말 좀 해 줘…….”
어느덧 분노는 사라지고, 이지은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혔다.
단순 사고라고 여겼던 그 날이.
사실은 강만식에 의해 예견된 일이었다는,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지은은 이 진실을 상세히 알고 싶었다.
“용서해 줄 테니까…. 제발 말해줘 봐…….”
***
시간이 꽤 지난 뒤.
정다훈은 겨우 진정할 수 있었고, 그제야 사고의 전말이 드러났다.
“그때는 제가 그 아저씨한테 간 지 얼마 안 됐을 때에요. 그 아저씨가 물어봤어요. 제 능력에 대해서요.”
“뭐라고 물어봤는데?”
“사진 하나를 주더니, 이 사진만 보고도 저 차가 있는 곳을 찾을 수 있냐고 그러더라고요.”
“그 차 사진이?”
“…네. 5685. 그래서 여태 기억하고 있어요. 계속 봤었으니까.”
순간 욕설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겨우 꾹 눌러서 참고, 침착함을 최대한 유지한 채로 물었다.
“그런데 네가 그런 것도 가능해? 너 워프 능력 아니야?”
“전 공간을 제가 원하는 대로 만드는 것도 할 수 있고… 다른 워프 능력자가 포털을 연 흔적을 찾아서 제 것으로 만들 수도 있어요. 그리고 원하는 물체가 어디 있는지도… 찾을 수 있고요.”
단순히 워프가 아니었다.
워프는 기본 옵션일 뿐이고, 정다훈만의 특별한 무언가가 잔뜩 있었다.
‘이러니 강만식이 얘를 데리고 갔지…….’
그렇다 보니 왜 강만식 밑에 있게 된 것인지도 쉽게 짐작이 갔다.
어쩌다가 강만식 눈에 띄었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정말 신기한 것이 강만식은 헌터를 보는 안목이 뛰어났고, 그로 인해 자신도 강만식의 눈에 띄고 말았으니까.
“그래서. 차를 찾아줬어?”
“네. 그리고 누나도 저번에 봤지만, 전 원하는 물체를 찾으면 실시간으로 볼 수도 있어요.”
“그랬지.”
강만식 몰래 정다훈을 편의점으로 데리고 갔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 정다훈은 내내 손거울 같은 것을 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찾고 나서는?”
“빙하 사진을 보여줬어요.”
“빙하 사진……?”
“네. 그 차가 달리는 부위만 빙하로 바꿀 수 있냐고 물었어요. 그거 하면 먹고 싶은 거, 갖고 싶은 거 다 사준다고……. 누나도 만날 수 있게 해 준다고…….”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보다 누나를 만나는 게 가장 컸을 거다.
강만식에게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니, 정다훈은 누나인 정다혜가 가장 그리웠고, 보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했을 게 분명하다.
당시 그의 나이 고작 6살.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이 어디 있을까.
“그래서… 해줬구나……?”
“네…….”
평소에 과속하지도 않았던 부모님이 과속으로 사고를 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안전벨트는……? 부모님은 안전벨트를 평소에 착실하게 맸고, 그날도 맨 거 내가 봤는데.”
“제가 기억하기론… 차가 갑자기 불안하게 빨리 달리니까 당황한 두 분이 뒷좌석에 있는 누나를 깨우려고 소리치려 했어요. 그 아저씨가 누나 주위 공간을 조작해서, 소리가 들리지 않는 상태로 만들 수 있냐고 물었고. 전 그대로 했어요…….”
“그리… 곤?”
“누나가 일어나지 않자 앞에 있던 아줌마랑 아저씨가 다급하게 벨트를 풀면서 누나를 깨우려고 할 때. 사고가 났… 어요.”
정다훈은 내내 이지은의 눈치를 보면서 어렵게 설명했다.
그 피해자가 자신의 눈앞에 있으니, 미안함과 무서움이 동시에 들었으리라.
그리고 왜 잠시 벨트를 풀었는지도 이지은은 알 수 있었다.
당시 뒷좌석에 누워 있던 자신은 벨트를 하지 않은 상태였고, 앞에 계셨던 부모님은 벨트를 한 상태로 누워 있는 자신에게 손이 닿지 않아서 다급함에 나온 행동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난 어떻게 살았지? 그 순간 사고가 나면 나도 죽었을 텐데.”
“그 아저씨가 저 차로 향하는 길도 만들어두라고 했어요. 뒤에 있는 저 사람은 절대 죽으면 안 된다고요. 그래서 사고가 난 그 순간, 제가 만든 길로 가서 누나만 안전하게 건졌어요.”
“그랬… 구나…….”
처음부터 그렇게 의도했단 것이다.
문제는 정다훈을 그 사고를 일으키기 위해 데려간 것인지, 아니면 다른 목적으로 데려갔는데 마침 상황이 맞아떨어진 것인지.
이지은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정다훈은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이다.
“미안해요……. 그때 시키는 대로 하면 안 됐는데…….”
“아니야. 네 잘못 없어.”
사람이 분노가 끓어오르면, 오히려 겉으로는 냉정해 보인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지금 이지은의 모습이 딱 그랬다.
