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흑염룡이 산다!-48화 (48/200)

§ 48화. 양지에서 음지로 (5)

신동원은 정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며 뱉은 말이다.

그만큼, 확고하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이 서류를 이용해 협박하겠다고 했고. 내가 뭘 도와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결정적으로.”

“결정적으로요?”

“내가 얻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은 물론, 나도 두 사람이 최현민 협회장과 싸우는 것에 관여하는 꼴이 되는데. 내가 굳이 왜요?”

“그야 당연히 3년 전…….”

“그건 이미 끝난 거고.”

내 반박 전부를 듣기도 전에, 말을 자르며 자신의 답변만 늘어놨다.

“3년 전 일은 나도 고맙게 생각하지만, 어쨌든 그 결과로 나는 헌터 신분 박탈. 지금은 평범한 기업인으로서 살고 있는데. 내가 왜 굳이 그런 귀찮음을 감수하면서까지 협회장과 싸우려는 두 사람을 도와야 하는 거죠? 지금은 어차피 협회장은 내 밑 사람인데.”

협회장은 자신의 밑 사람이라고 칭한 이유도.

헌터는 군인과 비슷한 성격 때문이다.

헌터 협회장은 신동원이 헌터 신분이었을 때나 윗사람이지, 헌터라는 신분을 벗은 지금.

어차피 헌터는 일반인에게 그 어떠한 해도 입힐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신분적으로는 일반인이 헌터의 위에 있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신동원이 어디 일반 시민인가?

무려 대기업 후계자.

모르긴 몰라도 정치권 쪽이랑도 손이 잘 닿는 인물이니, 헌터 신분이 아닌 지금에선 그런 최현민과의 싸움에 굳이 자신이 껴들 이유가 없다는 뜻이 된다.

“3년 전 일의 복수? 그런 건 이미 상관이 없게 된 상황이죠. 게다가 얼굴 한 번 본 적도 없는 사람이. 이런 걸 카드랍시고 들이밀면서 도와달라면 누가 도와줍니까? 우리 사이에 고마움은 있어도 신뢰란 건 없는 상태인데.”

신동원이 서류를 우리 쪽으로 밀었다.

더는 얘기할 마음이 사라졌다는 행동이다.

그리고 전화기를 다시 스피커폰 상태로 설정해 비서에게 통화로 지시했다.

-네, 본부장님.

“취소한 미팅 다시 잡으세요. 시간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금방 끝났다고.”

이건 노골적으로 우리에게 볼일 다 봤으니 꺼지라는 말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거다.

정다혜는 불안함에 내 팔을 툭툭 쳤지만, 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생각이 멍해질 정도로 당황한 게 아니다.

전부 예상한 범위 내에서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부장님.”

“우리 얘기는 끝난 거 아니었나?”

“뭐, 일방적으로 본부장님이 끝낸 거지. 저는 아직 안 끝냈는데요.”

“그만 나가시죠. 더는 들을 필요가 없을 것 같으니까.”

“그럼, 이거 하나만 확실하게 묻죠. 결국엔 본부장님의 태도가 갑자기 바뀐 이유는 협회장과 더는 싸울 이유도 없고, 가장 큰 이유는 얻는 게 없어서가 아닙니까? 이건 어때요? 저희가 협회장과 싸우는 것을 도와야만 누구도 가질 수 없는 것을 본부장님이 가질 수 있다면. 그땐 도와주시렵니까?”

찰싹!

그 순간, 흑염룡이 내 어깨를 찰싹 때렸다.

내가 명령을 내리기 전까지, 입 다물고 있으라는 것 때문에 말을 할 수 없다 보니, 저렇게 행동으로 시위하는 중이다.

흑염룡의 눈빛은 분명하게 이렇게 말하는 중이다.

“너 설마… 키스톤 하나 챙긴 이유가 이거 때문이야……?”라고.

난 그 어떠한 신호도 주지 않고, 다시 신동원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갑자기 허공을 바라보는 나의 행동을 수상하게 여겼지만, 그는 굳이 묻지 않았다.

대신, 내 답을 듣고 흥미가 생겼다는 눈빛으로 변했다.