“그래서 전 그날부터 그 차 번호를 기억했어요……. 태어나서 처음 보는 피……. 꼭 나중에 그 사람에게 찾아가서 용서를 구할 생각으로요…….”
“말했잖아. 용서한다고. 네 잘못 아니야. 그 아저씨가 다 시킨 일이니까.”
정다훈의 귀에는 상당히 차갑게 들렸다.
그렇다 보니, 더더욱 혼란스러워지기만 했다.
“죄송해요……. 정말…….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용서해. 정말이야. 그러니까 넌 곧 네 누나 만날 수 있어. 그 일로 누나가 힘든 게 걱정이었잖아? 괜찮으니까 안심해.”
“…….”
전말을 전부 들은 이지은은 강만식이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 강만식. 넌 그렇게 해서라도 나를 붙잡아두려고 했던 거구나?’
늘 말하기도 했었다.
부모님과 함께 지낼 곳이 마련되면 헌터 따위 은퇴해 버릴 거라고.
즉, 강만식은 그녀의 은퇴를 막기 위해 꿈을 산산조각 내는 일을 벌인 것이다.
‘적어도 넌… 헌터가 아닌 일반인의 생명에 손은 대지 않는 경우 있는 놈이라곤 생각했는데… 내가 널 과대평가했구나. 강만식…….’
이지은은 이를 뿌득 갈았다.
하지만 예전처럼 실의에만 빠져 있는 나날은 더 이상 그녀에게 없다.
자력으로 강만식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윤도원을 찾았고, 그 계획이 실현 직전 상태에 놓였으니까.
‘타이밍 참 좋지. 다훈이에게서 이런 얘기를 들으니까. 오기가 생긴다. 강만식. 어떻게든 성공시켜서 너를 몰락시키겠다는 오기.’
그러던 중, 정다훈이 이어서 말했다.
“저로 인해 사람이 죽는 걸 보고 그 뒤로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절대 안 했어요. 그때부터 전 혼자 갇혀 살았고 밥도 안 줬거든요…….”
왜 그렇게 굶게 되었는지에 대한 정황도 드러난 순간이다.
“이제 밖으로 나가야지. 네 누나가 기다리는 곳으로.”
“정말…… 그게 가능할까요?”
“응. 가능해. 그런데 다훈아, 누나 궁금한 거 있는데.”
“뭔데요?”
“아저씨가 너를 데려간 게 그 사고를 만들게 하려고 데려간 거야?”
이거 하난 확실히 알고 싶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그건 아닐 거예요. 그 아저씨 능력이 제가 있으면 정말 좋은 능력이라서요.”
“강만식의 능력?”
이지은도 알지 못하는 것을 정다훈은 알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미리 알아두면 윤도원과 이제 곧 실행될 계획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
이지은이 다급하게 물으려는 순간.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슬쩍 확인하니, 지금 이 순간 가장 증오하는 주인공인 강만식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순간 등골이 오싹하기도 했다.
왜 하필 이 타이밍에 전화했을까?
설마 우릴 감시하고 있기라도 한 건가?
불안한 마음에 정다훈에게 물었다.
“다훈아. 그 아저씨 지금 뭐 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어?”
정다훈은 손거울 같은 것을 다시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속에는 강만식이 있었다.
‘저긴 SF 길드…….’
그렇게 자주 갔던 곳인데 어떻게 모를까.
하지만 해당 장소엔 강만식 말고도 다른 이들이 존재했다.
‘박우민이랑…… 나머진 누구지?’
강만식은 그 상태에서 이지은에게 전화를 거는 중이었다.
‘일단은 받아야겠지.’
전화를 받자.
-그 꼬맹이 데리고 서울로 와. 프로젝트는 잠시 중단한단다. 올 장소는 협회. 꼬맹이한테 말하면 알아서 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 도착하면 연락해라.
뚝.
정말 제 할 말만 하고 끊었다.
‘갑자기 뭐지……?’
왜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서울로 오라고 하는지, 이지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거역할 수 없다.
즉, 싫어도 일단은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다훈아. 그 아저씨한테 온 전화인데.”
“…뭐래요?”
정다훈은 그 아저씨란 단어에 벌벌 떨었다.
“협회로 오라는데?”
“협회 알아요. 지금요……?”
“응.”
“왜 그런지는… 모르고요?”
이지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기 싫은데…….”
“괜찮아 누나가 같이 있잖아. 일단은 가자. 협회 근처엔 누나 친구들도 있으니까 어쩌면 오늘 네 누나를 만날 수도 있어.”
“정말요……?”
그 말에 정다훈은 희망을 가진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분위기가 안 좋아 보이니까……. 미리 말해두는 게 좋겠지?’
그렇게 생각한 이지은은 신보미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보미야. 갑자기 상황이 이상해졌어.’
‘이상해지다뇨?!’
‘우리 서울로 간다. 도원 씨한테도 그렇게 전해. 혹시 모르니까.’
***
흑염룡에게 말하는 것을 허락하자.
쌓였던 다급함을 토해냈다.
[누군가가 집에 있는 게이트를 침입하려는 것 같아!]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