“윤도원 씨한테.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나요? 난 기업을 가진 사람이지만 윤도원 씨는 그에 상응하는 게 없지 않나?”

“있다면요? 확실하게 답해주시죠. 도와줄 거냐고.”

“일단 그 자신만만한 카드부터 나한테 보여주는 게 순서 아닐까 싶은데?”

난 신동원과의 눈싸움을 피하지 않고,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은 상태로.

내 손은 자신만만하게 주머니로 향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꺼낸 내 비장의 카드.

집에서 가지고 온 초월석 하나다.

그 순간, 신동원은 자신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온 것을 본 것처럼.

몸이 잠깐 들썩인 것을 난 분명하게 봤다.

“이걸 얻을 수 있다면요? 한가지 미리 말씀드리면, 전 던전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판단 잘하시리라 믿습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건, 동화에서나 나오는 얘기지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일어나면 안 되잖아요?”

유명한 동화 아닌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가져서, 황금알을 팔아 부를 축적하던 농부는 결국 욕심을 이기지 못해, 거위의 배를 가르면 한 번에 많은 황금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배를 갈라 버린 것.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거위의 배가 무슨 산란기 연어도 아니고.

알을 몇십 개씩이나 품고 있을 리가 없다.

결국, 귀중한 거위를 직접 죽여 버려 아무것도 얻을 수 없게 된 농부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지나친 욕심을 갖지 말자.’

난 그것을 신동원에게 경고하는 중이다.

때 되면 알아서 내가 초월석 바칠 테니, 당신은 그때를 기다리면 되고.

괜히 욕심부려서 나에게 허튼짓을 한순간,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꼴이 될 것이란 경고다.

“아니 초월석이 어떻게……. 그나저나 던전을 만들 수 있다는 건… 무슨 말입니까? 그런 능력의 헌터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는 심하게 말을 더듬거렸다.

“못 믿겠으면 잠시 갔다 와 보시겠습니까? 저희 게이트 밭에.”

“게이트 밭……?”

신동원의 반응만 봐도 절반은 먹혀들어 갔다.

난 이 승기를 놓치지 않고, 정다혜에게 말했다.

“다혜야. 길 열어. 본부장님에게 직접 보여주자.”

“아… 거기 5층이요?”

“응.”

정다혜는 곧장 길을 열었고, 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같이 보러 가시죠? 제가 거짓말을 하는 건지, 아닌지. 직접 확인하시는 게 좋잖아요?”

신동원은 의아함 반, 기대 반으로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

정다혜의 포털을 타고 도착한 5층.

그리고 그곳에 일정한 간격으로 펼쳐진 5개의 게이트.

게이트를 보자마자 신동원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제 믿음이 가십니까? 굳이 설명 안 해도 이게 진짜라는 건 아시겠죠? 한때 길드장이라는 위치에 계셨으니까.”

게다가 이미 세계에 있는 모든 던전이 정복되었다고 뉴스 속보로 떠들어대고, 실제로 유가를 비롯한 공과금도 치솟는 중이니 정말 던전은 완전히 정복된 게 맞다.

그런 상황에서 눈 앞에 펼쳐진 5개의 게이트.

이것도 정말 게이트가 맞는다는 것을 길드장까지 지낸 그가 모를 리가 없었다.

“어떻게… 만들 수 있는 거죠? 게이트를.”

그의 말투까지 변했다.

드문드문 반말도 섞으며 하대하는 듯한 말투가 사라지고, 정말 극진하게 대하는 중이다.

“그건 알려드릴 수 없죠.”

“왜죠?”

“본부장님 말씀대로. 우리 사이는 고마움은 있지만, 신뢰가 없는 사이 아닌가요? 신뢰가 쌓이면 알려드리죠.”

그가 나에게 뱉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하, 하하! 그래요. 내가 뱉은 말이니까 그대로 행해야 하는 것도 노블레스 오블리주 중 하나지요. 가만있어 보자…….”

신동원은 5개의 게이트만을 눈에 담았다.

그 과정에서 흑염룡은 분노의 표시로, 내 등과 가슴팍에 몸통 박치기를 연신 해대는 중이었지만, 나는 아예 흑염룡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흑염룡의 시위도 거슬리는 건 맞았기에, 조용히 협박 하나만 남겼다.

‘너 자꾸 그런 식으로 하면 15년 전처럼 봉인해 버린다고 한다? 봉인하면 알지? 너 밖으로 못 나오는 거.’

[…….]

이만 뿌득 갈았다.

말도 할 수 없고, 협박까지 하니 나라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를 터다.

하지만 그녀의 감정이 요동치면 어떤 불상사가 일어날지 알기에.

당부의 말로 끝을 장식했다.

‘나를 믿어. 생각 없이 이러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지켜봐.’

역시, 내키진 않지만 일단 자신이 손 쓸 수 있는 게 없으니 그저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이제 신동원이 말했다.

“그래요. 직접 제 눈으로 봤는데 명백한 증거죠. 물론,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지는 궁금하지만, 그것 역시 차차 신뢰를 쌓으면 알려줄 거라고 했으니까요. 그렇죠?”

“예.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만 가르지 않는다면요.”

“그건 당연한 거고. 그럼 돌아갈까요? 서로의 뜻을 알았으니. 이제 입을 맞춰보는 단계가 남은 것 같은데?”

호의적으로 변했다.

정말 초월석이 모두에게 그렇게 귀중하고 대단한 물건이란 것이.

다시 한번 절실히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러시죠. 다혜야, 돌아가자.”

그렇게 정다혜의 포털을 타고 다시 본부장실로 돌아왔다.

자리에 앉자, 신동원은 비워진 찻잔에 차를 새롭게 따라주며, 표정도 싱글벙글하게 변했다.

세계적으로 자원 공황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초월석.

그 값어치가 얼마나 천문학적인지 아는 사람이니까 저런 반응이다.

초월석 하나와 그룹 계열사 하나를 바꾸는 일.

그 정도도 가능할 정도의 값어치를 지녔으니까.

“자, 그럼 본격적으로 말해 볼까요? 내가 정확히 어떻게 도와주면 되는 건지요.”

“저희의 뒷배경이 되어 주시죠.”

“뒷배경? 이해를 잘 못 하겠는데.”

“아시다시피 저희는 지금 정식 헌터가 아닌 상태. 게다가 협회장 최현민을 상대로 서류를 훔쳐 온 일을 두 번이나 저질렀죠. 이 상황에서 협회장과의 협상은 난항일 것 같아서요.”

그러자 신동원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니까. 까 놓고 얘기해서. 지금 저한테 스폰서가 되어 달라, 이거네요?”

“역시. 이해가 빠르시네요.”

내가 법적인 문제가 생기건, 아니면 다른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나서서 말끔히 처리해달라는 말이다.

분명히 최현민과의 협상이 시작될 때 최현민은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도원 씨가 정식 헌터가 되고 나면,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는데? 헌터에게 적용되는 법률을 일반인과 다르단 것. 알고 있으면서?”

“그 부분은 생각해둔 게 있어서 괜찮습니다. 하지만 전 다른 쪽이 걱정인데.”

“어떤?”

“강만식과도 싸워야 하죠. 문제는 저 혼자선 강만식의 무리를 상대하기가 힘들어서요. 경호 좀 붙여주시죠.”

“경호? 길드장 직을 3년 전에 내려놓은 내가 경호를 붙일 수 있는 헌터가 있을 리가 없는 거 잘 아시면서?”

하지만 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에이, 신뢰 쌓자면서 이런 거 숨기면 안 되죠.”

“뭘…?”

“태강 그룹 계열사 중 하나인 경비업체, 태원 서큐리티. 거기 직원 중 상당수 태강 길드 출신들이잖아요?”

“하, 하하하! 이게 이렇게 맞아떨어지는군요?”

3년 전 태강 길드 사건 이후, 최현민과 강만식에게 반감을 가진 태강 길드의 헌터들이 갑자기 스스로 헌터직을 내려놓는 일이 벌어졌으니까.

당시 난 SF 길드에서 근무 중이었으니, 그런 소식을 접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이것도 헌터 관련 종사자만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태강 길드 해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생긴 보안업체 태원 서큐리티.

그들의 힘이 지금 내게 필요하다.

“좋아요. 그게 끝입니까?”

그럴 리가 있나.

아직 하나 더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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